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백만장자 다섯 명이, 많게는 3억 4천만윈을 내고, 타이타닉호 잔해를 보러 갔는데 그만 조난을 당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비하인드 스토리
타이타닉 호 부선장은 오랜 침묵 끝에, 사고 당시의 진상을 공개했습니다.
저는 이등 항해사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입니다.
저는 양심을 걸고 직접 본 사실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CQD (Come Quickly, Danger)
타이타닉호가 대서양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빙산과 충돌해 위급한 상황이니 구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난 신호가 카르파티아호에 포착되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뱃머리를 돌려 사고현장에 도착했는데, 온통 얼음 바다였습니다.
이 사고는 1912년 4월 14일에 일어났습니다.
1,514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이분을 기억하세요.
선장이 각자 알아서 탈출하라고 명령했으나, 전산실에 남아 마지막까지 ‘SOS’를 치며 떠나지 않았던, VIP 50인 구조를 책임진 이등 항해사는, 임무를 완수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상황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했습니다.
선장은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하선시키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가족과 이별을 반대하며, 같이 남아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구명보트에 오르는 여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남성이 “어서 보트에 오르세요! 하고 말하자 부인은 차분한 어조로, “당신과 함께라면 모를까 혼자 타지는 않겠어요.”
이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타아타닉호와 같은 선박 10척을 만들 수 있는 부자인 에스터 회장은,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보트를 향해 “당신을 하늘처럼 사랑합니다!”
마지막 승객을 대피시키면서, 여기 빈자리가 하나 있어요! 어서 오르세요. 하자 에스터 회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지!
그리고 마지막 자리를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의 시신이 떠올랐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거절한 것입니다.
은행가인 구겐하임 씨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순간,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고 “죽더라도 신사처럼 죽겠다!”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배 안에는 나의 이기심 때문에 죽은 여성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입니다!”
미국 메이시즈(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 회장은, 세계에서 2번째 부자입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가겠어요!” 하고 부인을 설득했지만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고령인 슈트라우스 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면서 승선을 재촉하자.
“늙은이라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소.”
그는 배에 남아 부인을 껴안고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 양은,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신랑은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때려 신부를 기절시켰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구명보트 안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신랑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에 있는 생존자 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이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했습니다.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우자, 만석이 되어 내가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때 한 아주머니가 저를 끌어당기더니, 어서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필요해요!
나를 대신에서 내린 천사 같은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림비를 세웠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하자,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서로를 붙잡고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언론인 장교 엔지니어 등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너도 남자냐?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국영 철도회사 한 임원은 여장(女裝)을 하고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생명은 구했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져. 귀국 후에 바로 해고를 당했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너도 남자냐?”며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수치심으로 가득 찬 삶을 자살로 마감했습니다.
Youtube, 사랑과 영혼
영국의 백만장자 다섯 명이, 많게는 3억 4천만윈을 내고, 타이타닉호 잔해를 보러 갔는데 그만 조난을 당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비하인드 스토리
타이타닉 호 부선장은 오랜 침묵 끝에, 사고 당시의 진상을 공개했습니다.
저는 이등 항해사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입니다.
저는 양심을 걸고 직접 본 사실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CQD (Come Quickly, Danger)
타이타닉호가 대서양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빙산과 충돌해 위급한 상황이니 구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난 신호가 카르파티아호에 포착되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뱃머리를 돌려 사고현장에 도착했는데, 온통 얼음 바다였습니다.
이 사고는 1912년 4월 14일에 일어났습니다.
1,514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이분을 기억하세요.
선장이 각자 알아서 탈출하라고 명령했으나, 전산실에 남아 마지막까지 ‘SOS’를 치며 떠나지 않았던, VIP 50인 구조를 책임진 이등 항해사는, 임무를 완수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상황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했습니다.
선장은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하선시키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가족과 이별을 반대하며, 같이 남아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구명보트에 오르는 여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남성이 “어서 보트에 오르세요! 하고 말하자 부인은 차분한 어조로, “당신과 함께라면 모를까 혼자 타지는 않겠어요.”
이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타아타닉호와 같은 선박 10척을 만들 수 있는 부자인 에스터 회장은,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보트를 향해 “당신을 하늘처럼 사랑합니다!”
마지막 승객을 대피시키면서, 여기 빈자리가 하나 있어요! 어서 오르세요. 하자 에스터 회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지!
그리고 마지막 자리를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의 시신이 떠올랐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거절한 것입니다.
은행가인 구겐하임 씨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순간,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고 “죽더라도 신사처럼 죽겠다!”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배 안에는 나의 이기심 때문에 죽은 여성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입니다!”
미국 메이시즈(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 회장은, 세계에서 2번째 부자입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가겠어요!” 하고 부인을 설득했지만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고령인 슈트라우스 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면서 승선을 재촉하자.
“늙은이라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소.”
그는 배에 남아 부인을 껴안고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 양은,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신랑은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때려 신부를 기절시켰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구명보트 안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신랑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에 있는 생존자 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이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했습니다.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우자, 만석이 되어 내가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때 한 아주머니가 저를 끌어당기더니, 어서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필요해요!
나를 대신에서 내린 천사 같은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림비를 세웠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하자,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서로를 붙잡고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언론인 장교 엔지니어 등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너도 남자냐?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국영 철도회사 한 임원은 여장(女裝)을 하고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생명은 구했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져. 귀국 후에 바로 해고를 당했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너도 남자냐?”며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수치심으로 가득 찬 삶을 자살로 마감했습니다.
Youtube, 사랑과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