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곡: 갈보리 십자가에
◇ 실로암 못에 씻으라 ◇
예수께서 길 가실때에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것이
뉘 죄로 인 함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 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 이니라.
때가 아직 낯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내심 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 9장 1~7)
예수님은 공교롭게도
이 소경을 고쳐준 댓가로
많은 분쟁을 보게되고
또 바리세 인들
즉 유대 법정 회원들은
이 사건의 전말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하며
예수님을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라고
트집을 잡고 쟁론을 일으키게 됩니다.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
소경이 되어
평생 걸인으로 행색하던 그 사람
그 소경은 예수를 알지 못한자요.
바디메오 처럼
"예수가 내 병을 고치리라."
라는 확신도 없는 그를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보고
"랍비여 이를 고쳐 주소서." 하는
주문을 하는것이 아니요.
"이 소경이 소경이 된 것은
뉘 죄이니이까?" 하고
예수님께 그 원죄에 관해 물음을 던집니다.
아마 그 제자들 중
한 사람의 소경이 있다면
갈급한 마음으로
그 눈을 보게해 달라고
애원 할 일이겠지만,
역시 이 소경은 남입니다.
이 말을 다시 현실에 맞춰 예를 든다면,
어느날 가족끼리
멋진 공원에 놀러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원에 놀러 가는중에
공원 가까이 에서
그 사람은 교통 사고를 목격 하게 됩니다.
사고 지점에는
사고로 일그러진 차와
부상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족들은
이 사고 현장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여보쇼 누가 피해자 입니까?
누가 먼져 진입했죠?"
사고를 당한 당사자는
묵묵히 피를 흘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 정상적인 경우라면
무엇을 먼져 해야 하나요?
우선 환자 이송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원래 날때부터 소경된 자는
태어날때 눈을 보다가
실명한 사람하고는 또 다른 겁니다.
왜냐하면 날때부터 소경된자는
세상이 원래 빛이 없는줄 알고
답답함을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원래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까....
자! 그런데 정말 큰 행운이
이 소경에게 우연히 다가왔습니다.
부탁도 안했고 그 누구도
"랍비여 저 소경이 가련하니
그를 고쳐 주소서." 하고
주문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예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소경된 자여 일어나 이리 오너라."
소경은 그때에 작고
찌그러진 깡동을 옆에 놓고
잔뜩 웅크린 체로 앉아 있었겠지요.
소경이 난데없는
이 소리를 듣고 말합니다.
"댁이 누구요?
누구신대 날 부르는 겁니까?"
"나는 예수라.
너를 고칠이라.
너의 눈을 뜨게하여 보게하리라.
일어나 이리 다가 오거라."
소경 거지가
일어나 예수님께 다가 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앞에 세우고
진흙을 취하시고 침을 뱉아
그 진흙을 반죽하여 그의 눈에 발라 주십니다.
"자! 이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너는 곧 보게 될 지니라."
그때 당시에
로마나 유대 사회 에서는
침으로 사람들의 눈병을 치료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침을 이용하여 눈병을
고치는 약으로 사용 되었던 것입니다.
근데 여기서
예의 주시할 것은 침은 그렇다고 치고
진흙은 또 무엇인가?
이것은 침으로 씻어 고침도 아니요.
흙으로 고침도 아닙니다.
아마 이 자리에 똥이 있었다면
똥을 발라 주셨을는지도 모릅니다.
진흙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흙 속에서 진주가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속담 이지만,
실제 이 자리에서도
그 진흙이 진주가 되는
기적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진흙이 무슨 약효 입니까?
약효가 있을리 없죠.
그렇다면 그 침과
침으로 반죽된 진흙의 의미는 무엇이냐?
침과 침으로 반죽된 진흙은
작은 믿음을 낳고 있었던 것이요.
예수님께 순종하는
행실의 모양 즉
그릇이 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이와같은 은혜를 입고
기적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이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기 위해
사실은 침이 필요치 않습니다.
진흙이 필요치 않습니다.
각 복음서 마다
예수께서 소경을 고치셨다는
많은 증거가 있지만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을 보게 하였다 함은
오늘 말씀의 소경 외에는 없습니다.
왜냐?
다른 소경들은 이미
그 믿음이 드러나 있었던 것이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 소경은
도무지 예수님을 만나도
눈을 뜰것이라는 믿음이나,
예수를 만나 내 눈을 보게 하리라 는
믿음의 씨앗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
예수님이 주시는
그 처방을 믿지 못하고 반박 한다면
그는 영영 그 빛을 볼수가 없습니다.
"이봐요. 선생!
당신 지금 뭐하는 겁니까?
아니 가만히 동냥하는 사람
동냥은 못줄망정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남의 눈에 발라놓고
보지도 못하는 나에게
실로암 못에가서 씻으라니...
당신 지금 봉사라고 이래도 되는거요?
당신들은 실로암 못에
쉽게 가서 씻을수 있지만
나는 앞도 못보고 실로암에 가서
자칫 하면 그 물에 빠져
오희려 큰 봉변을 당할수도 있는데
그래 나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아마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경은
비록 이미 주어진 그 믿음은 없었으나,
곧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한줄기 빛을 보았고
아주 작은 믿음이 그의 속에서
살포시 나와 안된다는
그 불신이 된다는
확신으로 변화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무도 그를 부축하지 않았으나,
그는 가슴속에 큰 기쁨을 않고
실로암을 찾아가 그 눈을 씻어
밝은 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로암 못에 씻김 받기를 원하시나요?
순종 하시기 바랍니다.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추하고 더럽게 보일 지라도
거룩하게 여기시고
순종 하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큰 봉변을 당할것만 같아도
사실은 그 실로암 못이야 말로
빛을 주는 빛가운데로 인도하는
어린양이 주고간 생명수가 있는 곳이됩니다.
빛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거룩한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오직 쉬운길만 택하게 됩니다.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실로암 못을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 가면 어쩐지
손해보는 느낌만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빛을 보는것이 아니라
봉변을 볼것만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빛을 바라볼수 없습니다.
아무 이름도 없는
소경만도 못한 내가 되서야 하겠습니까?
지금도 예수님은
나에게 말씀 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굳은일을 바라보지 마라.
나를 위하여 네가 상할것을 염려하지 말라.
너는 오직 실로암 못에가서
너의 눈에 내가 발라준 그 진흙을 씻으라.
그리하면 지금까지
네가 보지 못한것이 이제는 보이리라.
아멘....
글쓴이: 엘리야 1332
초대: 말씀의 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