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수 큰걸 사보네라고 했더니^
산 날들을 돌아보니
세월이 한참 지나갔다
파도소리에 밀려와서는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공허한 겨울 하늘엔 하현달만 빨리도 간다
나하고 오랜 인연의 학장 내외님이 계신다
내가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나에게 하다못해 집에 커튼 할 일이 있어도
카 시트 바꿀일이 생겨도 내가 해드려야 마음에 꼭 든다고 하셨다
(당시엔 차를 사면 시트커버를 맞춰 갈아 끼면서 사용했다)
내가 모 방송국에 근무할 때
치대 학장으로 계시면서 인사동에 개인 치과 병원을 차리시게 되었는데
내가 꼭 인테리어를 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당시엔 유명 의대 교수들은 따로 개인 병원을 개원하시고는
오후엔 지인들을 받으셨다
정주영 회장도 그 치과에 단골로 다니셨고 영국 및 주한 외교관들도 여러명 다니셨다
당시엔 도어 문짝도 벽체 재료도 기성품은 없을 때라서
다 일일이 직접 제작하였고
페인트 색깔도 일일이 내주어야 했다
출입문 도어엔 옥스퍼드천을 아교로 붙여서 질감을 내주곤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카키색으로 외장 했다
중년 남성에게 잘 어울리는 모헤어 바지 색깔이었는데
외교관 부인들과 좀 부유층의 부인들이 무척 좋아하며
당시 이름 있는 댁 부인들께서 색깔들을 낼 일이 있으면
많이 연락들을 주셨다
내가 해드리는 것들은 몇 날 몇 밤을 새워 최선을 다했기에 받는 분들도
마음으로 받아주셨는 가보다
학장님께서 얼마 전에 미수를 지내신다고 초대해 주셔서 갔더니
지금도 그렇게 금술이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잘 아는 한약방으로 탕약 지러 가셨는데
그 원장이 한 침대 사용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가 이 사람 보약 한재 지어주려고 갔더니
똑같은 말을 우리 내외에게 한다
내가 이 사람 맥 짚어 봐야 해서
두 개 침대를 붙여 놓고 자는데
아직도 부부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는가 보다
심장에 무리를 주면 안 된다고 해서
절제하고 사는데도,,,
부부는 나이는 늙어가도
사랑이 늙었다는 건 못 느낀다
젊을 때 보다 더 여유롭고 깊어진다
편하게 배려해 준다
발을 잡고 자면
예전처럼 이쁘다
맥을 짚어보려고 손목을 잡으면
자면서도 팔을 내밀어준다
좀 퉁거워졌어도 참 따뜻하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걸 다 볼 수 있다
다 이해적이고
나를 더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무릎에 뉘고 귓밥을 파줄 때처럼 포근한 내음이다
세월은 지난 시절로 돌아가진 안 해도
부부는 세월과 상관없이 그때 그 모습으로
사랑으로 한 이불속에서 꿈을 꾼다
강희경님 사진
[마름과 석양 - 호수공원에서] 2016.09.23 (광교 호수공원)
힘들고 억만 겁 고비를 넘겨 살아온 삶이기에
지나오고 보니 그래도 참 잘 살아왔다
축복을 받으며 고고呱呱하게 태어난 귀중한 생명이기에
그 각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나처럼 고孤가 많고 어설픈 사람을 한평생 옆에서 이해와 사랑으로 지켜주었으니
나의 전부이고 최고의 짝이다
사람은 내 후손에게는 보다 났고 행복한 삶을 남겨 주려 한다
그게 희망이라는 세월의 돛단배이다
비록 혼자되어 쓸쓸히 훼에 앉아 졸고 다해가는 삶이지만도
다 같은 생명이요 강물에 비치는 달처럼 삶의 거울이었기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침묵의 바다에서 또 한 해가 떠 오른다
내 속에 존재감이 있음은 너를 가졌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빛이고
귀함이다
나에겐 네가 있어 행복했고
억만 겁 고비도 하나도 힘들지 안 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다하고 돌아가면 남이 되는 건 아니겠지?
이 많은 것들을 우린 함께 쌓아 왔잖어?
작약이피는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