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트-마세이
깨어짐은 일상이다(Brokenness Is the Norm)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부서짐’. 이 익숙한 단어는 최근 나에게 더 깊은 울림과 새로운 차원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내가 때로는 간접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몸소 경험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세계에서 —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의학적, 군사적 측면에서 — 지금 일어나고 있는 듯한 현상들을 명명하거나, 적어도 주목하게 해줍니다.
바로 균열, 붕괴, 무너짐, 그리고 실패들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감사하게도 저는 무지개와 석양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배신을 피해 광야로 도망쳐 동굴에 피신했던 선지자 엘리야처럼, 나 자신의 동굴 속에 숨어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임재—즉 평화, 안전, 균형, 집중, 목적과 같은 것들—를 느낄 수 없습니다.
엘리야처럼, 저는 발밑에서 땅이 흔들리고, 토네이도가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는 것을 느끼며, 불길이 요란하게 타오르는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마침내 들었던 그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부드럽고 말 없는 부르심은, 모든 것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긴장을 풀고 신뢰하며,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분의 내면이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줍니다.
“그래,” 말로는 표현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말합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지, 사랑하는 친구여. 하지만 어쨌든 모든 것은 언젠가 부서지기 마련이야. 그리고 파탄과 상실은 새로운 가능성, 진입로, 열림, 시작을 가져다주지.”
유대 조상들이 여전히 거침없이 활보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토라의 거친 지형을 이루는 이야기, 전설, 그리고 율법 속에서 ‘부서짐’이 바로 표준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들도 미완성, 설계상의 결함, 실패, 실망, 잔혹함, 전쟁, 가뭄, 기근, 기만, 배신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위안과 열정, 사랑, 그리고 신비도 발견합니다.
창조주 신은 빛, 하늘, 낮, 밤, 바다, 대륙, 초목, 새, 물고기, 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진 신의 사자이며, 세상을 채우고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 광기 어린 동물들까지 모든 것을 존재로 불러낸비다.
그리고는, 아무런 예고나 설명도 없이 그 신은 창조의 왕좌에서 내려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 새들과 별들, 새로운 세상이 뿜어내는 신선한 위엄을 그저 감탄하며 바라봅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시작되고, 언젠가는 지치고 기력이 다한 신이 안식기를 보내는 가운데 끝날지도 모릅니다.
열 세대가 지난 후 창조주가 다시 나타나시는데, 우리는 “일을 마무리하러 돌아왔다”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몹시 슬프다. 세상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씻어낼 거대하고 끔찍한 홍수로 내가 만든 모든 것을 멸망시키겠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생명의 창조주는 죽음의 주님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갑작스럽게, 대홍수 전의 우울과 분노가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신은 한 남자, 노아를 발견하고, 노아에게서 무언가가 신의 마음을 사로잡숩니다.
친밀함—이를 ‘언약’이라 부르겠습니다—그 유례 없는 첫 번째 언약이 맺어집니다. 곧 대량 학살의 첫 번째 난민이 될 노아는,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살아갈 길을 — 이를 ‘무지개의 길’이라 부르겟습니다 — 찾아낼 것입니다.
그 길은 변덕스러운 창조적 천재가 키워주는 희망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 천재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등을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때로는 아름다움의 활기찬 기운에 사로잡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긴장을 풀며, 자신의 말을 철회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토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신이 자신이 빚어낸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놀려대다가 결국 내버려 둔 채 방치해 둔다는 것입니다.
모리아 산 정상에 서서 칼을 손에 쥐고 불을 피운 채, 사랑하는 아들 이쯔학을 제물로 바칠 것을 고민하던 아브라함을 떠올려 보십시오. 믿을 만한 목소리가 그에게 외아들을 데려와 제물로 바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모쉐의 아내 찌포라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녀는 남편이 갑자기 고통에 몸을 굽히고, 땀을 뻘뻘 흘리며, 떨고 침묵하는 모습을 보며, 방금 전 이스라엘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설득했던 그 신이 이제 그를 죽이려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서 교훈을 얻은 듯, 찌포라는 칼을 집어 들고 아들의 할례를 행한 뒤, 피 묻은 포피를 아이의 발에 얹으며 외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피의 신랑이다.” 그러자 신은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토라는 우리에게 변덕스러운 신처럼 살라고 명령합니다. 6일 동안은 노동하고, 생산하고, 일하고, 그다음 일곱째 날에는 휴식을 취하고, 물러나 별을 바라보고 새를 관찰하라고 합니다. 말 없는 시편의 음악을 듣고, 선함과 온전함이 주는 풍요로운 침묵을 느낄 수 있는 온전한 하루. 하지만 토요일 밤이 되면,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우리는 다시금 부서진 세상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그곳에서 안식일은 스캔들이자, 강요된 꿈, 즉 위험한 망상에 불과합니다.
브레슬로프의 레베 나흐만은 진정으로 고뇌에 찬 스승이었으며, “무지개의 길”을 살아가려고 경이로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격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온 세상은 좁은 다리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격언은 “부서진 마음보다 더 온전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모든 것이 멈출 것임을 알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입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질문입니다.
By Rabbi James Ponet (the emeritus Jewish chaplain at Yal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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