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복 權五福(1924 ~ 2007)】 「 한국광복군총사령부에 배속 경위대 활동」
1924년 5월 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일직면(一直面) 망호리(望湖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백우(白遇), 호는 서언(瑞彦)이다. 이명은 권오옥(權五玉)이다.
안동 일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4년 9월 일본군에 강제징집되어 평양 제44부대에 소속되었다. 이후 중국 전선으로 이동하여 일본군 제6844부대(椿)에 배치되었다. 같은 해 12월 후난성(湖南省) 헝양(衡陽)에서 배선두(裵善斗)·이용득(李龍得)·조일주(曺日周)·구칠성(具七星) 등 동료 12명과 일본군을 탈출하였다. 탈출 직후 난징(南京) 중앙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인 여성의 도움으로 중국군 유격대와 연결되었다. 중국군과 필담을 나눠 중국군과 함께 싸우면서 충칭(重慶)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중국군과 합동 작전에 투입되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동료 12명 가운데 4명을 잃었다.
1945년 3월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하여 토교대(土橋隊)에 배치되었다. 토교대는 충칭 인근의 토교(土橋)에 설치된 것으로, 일본군과 중국군을 탈출한 한인 청년들을 일정 기간 수용하였다. 토교대에 배치된 대원들은 광복군 총사령부, 지대, 경위대 등으로 배치되기 전까지 대기하였다. 토교대는 상설 조직체가 아니라 그때 그때 임시로 편성된 보충대였다. 1944년 3·4월경 30여 명의 한인 청년으로 1차 토교대가 편성되었을때는 3개월간 3개반으로 나누어 군사훈련 및 정훈교육을 실시하였다. 1945년 2월경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을 졸업한 학병 청년들 등 한인 청년 51명으로 토교대가 2차로 편성될때는 별도의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았다.
토교대 편성된 이후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警衛隊) 제3분대에 배속되어 충칭 임시정부 요인들의 경호를 맡았다. 당시 경위대의 임무는 광복군 총사령부 경비 및 고위 요원의 호위,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비를 포함한 경호업무, 연락과 비서 업무와 같은 부수적 업무 등이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자, 1946년 5월 23일 토교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충칭에서 미국이 제공한 C-47 수송기를 타고 한커우(漢口), 난징, 항저우(杭州)를 거쳐 상하이(上海)에 도착하였다. 같은 해 6월 미군이 제공한 LST를 타고 부산을 거쳐 인천으로 환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