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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는 부르주아 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일반화된 현상이었다. 왜냐하면 자유연애는 대도시에 사는 개인의 독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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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제 위에 세워진 부르주아 사회제도에서는 소위 자유연애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은 영원히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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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강제 결혼에 대한 항의로서 보헤미안적인 자유연애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결혼하기 전에 가장 홀가분하게 자신의 성을 만족하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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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의 경우에 보헤미안적인 생활은 경제적인 탈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을 몇 년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금방 빠져 나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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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에 다니는 남자와 청소부 여자의 연애관계가 근대 보헤미안적 연애의 대표적인 증거이다.......이러한 결혼은 대게 절망적인 비극으로 끝난다. 왜냐하면 이들은 젊은 육체에만 애착을 가졌을 뿐이고, 따라서 시간에 지남에 따라 계급간의 간격을 메우고 있던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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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유연애의 거의 대부분은 중산층 남자와 '신분이 낮은' 여자의 관계이고, 중산층 남녀의 자유로운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중산층 이상은 계산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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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여자의 비극으로 끝나는데, 중산층 남자는 자신이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자를 내버리고, 돈 많은 집안의 딸과 결혼하면서 양심을 타협한다. 그러나 그에게 몸을 바쳤던 여성은 매춘부로 전락하거나, 몇 푼 받지도 못하고 바느질 하면서 생계를 연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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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노동자들의 결혼은 독신인 것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것이 생활비가 싸게 먹힌다는 이유로 맺어진다. 따라서 이것도 어디까지나 계산 결혼이다.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