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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개인 산행기 스크랩 쌍계사의 가을 - 20131103
감포 추천 0 조회 230 13.11.06 09:0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누구와 : 마루금 명품팀 30여명

 

어디를 : 화개면 목압마을 ~ 국사암 ~ 국사암능선 ~ 남부능선 ~ 혜일봉능선 ~ 불일폭포 ~ 쌍계사까지 발품.

 

산행만족도 : ★★★★☆

 

 

 

날씨 : 안개가 끼어있다가 맑아짐. 오후에는 다시 구름 가득. 바람은 산들산들.

기온이 오르면서 상의 한장임에도 더웠음.

땀 엄청.

 

1. 목압마을  

 

최치원은 방랑자였다.

신라에서 당으로 

서라벌에서 가야산, 지리산으로...

화개천이 흐르는 목압마을은 승학등선(乘鶴登仙)한 최치원이 방랑을 멈춘 곳이다.

세이암에서 세속에 물든 더러운 말을 들은 귀를 씻고

나무로 만든 오리를 흘려보내자

나무오리는 흘러흘러 목압마을에 이르러서야 마을을 향해 고개를 향했다.

고운은 이곳에서 산을 넘어 불일폭포 근처 환학대에 이르자 

학 한마리를 불러내어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자신의 방랑의 끝을 마무리했다.

 

목압 마을에 관한 진감국사의 전설. 또 하나.

화개면에 도착한 진감국사는 세마리의 나무 오리를 허공에다 띄운다.

나무 오리는 하늘로 거침없이 훨훨 날아올랐다.

세마리의 나무오리 중에서

  하나는 국사암터에, 다른 하나는 쌍계사터에, 또 다른 하나는 목압마을에 내려 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목압이라는 ...

 

목압(木鴨) 마을은 나무오리라는 뜻을 가진 마을이다.

목오리로 부르는데 갱상도 사람들 발음 땜시 복오리로 보통 불리운다고 한다.     

 복오리 마을 새로 생긴 콘트리트 다리를 건너 차량이 정차를 했다.

 

 

 

대형차량은 좀 무리이겠지만

자가용타고서는 국사암까지 가도 된다.

물론 쌍계사 입장료(성인 개인 2,500원, 단체 2,200원)도 아낄수 있다.

 

 

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산의 한모퉁이를 몰아내고 만든 밭에서는 가을 걷이가 한창이었다.

 길가에 서있는 노오란 단풍나무에서는 가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진 가을이 발끝에 차여 이리저리로 나 뒹굴고 있었다.

 

 

연꽃 소류지.

정식적인 이름은 쌍계연지.

아찔한 유혹의 홍련과 청초한 백련이 뒤섞여 핀다고 한다.

연지 제방을 따라 인공으로 만든 평편한 곳에서

편안하게 앉아 연꽃 구경하면서 멍~ 때리면 좋겠네.

 

 

관세음보살~

 

2. 국사암

 

 

 

1200년 된 보호수이다.

나무 이름도 사천왕수란다.

사천왕의 숫자처럼 4가닥으로 뻗은 가지가 그 이유란다.

진감국사의 지팡이로 쓰던 것을 꽂아 두었더니 이렇게 자랐다는 그런 전설따라 삼천리~ 

 

 

산행중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국사암에 들러 느긋하게 구경하고 가면 좋으려만...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국사암은

 삼법화상이 신라 성덕왕 722년(21년)에 건립하여 수도하던 곳.

입적 후 110년만에 민애왕이 국사로 임명했던 진감선사가 중건했고, 그가 머물었던 곳으로  

이로 인해 국사암으로 불리운다.

 

 

엄청 예쁜 굴뚝 발견.

그리 커지도 않은 암자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굴뚝이 암자의 뒷켠에 서 있다.

 

이런게 해학이며 풍자다.

필요없는 것들을 태우는 아궁이의 굴뚝에 피어난 기와와 진흙의 꽃.

아무리 필요 없는 것일이언정

다음 생에는 예쁘고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나길 바랬을 누군가의 소망이 담긴 그런 곳.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 씀씀이 만으로도 국사암은 그 이름 값을 하는 듯 했다.

 

 

ㄷ자 형태를 가진 암자의 본채.

마당 앞으로 문이 나있고 문을 열면 쌍계사에서 넘어오는 오솔길이 이어진다.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뽑힌 그 길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 떨어진 낙엽을 채 쓸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 쌍계사 쪽으로 진행을 한다.   

 지나가는 산꾼들을 사천왕수가 내려다 보고있었다.

 

3. 국사암 능선 들머리

 

 

어느 산행이든 제일 찾기 힘든 것이 들머리이다.

일단 들머리만 찾으면 그 다음은 거의 자동 진행.

하여 국사암 능선의 들머리를 따로 떼서 정리한다.

 

 

<- 국사암 0.2km         불일폭포 2km ->

쌍계사 0.3km

 이 표지목 있는 곳.

 

쌍계사 임산물 특별보호관리 지역 이며 적발시 배상책임 운운한 경고판이 서 있는 곳 뒤로 국사암 능선이 열려있다.

 

 

국사암능선으로 진행을 하다보면 요렇게 생긴 부도가 나타난다.

제대로 진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 부도가 보물 380호로 지정된 쌍계사 부도인가?

그림상으로는 그러한 것 같은데...  

 

4. 국사암 능선

 

 

마루금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분들 참 대단타!

거의 논스톱으로 5번 지점인 남부능선으로 쳐올린다.    

 

 

감포는 그래도 쉬엄쉬엄.

사진 찍고

물마시고

땀 좀 흘리고 가실께요. 

 

 

불일폭포골과 혜일봉능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만산홍엽.

지리산이 물들었다.

바위도 나무도 흙도 바람도 햇빛도 

가을에 물들었다.

 

 

절정.

2013년 가을의 절정.

아 ! 지리여.

 

 

5. 남부능선 그리고 점심.

 

 

 

하동 독바위 전경.

항아리 모양을 닮았다고 독바위라 불린다고 하는데

여기서 보니 독수리를 닮았다

 

발밑에 남부능선과 혜일봉능선,

좌측에 청학동, 우측에 불일폭포골

 전부 한번에 눈에 들어오는 조망터에서 혼자 독상을 폈다.

 

 

점심 식사 장소에서 바라 본 청학동

 

6. 혜일봉 능선 들머리

 

 

남부능선을 타고 관음봉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줄을 쳐 놓은 곳이 있다.

바로 舊 상불재가는 길이다.

공단에서 길을 돌려 놓았는데

삼성궁쪽이나 악양쪽으로 진행을 하는 사람들은 둘러가지말고 바로 그 줄을 넘어면 된다는 이대장님의 설명.

 

상불재 이정목이 나타나는 곳이 혜일봉능선의 들머리.

 

<--  4.9km 쌍계사    삼신봉 4.1km  --> 

삼성궁 2.3km

 

상불재

 

이 표지목이 서 있는 곳에서 쌍계사쪽으로 떨어지는 길 말고

능선길에 출입금지 표지기가 붙은 곳이 바로 혜일봉 능선의 들머리이다.  

 

잠시

올 가을 들어 제일 눈 호강을 시켜준 혜일봉 능선의 단풍 구경.

 

 

혜일봉 능선으로 주욱 내려선다.

고만 고만한 산죽과 미끄러운 낙엽.

별 다른 선택의 고민없이 그냥 내려선다.

오랜만에 거침없이 달렸다.

 

 

 

 

 

 

 

 

 

물소리가 들리면서 맞은편에 불일암이 단풍 사이로 모습을 들어낸다. 

불임암 갈림길.

직진하는 길과 좌측으로 크게 떨어지는 갈림길 직전 50여미터 지점.

우측 불일폭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계곡이 나오면 맞은 편으로 건너가는데 금줄을 쳐놓았다.

금줄을 넘기전 불일폭포 상단구경.

저 아래 전망대에 구경꾼들 몇분이 불일폭포의 가을 즐기고 있었다.  

불일폭포 상단 구경하고 불일암에서 만나자는 대장님의 지시가 있은지라 금줄 너머 길을 찾아서 진행을 한다. 

 

7. 불일폭포, 불일암.

 

 

 

 불일폭포 측면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지다 물소리가 나는 계곡 쪽으로 조금씩 풍경이 열리면서 불일폭포의 옆 자태가 드러난다.  

 

 

조계산자락 송광사 불일암과 혼돈하시는 분들이 종종있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덕분에 송광사 불일암도 유명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쌍계사 불일암은 법정스님이 기거하시던 곳은 아니다.

 

불일암 이름의 연유는 바로 고려의 거승이었던 보조국사와 연관이 있는데

보조국사가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수도를 했다고 한다. 

보조국사의  시호가 불일(佛日) 보조국사였던 것이다. 

  

 

 

 

 

온김에 불일암 이야기를 들어보자.

불일암 좌측은 청학봉, 우측은 백학봉이다.

좌 청룡 우백호가 아닌 좌청학 우백학의 형세라는 것이다. 

마당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산줄기는 광야의 백운산.

가히 천하의 명당이며 절경이라 할 만하다.   

 

 

 

 

 

 

 

불일암 앞마당을 나서자 갈림길.

우측은 쌍계사, 좌측은 불일폭포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 중턱.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해발 700여 m

지리산6경 하동7경 불일폭포.

구경 안하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수량이 줄어 그 위용을 보지 못함이 아쉽지만

그래도 불일폭포.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中에서

 

 

 

불일폭포 전망대 맞은 편으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서는 본진들.

다시 돌아가면 합류는 할 수 있겠으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즐기란다.

대신 쌍계사 구경이라도 실컷하자 싶었다.

 

 

불일폭포 탐방소에 있는 직원들이 난데없이 차 대접이다.

국립공원 입산지정 시간제라는 제도 시행에 필요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할당량이 있어서 하루 5장을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불일평전

 

쌍계사에서 불일암에 오르는 중에 만날 수 있다. 

면적이 약 만평정도 된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 국립공원 불일탐방소가 개설이 되어있다.

식수를 얻을 수 있다.

 

청학동  후보지 중에 하나라고 추정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8. 쌍계사

 

쌍계사(雙磎寺)

통일 신라 시대인 722(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과 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예사롭지 않은 현액 

바로 해강 김규진(1868-1933)의 글씨다.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곳을 유람하면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茶, 불교음악, 禪을 처음 전한 진감국사의 수행처답게 커다란 차 주전자가 놓여있다.   

 

 

 

한국 불교음악의 메카.

바로 범패라고 불리는 음악을 공부하는 곳이다.

 

 

팔영루는 수리중.

 

 

 

진감국사비는 국보로 지정이 되어었다.

세월의 흔적을 넘어서 1200년을 버텨오고 있단다. 

글씨는 고운의 솜씨.

 

 

 

 

 

 

 

 

 

 

육조 정상 탑전은 쌍계사 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각으로,

불교 선종 6조인 혜능 대사(慧能大師)의 정상, 즉 두개골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이다.

처음 삼법 화상이 정상을 가져왔을 때는 전각을 조성하지 않았다.

 

삼법화상이 처음 혜능의 정상을 가지러 이유와 상황은 이렇다. 

육조의 정상(頂相)을 흰눈이 덮힌 계곡, 꽃이 피어 있는 곳을 찾아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다.

중국 홍주 개원사(開元寺)에 머물면서, 2만냥을 주고 장 정만(張淨滿)으로 하여금 탑묘에 모셔있는 육조 혜능의 정상을 취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그 고을의 현령 양 간(楊侃)과 자사 유무첨(柳無?)의 수색으로 곧 잡혀서 육조의 제자인 영도스님에게 처분을 물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해동에 육조 정상을 모시고 공양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용서를 받아 육조 정상을 모시고 귀국한다.

 

통일 신라 때 진감 선사(眞鑑禪師)가 중창을 하면서 건물을 세워 육조 영당(六祖影堂)이라 이름 하였다.

후에 금당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유는 전하지 않는다.

 

육조 정상이 처음 전래된 때에는 중국인들이 다시 가지고 갈까 염려하여 돌함에 넣어 흙으로 덮고 불전을 지어 숨겼다.

이로 인하여 예배하고 공양하려는 사람들이 그 진용(眞容)을 밝게 볼 수 없었다.

이에 용담 선사(龍潭禪師)가 김홍조와 박경수의 희사를 받아 이듬해 봄에 7층 석탑을 세워 놓았는데,

이후부터 육조 정상 석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탑은 당시 주변에 있던 목압사(木鴨寺) 터의 석탑을 용담선사가 옮겨 온 것이라고도 전한다.

 

추당(秋堂) 혜근(惠勤)육조정상방광론(六祖頂相放光論)에 따르면,

육조 정상 석탑은 인적 없는 밤중이면 자주 빛을 발하여 하늘을 환하게 밝혔는데,

1913년 계축년 2월 초파일에는 갑자기 탑전에서 빛이 솟아 나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이후에 현대에 들어와서도 1976년과 1978, 1980년 세 차례의 방광(放光)이 있었다고 전한다.

더욱 19888월에는 커다란 붉은 불빛이 솟아 나와 주위 40[100여 리]가 대낮처럼 밝았는데,

인근 주민들이 사찰에 불이 난 줄 알고 올라왔다가 방광한 것임을 알고 환희하며 찬탄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방광의 영험이 전하는 육조 정상 석탑은 쌍계사의 위상을 잘 알려 준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중에서 발췌

 

* 정상(頂相)의 두가지의 의미.

 

1.  선종(禪宗)에서는 고승의 초상화를 일컫는다. 상반신상과 전신상이 있다.

2. 정상의 한자 적인 해석, 정수리 형상.

 

위의 설명과 많은 이들의 설명에서는 두개골이라고 하였지만 

 頭와 頂의 차이는 엄격하고 해부학적인 의미도 엄연히 틀리다.

두개골은 뇌를 싸고 있는 모든뼈(skull)를 지칭하는 것이고

정수리뼈는 sagital sulture 양측의 parietal bone을 지칭하는 의미이다.

하여 육조영당에 모셔진 것이 실제 두개골인지, 정수리뼈인지 

아님  육조 혜능의 초상화인지 알수는 없는 노릇이다.

 

* 선종의 육조란?

달마대사를 초종으로 시작된 선종을 대표하는 인물로 육대에 걸쳐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교황에 비견될까?)

 

 

금당 양측에 쓰여진 날렵한 현판.

누구 글씨일까?

바로 추사의 글씨이다.

 

금당을 쳐다보고 서서 볼때

좌측에 쓰여진 육조정상탑이란 현판과 우측에 쓰여진 세계일화조종육엽이란 현판 둘다 김정희의 작품이다.

물론 지금 금당에 걸려있는 현판은 위품.

진품은 쌍계사내 성보박물관에 소장중.  

 

가을 바람 부는 길목.

맘껏 즐겼다.

단풍잎 붉은 능선과 맑은 폭포, 그리고 산 곳곳에 숨은 이야기까지

그래서 지리, 그래서 명품 산행.

좋은 분들과 2013년 가을의 하루를 노닐다 왔다.

 

붉은 단풍 떨어져

내년 화개천에 필 

내 애인 속살 같은 벚꽃으로 필 때까지

그리운 것들이여.

잘 계시라.

 

화개천 맑은 물위로 가을의 늦은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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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06 12:46

    첫댓글 부회장님 혼자서 좋은데 다갔다 오셨어요 단풍 감상 잘하고 갑니다

  • 작성자 13.11.07 12:47

    산이 그거가 그기 아입니꺼.
    나중에 성님하고 한번 모실께요.
    몇번은 가봐야 될 자리 같더군요.

  • 13.11.06 15:10

    좋은곳 다녀오셨네요..
    우리도 번개산행 함 추진해보시죠.....^^*

  • 작성자 13.11.07 12:48

    그렇쵸.
    이번주 지나면 단풍이 다 떨어질 것 같더군요.
    벙개는 담 기회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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