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아시아를 품겠다던 대아여!
이름 대아고등학교
강희근 시인
진주에 민족교육의 산실 있다는 말
들었는가?
그 이름 대아고등학교여
진주에 오민교육, 그 민족 지키는 산실
있다는 말 들었는가?
그 이름 대아고등학교여
진주성 아침에 청소하는 학생들
그들이 다니는 깨끗한 학교 이름
들었는가?
그 이름 대아고등학교여
진주에 이충무공 탄신일 행군에 나서는
학생들
그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
들었는가?
그 이름 대아고등학교여
또 있지
육군대학을 다니는 장교들
나라 지키는 정신의 학교를 찾다가
찾다가
그 학교 찾아서 정신 일깨워 보려
진주에 닿았는데
그 학교 이름 들었는가?
그 이름 대아고등학교여
또 있지,
학원도시 진주에서 대학진학에 선봉의 깃발
달았다는 명품 인문계 학교
어디 있다는 말 들었는가?
그 이름 대아고등학교여
듣고 또 듣고 지내온지 어언 50년!
그 금경축에 빛나는 학교
그 이름 충혼의 강물소리 더불어 영원히
흐르리
강이 흐르고 성채가 흐르고 하늘이 드높은
그 의미를 새겨주며 지내온지 어언 50년,
명문교 비로소 여기 서 있어라 명문교 비로소
여기 솟아 있어라! (2016. 01. 25.)
교육인이자 차 문화 운동가이며 진주 대아중·고등학교 설립자로 33년간 본 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했던 아인(亞人) 박종환 선생님, 69년 진주 차인회 설립, 70년 전국 최초 차 전시회 개최, 79년 한국 차인회 창립, 80년 일지암 복원, 81년 차의 날 선포 및 차인 선언문 작성 등 한국 차 문화에 수많은 공적을 남기셨을 뿐 아니라 2005년 제실 하천다숙(菏泉茶塾)이 문화재로 등록되었고, 2008년 제2회 다산(茶山)대상(문화예술부문)을 받았다. 또한 교육자로서 손문의 삼민주의와 남명 조식의 반구실천을 참고하여 오민교육을 창설하여 대아중고등학교에 실시하였으며 77년 남명제를 최초로 만들고, 78년에 남명집을 발간하였다.
이런 큰 일을 이룬 아인 박종환교장선생님이
오민교육(五民敎育) 8월호에 기고한 '오민교육원리'에 관한 글이다.
'오민사상(五民思想)은 인간의 개인성과 사회성의 양면을 종횡양축(縱橫兩軸)으로 한 인간학의 상대성 이론이며 개성의 오체(五體)와 사회성의 오상(五相)이 교차되는 지점을 역사적 현실로 자각하는 실존적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체와 오상의 양성은 역사적 현상을 낳게 하고 또 이 현상은 인간의 마음으로 승화되고 통일되어 간다.
마음의 본성은 자각(自覺), 염원(念願), 실천(實踐)의 지(智)·정(情)·의(意)의 삼단계 순서로 상생하고 인간의 자연적 운명을 역사적 운명으로 변화시킨다. 이상과 같은 오민사상에 따른 오민교육은 3단계 상생의 심법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개인과 사회의 불행한 운명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운명을 낳게 하는 교육이다.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신하고 또 이 번데기는 창공을 나는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하는 대자연의 신비한 섭리가 있다. 그러면 이 변신의 비밀은 뭘까?
현신의 허물을 벗기 위하여 몇 번이나 반복되는 고통에 찬 탈피작용을 통하여 이와 같은 변신의 기적이 일어남을 우리는 안다. 나의 저속한 인격과 무능한 능력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변신의 섭리와 같이 거듭되는 자아혁신의 고행만이 필요하다. 오민교육은 이와같은 자아혁신과 개혁을 위한 수도적교육(修道的 敎育)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오민교육(五民敎育)은 지금까지의 현실적응 교육이나 추상적인 교육을 탈피하고 망국의 민족성을 벗어 던지고 무능한 종속적인 조국을 초능력의 영도국(領導國)으로 도약시키려는 교육입국의 비원(悲願)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대아고등학교에서는 오민에 기초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민성교육으로는 모현단에 봉안된 민족선사 추모교육(智)과 세계선사추모교육(情), 오성다도를 통한 정서안정교육(意)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민생교육(民生敎育)으로는 민족후생생활사교육과 세계후생생활사교육, 능률적 자습교육이 실시되었다. 민족교육(民族敎育)으로는 민족제단 교육과 세계 호국사교육, 충무공추모행군, 민권교육(民權敎育)으로는 민중운동사교육, 세계인권운동사교육, 국민주체의식교육이 행해졌고, 민복문교육(民福敎育)으로는 민족문화사교육, 세계문화사교육, 예능창작교육등이 실시되었다.
(출처)http://blog.naver.com/spinate/70081536721
이런 오민정신 교육을 받은 대아학생들은 진주의 자랑이었고 박종환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열심히 공부한 결과 1984년 제16회 동문들은 전체학생 600여명 중, 서울대에 66명을 진학하였고 고려대와 연세대에 각각 110명과 100명을 합격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진정한 대한의 아들들로 키우기 위한 박종환선생님의 그 노력이 이루어짐을 보는 듯하였다. 이런 정신의 그의 삶에서도 분명히 들어난다.
아인은 1943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1년간 머물렀는데, 최소해(당시 부산 제2 상업학교 졸업)와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하였고 이때 최소해에게 반진단 결성을 최초로 제의했다. 귀국 후, 1943년 8월, 박종한(朴鍾漢, 당시 19세), 최소해(崔小海, 당시 19세)가 주축이 되어 서병도(徐炳道, 당시 19세), 김대성(金大成, 당시 19세) 등에 의해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부산시 대신동 김대성의 집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반진단(般震團)’이라는 항일단체를 결성하였다. 반진단이란, 최남선의 <조선역사>에서 생각을 얻었으며, 그 의미는 돌릴 ‘반(般)’, 발해 ‘진(震)’으로 ‘진으로 돌린다’는 의미 즉 나라를 되찾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반진단은 부산이 일제 군수물자의 대륙수송 교두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물자의 대륙수송을 차단하고자 부산항을 폭파하기로 결의하였고. 조선인에 대한 수탈과 핍박을 자행하는 일제 고관들을 암살하는 것 등을 결의 했다. 44년 11월, 일제가 대륙 병참기지 항으로 쓰고 있던 부산항의 폭파계획을 세우다 조직원 이름이 적힌 연판장이 발각되어, 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중 압송되어 부산형무소에 투옥되고 혹독한 고문을 받다, 45년 8.15 광복으로 구사일생으로 출옥하였다.
이런 그의 정신을 담은 반민단 정신으로 세워진 것이 대아 중고등학교였고 이런 그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 오민 교육이었다. 학교 설립 당시에 진주에서 2차로 입학하는 2류 학교였다. 그는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학생이 행동과 말이 거칠고, 정서가 산만했다. 따라서 가르치는 선생도 거칠어지고, 모든 것을 체벌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체벌은 일순간 적이고 교육 효과가 높지 않다. 체벌로 인한 악순환만 심해지고, 부모에 효도하라, 나라에 충성하라, 예절을 지켜라 등은 공염불이 되었다."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적 향상은 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핵심 교육이념으로 반민정신을 담은 오민교육(五民敎育)이 창설하게 된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학생들은 달라졌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같은 진주 내의 문형준 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은 인성과 특색교육이란 제하의 경남일보에서 말하기를
“해마다 4월 28일에는 실시하는 ‘충무공탄신 기념행군’은 올해가 48회였으니 개교와 역사가 비슷하다. 1,000명이 넘는 학생과 90여 명의 교직원이 참가하는 이 행사는 학년별, 학급별·조별 간격을 일정하게 하여 통일된 복장에 깃발을 나부끼며 왕복 24Km 정도를 걷는데, 참으로 장관이어서 보는 이들의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보는 이의 마음이 이럴진대 참가자들의 긍지는 어떻겠는가?
또한 전교생이 봄과 가을에 각각 세 차례씩 창렬사를 참배하여 분향하고 정화사업도 벌인다. 창렬사(彰烈祠)는 임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칠만 민관군의 신위 외에 순절한 39분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진주충절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특히 가을엔 이곳에서 3학년 학생들이 참여하는 <충의진학출정식>을 갖는데, 여기에서 다진 학생 각자의 결의는 분명 큰 효과를 드러내었을 것이고, 근자에 공군참모장을 배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참으로 부럽다.” 고 하였다.(출처:경남일보 2016/3/27일자)
대아 50년사를 쓰면서 정병호 교장 선생은
“쉰 살이 된 대아고등학교에 부여한 하늘의 명(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앞으로 꿈과 열정을 갖고 시대적 소명을 담당할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최고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대아고등학교는 사립 명문고등학교로서 모든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일치단결하여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출처 :『대아고등학교 50년사』)
이런 대아고등학교요 진주의 자랑인 대아인들의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든 사건이 오늘 문형배라는 법관이 제15회 동기 속에서 나왔다. 박종환 선생이 하늘에서 이것을 보고 얼마나 탄식하고 있을까 ?.
아! 진주여, 대 아시아를 품겠다던 대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