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0415)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에 3:1~6).
절개 있는 신앙을 소유하라~~~~~흔히 남자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 여자는 지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고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에 있어서 결코 그 뜻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누구 앞에서든지 자신의 신앙을 분명히 고백하고, 유일신 하나님께만 경배를 드리는 절개 있는 신앙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이었던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얻어 바사의 최고 관직에 오르게 되자, 왕의 명령대로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어 경배를 표했지만, 모르드개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인간에게도 신적인 경배를 바칠 수 없었고, 특히 조상 대대로 원수지간이었던 아말렉 족속의 후손에게는 더욱 절할 수 없었다. 여호와 신앙으로 무장된 절개 있는 신앙의 소유자 모르드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함을 알고 있었으나 그의 유일신 여호와 경외 사상은 하만에 대한 두려움을 일순간에 불식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에게는 여타의 두려움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신하들은 모르드개를 협박하기도 하고 회유를 통해 굴복시키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모르드개는 자신을 유대인으로 밝힌다. 그는 이러한 고백 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상하였지만, 죽음보다 강한 여호와 신앙 때문에 결코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신하들이 하만에게 이를 고자질하게 되고, 하만은 그동안 참고 있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르드개의 행동으로 인해 하만은 유대 민족을 모두 멸절시키려는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계획은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폴리캅 감독은 ‘주를 한 번이라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협박에 “86년간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아니하였는데 내가 어찌 그분을 모른다 할 수 있겠느냐”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올 때만 예수를 시인하고 찬양하지만, 어려움과 위기가 닥칠 때는 베드로처럼 주를 모른다고 서슴없이 말해버리는 양면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물질과 명예와 쾌락 앞에서는 과감히(?) 주님을 버리지는 않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던져질 위기 속에서도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머리 터럭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지켜주셨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변개하는 신앙이 아니라, 절개를 지키는 신앙을 소유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은총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절개 있는 신앙을 본받는 여러분의 삶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의 이익과 쾌락 앞에 주님을 외면한 경우도 있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지 못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만 앞에 당당했던 모르드개의 절개 있는 신앙을 본받는 우리들이 되어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