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광벽
귀주성 존의시에 허광벽許光碧이라 부르는 거사 한 명이 있는데, 현지에서 좀 유명한 인물이다.
그녀는 『법화경』을 20년간 열심히 독송하여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다. 그 당시 『법화경』을 배울 때 스님이 한 글자 한 글자씩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는데, 매번 다섯줄씩 가르쳐주고는 집에 돌아가서 암송한 다음에 다시 스님을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렇게 3년을 배웠다.
사람들이 병난病難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누가 사망하면 그녀를 초청하여 『법화경』을 독송하게 하였다. 그녀는 또 붓글씨까지 배워서 『법화경』을 여러 부 사경하여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1995년, 어떤 연우가 그녀에게 『무량수경』을 독송하며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권했더니 『법화경』이 경전 중의 왕이라며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미타부처님께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는 꿈을 꾸고서야 『무량수경』을 독송하며 아미타불을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무량수경』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녹음테이프를 따라 한 번 읽는데 2시간이 걸리는 것을 매일 세 번씩 읽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미타부처님의 성호를 불렀다. 경문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 매일 다섯 번씩 독송하였고, 용맹정진하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평소에 외출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았으며, 아들과 며느리·손자·손녀들은 아래층에서 살았다. 채소를 사거나 청소를 하는 것은 모두 아들과 며느리가 도맡았고, 딸도 매주 집에 와서 그녀를 위해 목욕도 시켜주고 빨래도 해주면서 전 가족이 그녀가 불교공부 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많은 거사들이 그녀의 수행조건이 좋다며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였는데, 자신에게 번뇌가 심하고 업장이 두텁고 망념이 많고 마음이 청정하지 않아서 왕생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2000년 초, 귀양의 유묘음선생이 준의 백운사에 오셔서 연우들을 위해 ‘아미타불을 전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이치에 관한 법문을 해주셨는데, 법문을 들은 허광벽은 매우 기뻐하였다.
선도대사의 정토사상을 소개한 총서를 배독하고 나서 감동한 허광벽은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육자명호로써 우리를 구제해주시는구나! 너무 좋아! 정말로 너무 간단하구나” 그 뒤로 그녀는 오로지 염불만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후에 졸도하는 병이 생겼다. 발병할 때 규칙이 없었고 사람은 의식을 잃게 되는데, 어떤 때는 눈이 위로 뒤집어지고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서 게거품을 뿜었으며, 심할 때는 또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였다.
많은 연우들이 그녀를 걱정하였다. 그러나 정작 허거사 본인은 여전히 염불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때로는 가뿐하게 장을 보러 가면서 염불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랜 도반의 집에도 놀러가서 그녀들에게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와 조건 없는 구제를 설명하면서 그녀들에게 부처님의 명호를 전념하라고 권하기도 하였는데,
법희로 가득 차고 홀가분하고 자재한 모습이어서 더 이상 예전처럼 공부가 안 돼서 왕생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왕생하기 보름 전, 아들에게 “내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나서 장례를 치를 때 채식을 해야 한다.
나의 뼈를 가지고 돈벌이를 해서는 안 된다(선물을 받지 말라는 뜻). 그리고 7일장을 지내 달라”고 당부하였다.
2001년 1월 22일(12월 28일), 그녀는 1층 아들집에서 본인이 살던 5층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손자가 그녀에게 탕원湯圓을 갖다드리려고 위층에 올라갔더니 그녀가 소파에 앉아서 손에 염주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서 할머니가 염불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그릇을 탁자위에 놓고 가버렸다.
10시쯤 돼서 9살 된 손녀가 다시 위층으로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가 여전히 소파에 앉아서 손에 염주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손을 한번 잡아당기면서 “할머니, 침대에서 주무세요”라고 말하고는 1층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때가 돼서 며느리가 다시 그녀를 보러 왔다. 그녀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서 꼼짝하지 않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으며 손을 잡아보니 이미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얼굴은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녀를 소파위에 눕혀놓은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고 확정할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급히 돌아와서 어머니의 동공이 이미 풀린 것을 보고는 어머니가 이미 왕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난로위에 있는 우유가 이미 다 타서 눌은 것을 보니 석탄불도 지폈던 것이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서 줄곧 소파위에 앉아 염불하다가 어느새 편안히 왕생하신 것이다.
노인이 이렇게 평온하고 차분하게 가신 것을 본 가족들은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는 응접실 가운데에 안치하였다.
일가족은 교대로 염불하였고, 오후에 설날 밥을 먹고 나서야 거사들에게 알리었다. 거사들은 교대로 허광벽의 영전에서 염불을 하며 편안히 왕생한 그녀를 환송해주었다.
4일 후에 장례식장의 직원이 흰 천으로 허광벽을 싸서 5층에서 들어 내렸는데, 현장에 있던 연우들 모두 허거사의 몸이 솜처럼 유연하다는 것을 목격하였다.
향년 74세인 허광벽은 잡행을 버리고 전심으로 염불하여 마침내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겠다는 소원을 성취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소탈하고 자재하고 깔끔하게 왕생함으로써 연우들에게 아주 좋은 귀감이 되었다.
(나법주 구술, 주위중·유과 거사 정리
200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