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탑기어 아저씨는 운동중이다. 날이 쌀쌀해져서 작년 가을 옷을 꺼내 입었는데 이게 웬일. 도저히 단추가 잠가지질 않는다. 안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헬스장 정기권 세 달 치를 끊었다. 그렇게 열심히 땀 흘리길 일주일. 슬슬 자신감이 단전부터 올라온다. 괜히 멀쩡히 서 있는 가구를 옮기면서 힘자랑 중이다. 문득 궁금하다. 내 출력은 몇 '마력'일까?
마력과 쌀가마니의 상관관계
쌀 한 가마니랑 비교해볼까? 한국인에게 익숙한 힘 측정단위지. 한 번에 번쩍 들 수 있으면 힘 좀 쓴다고 동네방네 자랑해도 좋아. 실제 한 가마니는 80kg니까 함부로 덤볐다간 허리 삐끗하기 십상이니 자제하도록 해. 요즘 마트 곡물 코너에 놓인 쌀 포대를 카트에 실었다고 자랑하는 일은 없기를. 대부분 반 가마니(40kg)야. 혹시 진짜 한 가마니를 들었다면 축하해. 방금 말 한 마리보다 강력하다는 걸 증명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마력의 탄생
마력(馬力)은 문자 그대로 말의 힘이야. 1마력은 말 한 마리의 힘을 뜻해. 정확하게는 1765년 영국산 말 한 마리의 힘이라고 봐야 해. 제임스 와트가 고안한 단위야. 큼직한 방앗간 돌을 돌리는 말 한 마리가 1분 동안 내는 힘을 공식으로 만들어 기준으로 삼았지. 당시 사람들에게 낯선 증기기관이 말 몇 마리 성능을 내는지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주었어. 쌀가마니랑 무슨 상관이냐고? 사진을 봐봐. 말이 75kg 물건을 1m 높이로 끌어올리고 있지? 이때 1초 동안 말이 낸 힘을 1마력이라고 생각하면 돼. 80kg짜리 쌀가마니를 번쩍 들어 올렸다면 1마력 이상의 출력을 낸 거나 마찬가지지.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야.
어쨌든 와트가 만든 단위는 ‘Horse Power’. 앞글자를 따서 HP로 쓰이기 시작했어.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도 이를 참고해 단위를 만들었지. 독일은 PS(pferdestärke), 프랑스는 CV(cheval-vapeur)라 적는데, 다 ‘말의 힘’을 뜻하는 합성어야. 마력끼리 이름만 달랐다면 좋겠지만 국가마다 쓰는 질량과 길이 단위가 달라서 수치상 미묘한 차이가 생겨버렸지. 특히 1HP 와 1PS는 같은 1마력이 아니야. 영국은 파운드와 피트를, 다른 나라는 킬로그램과 미터를 기준으로 만들었으니 다를 수 밖에(독일과 프랑스는 미터법이 기준이라 PS마력과 CV마력은 동일해). 말로만 들어서는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 21세기 적토마 페라리를 가지고 비교해보자.
가가가가? 헷깔리는 마력 단위
여기 페라리 역사를 담은 최신 V8 스포츠카 F8 트리뷰토가 있어. 출력은 720PS. 변환하면 710HP지. 순식간에 말이 무려 10마리나 사라졌어. 조심해. 두 대 이상의 차를 비교할 때 단위를 혼용해 쓰면 말들이 계속 사라질 거야. 꼭 통일해서 사용하도록 해. 하나 더 주의할 점이 있어. 영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위 BHP(Brake Horsepower)는 HP와 조금 달라. HP가 순수 엔진이 뿜어내는 힘만 표기할 때 쓰이는 단위라면 BHP는 차에 얹은 엔진이 각종 구동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바퀴를 굴리는 힘이야. HP는 엔진 힘, BHP는 자동차 힘이라 생각하면 쉬워.
자동차 제원을 읽다 보면 출력에 킬로와트(kW) 수치를 옆에 적어놓은 경우가 있어. 킬로와트는 일률, 그러니까 일의 효율을 나타내기 위한 국제 표준단위야. 1kW는 1000W를 뜻해. 와트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 않아? 맞아. 마력 단위를 처음 만든 그 제임스 와트의 이름에서 따왔어. 모든 마력 수치는 킬로와트로 환산이 가능하니까 단위를 기억해두면 좋아. 어디 보자 F8 트리뷰토 출력을 킬로와트로 환산하면 약 530kW이네. 잘 안 와 닿는다고? 그러면 쌀가마니로 계산해줄게. 사람으로 따지면 몸무게 80kg의 성인이 쌀 674가마니를 매달고 턱걸이하는 힘이라 생각하면 돼.
설마 아직도 40kg 쌀 한 포대 들어놓고 말을 이겼다고 우쭐해있는 건 아니겠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려줄게. 지금 우리가 보는 말은 마력 단위가 만들어진 당시보다 4배의 힘을 낸다고 해. 수십 년간 품종 개량한 결과물이라네. 사실, 말 한 마리가 내는 최고 힘은 1마력 이상이야. 순간적으로 10마력 넘는 힘도 내지. 어때 마력이 좀 익숙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