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앞에서 사띠를 확립한다’는 것은 마음을 명상 대상으로 기울여서 고정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수행하고 있다면 사띠를 숨에 확립해야 합니다. 사대요소 수행을 하고 있다면 사띠를 사대요소로 향해 확립해야 합니다. 수행자의 주의를 명상 대상으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
‘그는 사띠(알아차림)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그는 사띠하면서 숨을 내쉰다’는 그는 사띠를 버리지 않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뜻입니다. 사띠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사띠는 기억입니다. 숨을 기억하는 것을 콧구멍이나 윗입술 주위에 유지한다면 사띠뿐만 아니라 삼매도 더욱더 강해질 것입니다. 삼매가 향상하면 니밋따를 볼 것입니다. 니밋따에 굳게 집중하면 네 가지 선정 모두 증득할 것입니다.
어떻게 사띠하면서 숨을 들이쉽니까? 어떻게 사띠하면서 숨을 내쉽니까? 붓다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길게 들이쉴 때, 그는 분명히 안다. ‘나는 길게 들이쉰다.’
길게 내쉴 때, 그는 분명히 안다. ‘나는 길게 내쉰다.’
그는 한 번의 긴 시간 동안 숨을 들이쉬고, 한 번의 긴 시간 동안 숨을 내쉬고, 한 번의 긴 시간 동안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가 한 번의 긴 시간 동안마다 긴 숨을 들이쉬고 내쉼에 따라 명상에서 매우 중요한 열의가 일어납니다. 열의를 가지고 그는 맨 나중의 긴 시간 동안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들이쉽니다. 열의를 가지고 그는 맨 나중의 긴 시간 동안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내쉽니다. 열의를 가지고 그는 긴 시간 동안, 맨 나중의 숨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희열을 가지고 그가 맨 나중의 긴 시간 동안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들이쉼에 따라 그에게 희열이 일어납니다. 희열을 가지고 그는 맨 나중의 긴 시간 동안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들이쉽니다. 희열을 가지고 그는 맨 나중의 긴 시간 동안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내쉽니다. 희열을 가지고 그는 긴 시간 동안, 맨 나중의 숨보다 더 미세한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명상에서 희열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명상하는 동안 희열이 전혀 없으면 수행자의 삼매는 향상할 수 없습니다. 희열은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수행자가 동요와 망상을 제거하여 길고 미세한 숨 전체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삼매는 향상할 것입니다. 수행자의 삼매가 나아질 때 마음에 희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수행자가 마지막보다 더 미세한 긴 숨을 희열과 함께 들이쉬고 내쉼에 따라 그의 마음은 긴 들숨과 날숨에서 멀어지고 니밋따로 향하여 평정으로 굳게 섭니다.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한다. ‘나는 온 숨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한다. ‘나는 온 숨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위의 구절과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단련합니다.
‘나는 들숨의 온몸을 시작, 가운데, 끝을 자신에게 알게 하면서 분명히 하면서 들이쉬리라. 나는 날숨의 온몸을 시작, 가운데, 끝을 자신에게 알게 하면서 분명히 하면서 내쉬리라.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알게 하고 숨을 분명하게 하는 앎과 관련된 마음과 함께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 경우 여러분은 숨을 ‘이것은 시작이다, 이것은 가운데이다, 이것은 끝이다’라고 알아야 한다고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단지 온숨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가늘고 흩어진 들숨의 몸이나 날숨의 몸을 가진 빅쿠에게는 시작만 분명하고 가운데, 끝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숨의 시작만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숨의 가운데와 끝을 아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른 빅쿠에게는 숨의 가운데만 분명하고 시작이나 끝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숨의 끝만 분명합니다. 시작과 가운데는 분명하지 않고 숨의 끝만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숨의 시작과 가운데를 대상으로 삼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네 번째 부류는 세 단계 모두 분명하여 그는 시작, 가운데, 끝 모두를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는 어디서든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 명상 주제는 네 번째 예를 본보기로 하여 연마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하여 붓다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온숨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한다.
‘나는 온숨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한다.
이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대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 이외에 할 것이 없습니다.
길게 들이쉴 때, 그는 안다. ‘나는 길게 들이쉰다.’
길게 내쉴 때, 그는 안다. ‘나는 길게 내쉰다.’
짧게 들이쉴 때, 그는 안다. ‘나는 짧게 들이쉰다.’
짧게 내쉴 때, 그는 안다. ‘나는 짧게 내쉰다.’
그 후에 그는 지혜 등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한다. ‘나는 온숨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한다. ‘나는 온숨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내쉬리라.’
위의 구절과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들숨날숨의 활동을 차분하게 하고 순조롭게 하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리라.’ 이렇게 그는 자신을 단련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거침, 미세함, 고요함은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명상하는 노력 없이 이 빅쿠의 몸과 마음은 괴롭고 거칠고, 들숨날숨도 거칠고 고요하지 않게 됩니다. 콧구멍은 충분하지 않아 그는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통제 아래에 있으면 몸과 마음은 차분하고 평온합니다. 몸과 마음이 평온할 때, 들숨날숨은 매우 미세해져서 숨을 쉬는지 쉬지 않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언덕을 달려 내려오는 사람이 그의 머리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서 있는 사람의 숨은 아직 거칩니다. 그의 콧구멍은 숨쉬기에 충분하지 않아서 입으로도 숨을 쉽니다. 그가 피로를 풀고 목욕하고 물을 마시고 젖은 수건을 머리에 올려놓고 그늘에 앉아있으면 그의 숨은 미세해진다. 그는 숨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언덕을 달려 내려온 그 사람은 관찰 수행 과제를 든 후, 숨이 매우 미세해져서 그가 숨을 쉬는지, 쉬지 않는지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빅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이유는 무엇입니까? 명상 과제를 들지 않으면 그는 거친 숨을 고요히 하는 문제를 지각하지 않고 숙고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상 과제를 들면 그는 거친 숨을 고요히 하는 문제를 지각하지 않고 숙고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하지 않을 때보다 수행할 때 숨의 활동은 더 미세해집니다. 그래서 고대 주석가는 말했습니다.
‘동요한 마음과 몸에서 숨은 거친 종류이다. 들뜨지 않은 몸에서 숨은 고요하다.’
그는 어떻게 ‘온숨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쉬리라. 온숨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쉬리라’라는 생각으로 단련합니까?
온숨의 형성은 무엇입니까? 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그런 것들이 온숨의 형성입니다. 그는 온숨의 형성을 가라앉히고 부드럽고 고요히 하게 하면서 단련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단련합니다. 앞으로 옆으로 전체로 뒤로 구부리는 몸의 행위를 고요히 하고 몸의 움직임, 진동, 떨림, 흔들림을 고요히 하면서 온숨의 형성을 편안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리라. 몸을 앞으로 옆으로 전체로 뒤로 굽히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진동하지 않고 떨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평화롭고 섬세한 신체 활동을 통해 온숨의 형성을 편안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리라.
지금까지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이용하여 삼매를 연마하는 네 가지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그 네 가지는 첫째, 긴 숨에 집중하기, 둘째, 짧은 숨에 집중하기, 셋째, 온숨에 집중하기, 넷째, 미세한 숨에 집중하기입니다. 이 경우에 수행자는 긴 숨, 온숨, 미세한 숨, 세 단계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길고 미세한 숨을 쉬는 동안, 길고 미세한 숨 전체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숨이 아직 미세하지 않으면 수행자는 숨이 미세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노력하면 집중이 향상할 때 온숨은 미세해질 것입니다. 그다음 강한 열의로 길고 미세한 온숨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수행하면 선정 증득에 성공할 것입니다.
또, 짧고 미세한 온숨을 하나로 합치는 세 단계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길고 미세한 숨을 쉬는 동안, 긴 숨, 미세한 온숨을 함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짧고 미세한 숨을 쉬는 동안, 짧고 미세한 온숨을 알아야 합니다. 충분한 열의와 희열로 이렇게 수행하면 수행자의 삼매는 향상할 것입니다. 삼매가 향상하면 숨은 점점 더 미세해집니다. 그때 ‘아, 나의 숨은 분명하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고 마침내 수행자의 삼매는 퇴보할 것입니다. 숨이 미세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입니까? 그때 니맛따가 나타나면 수행자의 마음은 니밋따에 눌러붙어 숨에 방해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숨이 거칠면 니밋따뿐만 아니라 숨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두 개의 대상을 가질 것입니다. 대상이 두 개이면 마음은 집중되지 않고 삼매는 향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숨이 점점 더 미세해질 때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숨을 길게 짧게 미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노력과 법 변별(조사) 깨달음 요소가 과도해질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깨달음 요소가 지나치면 삼매는 퇴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호흡이 자연스럽게 계속되도록 놓아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숨은 때때로 길고 때로는 짧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숨이 길든 짧든 온숨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수행자의 삼매가 더 향상하면 미세한 온숨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숨이 미세하고 길면 미세하고 긴 온숨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숨이 미세하고 짧으면 미세하고 짧은 온숨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매 좌선에서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이상 미세한 온숨에 집중할 수 있으면 수행자의 삼매는 더 향상할 것입니다. 그때 지속적으로 수행하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생각을 멈추고 말하기를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서고, 걷고, 않고, 눕는 모든 자세에서 숨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대상에도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길게 내쉰다)는 표현과 그는 (분명히 안다) 는 표현에서
"나"와 "그"는 주체가 서로 다른 존재입니까?
‘나는 길게 내쉰다’는 표현과 ‘그는 분명히 안다’는 표현에서
"나"는 각 수행자가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이고, "그"는 붓다께서 각 수행자를 가리키실 때의 표현입니다.
안녕하고 행복하시길
담마다야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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