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없어도 / 조병화
하늘에 물 고여 있듯이
그 눈에 물 고여 있읍니다
하늘에 그리움 고여 있듯이
그 있음에 그리움 고여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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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아버지는 벽오동 몇그루 집 주변에 심으시고
가끔 부르셨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 함인데~~♬
어이타 봉황은 꿈이였나~~♬
하지만
아버지 곁에서 벽오동 식수를 돕던
어린 유소년은 그 뜻을 알 길 없었고..
반세기후
아버지와 벽오동은
운명을 같이하며 이 세상과 이별했다.
어린시절
가끔 형님이 사준 지리부도와 친구하며
세계를 이리 저리 들춰보고 꿈을 키우던 나..
그런 나 또한 이제 70대 초로의 인생길로 접어들더니
어느날 아침
치솔질에 뭔가 땡그렁 소리..그 소리에 시선 돌리니
아뿔사~~세면대 배수구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소중한 내 앞니..
아~~내 인생도 앞니도 이제는 떨어지는 한잎 오동잎이로다~~~
*
오늘은 어버이날..
이땅에 안계신 부모님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푸르른 5월..
신록의 5월에는 연록의 물결이
눈 부시고 에너지도 넘친다.
아버지와 나는 그런 빛나는 오월에 태어났다.
하지만 오월동주란 말 있듯 부자간 관계가 불편했다
사사건건 부딪힐 때가 많았는데
도발은 늘 아들인 내가 햇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가족들 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신다.
자식들중 세째인 내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그 말씀에 나는 공연히 발끈..
나와 아버지가 생각이나 가치관 행동에서 많이 다르다는 점을 언짢은듯 화난듯 말했고
가족 모임 분위기도 따라서 식었다
세월은 흘러 흘러
내 나이 불혹일 무렵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나이 26살에 입대했는데
하필 훈련 강도 높은 여산 제 2하사관학교에 차출되고..
밤낮없는 훈련에 멸치처럼 뼈만 남은 그 세월..
10주동안 면회도 안되던 시절..
당시
아버지는 차를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불편한 거리에도
새벽에 집을 출발.. 그곳 여산까지 물어물어 힘겹게 찾아 오셨다는데..
면회 불허로 그냥 터덜터덜 발길 돌렸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은 거였다.
하루종일 식사도 못하시고 늦은밤 헛발걸음 했던 그 마음 어떠하셨을까?
늦은 나이 입대.. 빡센 훈련 받고 있을 아들이 마음에 걸려 오셨을텐데...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말 전해 듣고
나는 아버지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사실 내게 사랑을 많이 주셨다
읍내 미술대회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는 후견인으로 말없이 데리고 다니셨고
입시 때도 낙방을 밥먹듯 하는 한심한 나를 늘 아버지가 따라 다니며 뒷바라지 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버지를 싫어했을까~~
그런 아버지 사랑만큼 나는 내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었던가...
내가 아버지를 싫어했던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냥 툭툭 던지는 투박한 말씀..아마도 친근감의 세련되지 않은 표현이
그게 그리도 싫었나 보다.
자녀들에겐 엄격하셨지만
그런 아버지도 벽에 걸려 있는 시계 태엽 하나 둘..카운트하며 감으실 때
그 모습은 늘 평온했고 ..당시에도 그 모습만은 내게 따뜻한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곁에 안계시는 아버지..
그래도 고향집에는 60년 가까이된 괘종시계가 오늘도 매시간을 알리며 건재하고..
그 괘종시계의 울림은 때때로 내게 아버지 음성으로 들리기도 한다.
*
밤낮없이 일하는 어머니와 달리
상대적으로 아버지는 덜 힘들게 보이고
의사결정도 독점한다는 생각에 자식들은 반감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자녀들은 모두 자신의 결정으로 학교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기타 사안도 대체로 스스로 결정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독선적인 분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들어 해방 이후 혼란기를 아프게 겪으신 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중도적 스텐스로 주변 눈치보며 고초를 많이 겪으셨나보다.
그랬던 경험이 자식들에게는 없어야한다는 생각에 이런 조언을 가끔 하셧다.
"세상은 늘 변화무쌍 돌변하기도 한다..지금의 체제가 언제 공산화할지도 모른다.
그래 체제가 바뀌더라도 생존하려면 너희들은 인문계 아닌 이공계..공대를 진학하거나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면서기를 하던지 평범하게 교사를 하라~~"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하지만 그 말씀에 순응한 자식은 없다.
돌이켜보면 나는 불효자식..
그래도 평소 약자를 끔찌기 생각하셨던 아버지처럼
나도 약자를 괴롭히는 졸장부는 아니었으니
그런면에서 아버지를 조금은 닮지 않았나 생각 하는 오늘이다.
첫댓글 어버이날이라 그런지 아주 서정적인 글을 올리셨습니다 ^^
저도 세째아들인데 겉으로 표현은 안하셨지만 아버지는 유독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해방전 서울에 홀로 유학오셔서 평생 고향을
그리워 하시다 통일이 되면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대신 술한잔
따라드리라는 유언을 하시고 눈을 감으셨지요.
오랜만에 투코리안스의 노래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1GVOKJF_oh4?si=hj1EnHoQ3tBnx3Rn
PLAY
서정적이라니요?..ㅎ
콩꽃님도 댓글에서 말씀하시길
여성회원들은 저를 우락부락한 사내로 인식한다고...
그말씀은 서정적인 글좀 올려라는 말씀인데..
사실은 저도 그산님처럼
산을 좋아하고 동식물을 좋아합니다..고양이는 안 좋아하지만..
세째라는 것도 그렇지만
언젠가도 말했듯 정서적으로는 우리가 매우 유사한 모습입니다.
심지어 선호하는 노래까지도...
어버이 날에,
아버지께 불효했던 생각만 떠오르나 봅니다.
우리들 부모님 세대는 일제 치하였고
8.15 해방되자,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사회가
이념으로 흉흉했고, 그러자 한국전쟁이 났습니다.
제 아버지도 엄청 엄하셨고,
직업을 갖는다면 여교사를 권했지만, 저는 다른 길을 갔지요.
엄하셔도, 마지막 결정은 제가 다 했습니다.
너무나 험한 세상을 살아오신 우리의 부모님들은
가을님 아버님처럼 대부분 그랬는 것 같습니다.
험한 세월에, 땅은 도깨비도 못 가져간다고
고향의 땅은 지키려 하신 것 같습니다. 근검절약은 필수이고요.
결혼하면, 시집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누누히 강조하고
친정부모 욕먹이는 일이 불효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랐어도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보니, 모든 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눈물나려 하네요. 가을님의 이야기에...
아유...
결혼하면 시집가문의 사람이라니요..
유교적 상황인식인데..하기사 우리 선배세대뿐만 아니라 우리세대도 그랬나 봅니다.
상급학교진학도 아들 우선이었고요.
사실은 저도 딸애 진학할때 본인은 남녀공학인 대학으로 가고 싶어하는데
제가 그랬던거 같아요..여자대학으로 가야 결혼도 잘 할수 있다고 말입니다..ㅎㅎㅎ
말로는 나자신을 진보적이고 리버랄한 사람이라 하는데.. 실상은 제가 고리타분한 면도 있나봅니다.
제가 어버이날 특별히 마음 무거운 것은
다름아니고..부모님 세대,선배세대가 이뤄놓은 토양에서
제가 편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늘 송구하고 감사하고
그런데 성장과정에서 불효하고..그후에도 노력은 나름 많이 했지만
아쉬웠던 일들이 오늘따라 생생하게 기억되어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콩꽃님의 이해와 배려로
오늘날까지 이곳 카페에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저에겐 어머니 세 분이 계셨었어요
친어머니. 양어머니 두분
그분들 모두 재작년에, 작년에 소천 하시어 돌아보며 생각하니
저는 참으로 불효한 자식이었어요
더 잘해 드릴 수도 있었는데
모두 가신 뒤에
게으른 성격을 탓해본들 무엇하리오
가을이오면님의 글을 보며 다시 반성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시골바다님은 젠틀한 분이라 전해 듣는데
아마도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범절에 타의 모범이되는 분이라 그런 평판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지나고 나면..자식이라면 .. 아무리 잘했다하더라도 아쉬움은 남겠지요.
시골바다님은
아름문학심사에서 알게 되었는데
한동안 안보이셔서 궁금했습니다.
오늘 뵙게되니 반갑고..
앞으로 수필수상방에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벽오동과 괘종시계 속에 남은 아버지의 마음이 조용히 전해집니다.
살아계실 때는 몰랐던 사랑이 세월 뒤에야 들려오는 대목이 오래 먹먹하게 남습니다.
따사로운 댓글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화창한 봄날이군요..즐거운 하루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그 어떤자식도
부모님의 속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겁니다.
자식을 키워보니 뉘우치기나 하는거고요.
잘읽고 갑니다.
석촌님 말씀처럼
자식의 성장을 보면서
부모님에 대한 불효를
뒤늦게 마음 아파하는 저 자신이기에
자신을 매질하게 됩니다.
우리가 학교다닐때 교과서에 실린 조병화시인의 의자라는 시가 있었지요... 나이를 먹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신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라는 의미가 담긴 의자. 우리가 어느덧 그런 노인들이 되었습니다.
효도를 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말이 절실하게 다가 옵니다.
내 살기 바빠 어머니께 효도 하지 못한 것이 늘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