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산
블루마운틴 국립공원
세 자매가 지켜주는 영혼의 안식처
글·사진 박정헌·협찬 호주관광청 한국지사
한국의 학생들에게 산을 그리라고 한다면 당연히 뫼산(山)자를 기본으로 하는 높은 산정과 깊은 계곡을 담아 낼 것이다. 그럼 호주의 학생들에게 산을 그려보라고 하면 어떨까? 그들은 높은 산정보다는 평탄한 한일(一)자의 산을 그릴 것이다. 실제로 호주의 산들은 빅토리아 주의 고산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평탄한 분지에 땅이 융기된 모양으로 바위덩이가 솟아있는 협곡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호주의 산들을 바라보면 높이와 깊이 보다는 넓고 평탄한 고원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호주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시드니를 거쳐 블루마운틴으로 향한다. 웅장한 기암절벽과 폭포, 빽빽한 유칼리나무의 울창한 숲, 환상적인 경치와 트레킹 덕분에 지난 세기 시드니 사람들의 여름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지리적으로 호주의 내륙사막지방과 해안지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사막의 모래바람이 해안 주거지역으로 불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최고 높이 1100m의 큰 줄기는 서부 개척시대 거대한 장애물로 25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서야 도로가 건설되었다. 덕분에 태곳적 신비로움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드니에서 전철로 2시간 거리
블루마운틴의 어원은 수많은 유칼리 나뭇잎의 기름분자가 빛과 반응해 생기는 푸른 안개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름분자가 분출되는 오후시간에는 마치 카메라렌즈에 필터를 장착하고 바라보는 것처럼 온통 푸른빛을 발하면서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은 이 지역 올레미 국립공원과 카난그라보이드 국립공원을 비롯한 3개의 국립공원 중 가장 인기 있는데 경치도 좋지만 접근성이 뛰어나서이기도 하다. 시드니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는데 전철로도 시드니 중앙역을 출발하여 2시간이면 블루마운틴의 중심마을인 카툼바까지 들어올 수 있다. 차량이나 전철로 카툼바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작은 마을들의 얕은 오르막을 지나면서 블루마운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한계령이나 추풍령고개에 비교한다면 경사도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운전을 하기에 아주 편안하다. 시드니에서 파라마타(Parramatta Rd)를 타고 나와 웨스턴모토웨이를 달리면 서쪽에서 그레이트웨스턴하이웨이로 연결된다. 블루마운틴 근처에는 작업 중인 도로들이 많아 야간 운행 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Katoomba’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가면 잘 정돈된 깨끗한 작은 마을 카툼바가 나타난다. 오후 5시 이후에 도착하면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카툼바 어드벤처 센터 주변은 조용하지만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아르데코양식의 식당에서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어울려 즐겁게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는데 시원하고 달콤한 맥주 맛은 정말 더위와 피로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성수기를 막 지난 2월이라서 번잡함은 없었지만 블루마운틴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는 에코포인트와 씨닉센터(케이블카 로프웨이 출발점)에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먼저 블루마운틴의 중심인 카툼바와 씨닉센터가 가까운 불래키스 카라반 파크(Blackheath Caravan Park)에 차를 세우고 카툼바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카라반 야영지에서는 미리 캠프지를 둘러본 후 나무가 많은 곳이나 여건이 좋은 장소를 물색한 다음 캠프지의 번호를 알고 안내소에서 번호를 제시하면 좀 더 편리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카툼바는 작은 마을이지만 별장들이 즐비하고 쇼핑을 비롯한 식당, 슈퍼마켓 등의 규모로 볼 때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드니에게 가까워서인지 해산물도 풍부하고 신선한 야채들도 많다.
오랜 시간의 비행과 운전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직접 고른 와인과 신선한 해산물로 갓 만들어낸 안주는 호주에서의 첫날밤을 멋지게 장식해주었다. 별은 유난스레 밝아 너무도 청명하고, 신선한 공기는 추운 겨울의 한국 땅을 떠나왔다는 공간의 이동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려 마치 내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인 듯싶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블루마운틴의 심장격인 씨닉센터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이미 주차장에 버스들이 빼곡하다. 센터 건물에는 레일웨이와 스카이웨이 부시워킹코스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벽을 장식하고 있고, 입구 바로 옆에는 세 자매와 주술사의 조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블루마운틴을 대표하는 세 자매 바위는 카툼바 남쪽 끝에 위치한 붉은 세 개의 바위 상으로 제미슨 밸리를 한눈에 내려 보는 에코포인트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에코포인트에 살고 있는 예쁜 세 자매를 탐낸 마왕의 눈치를 읽은 자매가 제미슨 밸리의 주술사를 찾아가 구원을 요청하자 주술사가 디제리두(긴대나무의 원주민악기)를 불어 세 자매를 세 개의 자매바위로 만들어 숨긴다. 하지만 마왕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주술사를 죽이고, 결국 세 자매바위는 아직도 바위상으로 남아 블루마운틴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제미슨 밸리전경
유칼리나무 숲에서 호젓한 삼림욕
매표소에서 하루 종일 레일웨이와 스카이웨이 등 모든 운행기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할인하고 있어 구입했다. 센터 내부에는 의류와 기념품을 구매하는 관광객들로 어수선하고 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는지 활기찬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첫출발을 시작한 것은 씨닉 레일웨이로 1880년 광부들이 이동하기위해 만들어진 경사 45도의 철로로 머리가 바위천정에 부딪칠까 걱정이 된다. 역에 도착하면 밀림에 온 것처럼 울창한 유칼리나무들이 해를 가리고 있어 여름에도 시원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나무사이로 길을 내어 만들어진 부시워킹코스도 자연 속에 머물며 한가로이 산책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철망이나, 나무를 배려해서 우회해서 만들어진 길들을 보니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고 영원히 더불어 살아야하는 친구라 생각하는 느낌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옛날에는 이 산속에서 광부들이 캐낸 석탄들을 카툼바까지 레일웨이를 연결해 운반했다고 한다.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초기의 탄광모습과 석탄을 운반하는 말과 수레의 모습을 재현해 보여주어 쉽게 연상이 가능하다.
유칼리나무 숲에서 부시워킹 중인 여인
유칼리나무 숲길은 다시 로프웨이와 연결되어 30분 이상의 삼림욕을 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 역시 부시파이어로 인해 자연발생적인 산불이 발생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수백 년 된 나무에 아직도 과거 산불로 검게 그을린 부분들이 남아있어 한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를 느껴볼 수 있다. 이곳은 노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이 오기에도 좋고 오붓함을 즐기려는 신혼부부에게도 좋다. 장난꾸러기 아이들도 이 숲속궁전에서는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되는지 감상적으로 변하고 만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엔 이곳만한 휴양지가 또 있을까 싶다. 갱도의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은 밀양 얼음골 못지않다. 그 옛날 깊은 갱도에서 힘들게 일한 광부들의 땀을 식혀주었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레일웨이를 타고 다시 센터로 올라오는 길에 오른편으로 세 자매바위가 보이고 절벽사이로 바위에 부딪칠까 걱정이 될 정도로 레일웨이는 스릴 넘치게 바위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온다. 잠시 제미슨 밸리가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대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잔과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200m 계곡 위에 걸쳐진 스카이웨이를 타고 에코포인트로 갈 수 있는 바윗길로 접어든다.
스카이웨이에서는 카툼바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수량이 적어 시원한 낙차를 보기는 힘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스카이웨이 내부에는 계곡을 내려 볼 수 있는 있도록 바닥재가 특수한 유리로 되어있어 계곡 아래 펼쳐진 고산목들과 원시적인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탔을 때에도 칠레에서 온 가족들과 프랑스에서 온 젊은 커플 그리고 중국에서 노모를 모시고 온 젊은 사내 등 각국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빛으로 하늘 길을 걷는 신비한 느낌을 공유했다.
바윗길을 따라 세 자매바위를 향해 걸어가면 바위의 융기된 지층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이곳은 제미슨 밸리와 대조적으로 해를 피할 수 있는 숲길이 하나도 없어 식수를 반드시 가지고 가야한다. 저 멀리 폭포에서는 물이 쏟아지는 것이 보이는데 머리 위에서 해가 내리쬐면 갈증에 아름다운 풍광이 묻힐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간단한 차림의 슬리퍼 정도로 폭포와 세 자매바위를 둘려보는 여행자들은 에코포인트까지 가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전체를 둘려보려면 운동화와 활동적인 복장이 필수적이다.
직접 오를 수 있는 세 자매 바위
세 자매바위는 신기하게도 뒤편으로 홈이 형성되어 여행자들이 직접 바위에 오를 수 있다. 록클라이밍 체험과 현수하강, 폭포탐험 등의 상품이 어드벤처 상품으로 개발되어 있으니 세 자매 바위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은 도전해 봐도 좋을듯하다. 에코포인트의 전망대는 카툼바에서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니 체력적으로 힘든 사람은 그 방법을 이용하여 전망대를 오르는 방법도 좋겠다. 발코니에는 항상 여행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연인들이 달콤한 사랑의 키스를 나눈다. 일몰시간이 가까워지면 차를 몰고 서서히 에코포인트로 야경을 구경하려는 여행자들이 손에 맥주병을 들고 벤치로 몰려든다. 현지인들이 밤에 피는 세 자매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우니 꼭 보라고 권해서 저녁에 가보니 정말로 낮에 보았던 느낌과는 아주 다른 신비로운 매력이 있었다. 어느 여행지를 가나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것은 꼭 해보는 것이 여행을 알차게 하는 지름길이다.
제미슨 밸리와 세 자매바위를 둘러보는 일정은 하루정도의 짧은 일정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국내 여행자들은 스카이웨이를 한번 타고 에코포인트를 거쳐 세 자매바위를 보고 블루마운틴을 빠져 나간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일정으로는 블루마운틴이 한국인들에게 그저 울창한 숲과 재미난 전설이 있는 이색적인 여행지로 밖에 기억에 안 남을 것이다. 며칠 블루마운틴에서 머물면서 느꼈던 것은 그곳은 단순한 여행지라기보다는 좀 오래 머물면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안식처였다. 도시를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가 호주의 에보리진 원시인들의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지친 영혼의 안식처 말이다. m
안내소 앞 카페에서 배낭여행자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