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아직도 어릴 때 그 촌놈처럼.... -
권다품(영철)
아내가 배추값이 너무 비싸졌다는 방송을 보고는 "배추값이 저래 비싸갖고 올해는 김치 우째 담겠노?" 하고 걱정을 한다.
나는 한참만에야 "새끼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하는 꼬라지가..... 저 새끼들은 국민들이야 우째 사는 공 관심도 없고, 관심이 저거 정권 잡는데빼끼 없는 기라. 우째 물가가 안 오르는 기 없는공?" 하며 짜증으로 대답을 했다.
속으로 '이러다가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처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러면서도, '그럼 올해는 시골 텃밭과 부산 화단에다가 배추를 좀 심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에 '조금 늦기는 했겠지만, 남부지방이라면 지금 심어도 크게 늦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되든지 안 되든지 심어는 보자. 김장꺼리가 안 되면 쌈 싸먹으면 될 끼고.... ' 싶었다.
우선 모종 파는 곳으로 가서 김치를 담가도 고소하고 맛있는 '청방배추' 모종 100포기를 샀다.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해마다 '청방배추'로 김장을 담갔다.
처음에 좀 뻗뻗해서 빨리 익지는 않지만, 김장이 어느 정도 익기만 하면 다른 배추에 비해서 고소하고 참 맛있다.
100포기 모종 한 판에 3만원이나 했다.
조금 비싸다 싶긴 했지만, '배추 한 포기에 3만원이라는데' 싶어서 그냥 한 판만 샀다.
원래는 150포기 정도 사면, 쌈도 싸먹고 겉절이도 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언니집하고 이경이집 다 해도, 100포기마 하마 충분하다. 오종이 집에 몇 포기 줘도 충분하다. 옛날 매치로 누가 김치 많이 먹나 어데. 마 100포기만 사이소." 하길래, 마 100포기 한 판만 사 왔다.
시골에 올라와서 보니까, 텃밭에 잡초들이 너무 자라서 땅이 안 보인다.
우선 가슴까지 오는 풀들을 걷어냈다.
이리 저리 엉킨 호박넝쿨들도 걷어내고, 삽으로 흙을 파 뒤집었다.
뒷집 할아버지께서 나오시다가 보시고는 물으신다.
"더분데 뭐 할라꼬 그래 파노?"
"배추 숭굴라꼬예."
"김장배추할라 카는 거 아이가?"
"맞심더."
"김장배추 할라카마 지금 숭구마 안 늦을랑강 몰라~?"
"제가 생각해도 조금 늦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모종 파는 거 보마 그렇게 디기 늦기야 하겠나 싶어서 안 숭가 봅니꺼."
"그래도 모종을 팔던가배? 숭가 보라뭐. 땅 놀리는 거보다야 숭가 놓으마 그냥 뜯어 물 수 있는 기라도 안 되겠나."
"남부지방이라 디기 춥기야 하겠습니꺼? 12월 달에 많이 추부마 비닐 쫌 덥어주마 안 괜찬겠습니꺼? 안 되마 할 수 없고예. 마 심어는 봅니더."
"니 말 들으이끼네 되겠다 싶기도 하네! ㅎㅎ. 그러마, 그래 파놓고 바로 숭구지 말고, 밑비료는 쪼매마 하고, 퇴비를 쫌 많이 내뿌라. 인자 날씨가 더위는 얼쭈 다 가서 까만 비니루 깔아도 배추가 녹지는 않겠다. 더우마 모종이 녹아뿌거든."
할아버지는 당신의 농사 경륜을 말씀해 주시고는, 당신 밭으로 나가신다.
오전에 잠시 일을 해봤더니, 햇볕이 나자 아직 날씨가 더워서 땀이 옷을 홈빡 다 적셨다.
이러다 더위 먹겠다 싶어서 하던 일을 그대로 던져두고, 작업복을 훌훌 벗어던지고 샤워를 했다.
시원한 물을 뒤집어 쓰니 좀 살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물기도 다 안 닦고, 시골 올라올 때 아내가 "일하다가 더우면 무마 시원하다." 라던 그 수박을 먹으니까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다.
또, 얼음을 넣은 냉커피도 한 잔 마셨다.
일하고 땀을 흘리고 먹는 그 수박 맛, 또, 얼음 동동 띄운 그 냉커피 맛은 정말 죽이는 맛이다.
해그름이 될 때까지 방에다 에어컨을 약하게 켜놓고 책을 몇 줄 읽었다.
오후 4시쯤 돼서야 다시 하던 일을 시작했다.
하다가 그만 둔 일이라 사실 참 하기 싫었다.
그래도, 참고 일을 했다.
내가 안하면 할 사람도 없다.
한 골은 3줄 내지 4줄은 심을 수 있는 골을 지었고, 또 한 골은 넉넉하게 2줄을 심을 수 있는 골을 지었다.
그 위에다 퇴비를 큰골에는 4포대를 붓고, 작은 골에는 3포대를 넉넉하게 부어서, 호미로 흙덩이를 깨부수며 흙과 퇴비를 골고루 섞어주며 골을 지었다.
다시 쇠갈쿠리로 쓱쓱 긁어서 퇴비도 골고루 섞을 겸, 풀과 뿌리들을 다 걷어내고, 또 돌들도 가려냈다.
힘도 들고 또, 옛날 같지가 않았다.
하기는 싫었지만, 겨우 겨우 참고 다 했다.
그래도, 평소 헬스를 하며 몸관리를 해서 그런지, 일을 그렇게 했는데도 피곤한 줄은 모르겠다.
하기싫은 일을 억지로라도 다 하고 돌아볼 때의 그 기분!
직인다.
일 해본 사람은 안다.
일해놓은 걸 사진으로 찍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도 했다.
나이는 들어도 내 마음은 아직 칭찬을 해주면 힘든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그 촌놈인가 보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었더니 밥맛이 꿀맛이다.
올해는 내가 힘들게 일을 해서 심은 배추로 김장을 담그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일은 집안 형님과 함께 샘찬골 우리 산으로 도토리를 줏어러 가기로 했다.
사실 도토리를 줏어다 주면 내가 귀찮다.
도토리묵을 만들려면 망치로 도토리를 깨고, 깨진 것들을 일일이 껍질을 다 까야 하는 일들이 내 몫이다.
내 아내는 이상하게 도토리묵을 좋아한다.
또, 마음이 착해서 그렇게 깐 도토리를 냉장고에다 보관했다가, 언니나 동생 내외가 온다거나, 서울에서 아들 며느리가 오면 묵을 만들어 준다.
우리 산에는 도토리가 많아서 부어놓은 것 같다.
도토리 주울 때의 그 재미는 줏어본 사람만 안다.
줏어오면 내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또 줏어러 가고 싶은 거 보마 내 마음도 참 얄궂재?
내가 촌놈이라서, 어릴 때 그 추억 때문에 그럴랑강?
2024년 9월 29일 저녁 9시 0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