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은 조선왕조 중 가장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정조가 실학파 학자들과 함께 구축한 성입니다.
중국을 견학한 실학파 학자들이 과학적으로 설계하였고 축조 과정에서도 거중기 등
편리한 기구를 만들어 축조하면서 부역이 아닌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만든 성이며
모든 사항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찌 유네스코 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6월 순천산악회 청계산 산행 때 동문산악회 활동을 다양화 하자는 의견이 나와
6월 행사로 '화성 한 바퀴 돌기'를 시작으로 7월 행사는 피서지로 야유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화성 한 바퀴는 수원에 사는 내가(20회 이상규) 가이드겸 후원을 하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호응이 좋아 14명이 참석하여 일부 후원으로 바꿨습니다.ㅎㅎ
어제부터 때이른 무더위로 폭염주의보까지 내려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함께'라는 힘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매월 행사를 하는 동문산악회의 회원간 결속력은 갈수록 굳건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참석한 멋진 동문들입니다.
2시간 코스를 3시간에 돌았습니다. 엄청 뜨거운 날씨였거든요.
한 바퀴 거리는 약 5.7km (15리길)
수원역 9번출구에서 지각자를 기다립니다.
대전에서 오늘 처음 참석한 김종평(24회) 동문이 사온 대전의 명물 성심당 빵으로 원기를 돋웁니다.
수원역앞 매산 시장 버스정류소에서 13번을 타고 팔달문(남문)까지 왔습니다. 15분 소요됩니다.
경제논리로는 4명의 버스비를 합하면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곳 정류장에 내리면 팔달문 시장을 비롯하여 재래시장이 9개가 몰려 있습니다.
팜플렛을 한 손에 들고 오늘의 문화해설사 같은 문오순 동문(24회)
처음부터 오르막 길입니다.수원의 대표적인 산 "팔달산"정상까지 성곽이 있으니까요.
오늘 최고기온이 31도라 했는데 10시 40분인 지금 더위가 28도 쯤 되나봐요
오늘 성곽순례 참가자들의 불평을 최소화 시키려면 자주 쉬어야 했습니다.
오늘 참석한 4명의 여자동문 - 좌로부터 윤미방(24),문오순(24),임인화(29),이선자(19)
31운동 기념탑
팔달산의 옛 이름은 "탑산"입니다.
높이는 128m이지만 산에 오르면 수원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팔달산 그림을 보고 '사통팔달'한 산이라하여 지금' 팔달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팔달산은 수원의 '혈자리'라 합니다.
수원은 전국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교통요충지로서 사통팔달한 위치에 있는 도시랍니다.
오늘 22회 3명이 참석했는데 쉬는 날이라 ,한 번도 안가봐서,수원에 살아서 등의 이유로 참석했습니다.
시속 1km도 안되는 속도로 서서히 움직여도 덥습니다.
2,000원만 내면 종을 세 번 칠 수 있는데 지금은 잠시 시스템 보완 중이랍니다.
수원성 팔달산의 서장대로 접근중입니다.
'장대'는 장군이 지휘하는 곳인데 화성에는 이 곳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습니다.
서장대 간판 "화성장대"란 글은 정조대왕이 직접 쓴 글이라 합니다.
장군 지휘소인 장대 앞에는 '노대'즉 "서노대'가 있습니다.
팔달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서노대(西弩臺)는 돌축대 사이를 벽돌을 채워 쌓아 높이 만든 시설물로 이곳에서는 군사 명령에 따라 오방색 깃발을 흔들어 명령을 전하기도 하고, 또 쇠뇌라는 큰 화살을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노대에 올라가 봤습니다.
수원시내 주요 장소를 찾아 봅니다.
이제부터 내리막 길만 남았습니다. 팔자 핀 거지요.
대전에서 올라온 종평이~~~~얼음물로 더위를 쫓아 봅니다.
구리나 대전이나 시간은 두 시간이다고 주장하는 인화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유전자가 좋아서
병규에게는 오늘 코스는 뒷짐지고 도는 산책 수준입니다.
더워서 만사 귀찮아 대충 본 동문들은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뒤돌아 보니 팔달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화서문(서문)에 다달았습니다.
동,서,남,북 4개의 문중 남문에서 서문까지 오는데 한 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너무 느릿느릿
소금에 곰팡이 필 것도 아니고 모래알에 싹 틀일 없는데 세월아 천천히 가세나~~~
화서문(아래 사진)을 찾아 갑니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중국의 성을 탐방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옹성을 쌓았고
벽돌로 성벽을 쌓은 곳이 '화성'입니다. 보통 성벽이 6미터인데 수원성벽 높이는 8미터 입니다.
중국 서안의 명조성은 벽돌을 구워 쌓은 성 높이가 20여미터이며 성벽 두께는 마차가 교행할 정도입니다.
만리장성 또한 넓고 높지요.
'옹성'이란 성문 앞에 둥그렇게 쌓은 것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적들의 공격을 막는 곳입니다.
서울의 성에는 동대문에만 옹성을 쌓았습니다.
사무국장이 찍은 단체사진 입니다.
'유카란' - 순천고등학교 캠퍼스에 많이 심어 놓았던 유카란 꽃이 만발했습니다.
화서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초가 쉼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탁배기 한 사발 죽 들이키면 더위도 잊겠구만~~~
행만이 사무국장이 주변 편의점을 뒤졌습니다.
역시 건물 안은 시원합니다.
더운데 걍 신발 벗고 쉽시다.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여름에는 무리하면 안됩니다. 수분 섭취는 많이 해야 하구요
장안문(북문)으로 갑니다.
장안문은 남대문보다 큽니다.
화성이 서울 성에 비해 결코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 될 성입니다.
조선의 문화융성 시대를 이끈 정조와 실학자들의 염원이 담긴 화성입니다.
이 성이 정조와 당시 실학자들이 구상한 이상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도시의 구현(具顯)이었다는 점과,
성의 실제 건축에 관한 모든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는 점을 높이사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지요.
정조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도세자(思悼世子)로,
그는 당시 노·소론의 세력 다툼과 부친인 영조(英祖, 재위 기간 1725~1776년)의 강한 성격에 희생되어
결국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아 '뒤주대감'으로도 지칭되었습니다.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는 자신의 한 많은 삶을 기록한 「한중록(閑中錄)」이란 글을 남겨
우리나라 역사상 명 여류작가의 대열에 오른 인물입니다.
화홍문~~~
수원 화성(사적, 1963년 지정) 내의 북쪽 수문입니다.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 하며, 아래에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가 있습니다.
수원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광교천(光敎川)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므로 1796년(정조 20) 성곽을 신축하면서
준설하고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는데, 그 중 상류에 해당하는 북쪽 수문입니다.
성곽 내의 시설물 중 상당수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파괴되었으나 이 부분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홍문 [華虹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팔달문쪽으로 흐르는 광교천
동북각루~~~
각루(角樓)는 성곽 가운데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합니다.
즉 성밖의 동태를 사시사철 잘 살필 수 있는 주요 요새지에 세우는 것으로서, 화성에는 서북각루(西北角樓),
동북각루(東北角樓, 방화수류정), 동남각루(東南角樓), 서남각루(西南角樓, 화양루) 등 4개의 각루가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각루 (문화원형백과 화성의궤, 2002.,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동북각루를 '방화수류정'이라 부릅니다.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는데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화수류정 [訪華隨柳亭] (수원화성 테마관)
장안문을 지나 동문을 향해 갑니다.
그늘이 없는 땡볕길입니다.
장안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성곽 입구에는 "파시야"라는 빙수 전문점이 있었는데 커피숍으로 바뀌었지만
팥빙수는 판매하는 것 같습니다.
"뜨거워서 싫어요"
익어불것어~~~
북 암문으로 나가 방화수류정 연못으로는 못 들어 가고 억새밭 뒤에서~~
노동자들이 새참 먹는 풍경이지만~~~~~
싸오지 말라는 간식을 굳이 싸오신 이선자,임인화 동문이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행만이가 급히 구해온 막걸리와 선자 선배가 갖고온 순천만 갯뻘 칠게 볶음에 젬피김치.
인화가 만들어 온 젬피 겉절이를 곁들여 시원하게 한 잔씩 마시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첫댓글 엄청나게 좋았어요
감사할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