화학‧화공‧섬유 분과 최 진 호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가 새로운 바이러스성 질병 창궐에 대해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코로나19 이전 사스, 메르스와 같은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가 지속해서 공중보건을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계기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백신 기술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모사한 mRNA를 통해 백신 개발 속도를 앞당긴 mRNA 백신 기술 개발 덕분에 팬데믹이 발생할 때 신속하게 백신 개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팬데믹에 대비할 수 있는 범용 항바이러스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팬데믹에 대비한 치료제 개발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2022년 6월 독일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 한 달 전, G7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및 일본)의 학술원 원장들이 공동 서명한 “Antiviral Drugs: Increasing Preparedness for the Next Pandemic”이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는 개별적인 바이러스에만 효과가 있는 기존의 항이러스제와는 달리, 범용적인 항바이러스제 (BSA 즉 broad spectrum antivirals)가 있어야 팬데믹에 대한 대비와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함을 지적하였다. 그 이후 즉시 범용적인 항바이러스제 개발 지원도 이루어졌다. 2022년 5월 18일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원계획을 발표하며 코로나, 파라믹소, 부니아 등 7개 바이러스 계열을 정하여 이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를 전임상 단계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미국의 9개 대학 및 연구 기관을 선정해 5억 7천7백만 불을 지원했다. Novo Nordisk Foundation, Open Philanthropy 등과 연대한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은 항바이러스 의약품의 발견 및 조기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인 Pandemic Antiviral Discovery(PAD)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고, 초기 지원금으로 최대 9천만 불을 약속했다. PAD의 목표는 코로나바이러스, 파라믹소바이러스, 오르토믹소 바이러스의 3개 바이러스 계열에 대한 항바이러스 경구제 후보를 발굴하고 개발해 임상 1상까지 완료하는 것이다. 세계적 연구 협력 단체인 READDI는 코로나바이러스, 플라비바이러스, 알파바이러스 계열에 속한 바이러스에 대한 광범위한 효능을 지닌 항바이러스제를 발굴하고 개발하여 5년 내에 5개의 범용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특정 계열 내의 바이러스들에 효과가 있는 범용적인 항바이러스제를 발굴하여, pandemic 상황에서도 바로 임상 2상에 진입, 사용이 가능하도록 임상 1상, 혹은 임상 2상 전 단계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범용적인 항바이러스제 후보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Ribavirin은 다양한 RNA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지니는 약물이다. Ribavirin은 guanosine analogue로서, RNA polymerase를 억제하여 바이러스 복제 과정의 오류를 유발한다. 현재 ribavirin은 RSV와 HCV 감염의 치료제로 승인되어 있다. 이 밖에도 Ribavirin은 임상시험을 통해 lassa 바이러스 감염증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Lassa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발열 시작 후 6일 이내에 정맥으로 ribavirin을 투여받은 경우 사망률은 9% (11명 중 1명)였다. 그에 비해, 7일 이상 지난 후에 치료받은 환자들은 47%(19명 중 9명)의 사망률을 보였다. 경구 제재 또한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에게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ribavirin이 단독으로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추가적 검증이 필요하다. Ribavirn 단독으로 HCV 감염 환자의 바이러스 복제에는 미미하거나 전혀 효과가 없었으나 interferon(IFN)과의 병용 치료는 환자의 항바이러스 반응을 현격히 향상헸다는 결과가 있다.
Arbidol은 세포막과 바이러스 간의 상호 작용을 억제하여 바이러스의 세포 진입과 융합을 억제하는 기전을 지닌다(Boriskin 등, 2008). Arbidol은 현재 러시아와 중국에서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승인 받은 약물이다. Arbidol은 HCV 감염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 실험 결과에 의하면, 15 µM의 arbidol을 24~48시간 동안 인간 간세포(Huh7.5.1)에 전처리한 결과, HCV의 감염이 최대 1000배까지 억제된 것을 확인했다. Arbidol은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감염을 억제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SARS-CoV2에 대해 Arbidol의 절반최대유효농도(EC50) 및 전체 세포의 50%에서 세포독성이 나타나는 약물의 농도(CC50)는 각각 4.11, 31.79 µM이었으며 선택 지수(SI= CC50/EC50)는 7.73으로, Arbidol은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농도에서 항바이러스 효능이 나타남을 입증하였다.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허가받은 Bortezomib (PS-341) 또한 범용 항바이러스제 후보이다. Bortezomib은 세포분열과 생존 조절에 관여하는 효소인 proteasome을 억제함으로써 apoptosis를 유도하여 항암효과를 나타낸다. 바이러스는 복제 촉진과 감염시키는 숙주 세포의 apoptosis를 방지하기 위해 NF-kB pathway를 활성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NF-kB pathway의 inhibitor 역할을 하는 IkB의 proteasomal degradation을 유도한다. Bortezomib은 IkB의 proteasomal degradation을 억제함으로써 바이러스의 NF-kB pathway 활성화를 억제하여 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낸다. 세포실험에서 Bortezomib은 농도 의존적으로 인플루엔자 감염 세포에 10 nM의 농도로 처리했을 때는 항바이러스 효과가 없었지만, 50 nM에서는 3 order(103), 최고 농도인 100 nM에서는 최대 4 order(104)의 viral titer 감소가 관찰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50 nM의 bortezomib 처리로 인해 4 order(104)의 VSV의 viral titer 감소가 일어났다.
Niclosamide는 앞서 언급한 범용 항바이러스제 후보 중 가장 넓은 범위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능이 입증된 약물이다. Niclosamide는 Bayer사에 의해 1953년 개발되어 1962년부터 Yomesan® 이라는 이름의 인체용 구충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2019년과 2021년에 nature communications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niclosamide는 세포 내로 침투한 바이러스를 세포가 Autophagy 메커니즘으로 분해, 제거하게 유도함으로써 코로나19와 메르스에 효능을 나타내는 host-directed antiviral agent이다. autophagy는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체를 분해하는 세포 기능 중 하나이며 BECN1은 그 핵심조절 인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SKP2를 억제하면 BECN1의 proteasomal degradation이 감소하여 autophagy가 활성화되는데 niclosamide는 이 SKP2를 억제하는 것으로 연구 결과 밝혀졌다. Niclosamide는 세포실험을 통해 코로나19, 인플루엔자, 뎅기, 에볼라, C형간염, 지카 바이러스를 포함한 32종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능이 있음이 여러 논문을 통해 밝혀져 있다. 한국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niclosamide는 SARS-CoV-2에 대해 0.28 µM에서 절반최대억제농도(IC50)를 지니며 전체 세포의 50%에서 세포 독성이 나타나는 약물의 농도(CC50)는 50 µM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계산한 선택 지수(SI = CC50/EC50)는 176.65로 매우 안전한 농도에서 SARS-CoV-2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능이 나타남을 입증하였다. Niclosamide의 난제는 물에서의 매우 낮은 용해도와 낮은 생체이용률이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실과 현대바이오사이언스와의 협력연구로 50년간 해결안되었던 난제들이 해결되었다. 또한 한국에서 진행된 코로나19 임상시험에서 증상개선 효과가 기존 팍스로비드, 몰누피라비르, 조코바에 비해 월등함이 입증되어 한국 정부가 긴급사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곧 승인이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배해 시간과 비용이 매우 절감되는 약물 재창출 전략은 안전성이 검증된 기존 허가된 약물을 바로 임상 적용할 수 있어, 앞서 언급한 범용 항바이러스제 후보들은 매우 유리하다. 따라서 이를 적극 개발하여 환자의 치료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제도인 연구자 임상, 치료 목적 사용 승인 등의 제도들을 통해 임상데이터를 축적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Universitaet Muenchen, PhD in Chemistry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석좌교수
동경공업대학 혁신기술연구소 특임교수.
(전)이화여자대학교 화학나노과학과 석좌교수
(전)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