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영의 행적
바로 몇 해 전의 작업에서 작가는 시골 사진관들을 촬영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촌스러운” 그 사진관 입구는 너무 다른 요소들이 뒤섞여 있어 예컨대 보통의 교양 있는 도시인이라면 당혹해 할만한 모습이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사진관은 그 건물의 얼굴이자 또 그 유리창에 진열된 초상사진이라는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 곁에서 목판의 붓글씨와 창과 벽에 붙인 필름을 오려내어 붙인 글씨는 해묵은 전통이 오늘의 거칠고 야한 감각과 기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대형 판, 원색사진으로 찍힌 그 장면에서는 특히 어린이의 포즈와 복장이 눈에 띠였다.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아이들은 미래의 상징이지만, 대체로 한복차림이었다. 이렇게 어른들은 다음 세대에게 미래를 맡기면서도 그들에게 여전히 과거의 전통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기에는 물론 사진관사진사의 무심한 관행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꼬까옷”이나 “때때옷”이나 “동궁”의 복장을 아이들에게 입히면서,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곧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적 가치를 이어갈 수호성자가 되기를 염원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이는 결국 아이의 명절이나 생일을 핑계로 기존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부모 자신을 기념하려는 또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관들은 쨍쨍하고 강렬한 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튼 진열장에서 햇빛에 노출되어 빛이 바랜 원색사진이 보여주듯이, 사진관사진사의 직사광선을 무시하는 야만성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사진이 빛에 극도로 예민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변질되기 쉬운 뜨거운 온실 같은 진열창에 사진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자신의 사진을 그렇게 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촬영한 사진을 두고서도 어떤 것은 작품으로 암상자 속에 모셔두지만, 이 또한 자신의 작업의 결과인데도 상품이라고 간주하고서 완전히 백안시하는 이중적 태도야말로 대중문화를 언제나 저급하고 상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런 사진들이 감상적인 추억을 환기시키고, 애틋한 지난날의 미소를 떠올리게 해준다 하더라도, 비전문적이며, 가장 아껴야 할 것을 가장 경시하는 태평한 사진사의 이와 같은 행태만큼 인상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작가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주로 지방의 중소도시들이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행정구역의 편의상 그런 것이지, 사실상 농촌 지역이다. 그곳에 대도시의 요란한 구경거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교차로나 마을 어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달하게 모습이 바뀌고 있다. 이미 사진이 기록하기도 전에, 마을 초입을 지키던 우람한 나무들이나, 조촐한 모정이나 평상 같은 것도 급속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은 전원 생활이나 향촌의 그윽한 정취를 생각하며 농촌을 찾는 사람의 머릿속에나 남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작가가 그렇게 촬영하느라고 발길을 멈추었듯이, 그런 길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위한 길인지도 의문이다. 거의 모든 농촌 마을에서도 이제 길은 우선 자동차를 위해 포장한 것이니까, 그냥 스쳐 지나버리는 자리가 되었다.
마을의 초입은 언제나 중요했다. 마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와 도시와 나라에서 그 첫발을 들여놓는 입구를 중시하는 태도는 어느 고장, 어느 문화권에서나 한결 같은 일이다. 사람들은 늘 정성을 기울여 꽃과 장대한 나무를 심고, 장승과 입석을 배치했다. 또 공덕비를 세워 마을의 면모와 체면과 위신을 잃지 않으려 했다. 거기에는 우리의 삶과 이상과 염원 같은 것들이 한데 녹아들어 있었다. 마을지킴이 같은 것이 아무리 소박하더라도, 그것들은 그 안쪽 깊은 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안전과 자부심을 지켜줄 수호신이었다. 어지간히 숭고한 함의를 지녔고 또 그곳을 찾는 사람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했던 과거의 당산나무와 입석을 제거한 자리에 이제는 현수막이 나붙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작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잠시 걸리게 될 현수막에서부터 상당 기간 지속될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급조되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게, 이제 막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이런 것들을 사진으로 “길이 보존”해서 우리 농촌 사회의 현기증 나는 변화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하려는 듯하다.
작가가 노트에서 고백하듯이, 그는 “그림 같은” 사진에는 관심이 없는 만큼, 이 사진 속에는 읽을거리가 많다. 사진을 보는 재미는 굳이 그 속의 이미지를 해석해야 하는 현학적인 놀이나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그 손쉬운 직설법에 있을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고, 전문가의 해설을 따라서 그 도상을 풀이하면서 이해와 감상의 세계로 접어들고자 애써야 하는 그림의 간접화법과 다른, 명쾌하고 기분 좋은 직설법이다. 이를테면, 그림의 세계가 접속법이나 조건법 같은 표현으로 충만하다면, 사진의 세계는 감탄사와 의문사로 넘친다. 작가는 그 밝은 한낮의 광경처럼 자명하고 빤해 보이는 것을 주시하고 사진을 찍어 거기에 의문부호를 붙여본다. 우리는 이렇게 그가 한 번 잘 들여다보라고 보여준 사진 앞에서 그가 무엇을 의아해했는지 함께 짚어볼 수 있다.
농촌 사회의 변화는 위기일까 다행스런 전조일까? 그 얼굴의 이와 같은 변화와 그 표정의 이와 같은 관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 농촌의 입구는 그토록 격심하게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 쟁기 끌던 황소가 없어진 자리에 주물이나 신소재로 빚은 그 이미지는 향촌에 대한 예찬에도 불구하고, 향촌에 대한 진정한 애정의 발로일까, 아니면 단지 한우의 맛을 선전하기 위한 안쓰러운 홍보물일까? 거창하게 수십 배 크기로 확대된 과일과 야채와 특산물은 그 마을 주민의 수확물에 대한 즐거운 익살과 해학의 표현일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 논리에 발을 맞추려고 황급히 준비한 방패요 가문(家紋)일까? 농작물과 생필품이, 전설 속의 인물들이 가벼운 “하이 터치 디자인”을 거쳐 우상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를 반기는 이 광경에서 우리는 우리네 삶이 이 새로운 세기초에 더욱 명랑하고 낙천적인 것이 되었다고 인정해야 할까? 알록달록 채색되고, 야한 페인트칠로 눈을 부시게 하고, 가장 감각적인 색조로서 마무리된 이 상품들이 우리 농가의 수입을 훌쩍 키워주고, 그렇게 해서 우리 농가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을 기원하기만 하면 될까?
현수막을 보자. 탄생과 합격과 당선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찬사는 그와 다른 더 큰 세력에 대해 격렬하게 성토하는 결사반대의 항의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따스하게 햇살이 비치는 그 고요함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이며 후끈한 함성이 플래카드에 실려 바람에 나부낀다. 이렇게 성취의 기쁨과 박탈의 억울함이 한 자리에서 터져 나온다. 지위의 획득이 알려주는 출세와, 경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갈채와 또 여권신장에 위배되는 사고방식이 그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찬양되고 있다. 자존심에 넘치고 배타적이며, 승승장구하는 것만을 찬미하는 플래카드 속의 언어만큼 파시스트의 언어도 없을 것이다.... 언어는 여기에서 대화의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오직 나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그리고 타자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외침이다. 어쩌면 그 외침을 듣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는 태도일지 모른다. 그것은 극단적인 자기도취의 언어이다. 아무튼 마을 입구의 표정은 느긋하고 평화롭지 못하다. 그것은 고함을 지르려고 힘을 쓰고 핏대를 올리는 날카로운 모습이다. 그 입구에서부터 차분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좋은 이야기이든 나쁜 이야기이든 눈에 띄게 함축된 거창한 발언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의 일상과 그 감정이 이렇게 둔탁하고 난폭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할 것이다. 이것들보다 더 공격적이고 야비한 어조의 광고판들은 우리의 낯을 간지럽힐 뿐이다. 거의 아무런 인물도, 인기척도 없이 텅 빈 광장과 거리를 촬영하면서, 작가는 사진관을 촬영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없이 그 재현된 이미지가 반영하는 여러 가지 어법과 수사학을 주목하게 한다.
거대한 황금빛 물고기 형상으로 둔갑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때, 우리의 관광산업이 겨냥하는, 눈길을 끌기 위해 휘황하게 분장한 물고기가 우리의 눈앞을 유유히 지난다. 숭고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그저 심심풀이나 볼거리로 분장시키는 이 분주한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관광을 통해서 자연만이 훼손되거나 그 신비함을 잃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향토가 우스꽝스런 가상의 체험관이나 놀이동산 같은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한 이미지 때문에 향토와 자연은 더욱 희극적인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향토 이미지의 개발은 그 땅에 집을 짓고 거대한 생산단지로 만들고자 가해지는 개발 못지 않게 파괴적이고 반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던 전설의 고향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각자의 상상 속에서 그 이미지의 날개를 펼 때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게 생동하곤 한다. 어떤 전형과 상투형에 따라 빚어진 사물과 인물들이 이렇게 동구 밖까지 나와 우리를 영접할 때, 우리의 기대와 공상은 그 마을 속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바람이 빠지고 시큰둥해지는 것은 아닐까? 구전되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구전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닐까? 오래 된 가옥과 절과 공공 건물에서 그 현판에 새겨진 글자를 음미하면서 한 시대와 한 지역의 풍취를 되새겨보는 대신, 이런 이야기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 기이한 조급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각박해진 인심과, 해체되는 공동체와, 잃어버린 풍속의 자리를 대신 채우자면 이렇게 요란하고 안심해도 좋을 정도로 눈앞에 확신을 주는 우상들이 필요하다는 말일까...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만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것을 외면하고서, 오직 눈에 띄는 구경거리 속에서만 확증을 얻고 싶어하는 이러한 조형물의 과잉과 과장은 여론과 인기와 대중매체처럼 왕왕 대고, 과시하고 시위하는, 크고 많은 것에만 가치를 두고 싶어하는 우리네 민심의 반영일 것이다. 소박하고 조촐하며, 작지만 진솔하고, 나직하지만 진지한 것에 대한 사랑은 이제 정녕 되찾기 힘든 일인지 모른다.
사진관 앞에서나, 마을 어귀에서나 작가는 환하게 드러난 우리 이미지 문화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일종의 통제사 같은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 악몽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일몽처럼 빨리 깨어나고 싶고, 스쳐 지나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그 장면을 그는 사진 속에 “길이 보전”함으로써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이미지 숭배의 한 연대기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글 / 정진국
『현眩 •미迷 •경景』- 길이 보전하세 현란(眩亂), 혼미(昏迷), 경치(景致), 정신이 헷갈리고 어수선한 경치를 현미경(眩迷景)이라고 가정하자. 『현眩 •미迷 •경景』- 길이 보전하세는 다음 세 가지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첫 번째 ‘현수막과 공익구호’, 두 번째 ‘광고 간판’, 그리고 ‘지방 상징물’이다. 이들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임의로 뽑아낸 ‘욕망’, ‘전략’, ‘키치(kitsch)’라는 세 가닥의 실들은 서로 꼬이면서 하나의 씨줄을 만든다. 이를테면, 욕망은 전략을 통하여 키치처럼 나타나거나 키치 속에 전략적으로 은폐된 욕망이 드러나기도 하는 식이다.
현수막과 공익구호 현수막은 대중들의 거침없는 욕망을 말하고, 공익구호는 구호의 이면에 헤게모니가 강제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미스코리아 입상을 축하는 「다섯 개의 현수막」의 경우, 각기 다른 이익 집단의 인사치례가 서로 경쟁하듯 걸려있다. 동일한 마을 주민이 내건 반기문 UN사무총장 당선 축하 현수막과 매립장 결사반대 현수막은 서로 대응한다. 국제결혼회사가 강조한 절대 도망가지 않는 베트남 처녀, 두 명의 박사 배출을 자축하는 종친회, 마을 어머니회의 서울대 1단계 합격 등, 마침내 현수막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표출되는 발언대가 되었다. 1989년 발족한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는 ‘바르게 살자’라는 공익구호를 만들어 전국 각지의 길목에 세워 놓았다. 그들이 군사 정권의 인맥이건, 한해에 정부 예산을 얼마나 지원받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교복 입은 등교 길에서, ‘쥐를 잡자’, ‘독서주간’, ‘저축의 달’이라고 적힌 노란색 리본을 가슴에 달지 않았다면 기합을 받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70, 80 시절의 이야기이다. 또한 당시의 슬로건 ‘조국 근대화의 기수’는 기술 보국의 기치 아래 전 국민을 기능인화 하는 바람몰이식 구호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권력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공익구호 속으로 다양한 재능과 취향의 청소년들은 함몰되어 갔다. 숨 막히던 함몰을 체험한 나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공익구호의 강제 전략의 예로 ‘바르게 살자’를 주목한다. 익명의 누군가가 ‘바르게 살자’의 ‘바’에 ‘ㅂ’을 더하여 ‘빠’로 만들어 놓았다. ‘빠르게 살자’
광고판 고속국도의 주변, 동네 어귀의 전봇대, 버스의 등받이, 지하철의 벽면, 인터넷 검색창, 심지어 휴대 전화의 화면,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곳 어디든 광고는 등장한다. 또한 광고판의 형태가 커질수록 대기업의 그것이고 대기업일수록 광고 카피의 전략은 나름의 품위를 가지려 한다. 2002년 월드컵의 광풍이 한반도를 휩쓸 당시, LG그룹은 ‘The world becomes one’이라는 문구 아래 축구공을 넣은 광고판을 만들었다. 월드컵 개최와 맞물려 ‘축구공으로 하나 되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광고판이 있었다. 광고 카피처럼 축구공으로 하나 되는 세상은 결국, 돈으로 하나 되는 세상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디지털 기법을 이용하여 축구공을 미화($)로 바꾸었다. 공항으로 항하는 도로변에 같은 기업의 광고 ‘Enjoy your trip’이 있다. 당신의 여행을 즐기시라는 말은 축구공으로 하나 된다는 광고 카피와 함께, 무조건 내 것을 사달라는 투의 직접 광보보다 훨씬 의젓해 보인다. 여기서 ‘trip’을 ‘trick’으로 바꾸면, ‘빠르게 살자’처럼 유쾌한 꼬집기가 된다. 삶이 연극이고 연기(演技)라는 가정이 성립한다면 연기란 타인을 속이는 기술이 아니던가. ‘생활 속의 오랜 벗’이라는 광고를 내걸었던 한국담배인삼공사는 2002년에 이르러 회사 이름을 KT&G로 바꾸었다, KT&G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Korea Tomorrow & Global 이라는 용어만 볼 수 있다. 원래 영문 표기로 쓰던 KT&G란 Korea Tobacco & Ginseng 이었다. 생활 속의 오랜 벗임을 자처하는 그럴듯한 광고는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한 금연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자극한다. 어쩌면 ‘독’도 오래되면 ‘벗’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징물 1995년 지방자치를 위한 단체장 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었다. 군사 정권하에 약 30년간 통제되었던 지방자치의 숨통이 트인지 10년이 지나고 있다. 오랜 억눌림 탓이리라. 자생적 숨통은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고 거친 숨은 주목할 만한 지방 상징물을 속속 만들어냈다. 엄청난 크기로 확대 제작된 고추, 복숭아, 사과, 인삼, 수박 등을 직접 대면하였을 때의 당혹감은 바로 키치가 가진 속성과 유사할 것이다. 그렇다.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즐겼던 ‘낯설게 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예술의 기법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충청도에는 지방 특산물을 알리는 상징물이 유난히도 많이 세워져 있다. 음성군에 위치한 미백 복숭아는 실재의 재현에 있어 완벽에 가깝다. 형태, 질감, 채색, 그리고 거대한 크기는 절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런가하면 충주호 주변에 설치된 송이 버섯은 완성도의 투박함과 특유의 외형으로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끌고 있다. 소양강 처녀상은 강원도 춘천의 호수에 세워져 있다. 제작비 5억 5천만원, 높이 7m, 무게 14톤의 청동으로 제작된 이 상은 1970년대 유행했던 대중가요인 ‘소양강 처녀’를 기리기 위함이다. 대중가요는 국민 애창곡이라는 미명으로 지역을 알리는 상징이 되어 당당하게 자리하였다. 7번 국도를 북쪽으로 거슬러 영덕군을 지나 울진군이 시작되는 경계에 이르면 울진 대게의 입체 광고판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영덕과 울진이 서로 대게의 원산지라고 주장하는 결과이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결코 서울로부터 거리가 먼 지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 강서구 운전면허시험장앞 도로 중앙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독도와 근해의 축소 모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강서구의 자치 전략은 나라 사랑으로 무한 증폭된다. 서울시 서대문 구청은 가재마을로 불러오던 가좌동 어귀에 마을이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가재(crawfish)상을 만들었다. 마을 원로에 증언에 의하면 가재마을이란, 주변에 재(嶺)가 많아 불러오던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TV 뉴스에 보도 되었고 서대문 구청은 가재상의 철거를 고심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지나가던 행인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여기 횟집이 생겼나?”
날줄, 이미지와 텍스트 욕망, 전략, 키치가 하나의 씨줄을 이룬다면, 다른 하나의 날줄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이다. 프레임 내부에서 이미지는 고즈넉한 낚시터나 읍내, 화면을 가로지르는 전깃줄과 소실점의 도로, 특이할 것 없는 산야와 하늘의 풍광으로 흔히들 접할 수 있는 이미지이다. 그 전형적인 풍경 속에서 상징물을 포함한 텍스트들은 마치 혀로 모래를 쓸어내듯 서걱거리며 공존한다.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든지, 1단계 합격이라든지, 경축과 결사반대라는 텍스트(문자)들은 흔한 풍경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구조의 컨텍스트(context)를 만들어낸다. 컨텍스트란 바로, 거부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또한 이들 이미지와 텍스트로 결합된 컨텍스트 즉, 대한민국의 풍경은 프레임 외부에서 명명된 텍스트(제목)와도 관계한다. 이를테면, ‘소양강처녀의 탄생’이라는 제목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과, 절대 도망가지 않는 베트남 처녀는 감금된 ‘낚시터 물고기’로, 지방 농, 특산물을 조합한 상징물은 ‘종합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비틀리고 꼬집힌다. 이렇게 욕망, 전략, 키치로 이루어진 씨줄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라는 날줄과 직조된다.
압축은 뻥튀기를 만든다. 흔히들 20세기에 걸친 한국의 근대사를 ‘압축근대’라고 부른다. 식민지배, 해방, 남북분단, 6.25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 경제성장 등,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이 숨 가쁘게 반복된 결과이다. 아마도 1990년대와 지금의 21세기 한국을 ‘압축현대’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가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전환되는 반복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작금의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곳곳에서 반복되는 문제점들은 숙성의 과정이 생략된 압축의 후유 증상들이다. 압축의 부작용은 언젠가 터지고 만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압축은 뻥튀기 과자를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제 능력보다 배가 넘는 자가용을 굴리려는 심리에서부터, 쇼 비즈니스의 세계와 한 치의 다름이 없는 정치 구조, 부동산 투기와 다양한 부밍(booming)의 양상들, 명품과 짝퉁의 천박한 소비문화, 냄비 근성과 님비 현상, 가진 자 그들만의 연회장과, 못 가진 자 그들만의 대합실은 뻥튀기 과자속의 공기구멍과 다름 아니다. 진지한 성찰과 숙성, 참된 사유와 반성 없는 압축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길이 보전하세 라디오를 켠다. 정규 방송에서는 잡담과 말장난이 난무하고, 광고 방송의 CM송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귀가 현란하고 혼미하여 채널을 돌린다. 93.1 MHz 음악 전문 채널이다.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진행자의 말 수가 적고 광고가 없어 견딜만하다. 요절한 전혜린은 1961년 그녀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무서운 허무감에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한다.... 눈을 뜨면 스멀스멀 내 몸에 기생하는 나태와 싸워야 한다....’ 현란하고 혼미한 소리라 하여 채널을 돌리는 행위나, 현란하고 혼미한 경치라 하여 눈을 돌리는 것은 시대에 대한 나태이다. 현미경(眩迷景)을 현미경(顯微鏡)으로 관찰하듯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한다. 압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길이 보전하는 일은 진정으로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삼는 길이다. 후손에 물려줄 것은 ‘영광된 통일 조국’이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디오 채널을 다시 돌린다.
글 / 안수영 작가노트 中
---------------------------------------------------------- 안수영 (安 壽 永) 2005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2002 광주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개인전 2006 『현眩 •미迷 •경景』- 길이 보전하세, 학고재, 서울 2001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하우아트 갤러리, 서울
단체전 2005 『상업사진의 변천사』,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2005 『제4회 시사회』, 팀 프리뷰, 서울 2004 『다큐먼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4 『홍익대학원 동문전』, 관훈갤러리, 서울 2003 『Standing Points』, 백상기념관, 서울
전시기획 2006 『유희의 뒤편』, Art`n Dream, 서울
수상 및 작품소장 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 2006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