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국경선을 가르는 담판
위소보는 한차례 욕을 한 후 마음이 후련해져서 껄껄 웃었다. 비요다라 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의 표정과 어조를 보고 화를 내고 있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소리내어 웃는 것을 보자 더욱 어 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실례지만 귀사(貴使)는 한바탕 열변을 토하셨는데 어떤 가르침을 내리 셨는지요? 귀사의 말씀이 너무나 심오하여 폐인 등은 학식이 얕아 이해 할 수가 없으니 아무쪼록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다시 말씀하시어 가르 침을 받도록 해주시오.] [나는 방금 그대가 너무도 억지를 쓴다고 말했소. 그리하여 나는 그대 의 조모님을 나의 마누라로 삼겠다고 했소.]
비요다라는 웃었다.
[우리 조모님은 모스크바 성에서 유명한 미녀였지요. 그녀는 피득락부 사기(彼得洛夫斯基) 백작의 딸입니다. 중국 대인 각하께서도 저의 조모 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송의 말을 들어 보셨다니 폐인으로서도 실로 영광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조모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소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나의 달콤한 마누라로 삼겠소.]
비요다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더욱더 기뻐서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명문귀족 출신으로 살결이 희고 부드러우며 법국(法國) 시도 지을 줄 알지요. 모스크바 성의 적지 않은 왕공 대신들도 그녀를 숭배하고 있지요. 우리 아라사의 대시인도 우리 어머니를 찬양하는 시 를 수십 수는 썼답니다. 그분은 금년 나이가 이미 예순세 살인데도 모 습은 여전히 삼십 세의 젊은 부인과 같답니다. 중국 대인 각하께서 장 래 모스크바로 오신다면 나는 반드시 그대에게 우리 어머니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결혼은 할 수 없어도 달콤한 마음은 될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리고 저의 어머님이 응낙하신다면 될 수도 있는 일이지요.]
원래 서양 사람들의 풍속에 있어서 그 누가 자기 어머니나 처의 아름다 움을 칭찬한다면 이를 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 했으며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말보다 더욱더 기뻐했다. 위소보는 상대 방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그의 어머니를 자기에게 맡기고 자기를 의붓아 비로 삼으려 한다고 하자 가슴 가득히 끓어오르던 노기가 대뜸 사그러 지는 것을 느끼고 미소를 지었다.
[매우 좋소, 매우 좋소. 이후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면 반드시 그대의 저택을 자주 찾는 손님이 되겠소이다.]
고리고 그의 손을 잡고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쌍방의 수행원들도 모두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위소보 등 일행은 동쪽에 앉았고 비요다라 일행 은 서쪽에 앉았다. 비요다라는 말했다.
[폐국의 섭정 여왕 전하께서는 분부하셨습니다. 이번 국경선을 정하는 희담에 대해 우리들은 지극히 커다란 성의를 보이고 있으니 쌍방은 반 드시 공평해야 하며 그 어느 쪽에서도 상대방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폐국에서는 두 나라가 흑룡강을 경계로 삼아 강남은 중국에 속하고 강북은 아라사에 속하도록 제의하는 바입니다. 국경선이 정해진 이후에는 아라사 병사는 다시 강을 건너 남쪽으로 들어갈 수 없 고 중국의 병사 역시 강을 건너 강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아극살 성은 강남에 있소? 아니면 강북에 있소?]
비요다라는 말했다.
[강북에 있습니다. 그 성은 우리 아라사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흑룡강 강북의 땅은 모두 아라사의 땅입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다시 노기가 끓어오르는 듯 물었다.
[아극살 성내에 조그만 산이 있는데 그 산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오?]
비요다라는 고개를 돌려 수행원에게 묻고 대답을 했다.
[고조략산(高助略山)이라고 한답니다.]
위소보는 나찰 말 중에 고조략이 바로 사슴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고 말 했다.
[우리 말로는 녹정산이라고 하고 있소. 그대는 내가 어떤 작위에 봉해 졌는지 아시오?] [각하는 녹정공이지요. 우리 나찰 말을 빌자면 바로 고조략산 공작입니 다.] [그렇다면 그대는 일부러 나를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오? 분명히 내가 녹정공인 줄 알면서도 나의 녹정산을 점령해 버리다니. 이것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공작이 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재빨리 말했다.
[아넙니다, 아닙니다. 결코 그런 뜻은 없습니다.] [그대는 어떤 작위를 받고 계시오?] [폐인은 낙막낙사벌(洛莫諾沙伐) 후작입니다.] [좋소. 그대의 녹읍지는 바로 우리 중국에 속하는 지방이오.]
비요다라는 깜짝 놀랐으나 곧 미소를 띄웠다.
[폐인의 봉읍(封邑)인 낙막낙사벌은 모스크바 서쪽에 있는데 어찌 중국 의 지방이라 하십니까?] [그대는 그대의 작위가 노묘랍시법(老猫拉屎法)······] [아닙니다. 낙막낙사벌입니다.]
위소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의 경성인 북경에서 노묘랍시법까지 모두 몇 리 길이 되겠으며 며 칠을 가야 되겠소?] [낙막낙사벌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모두 오백여 리 길이 되고 닷새의 노 정이 됩니다. 모스크바에서 북경까지는 아무래도 삼 개월은 가야겠지 요.] [그렇다면 북경에서 노묘랍시법까지는 삼개월하고도 닷새를 더가야 하 니 그 노정은 퍽이나 멀겠구려.] [무척 먼 길이죠. 무척이나 먼 거리입니다.] [그와 같이 먼 거리라면 노묘랍시법은 물론 중국에 속하지 않을 것이 오.]
비요다라는 미소했다.
[공작 대인께서는 더할 나위 없이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소보는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 술을 듭시다!]
나찰인들은 술을 목숨보다 좋아했다. 술잔이 비요다라 앞에 놓인지 이 미 오래되었고 술향기가 코를 찌르고 있었는데 위소보가 술잔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감히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위소보가 잔을 드는 것을 보고 그는 재빨리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시고 말았다. 청나라 수 행원들은 다시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찬합에서 음식과 안주를 꺼냈다. 모두 북경의 유명한 요리사들이 튀기고 볶은 것이었다. 이때는 나찰국 이 개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중에 피득대제가 커서 그의 누나 소 비아 공주와 권세 싸움을 벌여 승리를 하게 된 이후 소비아를 수녀원에 보내고 나서 서구문화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위소보의 때만 하더라도 나찰국의 모든 기물과 제도와 문명, 그리고 교화(敎化)에 있 어서 모두 중국보다는 훨씬 뒤떨어져 있었고 요리의 정묘함에 있어서도 아직 여전히 중국보다는 훨씬 뒤떨어지고 있었다. 과거 니포초 성 밖에 서 비요다라가 처음으로 중화의 풍미로운 음식을 맛보았을 때 자연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지게 되었으며 하마터면 자기의 혓바닥 까지도 깨물어 삼킬 뻔했다. 위소보는 그와 더불어 모든 접시의 음식과 안주를 맛보면서 어시(魚翅) 가 무엇이며 연와(燕窩)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여 오리의 발이 연희석에 서 진귀한 음식이 되며, 또 어떻게 하여 닭의 간이 요리상에서는 보물 로 여겨지게 되는가를 설명했다. 그런 말을 들은 비요다라는 매우 기뻐 했고 찬탄했으며 여간 부러워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무심히 질문을 던 졌다.
[귀사는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언제 떠나온 것이오?] [폐인은 4월 12일 공주 전하의 유시를 받들고 모스크바에서 출발했습니 다.] [매우 좋소. 자, 다시 한잔 비웁시다. 우리 이 동 공작 나리께서는 주 량이 무척 세시니 그대들 두 분께서 서로 잔을 주고받도록 하시죠.]
그리하여 동국강이 즉시 비요다라에게 경의를 표하고 나서 서로 석 잔 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귀사는 이번 달에 니포초에 도달한 것이겠죠?] [폐인은 지난달 15일에 도착했습니다.] [음,4월 12일에 출발하여 7월 15일에 도달했으니 거의 3개월이 걸렸구 려.]
비요다라는 말했다.
[그렇지요. 3개월 남짓 걸렸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서 길을 오기 에 별로 어렵지 않았지요.]
위소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을 했다.
[매우 좋소. 귀사는 이번에야말로 진실을 말했으며 끝내 니포초가 나찰 국의 땅이 아닌 것을 인정하게 되었소.]
비요다라는 십여 잔의 술을 마신 끝이라 술기운이 얼큰하게 올라 있었 는데 그 말을 듣고 아연해져서 물었다.
[내가‥·…내가 언제 승인했다는 말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북경에서 노묘랍시법까지 가려면 3개윌 남짓 가야 하며 노정이 매우 멀지 않소. 그렇기 때문에 노묘랍시법은 중국 지방이 아니오. 모스크바 에서 니포초까지 올 때 역시 3개월 남짓 걸렸으며 그 노정도 가깝지 않 소. 그러니 니포초는 자연 나찰국의 것이 아니지 않겠소.]
비요다라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일시 대답할 말이 없어 잠시 멍하니 있 다가 말했다.
[우리 아라사국의 땅은 매우 크니까 그것은 문제가 다르죠.] [우리 대청나라 땅도 역시 작지 않소.]
비요다라는 억지로 웃었다.
[귀사는 농담을 하시는군요. 이건···두 가지 일로씨······일 률적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귀사가 반드시 니포초가 나찰국의 땅이라고 한다면 우리 두 사람은 한 번 교환을 해봅시다. 내가 모스크바로 가서 공주에게 청하여 그대를 니 포초 백작으로 봉하도록 하고 나를 노묘랍시법 공작으로 봉하도록 하겠 소. 이 노묘랍시법 성은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땅이 될 것이오.]
비요다라는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급히 말했다.
[그…·‥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는 크게 걱정을 했다. 공주는 원래 위소보의 정인이 아닌가? 만약 위 소보가 베갯머리에서 중국의 사탕발림으로 은근히 성을 교환하라는 대 답을 받아 내면 그야말로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낙막낙사벌은 조상 대대로부터 전해지는 봉읍으로 산물이 풍부하 다. 만약에 공주가 니포초로 봉읍을 옮기도록 한다면 이곳은 날씨가 춥 고 인정도 적어 그야말로 나의 목숨을 달라는 격이다. 더군다나 지금 나는 후작이니 니포초 백작으로 봉해진다면 그야말로 계급이 강등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그가 조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웃있다.
[그대는 나의 본지인 아극살마저 차지하여 나로 하여금 녹정공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소. 그러니 나에게 무슨 방법이 있겠소 부득이 노묘랍시 법 공작이 될 수밖에 없구려. 물론 그대의 이 봉읍은 이름이 듣기에 매 우 거북하여 무슨 늙은 고양이가 똥을 싸고 작은 개새끼가 오줌을 싸는 것처럼 들리지만 적당히 내버려 두는 수밖에 더 있겠소?]
비요다라는 생각했다. (그대가 나의 낙막낙사벌을 차지하려고 하나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 위소보는 이미 우리 아라사 제국의 작위를 얻 은 바 있는데 만약에 나의 봉읍마저도 얻고자 도모한다면 오히려 귀찮 은 노릇이다. 우리들은 진정으로 아극살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또 이 아극살은 이미 그대들이 공격해서 점령했으니 우리가 그대들에게 물러 나라고 하면 자연 응하려 하지 않겠지.)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아극살 성이 귀사의 봉읍이라면 우리가 한걸음 양보하지요. 두나라는 여전히 흑룡강을 경계로 하되 아극살 성과 성 주위의 십여리의 땅은 중 국에 속하는 것으로 하지요. 이것은 완전히 귀하의 체면을 봐서 큰 양 보를 한 것입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너희들이 싸움에 지고서도 이토록 거들먹거리다니. 만약에 이번 싸움 에서 너희들 나찰이 이겼다면 북경성마저도 너희들에게 떼어 달라고 하 겠구나!)
[우리가 한 번 싸운 셈인데 그대들이 이겼는지 아니면 우리가 이겼는지 모르겠구려.]
비요다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그만 접전을 두고 누가 이기고 졌다고 할 수는 없지요. 우리 공주 전하께서는 엄히 명령을 내려 귀국과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서 싸움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소. 그렇기 때문에 귀국의 군대가 공격을 해올 때에 폐국의 장수와 사병들은 반격을 하지 않았던 것이오. 그렇지 않았 다면 국면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오.]
위소보는 그 말을 듣고 대노해서 말했다.
[나찰병들은 총과 포를 일제히 쏴댔는데도 반격한 셈이 아니군요.]
비요다라는 말했다.
[그들은 본국의 땅을 지켰을 뿐 반격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나찰 인들이 정말 싸움을 한다면 수비만 하고 공격하지 않을 리가 없어요. 두 나라가 만약에 큰 전쟁을 벌이겠다면 나찰의 화창수와 카자흐 기병 들은 북경성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오.]
위소보는 극도로 분노에 차서 생각했다. (제기랄, 이 누런 털의 귀사는 큰소리로 위협을 주려고 하고 있구나. 내 너의 위엄에 눌린다면 내 성을 갈고 너의 아들이 되겠으며 위소보라 하지 않고 소보비요다라라고 하겠다.) 그는 모스크바에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찰 사람들의 습관은 이름이 앞이고 성이 뒤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요다라가 이름이지 성이 아닌 것은 모르고 있었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그건 매우 잘되었소, 참 잘되었소. 후작 대인, 그대는 내가 마음 속으 로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그건 모르겠소. 어디 가르침을 받고 싶군요.] [나는 지금 공작이오. 마음속으로 가관진작하여 군왕(郡王)이나 친왕에 봉해졌으면 하오.]
비요다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관진작되는 것을 그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그는 웃었다.
[공작 대인께선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 귀국 황제의 총애를 깊이 받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몇 가지의 공로를 세운다면 군왕이나 친왕에 봉해 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폐인은 성심성의로 미리 성공할 것을 삼가 축하드립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대가 도와 줘야 이룰 수 있소. 그렇지 않을 때는 이 룰 수 없을 것 같구려.]
비요다라는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폐인이야말로 마땅히 도와 드려야죠. 그런데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위소보는 입을 그의 귓가로 가져가서 나직이 말했다.
[우리 대청나라의 규칙에 의하면 오로지 커다란 싸움에서 이겨 공을 세 워야만 왕에 봉해질 수가 있소. 이제 우리나라는 태평무사하고 반역자 들은 모조리 멸망하여 다시 삼십 년을 기다린다 하더라도 아마 싸우게 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내가 왕에 봉해지고자 하더라도 매우 어렵 게 되었소. 이번에 국경선을 협의하는 데 있어서 그대는 양보할 필요없 이 군사를 파견하여 우리들에게 도전하여 이곳의 우리 대신들을 한두 명 죽여 주었으면 가장 좋겠소. 그렇게 된다면 우리 두 나라가 크게 싸 울 것이 아니겠소? 그대는 화창수와 카자흐 기마병들을 보내 북경을 진 격해 가도록 하시오. 우리와 서전국은 연맹해서 군사를 보내 모스크바 를 공격하리다. 그렇게 된다면 흙먼지 모래가 뿌옇게 일어나고 피는 흘 러 냇물을 이루게 될 것이니 그대와 나는 왕에 봉해질 수 있을 것이 아 니겠소? 부탁이오, 부탁이오. 아무쪼록 그대가 협조를 해주기 바라오. 그런데 나직이 이야기하시오. 다른 사람이 듣게 해서는 안 되오.]
비요다라는 들으면 들을수록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젊은이는 정말 대 담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에 봉해지고 싶다고 하여 두 나라의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서전국과 연맹을 하다 니 그렇게 되어 싸움을 벌인다면 장래 누가 이기고 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찰 군사의 수는 적고 청나라 군사는 많아 군의 실력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코앞에서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속으로 매우 후회했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위협을 한답시고 화창수들과 카자흐 기마병들을 북경성으로 공격해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말을 한 것 을 후회했다. 더구나 상대방 위소보는 그 말을 정말로 여기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야 말로 진정 일을 잘하려다가 졸렬하게 만든 결과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 렇다고 그가 두려운 빛을 드러낸다면 위소보에게 무시당할 것 같아 잠 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모스크바는 이곳에서 너무 머니 대청나라 군사가 그곳까지 달려가 공 격을 하는 데 있어서 실로 자신이 없소. 어쩌면 패전을 당해 황상께서 는 오히려 나를 탓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비요다라는 그 말을 듣고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며 말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각하께서는 역시 모험을 하지 않는 것 이 좋겠다고 권고드리는 바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그저 공을 세워 왕에 봉해지고 싶은 것이지 나찰국을 멸망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외다. 귀국의 땅은 매우 넓어 나 역시 멸망시킬 재간이 없소이다.]
비요다라는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그대는 병사를 보내 북경을 공격하고 나는 군사를 보 내 니포초를 공격하여 각기 제멋대로 싸움을 합시다. 북경성을 빼앗으 면 그대의 공로이고 니포초를 빼앗으면 나의 공로이외다. 그대가 볼 때 이 계책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시오?]
비요다라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주위에는 이천여 명의 인마밖에 없어 아극살을 되찾을 능력도 없는 판인데 무슨 수로 북경성 을 공격하겠는가? 자기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위소보라는 젊은이 가 거짓말을 진짜로 여기고 실천에 옮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쓰디쓰 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작 대인께서는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조금 전 내가 화창수와 카자 흐 기마병들을 보내 북경성을 공격하겠다는 말은 정말로 여기지 마십시 오. 내가 말을 잘못한 것으로 모조리 취소하겠소이다.]
위소보는 의아하여 말했다.
[이미 꺼내 놓은 말을 어찌 취소한단 말이오?]
비요다라는 말했다.
[폐인이 공작 대인에게 한번 봐 달라고 청을 드리지요. 아무쪼록 그 말 을 잊어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들 나찰병은 북경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렇지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들 역시 우리 아극살 성을 차지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비요다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지요.] [이 니포초 성에 대해서도 그대들은 역시 결코 요구하지 않을 작정이 오?]
비요다라는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이 니포초 성은 우리 사황의 영지이니 공작대인께서는 양해해 주십시 오.]
위소보는 생각했다. (소주의 사람들은 온종일 흥정을 하다가 해가 져서야 돈을 지불한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니포초를 달라고 한다고 해서 즉시 손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그에게 니포초 서쪽 지방을 달라고 해봐야지. 그런 후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는 이번 평화회담에 있어서 반드시 공평하게 거래를 해야 할 것이 며 어린애나 노인을 속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그 누구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될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두 나라가 성의를 다해 국경선을 정하고 영구 화평을 추 구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옳은 말씀이오. 만약 이 국경선을 모스크바와 너무 가깝게 정한 다면 그대들 나찰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북경과 너무 가깝게 끊는다면 우리 중국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오. 가장 좋 은 방법은 중간을 가로질러 중간에다 국경선을 정하여 둘로 나누는 것 이외다.]
비요다라는 물었다.
[무엇을 둘로 나누자는 것이죠?] [모스크바에서 북경까지는 대략 삼 개월 걸리는 노정이 아니겠소.] [예.] [삼 개월을 둘로 쪼갠다면 얼마나 되겠소?]
비요다라는 그 뜻을 몰라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한 달 반이 되겠지요.] [맞았소. 우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소이다. 우리는 각기 본국으로 돌아 간 이후 그대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출발하고 나는 북경에서 서쪽으 로 출발하여 나아가는 것이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한 달 반을 나아간 다면 자연히 마주치게 될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말했다.
[예, 그런데 대인은 그같이 해서 어쩌자는 것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이 가장 공평하게 국경선을 정하는 방법이 아니겠소? 우리가 마주 치는 곳이 바로 두 나라의 국경선이 될 것이외다. 그 지방은 모스크바 에서 한 달 반의 노정이 걸리는 곳이고 북경과도 역시 한 달 반의 노정 이 걸리는 곳이오. 그대들도 득을 보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들도 역시 득을 보지 않는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이번 싸움에 이긴 것은 그야말 로 헛이긴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그대들이 득을 본 것이 아 니겠소?]
비요다라는 온 얼굴이 시뻘겋게 부어올라서는 말했다.
[이 건……이건……이 건…‥·]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 역시 그 방법이 매우 공평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니오, 아니오. 절대 불가하오. 그와 같이 국경선을 긋는다는 것은 아라사 제국의 국토 반을 그대에게 떼어 주는 격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반보다 적소. 그대들은 모스크바 서쪽에도 많은 국토가 있지 않소. 그 국토는 중국과 둘로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오. 그러니 이렇게 겸손해 할 것은 없지 않겠소?]
비요다라는 울화가 치밀어 수염을 마구 쥐어뜯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 었다.
[공작 대인, 그대가 만약 성심성의로 평화회담을 하지 않겠다면 그대는 마땅히 정리에 맞는 주장을 해야 할 것이외다. 이와 같은……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나라 영토의 반을 때어 가겠다니 이거야……이거야말로 너무나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오.]
그가 씩씩거리며 털썩 주저앉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우두득, 하는 소리를 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기실 경계선을 가지고 의논한다는 것은 재미없는 노릇이외다. 역시 우 리들은 싸우는 것이 좋겠소.]
비요다라는 끊임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으며 참을 수 없다는 듯 탁자 를 두드리며 일어나 크게 호통을 치고 싶었다. (싸울 테면 싸웁시다.) 그러나 만약 싸움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명확해서, 자기 쪽이 이길 승 산이 전혀 없는지라 부득이 억지로 참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위 소보는 갑자기 손을 뻗쳐 탁자 위를 치더니 웃었다.
[되었소, 되었소. 나에게 또다른 방법이 있소.]
그리고 손을 품속으로 가져가더니 두 알의 주사위를 꺼내 후, 하고 분 후에 탁자 위에 던지며 말했다.
[싸움도 하기 싫고 둘로 나누기도 싫다면 이 주사위를 던져 결정을 하 도록 합시다. 북경에서 모스크바까지를 일만 리 노정으로 보고 우리들 이 열 토막으로 나누되 한 토막을 일천 리로 합시다. 내가 그대와 주사 위를 던져 열 번을 겨루는 데 있어 매번 겨룰 때마다 걸게 되는 것은 일천 리의 국토요. 만약 그대의 운수가 좋아 열 번을 모조리 이긴다면 곧장 북경성 아래의 땅덩이까지도 모두 나찰국의 땅이 되는 것이오.]
비요다라는 코웃음쳤다.
[만약 내가 열 번을 모조리 진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것은 그대 자신이 이야기하도록 하시오.] [설마 모스크바 동쪽의 만리강산을 모조리 중국이 차지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내 짐작컨대 그대의 운수가 그렇게 형편없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구 려. 열 번 중에 어찌 한 번도 이기지 못하겠소. 그대가 한번 이기게 되 면 일천 리의 토지를 보장하는 셈이고, 두 번 이기면 이천 리, 여섯 번 을 이긴다면 오히려 득을 보는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노해 말했다.
[무슨 득을 본다는 말이오? 모스크바 동쪽 육천 리는 본래 우리 아라사 의 땅이오. 칠천 리, 팔천 리 역시 우리 아라사의 땅이란 말이오.]
위소보와 비요다라 두 사람이 끊임없이 교섭을 하고 있을 때 통역을 맡 은 하란 선교사는 옆에서 끊임없이 중국말로 옮겨 말했다. 동국강과 색 액도 등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처음에는 비요다라가 정말 억지를 쓴다 고 생각했다. 흑룡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중국의 요동을 핍 박하는 것인데 요동은 바로 만주의 용흥지지(龍與之地)가 아닌가? 어찌 오랑캐의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그들은 속으로 매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위소보가 한사코 싸움을 해서 공을 세워서 왕에 봉해져 땅을 받고 싶다고 하자 아라사의 사절은 즉시 밖으로는 무 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말을 받지 못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거기다 다시 위소보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를 끌어내어 봉읍을 바꾸자느니 둘로 쪼개 갖자느니 또 주사위를 던져 경계선을 긋되 일천 리 토지를 매번 걸자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터무 니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상대방이 결코 응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으 나 비요다라의 기운이 크게 꺾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하 나같이 생각했다. (나찰 사람들은 무지막지하다더니 정말 명불허전이로구나. 만약 그들과 점잖게 담판을 한다면 반드시 열세에 몰리게 될 것이다. 황상이 위 공 작을 파견해서 이 평화희담을 이끌어 나가도록 한 것은 그야말로 사람 을 알아보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이로구나. 이 오랑캐의 귀자는 야만인 이니까 오로지 위 공작과 같이 학문이 없는 시정의 망나니만이 그와 예 리하게 맞서서 야만적인 방빕으로 야만인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국강과 색액도 등 대신들은 겉으로는 위소보에 대해서 매우 공손하고 깍듯했으나 속으로는 그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하나같이 그가 황상의 총애를 받고 있는 어릿광대 같은 신하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평 소 이야기를 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종종 꼴사나운 모습을 드 러내고서도 전혀 수치를 모르는 듯 의기 양양해 하는 꼴을 보고 가소롭 게 생각했다. 때문에 이번에 외국사신과 절충을 벌여 담판을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외국의 비웃음을 사서 나라의 체면을 잃게 되리라 생각 했다. 그런데 황상은 적절한 인재를 헤아려 보고 그를 사신으로 삼아 크게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 아닌가? 만약 이와 같이 억지를 쓰는 인 물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조정의 문무대신들 가운데 이에 버금가는 사람을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대신들 은 들으면 들을수록 탄복하였고 더욱더 황상께서 영명하시고 지혜로운 점을 신하들이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색액도가 여기까지 들었을 때 갑자기 입을 열었다.
[모스크바는 본래 우리 중국의 땅이오.]
하란 선교사가 그 말을 통역했다. 비요다라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 다. (이 젊은이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그대와 같은 늙은이도 그렇게 염치없는 말을 함부로 지껄인단 말인가? 우리의 서울인 모스크바가 그대 중국의 땅이라고?) 색액도는 계속해서 말했다.
[귀사의 말에 의하면 나찰인들이 잠시 점거했던 땅은 바로 나찰국의 토 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말했다.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귀사는 모스크바가 중국의 땅이라고 하 는데, 허허허! 그건……너무나 우스운 소리이고 천하에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농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색액도는 말했다.
[나찰국의 백성들에게는 대아라사, 소아라사, 백아라사, 그리고 카자 흐, 타타르 등동이 있는데 모두 다 나찰인들이죠.]
비요다라는 말했다.
[틀림없소이다. 우리나라의 토지는 광대하고 나찰인의 백성은 무척 많 죠.]
색액도는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류도 역시 많소. 만주인도 있고 한나라 사람도 있고 묘인(苗人), 회인(回人), 장인(蔣人) 등등이 있소이다.]
비요다라는 말했다.
[바로 그렇지요. 아라사는 대국이고 중국 역시 대국입니다. 우리 두 나 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대국이죠.]
색액도는 말했다.
[귀사가 이번에 데리고 온 호위병들은 모두 카자흐 기마병들인 것 같구 려.]
비요다라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카자흐 기마병들은 용맹무쌍하며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용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색액도는 말했다.
[카자흐 기병들이 아라사 사람들에 비해 훨씬 무섭소이까?]
비요다라는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요. 카자흐는 나찰의 백성이고 아라사 역시 나 찰의 백성이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만주 사람이 중국인과 같 으며 몽고 사람이나 한나라 사람들이 역시 중국인인 것과 다를 바가 전 혀 없습니다.]
색액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스크바는 우리 중국의 땅이라오.]
위소보는 그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일시 색액도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모스크바가 이곳에서 만 리나 먼 저쪽에 있으니만큼 결코 중국 땅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색액도가 마치 정말 그런 것처럼 이야기하고 비요다라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붉 어지고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비요다라의 마 음속에는 미칠 듯한 화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불쑥 입을 열었다.
[모스크바가 틀림없이 중국 땅인 것은 사실이오. 중국의 황제는 너그러 운 아량으로써 유비에게 형주(荊州)를 빌려 준 것처럼 한번 빌려주었는 데 그대들은 영원히 되돌려주지 않았단 말이오.]
비요다라는 물론 유비가 형주를 빌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 다. 그저 이 중국 오랑캐들은 이치를 따지지 않고 말하는 것이 역시 문 명인답지 않다고 생각하고 냉소했다.
[나는 예전에 중국의 역사가 유구하고 중국인들은 매우 학문이 깊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소. 그런데 알고 보니……허허, 그저 아무 증거 도 없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뿐이구려.]
색액도는 말했다.
[귀사는 나찰국의 대신이오. 설사 별다른 학문이 없다 해도 나찰국의 역사는 알고 있을 것이 아니겠소?]
비요다라는 말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책이 있어 증거가 되고 있으며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 는지라 결코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지껄이는 데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
색액도는 말했다.
[그것 잘되었소. 옛날에 중국에 황제가 있었소. 그 이름은 징기스칸(成 吉思汗)이라고 하지……]
비요다라는 징기스칸이라는 말을 듣자 그만 어이구, 하고 부르짖고 생 각했다. (야단났다, 야단났다. 내가 어째서 이토록 멍청한가? 그와 같은 큰일을 잊어 먹다니.) 색액도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징기스칸은 우리 중국에서 원태조(元太祖)라고 부르고 있소. 왜냐 하면 그는 우리 중국에서 원나라를 창건하신 태조이기 때문이오. 그는 몽고사람이오. 귀사도 방금 말했지만 만주 사람이나 몽고 사람, 그리고 한인은 모두 중국 사람이며 전혀 차이가 없다고 했소. 그때 몽고의 기 마병은 서쪽을 정벌하였는데 한때 나찰 군사와 크게 몇 번 싸운 적이 있소. 귀국의 역사책에 똑똑하게 기술되어 있을 것이오. 그 몇 차례의 커다란 싸움에서 우리 중국인이 이겼소? 아니면 귀국의 나찰인이 이겼 소?]
비요다라는 잠자코 있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몽고인이겠죠.]
색액도는 말했다.
[몽고인은 중국 사람이오.]
비요다라는 한참 동안 눈을 부릅뜨고 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옛날의 일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말을 듣자 새삼 정신 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고 말했다.
[중국 사람과 나찰 사람이 싸움을 한다면 나찰 사람은 반드시 지게 마 련이오. 그대들의 재간은 확실히 뒤떨어지지요. 다음에 다시 싸운다면 우리들은 그저 한 손으로 싸워도 충분할 것이오. 그렇지 않을 때는 쌍 방의 격차가 너무나 심해 싸워도 아무런 재미가 없을 것이외다.]
비요다라는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며 생각했다. (만약에 공주 전하께서 엄명을 내려 이번에 그저 평화회담을 성사시키 되 싸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우리 나찰 사람을 모욕하는 말에 나는 단연코 결투를 했을 것이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며 색액도에게 물었다.
[색형, 징기스칸은 어떻게 나찰병을 크게 패배시켰지요?]
색액도는 말했다.
[과거 징기스칸은 이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서쪽으로 보내 정복하도 록 했지요. 모두 이만 명의 인마에 불과했는데 나찰 연합군의 십만여 명을 크게 대패시켰지요. 징기스칸의 손자 발도(拔都) 역시 한 분의 커 다란 영웅으로서 군대를 이끌고 나찰병을 공격하여 그야말로 나찰병이 낙화유수처럼 나가떨어지게 만든 이후 모스크바를 점령하였고 흉아리 (匈牙利)를 공격하고 다노하(多瑙河)를 건너갔지요. 그 이후 수백 년간 나찰의 왕공 귀족들은 모두 우리 중국 사람들의 말을 들었답니다. 그때 모스크바의 대공작은 수시로 황금 장막에서 거주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와서 큰절을 했지요. 중국 사람들은 그들의 볼기를 때리고 싶으면 볼기 를 때렸고 따귀를 때리고 싶으면 따귀를 때렸는데 나찰 사람들은 여전 히 싱글벙글 웃으며 잘 때렸다고 큰소리로 부르짖어야 했고 그렇지 않 았을 때 그는 공작이 될 수가 없었소이다.] (몽고 대장수 발도는 서기 1238년 모스크바와 기보(基輔)를 함락했다. 그리하여 몽고 사람들은 1240년에서 1480년의 240년간 아라사의 광대한 땅을 통치하고 금장한국(金帳汗國)을 건립하였다. 대영백과사전에 보면 아라사에 관한 조목 가운데 다음과 같은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모스 크바의 왕자는 반드시 복이가(伏爾加> 강 입구 살래성(薩筮+姐-女城)으 로 가서 황금 장막 안의 몽고 가한(可汗)을 조배해야 했으며 봉호를 받 아야 했다. 그들은 평소 여러 가지의 굴욕을 참았다. 조배가 끝나면 모 스크바로 돌아온 이후 타타르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으며 인근의 제후들의 조그만 나라를 업신여기며 압박했다.>)
위소보는 신이 나서 싱글벙글하며 탁자를 두드리고 말했다.
[얼씨구! 원래 모스크바는 중국에 속해 있었구나.]
비요다라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는데 색액도가 말하는 역사는 결코 거짓이 없었다. 다만 나찰인들은 몽고 사람을 중국인으로 인정하지 않 았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몽고가 중국에 속하 있었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모스크바가 한때는 중국에 속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후작 각하, 우리가 보기에 국경선을 긋는 일을 더 담판할 필요가 없겠 소이다. 아무쪼록 그대는 돌아가서 공주에게 언제쯤 모스크바를 중국에 되돌려줄 것인지를 물어 보기나 하시오. 나 역시 북경으로 돌아가 소가 죽과 황금을 구입해서 정묘한 한 채의 황금 장막을 만들어서 크레믈린 궁을 헐어 버리고 황금 장막을 세워 소비아공주에게 청해 잠자러 오라 고 하겠소. 하하하!]
비요다라는 여기까지 듣자 그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듯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장막 밖으로 달려나갔다. 곧이어 그가 우뢰와 같이 큰소리 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곧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몇 필 의 말이 일제히 달려왔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아이쿠! 저 털보가 싸움을 하려는 모양인데 우리는 이제 목숨을 건지 는 것이 중요하다.]
동국강은 오래 전부터 싸움에 임해 왔기 때문에 참을성이 많아 호통을 질렀다.
[위 공작 나리,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때 장막 밖에서 카자흐 기마병들이 일제히 큰소리를 내질렀다. 위소 보는 그만 깜짝 놀라서 전신을 바들바들 떨다가 고개를 숙이고 탁자 밑 으로 기어들어갔다. 동국강과 색액도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역시 놀 람과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천막의 휘장을 들추고 한 장수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는데 바로 등패수를 인솔하고 있는 임흥주였다. 그는 낭랑 히 외쳤다.
[대원수께 아룁니다·‥···]
그런데 대원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탁자 밑에서 말했다.
[나는······나는······나는 여기 있소. 모두들 빨리……빨 리 도망을 쳐 목숨을 건지도록 하시오.]
임흥주는 몸을 구부리고 탁자 밑에 있는 대원수에게 말했다.
[대원수께 알립니다. 나찰병의 기세가 흉흉합니다. 우리들은 결코 약하 게 보여서는 안 되니, 빌어먹을! 한바탕 해보지요.]
위소보는 그가 용감하게 말하는지라 가까스로 심신이 안정되는 것을 느 끼고 즉시 탁자 밑에서 기어나왔다. 조금 전에는 너무나 창졸간에 일어 난 일이라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게 되었지만 기실 그 역시 겁쟁이 는 아니었다. 그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맞았소, 할 테면 해보라지. 빌어먹을! 내가 먼저 앞장을 서서 용감하 게 앞으로······앞으로 나가······나가지 않겠소, 아니지 용감하게 나가야 사내대장부인데……]
그는 용감하게 나가지 못하면 창피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임흥주 의 손올 잡고는 장막 밖으로 걸어나갔다. 장막 밖으로 나서자 이백육십 명이나 되는 카자흐 기마병들이 기다란 칼을 높이 쳐들고 준마에 올라 탄 채 장막을 에워싸고 거들먹거리고 있었으며 둥글게 원을 그리며 끊 임없이 말을 달렸다. 비요다라가 한마디 명령을 내리면 기마병들은 멀 리 달려가 이백여 장 밖에서 대열을 짓는데 스물여섯 명이 한 줄이 되 었다. 열을 지은 기마병들이 정렬하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 높여 고함을 내지르며 위소보 앞으로 즉시 달려왔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아이쿠!]
그는 장막 안으로 기어들어가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했다. (나찰귀들이 만약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장막 안으로 숨어 들어간다 해 도 일시 그들에게 잡혀 나오게 될 것이다. 얼굴에 흙칠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는 전신을 바르르 떨고 얼굴은 흙빛이 되었으나 놀랍게도 우뚝 버티 고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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