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가운데 물길이 열렸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신음하던 청계천이 빛을 본 것이다. 그러나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한 청계천을 생태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시민의 눈요기를 위한 놀이터에 불과할 뿐 결코 생명이 살아있는 자연하천이라 할 수 없다. 그곳에 물이 흐르기 위해선 많은 돈을 들여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다 대어야만 한다. 한마디로 청계천은 하천이 아니라 돈이 흐르는 놀이터에 불과하다. 말뿐인 복원공사로 인해, 좁은 시멘트 공간에 갇힌 청계천이 생명이 숨쉬는 원래의 하천 기능을 회복할 길은 요원하다.
물고기가 알을 낳지 못하는 한강
하천에 끊임없이 물이 흐르기 위해서는 우기(雨期)에 땅과 숲이 물을 머금었다가 지속적으로 물을 내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서울은 발이 닿는 곳마다 모두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에 비해 숲이 턱없이 부족하다. 도시의 하천은 조금만 비가 와도 빗물이 일시에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홍수를 일으키고, 비가 그치면 바로 물이 메말라 버리는 건천으로 변했다. 홍수와 건천이 반복되는 하천의 문제는 오늘 도시화된 이 땅에 흐르는 모든 하천이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수도 서울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한강 안에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저 물이 모여 흐르는 커다란 도랑에 불과하다. 한강의 양변이 시멘트 제방으로 둘러싸여 그 어느 곳에서도 물고기들이 ‘산란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강에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한강에서 알을 낳고 자란 것이 아니라, 여름 홍수 때 상류로부터 성난 물길에 떠내려와 한강에 살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해마다 5~6월이 되면 중랑천과 안양천은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만큼 많은 잉어 떼를 만날 수 있다. 중랑천과 안양천은 곳곳에 수심이 10cm도 되지 않는 얕은 건천에 불과한 곳이 많다. 커다란 몸집의 잉어들이 이 얕은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배는 땅에 닿고, 등지느러미는 허공에 내민 채 고통스레 꿈틀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물고기들의 고통을 알길 없는 시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얕은 하천을 올라오는 잉어떼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이 더럽고 물 없는 하천에 이렇게 물고기가 많나?” 하며 놀라워한다.
잉어는 수심이 깊은 물을 좋아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중랑천과 안양천에서 볼 수 있는 잉어들은 원래 그곳에 살아가는 녀석들이 아니다. 한강에 사는 잉어들이 산란 철이 되었지만 시멘트로 둘러싸인 한강 그 어디서도 알을 낳을 곳을 찾지 못해 더러운 중랑천과 안양천이나마 기를 쓰고 올라오는 것이다.
잘못된 하천정책으로 인해 썩어들어가
아름다운 강변을 시멘트 제방으로 쌓아 강의 생명을 빼앗은 곳은 한강만이 아니다. 홍수 예방의 명분으로 이미 전국의 모든 강이 제방으로 인해 미루나무와 모래사장이 어울린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생명을 잃은 지 오래다.
강변을 둘러쌓은 돌과 시멘트 제방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얕은 둑으로 인해 비가 오는 여름마다 범람하는 곳이라면 주민들의 안정과 농지 보호를 위해 당연히 제방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강변의 지형이 홍수 때의 수위보다 높아 제방이 전혀 필요 없는 곳까지 시멘트 제방을 쌓아 강을 망치고 있다는데 있다.
높은 제방을 쌓기 위해서는 먼저 강 주위 자갈과 흙을 긁어 모은다. 이 과정에서 몰지각한 공사업자들이 강물 속 자갈까지 끌어내어 쌓기 때문에 수중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된다. 자갈과 모래가 반짝이던 아름다운 강변은 바닥까지 긁어간 덕에 잡초 밭으로 변하게 된다. 여기 저기 움푹 팬 웅덩이에 고인 물은 잉크를 풀어 놓은 듯 시퍼렇게 물이 썩어가고, 강가에 새롭게 형성된 잡초들은 그대로 강물에 쓸려 들어가 물 속에서 썩어 부영양화를 일으키며 강물오염을 촉진시킨다.
정부에서 맑은 물을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수도요금에 수질개선부담금을 부담시키고 있지만, 이미 정부의 잘못된 하천정책으로 인해 상류로부터 물이 썩어 들어가고 모순을 범하고 있다.
‘쌓기-걷어내기’ 예산낭비, 생태계 파괴
얼마 전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오고 가는 제방공사 현장에서 울고 있는 검은머리딱새 한 쌍을 보았다. 이 새들이 위험한 공사현장을 떠나지 않는 것은 주위에 새끼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참 기다리며 주위를 살핀 끝에 무서움에 떨고 있는 새끼 한 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제방공사는 수중 생태계뿐 아니라 강 주위를 기대고 살아가는 생태계까지 파괴하는 반생명적 행정이다.
또한 국민의 혈세를 잘못 쓰는 전형적인 예산낭비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 잘못된 제방공사로 무참히 파괴된 강원도 영월, 아름다운 서강의 문개실 강변을 들 수 있다. 문개실 강변은 미루나무와 모래사장이 어울린 아름다운 강변이었다. 그러나 침수된다는 이유로 제방이 건설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한쪽에 제방이 쌓여지자 불어난 물살이 제방에 부딪히며 반대편 강변을 유실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제방 건너편 강변은 지대가 높아 제방이 전혀 필요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제방에 부딪힌 물살이 반대편 강변과 농지를 침식시키자 건설 계획이 없던 한쪽 강변마저 제방이 건설됐다. 또 다시 문제가 발생됐다. 양쪽 제방 건설로 인해 강변이 좁아지자, 먼저 쌓은 제방으로 물이 넘쳐 흘러가며 제방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결국 이곳에 제방이 필요 없음을 안 당국은 또 예산을 들여가며 무너져 흉한 제방을 걷어내는 웃지 못할 일을 진행했다. 덕분에 한쪽은 반쪽만 남은 자갈언덕으로, 한쪽은 원래 지대가 높아 제방이 필요 없던 아름다운 강변을 파괴한 쓸모 없는 회색 빛 제방이 남아있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면서까지 아름다운 강을 파괴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국토관리청은 제방공사 중지해야
강의 제방을 쌓는 일은 국토관리청 관할이다. 잘못된 곳에 제방이 건설되어도 지자체에선 상급기관인 국토관리청에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제방을 쌓는 제일 큰 명분은 ‘홍수 예방’이다. 그러나 제방으로 인해 더 빈번한 홍수와 사고가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당국은 인지하고 있을까?
예로부터 큰 비가 오면 강 주위의 낮은 지대로 물이 넘치며 그곳이 일시적으로 물을 저장해주는 저수지 역할을 하여 유속을 늦춰줘 하류 쪽에 홍수를 막아줬다. 그러나 강 양쪽으로 높은 제방을 쌓아 올리자 작은 비가와도 일시에 강물 수위가 올라가고 유속이 빨라져 하류엔 더 많은 홍수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지금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강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모한 시멘트제방이 아니라, 자연 친화적인 제방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예산을 들여 강변의 시멘트를 걷어내며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해 강의 생명을 겨우 살려낸 양재천과 전주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언젠가 강을 살린다며 또다시 제방을 걷어내는 일에 막대한 예산을 쓰게 될 것이다.
섣부른 인간의 간섭이 없으면 자연은 스스로 자신을 정화시키고 지켜낸다. 국토관리청의 홍수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제방공사는 이미 홍수 예방의 기능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와 생태계 파괴와 무분별한 농지 편입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이제라도 곳곳에 진행되고 있는 제방공사를 중지하고, 강을 살리는 일에 머리를 모아야 할 때다. 강은 곧 국민의 젖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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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쌀이남아돌고 강변 농민들의 배가부르니 홍수를격고 배가 고프던 얫날을 까맣게 잊어셧단말입니까.나는 낙동강변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516이후 제방공사덕분에 모두 잘사는 부자농촌이 된것을보고 치산치수는 반듯이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전후를 충분히 사전연구해야겠지요.그리고 꼭 필요한것은 치산치수와 뎀등으로 일시에 흘려가는 강물을 조절하는 지혜가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반론을 드리느것같아 죄송합니다.
정선생님, 반론이 소중합니다. 저 역시 "충분히 사전연구해야"한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많은 의견들이 조율되어 무엇이 진정 우리의 하천을 살리는 길인지 모색.지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