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히브 10,32-39; 마르 4,26-34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2025.1.31.
오늘 우리 교회가 기리는 인물은 요한 보스코 사제입니다. 그는 19세기 가난했던 이탈리아 사회에서 가정에서는 물론 학교에서 받아야 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작은 범죄들을 저질러 감옥에 드나드는 청소년들을 보고 시대적 소명을 느껴 투신한 인물입니다.
요한 보스코 자신도 어려서 아버지를 여윈 탓에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독실한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는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낙인찍은 청소년들을 그만큼 더 따뜻하게 돌보아야 한다고 여겼고 또 그리하면 그 청소년들은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 보스코 오라토리오’라는 성가대를 만들어서는 청소년들과 함께 어울리며 노래도 하고 운동도 하며 기술 교육도 시키고 학교에도 보내는 청소년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그가 7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오라토리오 출신 사제가 천 명을 넘어설 정도로 그의 청소년 교육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존경하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의 이름을 따서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하게 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의 이런 삶과 활동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자면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를 떠올리게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는 1968년과 1979년에 총회를 열어 공의회의 정신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논의했는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함을 결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나 요한 보스코가 가난한 이들과 청소년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바탕은 주어진 현실의 사회적 맥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을 눈 여겨 보았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현장성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은 모래알처럼 제각기 흩어져서 살던 사람들을 찰흙처럼 단단히 뭉친 공동체로 변화시켜 놓습니다. 이른바 공동체성입니다.
요한 보스코처럼 예수님의 정신이 제대로 머리에 박힌 가톨릭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살거나 일하는 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노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신앙의 기운이 지닌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모래 알갱이처럼 흩어져서 서로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를 신앙인이라면 숨막혀서 답답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공기를 자유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만 신앙인은 마음껏 숨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쓴 표현을 빌자면, 이렇듯 자신이 살고 일하는 현장을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의로운 길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 비추어 보자면, 비록 그 일의 시작이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것없을 지라도 언젠가는 온갖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크게 자라나는 겨자나무처럼 성대한 성과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우며 이삭이 나온 후에 낟알이 영그는 자연의 이치처럼, 하느님께서 주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도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의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고,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를 고발하는 TV 드라마가 2018년 11월부터 그 다음 해 2월까지 jtbc 채널에서 방영된 ‘스카이 캐슬’이었는데, 부유층의 비뚤어진 청소년 교육을 코믹하게 풍자하려던 원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시중에는 고액 과외를 따라 하려는 열풍이 불지 않나 사치스런 풍조를 흉내 내려는 유행이 뒤따랐습니다. 비지상파 방송에서 역대급 시청율을 기록했던 시중의 반응도 그러한 열풍과 유행의 방영이었지요. 방송 현실의 코미디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요한 보스코 사제의 모범이 우리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나는 청소년을 위하여 공부하고 일하며 살고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렇게 일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 받기 충분합니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 받고 있음을 깨닫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그를 사부로 모시는 살레시오 수도회원들의 생활 지표는 “희망에 닻을 내리고, 젊은이들과 함께 걷는 순례자”입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의 남수단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꿈을 품게 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했던 이태석 신부도 희망에 닻을 내리고 젊은이들과 함께 걷는 살레시안 순례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