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얼음 트레킹’ 1구간(직탕폭포에서 고석정까지)
산행일 : ‘18. 1. 30(화) 소재지 : 경기도 철원군 동송읍과 갈말읍 일원 산행코스 : 직탕폭포→태봉대교→송대소→얼음축제장→승일교→고석정(소요시간 : 2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갤러리산악회
특징 : 한탄강은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써서 우리말로 ‘큰 여울’이라는 뜻이다. 200만~1만 년 전 10여 차례 이어진 오리산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철원 일대를 평평하게 뒤덮었다. 용암이 굳어진 현무암 사이로 물이 스며들면서 틈이 커지고, 거기에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게 한탄강이다. 빠른 물살에 바위가 깎이고 파여 좁고 깊은 협곡과 주상절리, 수직 절벽 등이 형성됐다. 한마디로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철원군에서는 이런 장점을 살려 특성에 맞는 축제(祝祭)를 만들어냈다. 바로 ‘철원 한탄강 얼음트레킹’이다. 태봉대교를 출발해 송대소 주상절리와 마당바위를 거친 후, 승일교와 고석정, 순담계곡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짜여 있어, 신비로운 풍광을 만나게 됨은 물론이고, 축제장에 들러 신나는 겨울 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거센 물살에 막혀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는 ‘한탄강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다. 여행객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이유이다.
▼ 트레킹의 시작은 금비펜션 주차장(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393-57) 43번 국도를 타고 철원군 동송읍까지 온다. 이평사거리(동송읍 이평리)에서 좌회전하여 이평로를 타고가다 오덕교를 건너면 오덕사거리(동송읍 오덕리)이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463번 지방도로를 타다가 ‘장흥3리’를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곧이어 금비펜션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축제기간(1월 20일부터 28일까지 9일간) 동안 축제 참가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모양이다. ▼ 트레킹은 첨부된 지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점심상을 차려야만 하는 산악회의 여건상 대형버스를 댈만한 곳이 순담계곡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한탄강으로 향한다. 볼에 스쳐가는 바람이 차다. 아니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춥다. 트레킹을 함께 가자는 내 제안에 친구 형우군은 이곳의 추위 때문에 싫다고 했다. 이곳에서 군대생활을 했기에 그 추위만 생각하면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궁예가 망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왔다.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의 수도가 바로 이곳 철원이었는데, 추위에 떨며 눈을 치우다 화가 난 왕건과 그 부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에 불과하겠지만 그만큼 이곳의 추위가 지독하다는 방증(傍證)이 아닐까 싶다. 불침번을 서다보니 온도계의 수은주가 빨간 점만 보이더라니, 야외에서 소변을 보았더니 금방 노란 빙판이 되더라는 얘기들도 이곳 철원에서 근무한 예비군들 사이에 회자(膾炙)되던 얘기들이다. ▼ 한탄강에 내려서자 2m 조금 넘어 보이는 얼음벽이 나타난다. 직탕폭포(直湯瀑布)이다. 직탄폭포(直灘瀑布)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으니 참조한다. 갑자기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문득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는 누군가의 표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했다. 고작 이 정도를 갖고 나이아가라폭포에 견주다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공의 물막이가 아닌 자연스럽게 형성된 단애(斷崖)에서 물이 떨어져 내린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곳 직탕폭포는 여름철 수량이 많을 때는 강폭과 넓이가 같은 아름다운 폭포를 볼 수 있고, 갈수기(渴水期)엔 강바닥의 주상절리가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 닮은 점이 있기는 하다. 밑으로 긴 다른 여느 폭포들과는 달리 이 폭포는 옆으로 길기 때문이다.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너비는 80m에 이르는 것이다. 나이아가라폭포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옆으로 퍼진 게 아니겠는가. 아무튼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형태의 '一'자형 폭포가 아닐까 싶다. 거기다 거대하지는 않지만 폭포가 만들어내는 경치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얼어붙으면서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긴 아무 이유 없이 ‘철원 8경’ 가운데 하나로 뽑아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 쩡쩡거리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물이 얼면 부피가 늘어난다.’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아는 진리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수면(水面)이 넓은 강이나 호수는 이 늘어나는 부피를 견디지 못해 얼음에 금이 가게 된다. 이때 쩡쩡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다. 안심하고 얼음의 위를 걸어도 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집사람은 내 설명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얼음이 녹는 소리라면서 소리가 날 때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는 것이 아닌가. 올해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공식이 무너져 버렸을 정도로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늘만 해도 영하 20℃, 이런 추위에서는 얼음 위에서 널을 뛴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 태봉대교로 향한다. 물론 꽁꽁 얼어붙은 강물의 위를 걷는다. 만일 빙질(氷質)까지도 투명했더라면 예수님이 갈릴리호수에서 행했다는 기적을 흉내내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집사람처럼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사람들이 걸어간 자국들이 모여 아예 길이 되어 버렸다. 얼음이 만들어놓은 숨구멍만 피한다면 온 빙판을 다 길로 삼아도 될 텐데 말이다. ▼ 길을 나서자마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태봉대교(泰封大橋)‘가 나타난다. 아치형으로 생긴 외형에 시선을 빼앗기게 만드는 멋진 다리이다. 이 다리는 원활한 교통소통을 통한 주민들의 불편해소와 지역 간의 균형발전, 그리고 교량의 관광자원화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는 240m이고 폭이 17.8m이다. 유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생김새는 물론이고, 전체적으로 한탄강 계곡과 잘 조화를 이루어 철원 탐방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 궁예(弓裔)가 건국한 태봉국(泰封國)의 이름을 딴 ‘태봉교’는 국내 최초로 건설된 다리형 번지점프(bungee jump)의 명소이다. 2002년에 문을 열었는데 현재도 도전과 스릴을 원하는 많은 이용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50m 높이에서 흐르는 강물을 향해 몸을 내던지면서 그동안 바쁜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스릴을 경험해보려는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한탄강을 향해 떨어지는 광경이 마치 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의 ‘카와라우 다리(Kawarau River Bridge)’의 번지점프를 보는 것 같다고 알려져 있다. ▼ ‘송대소’로 향한다. 길은 대부분 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놓았다. 안쪽 방향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리본(ribbon)으로 막아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따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요즘의 맹추위를 예상치 못하고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사람들은 모두 두서없이 걷는다. 강 전체를 길로 삼아버리는 것이다. ▼ 물의 흐름이 급한 곳은 얼음의 두께가 얇다. 아니 아예 얼지를 않은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어김없이 강변에다 길을 내놓았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수도 없이 널브러져 있기 때문에 걷기가 무척 힘든 구간이다. 아무튼 강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구멍을 보며 자연의 신비를 느껴본다.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보통인 요즘의 맹추위에도 얼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중동(靜中動)’이란 말이 있다. 문자로 풀면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모습’이라고 풀이된다. 그러나 그 속뜻은 목적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의도나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효율의 극치를 함축성 있게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동(動)이 정(靜)을 이겼다고 봐야 하겠다. 물의 흐름이 강하다보니 얼려고 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영하의 맹추위까지도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치켜드니 멋진 그림 하나가 그려지고 있다. 철새들이 아름다운 문양을 수놓으면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 만다. 맞다. 이곳 철원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였다. 겨울이면 시베리아와 몽골 등에서 사는 수천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 그만큼 이곳 철원이 철새한테 좋은 쉼터를 제공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먹이가 넉넉하고, 느긋하게 쉬면서 맞잡이한테서 몸을 지킬 만한 곳이라는 얘기이다. ▼ 철원은 눈에 보이는 산하가 모두 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다. 눈에 담을 만한 풍경들이 모두 남북분단이 만들어낸 산물들인 것이다. 쏟아지는 포탄으로 인해 높이가 1m나 낮아졌다는 ‘백마고지’나 포격으로 인해 산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는 ‘아이스크림 고지’, 후고구려의 궁예가 나라를 세우며 진산으로 삼은 '고암산 (김일성 고지)' 남방 한계선이자 한반도의 녹색지대인 DMZ 등 어느 것 하나 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서울면적(605㎢)보다 훨씬 넓은 약 650㎢(2억 평)에 달하는 거대한 철원평야의 풍요로움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단의 현실을 삶의 현장으로 여기는 것들도 있다. 우리에겐 아픔이지만 철새들에겐 행운이기 때문이다. 분단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구역을 만들었다. 드넓은 철원 평야 농경지는 먹거리인 낙곡을 제공하였고, 한탄강의 여울과 곳곳에 자리 잡은 대형 저수지는 잠자리로 최적이다. 이런 환경 덕분에 철원은 멸종위기 종(種)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독수리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의 월동지가 되었다. 오늘 여행을 즐기면서 끊임없이 마주치게 될 풍경들이다. ▼ 태봉대교에서 약 1km 아래에 있는 송대소(松臺沼)는 현무암 협곡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거친 강물이 수직 절벽을 만나 S자로 휘돌아가면서 깊이 30m의 소(沼)를 형성한 곳으로 꽁꽁 얼어붙은 비취색 강 양편으로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가 선명하다. 참고로 이곳 송대소는 송도(개성)에 사는 삼형제가 이곳에 왔다가 둘은 이무기에 물려 죽고 살아남은 한 사람이 그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쩡쩡거리는 얼음 울음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쏟아져 내릴 듯한 다각형 바위기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100여m에 이르는 거대하고 검붉은 바위 절벽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건 겨울이 주는 선물이다. 자신이 최고라는 주상절리와 적벽(赤壁)들이 전국에 많다. 하지만 이렇게 코앞에까지 다가가서 진한 감동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참고로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란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節理)를 말한다. 용암이 식을 때는 수축하면서 갈라지게 되는데 이 때 용암 표면에는 수축 중심점들이 생기고, 이러한 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는 경우 용암은 6각형의 무수한 돌기둥으로 갈라지게 된다. 마치 여름철에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현상과 같다. 그러나 돌기둥의 단면이 반드시 6각형은 아니며 4각형, 5각형 등 다양하다. ▼ 막대기 같은 바위덩어리가 바닥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위로 뻗어 올랐다. 수심(水深)이 30m도 넘는다는 소(沼)에서 이런 바위기둥을 만져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하지만 건드리기라도 할라치면 자칫 부서질 듯 위태롭다. 아무튼 제주에서 보던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멋을 자랑한다. 아름다움은 조금 떨어지지만 웅장함은 훨씬 더 뛰어나다는 얘기이다. ▼ 왼편에 현수교(懸垂橋)로 여겨지는 다리도 보인다. ‘송대소’ 바로 아래에서 한탄강과 합쳐지는 지류(支流)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지는 못했지만 ‘주상절리길’을 조성하면서 만들어 놓지 않았나 싶다. ▼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은 침식력(浸蝕力), 특히 하방침식(下方浸蝕, 강물이 하천의 바닥을 깊게 깎는 작용)이 활발하여 무려 40m 깊이에 이르게 깎아내린 수직단애(垂直斷崖)를 만들었다. 그런 단애들은 용암대지의 유년기(幼年期) 지형을 보이는 특이한 경관을 만들어내며 그 하나하나가 천혜의 관광지를 만들어낸다. ▼ 강변의 모래사장에는 주막(酒幕)도 들어서 있다. 축제기간에 맞춰 임시로 만든 시설인데, 아주머니 한 분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로 보아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축제야 이미 이틀 전에 끝이 났지만 ‘한탄강 트레킹’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가끔 ‘한탄강 얼음트레킹’을 홍보하는 현수막(懸垂幕)도 보인다. 그림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직탕폭포에서 출발해 태봉대교와 송대소, 마당바위, 승일교 메인행사장과 고석정을 거쳐 순담계곡에 이르는 코스로 거리는 7Km가 된단다. 이중 고석정에서 순담계곡에 이르는 1.5Km의 구간은 올해부터 새로이 개설되었다. 강물이 깊은 탓에 통행이 불가능했는데, 강물에 부교(浮橋)를 띄움으로써 통행이 가능해졌다. ▼ 강의 양안(兩岸), 언덕위에 데크로드가 보인다. 곳곳에 정자(亭子)까지 지어 놓았다. 요즘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는 ‘주상절리길’이 아닐까 싶다. 주상절리길은 강원도와 경기도가 공동자원인 주상절리를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협력 사업이다. 강원도의 철원에서 경기도의 포천·연천까지 총 119km를 잇는 생태탐방로인데, 철원 43.15km, 포천 53km, 연천 23.5km의 구간을 각 지자체 별로 추진하고 있다. 이중 철원구간은 2012년에 시작해서 이미 40.25km를 완료하고 이제 2.9km만 더하면 사업이 종료된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얼음트레킹을 통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그러지 못하는 여름철에는 ‘주상절리길’을 걸으며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탄강의 주상절리는 이제 계절에 관계없이 구경할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변한 셈이다. ▼ 강안(江岸)의 바위절벽이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롭다. 그런데 그 위에 반듯하게 지어진 하얀색 건물들이 올라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 풍경이 어딘가 눈에 익다. 그렇다. 2년 전에 스페인에 들렀을 때 ‘말라가 주’에 있는 ‘론다(Ronda)’라는 소도시에서 절벽 위에 지어진 저런 마을을 보았었다. 스페인 근대 투우의 창설자인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태어난 곳이다. 그곳도 역시 안달루시아 특유의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푸에블로 블랑코(하얀 마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론다 산맥에 위치한 탓에 깊은 엘타호데론다 계곡이 도시가 자리 잡은 두 구릉(丘陵)을 가르고 있는데, 계곡으로 과다레빈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한탄강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 사실 앞에서 말한 론다는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누에보다리’(스페인어: Puente Nuevo)‘로 더 유명해진 관광지이다. 과다레빈 강을 따라 형성된 120m 높이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소설가 헤밍웨이가 이 다리의 근처에 있는 호텔에 머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난 절벽위에 걸터앉은 건물들에 더 감명을 받았었다. 론다의 절벽은 보면 볼수록 서슬이 시퍼랬었다. 그런데 그 위에 ‘하얀 마을’이 누군가 일부러 올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었던 것이다. 난 당시의 감회를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란 구절을 빌려다 썼었다. 그만큼 감동적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런 감동이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tv-N의 여행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의 할배들도 감탄사를 늘어놓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말이다. ▼ 강변에 자리 잡은 양수장(揚水場) 건물에 벽화(壁畫)가 그려져 있다. 얼마 전 한탄강의 양수장을 리모델링(remodeling) 한다는 언론 보도를 본 것 같은데 그 사업이 완료되었나 보다. 당시 기사(記事)는 한탄강에서 농업용수를 끌어올리는 농업기반시설인 문혜양수장 등 7곳의 양수장 벽면을 삼부연폭포와 직탕폭포, 고석정, 주상절리 등 철원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채운다고 했다. 또한 건물 외관에는 두루미와 오대쌀 등의 상징 조형물들을 설치해 건물의 투박함과 생경함을 지우겠다고 했다. ▼ 이 근처 어딘가에 마당바위가 있다고 했다. 현무암이 모두 깎여 그 아래 있던 넓은 화강암이 드러나 형성된 곳이라는데, 어디를 말하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바위들이 모두 눈으로 덮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송대소를 지나면서 강폭은 눈에 띄게 넓어진다. 덕분에 야트막한 강변 풍광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절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주상절리도 언제부턴가 뒷면으로 사라졌다.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설치한 양수장 시설들이 연이어 나타나는 구간이다. ▼ 송대소에서 대략 3km쯤 내려왔을까 진행방향 저만큼에 ‘철원 한탄강 얼음트레킹’ 행사장이 보인다.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에서 겨울 장관에 푹 빠져볼 수 있도록 축제놀이터를 꾸몄다. ‘철원 한탄강 얼음트레킹’은 얼음의 위를 걷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트레킹 행사와 함께 진행되는 축제의 놀이마당을 이곳 승일교 근처에다 만들어 놓았다. 행사(1월 20일부터 28일까지 9일간)는 이틀 전에 끝났지만 시설물들은 아직까지 그대로 놓아두었다. 축제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니 인파에 시달리지 않으니 한결 더 낫다고 볼 수도 있겠다. 참!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철원 한탄강 얼음트레킹’의 흥미로운 점은 다른 계절에는 래프팅(rafting)을 하면서나 곁눈질로만 훔쳐볼 수 있었던 기암절벽과 주상절리 등의 절경을 직접 눈앞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 행사장의 볼거리는 ‘얼음마을’이다. 얼음마을에서는 얼음터널과 얼음기둥, 고드름 초가집, 얼음나무, 얼음폭포가 만들어져 장관을 이룬다. 최상의 포토존(photo zone)이니 놓치지 말고 이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어두자.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 평창올림픽의 성공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공간도 보인다. 쌓아올린 눈에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모형들을 만들거나 조각해놓았다. 또한 아이스하키, 컬링 등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를 기원하는 특별 얼음놀이도 체험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와 함께 하는 눈썰매장에선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재미에 푹 빠져볼 수도 있다. ▼ 그 옆에는 승복(僧服)을 입은 궁예(弓裔)의 상반신도 조각해 놓았다. 궁예는 통일 신라 후기에 후고구려(후에 태봉으로 국호 변경)를 건국한 인물이다. 후고구려는 통일 신라, 그리고 견훤(甄萱)이 세운 후백제와 더불어 후삼국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이곳 철원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후고구려를 새로 열면서 이곳 철원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궁예를 일러 스스로를 미륵불(彌勒佛)이라 칭하는 과대망상에, 포악한 성품으로 학정을 일삼았던 군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궁예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연 고려의 관점에서 그려진 것이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오히려 무능력한 신라 지도층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했으며, 고려라는 새 왕조가 탄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 강 건너 산자락에는 얼음폭포를 만들어 놓았다. 폭포 위의 나무들도 하나같이 얼음으로 둘러싸여있다. 얼음나무인 셈이다. 이곳 또한 최고의 포토죤(photo zone)이다. 산 전체가 폭포로 이루어져 그 거대한 생김새부터가 장관일 뿐만 아니라 고드름 모양으로 뻗어 내린 얼음줄기들이 하나 같이 그 빼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 행사장을 벗어나면 곧이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26호’인 ‘승일교(承日橋)’가 나타난다. 갈말읍 내대리와 동송읍 장흥리 사이의 한탄강 협곡(峽谷)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한탄강 주변의 풍광과 아치형의 다리 모습이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서 나오는 다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愛稱)이란다. 현재 승일교는 도보로 건널 수 있으며, 차량은 옆에다 새로 놓은 한탄대교로 운행한다. 한탄대교 옆에 도로 확장을 위해 다리 하나가 완공 단계에 이르렀는데, 승일교와 비슷한 디자인이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승일교(承日橋)는 북한이 착공했으나 남한이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다리의 이름을 만들었다. 남한과 북한이 번갈아 공사해서 완성시킨 교량이라는 얘기이다. 승일교가 있는 철원 땅은 해방이후 북한에 속해 있었다. 1948년 북한이 동송읍 쪽에서 다리를 건설하던 도중에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끝나자 이곳은 남한 땅이 되었다. 이후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다리를 갈말읍 방향에서 다시 시작해 완공시킨 것이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6·25 당시 철원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면서 혁혁한 공을 세우다 평북 덕천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박승일 연대장의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박승일 연대장의 이름을 따 ‘승일교’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 탓에 다리는 아치형과 사각형의 구조물이 뒤섞인 형태가 됐다. 6·25 한국전쟁이 만들어 낸 ‘남북 합작’의 역사가 구조물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면 되겠다. ▼ 트레킹을 이어간다. 승일교를 지난 한탄강은 고석정과 순담계곡을 향해 굽이치며 흐른다. 그런데 주변의 풍경이 많이 변해있다. 강폭이 넓고 유속(流速)이 느리던 이제까지와는 달리 급류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강물이 얼지 않은 곳이 많다. 그래선지 길 또한 강변을 따라 나있다. 그렇다고 트레킹이 재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강변에 늘어선 화강암들이 해골을 닮는 등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상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양새들을 눈요기삼아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그렇다고 결빙(結氷) 구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도 춥다보니 조금만 유속이 느리다싶으면 꽁꽁 얼어붙었다. 다만 상류에 비해 결빙상태가 좋지를 않고, 아예 얼지 않은 구간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일 따름이다. ▼ 고석정(孤石亭) 직전의 물이 좁아지는 곳도 강변의 자갈길을 이용해야 통과할 수 있다. 이때 진행방향의 단애(斷崖) 위에 올라앉은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탄리버 스파호텔’일 것이다. 지상 3층, 지하 1층 등 연면적 9,917.4㎡에 68개의 객실과 최신시설이 완비된 연회장 및 세미나실, 게르마늄 온천, 워터파크, 찜질방, 웰빙 다이어트 푸드(닥터로빈), 헬스클럽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종합 휴식공간이다. 특히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고석정의 전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인근에 ‘한탄강 컨트리클럽’이 있으니 라운딩이 끝난 후에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화산온천욕이나 수영 등으로 몸을 풀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