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월)
* 시작 기도
주님...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롬 1:28).
그것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유기입니다.
창세전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불가항력적 선택과 유기가 있음을 믿습니다.
리브가의 뱃속에 있던 에서와 야곱이 그러했습니다(롬 9:11-13).
나야 말로 그 유기 안에 들어가야 마땅한 자인데 그 한 순간의 결정이 나를 붙드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창세전 언약 안에서 오늘도 주를 봅니다.
순간순간 흔들리는 믿음일지라도 이런 주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주의 십자가로 날 구원하셨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의인으로 삼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지는 나는 연약한 자이오니 주의 인자와 긍휼하신 은혜를 힘입어 담대하게 아버지 품으로 나아갑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5:1-23
제목 : 아이에카,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1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2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4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5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6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9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디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10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11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츅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12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13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14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
15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16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17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21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23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 나의 묵상
주님 자신이 지혜요 주의 말씀은 진리 그 자체이다.
그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진리를 보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이다.
이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의 본질의 계시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시는 현현이다.
그것은 창세전부터 아들이 아버지께 복종함으로 아버지는 그 아들의 복종에 자기의 유익을 취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사랑하셨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아들이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이제 우리도 주님께 복종함으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
그때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의 내용이 바로 영광이며 그 영광은 당신 자신을 다 내어주시는 본질의 계시이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계시하시는 그 영광 곧 하나님 나라를 맛 본 자는 세상의 그 무엇이 그를 미혹한들 거기에 넘어지겠는가?
나는 복음을 알지 못하던 자였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에 취한 자였다.
세상 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나는 그만 음녀가 달콤한 꿀을 떨어뜨리는 그 입술에 빠져 얼마나 허우적거리며 헤매던 자였는가?
잠시 주는 쾌감과 짜릿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 음녀의 입술을 찾아 전전했던 나의 지난날의 삶을 오늘 지혜의 말씀이신 주님 앞에서 고발한다.
하와가 뱀의 유혹 앞에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러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서 그것을 결국 따먹고 말았다.
그리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그것을 먹게 하였다.
뱀의 말대로 정말 그들의 눈이 밝아졌지만 결국 벌거벗은 것이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옆에 있던 무화과잎을 따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그들은 그렇게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동산 나무 사이로 도망가 숨고 말았다.
이전에는 아들이 어머니의 품속에서 어머니의 눈으로 보는 것 같이 하나님과 아들처럼 아주 친밀하게 지냈었다.
이처럼 이들도 하나님의 품속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귀로 듣고 하나님의 지혜로 생각하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자기의 눈, 즉 자의식(自意識)의 눈이 밝아져 자기가 보고 자기가 판단하는 자가 되고 만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자랐다.
그의 겉모습은 의심의 여지없이 애굽 사람이다.
그러나 유모인 어머니 요게벳의 품속 교육으로 인하여 그의 속은 뼛속까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나이 40이 되었을 때 그의 형제를 돌아볼 마음이 생겨서 거사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성공은커녕 실패를 하고 게다가 왕궁을 나와서 미디안의 목동이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출애굽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고 모세의 눈으로 보고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모세의 눈으로 보고 모세의 생각으로 판단하여 일을 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이 막으신 증거이다.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그런데 그가 미디안의 목동으로 전락하여 양을 치는 자가 되어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귀로 들으셨다.
(출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모세의 눈으로 보고 판단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였으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실 때 하나님은 바로 그 모세를 통하여 그 일을 이루신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과 그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품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담과 모세를 통하여 보았다.
하물며 하나님의 품을 떠나 기름보다 더 미끄러운 음녀의 입술을 그리워하고 음녀의 품을 사모하는 자이겠는가.
그의 결말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워서 결국 사망의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리이신 주님의 지혜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지만 나는 이 말씀보다 세상의 fun을 즐겼던 자이다.
겉모습은 신자이나 속사람은 예수 없는 자나 다름없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말하는 자였으나 그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서 멀리 있는 하나님, 나와 상관없는 신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something이 나를 더 기쁘게 하였다.
나는 이 쾌락을 즐기는 사이 내 존영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내 영혼이 절규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나를 추적하여 오시면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짖는 고통의 절규를 외면하였다.
나의 우물에 있는 물, 나의 샘에서 흐르는 생수를 귀한 줄 모르고 집밖으로 흘려보냈던 나의 지난날의 삶을 가슴을 치며 깊이 회개한다.
사랑스런 암사슴, 아름다운 암노루 같은 지혜의 여인을 족하게 여기지 않고 멀리 하는 자였다.
그런 나는 신기루 앞에서 엎드려 허겁지겁 모래알을 한 움큼씩 입속에 집어넣고 맛있다고 삼키던 자였다.
그것이 나를 죽게 만드는 우매의 여인을 그리워하고 그 품을 연모했던 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나는 죽어 마땅하며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다.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신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주님은 사건뿐 아니라 그 사건의 동기까지 꿰뚫어 보신다.
그런 주님 앞에서 나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분의 훈계를 받지 않고 심히 미련함으로 인하여 혼미함과 영적 죽음에 이른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주의 말씀 앞에서 나는 할 말이 없다.
지혜의 여인을 두고도 우매의 여인인 음녀를 기웃거리며 친구 삼았던 나를 심판 하신 주님은 옳으시다.
나는 그 심판 앞에서 잠잠히 주의 말씀과 함께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주님과 함께 성소를 짓는다.
그 성소는 주께서 거할 영원한 처소이다.
나의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며 병든 몸을 새롭게 하여 주님이 거하실 성소로 다시 세워진다.
그 일은 무덤 안에서 장사지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에게 주신 심판의 무덤은 하나님의 의를 세우신다.
나는 그곳에서 주님과 평강을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지혜의 연인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매의 여인인 음녀를 좇아 행했던 지난날의 삶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잠시 후면 모래알을 씹은 것과 같이 고통스럽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그 잠깐 주는 쾌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이기적이며 한없이 연약한 존재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이름을 부르며 추적하여 찾아가셨던 주님께서 또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를 추적하여 오셨습니다.
'종수야, 종수야,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아이에카)'
나의 영적 현 주소를 물으시며 나를 찾으시는 주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시는 선한 목자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셨는지요?
내가 무엇이관대 그토록 찾아 헤매셨는지요?
예전에는 아담을 찾으시는 그 음성은 전혀 나와 상관없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의 부르짖는 음성이 바로 나를 부르는 음성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 깨닫고 내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주님 앞에 서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자이오나 이제는 아들을 힘입어 담대히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파레시아의 능력을 덧입고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주님과 함께 내 영혼이 춤을 추며 항상 주의 기쁨으로 살겠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주 앞에, 항상 그 자리에 서 있겠나이다.
나의 힘이 되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