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만리 시조 김정수
청라언덕
김정수
동무생각 흥얼대며 계단 층층 오르는데/물결치는 태극기, 3·1 만세 들리는 듯/무거운 걸음걸음마다 들뜬 마음 내려두고//근대화 길 벽화에서 한 시대를 읽어 가면/아득히 살다간 이들 역사를 쓴 신서적/된 소름 등줄기를 훑어 먼 허공만 바라보다//조금 전 헤어졌던 낮달 너를 또 만나/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쩡늘쩡 걸으며/담쟁이 푸른 수인사에 헤어짐이 아쉬워
「대구와 자고 싶다」(대구문인협회 대구테마시조집, 2020)
김정수 시인은 201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서어나무 와불’, ‘거미의 시간’이 있다.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시인의 내면이 작품마다 진솔하게 표출되어 밝은 기운을 안긴다.
작품의 제목이 되고 있는 청라언덕은 20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되었으며, 달성토성이 대구의 중심이었을 때 동쪽에 있다하여 동산으로도 불린다. 아름다운 정원인 이곳은 챔니스주택,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 등 옛 선교사들이 생활하였던 주택과 90계단, 대구 3.1만세운동길, 대구 최초의 서양사과나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 노래비,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지인 은혜정원 등이 있다. 또한 청라언덕은 골목투어 2코스의 출발지이며, 드라마 촬영장소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대구의 명물이 된 3호선 청라언덕역이 이곳에 있어 도시철도 2호선과 도시철도 3호선의 환승역 구실을 하고 있다.
‘청라언덕’이라는 이름은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라는 이은상 작시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에 청라언덕이 대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일이 없었다. 막연히 노산 이은상 선생의 고향 마산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시의 화자도 청라언덕에 와서 ‘동무생각’을 흥얼대며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 순간 물결치는 태극기와 3·1 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무거운 걸음걸음마다 들뜬 마음을 내려두고 근대화 길 벽화에서 한 시대를 읽는다. 또한 아득히 살다간 이들의 역사를 쓴 신서적을 떠올리다가 된 소름 등줄기를 훑어 먼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조금 전 헤어졌던 낮달을 또 다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쩡늘쩡 걸으며 담쟁이 푸른 수인사에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방문객으로서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이 주는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는 또 단시조 ‘노처녀 사설’을 통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서문시장의 한 인물을 노래하고 있다. 서문시장 원단 가게를 하는 당당한 쉰 살 그녀에 관한 짤막한 사연이다. 쉰 살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자신의 가게를 경영하기에 당당하다. 원단을 다루듯 제 짝지 자로 재며 아직 찾는 중이라고 들은 모양이다. 아직 찾는 중이라나, 라는 어투에서 시의 화자는 다소 반신반의 하는 느낌이다. 자로 재듯 짝지를 찾는 일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지나치게 재다보면 세월은 후딱 가고 만다. 그녀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눈높이가 있는데 쉬이 결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화자는 독백하듯이 세상을 다 꿰고 재면서 제짝 하나 못 찾는, 이라는 간명한 종장을 통해 일침을 놓는다. 노처녀의 사설이 사설로 끝나지 않고 어서 속히 짝인 천생연분을 만나기를 고대해본다.
김정수 시인은 ‘청라언덕’과 서문시장 포목장수인 그녀가 등장하는 ‘노처녀 사설’을 쓰면서 대구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지의 시인이 대구를 이렇듯 살갑게 노래하니 무장 고마울 뿐이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