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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중요시하는 겔랑 CEO 베로니크 쿠르투아
BY 기자명송보라 2023.01.09 13:43
사마리텐 빌딩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에서 포즈를 취한 겔랑 CEO 베로니크 쿠르투아. / Portrait by Elise Toïdé
겔랑의 CEO 베로니크 쿠르투아는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문자 그대로다. 사마리텐 빌딩 7층에 위치한 그녀의 새 사무실에서는 파리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라데팡스 방향의 리볼리가를 따라 서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과거 또한 가까이에 있다. 쿠르투아의 사무실에서 아주 가까운 곳, 르 모리스 호텔 바로 옆에는 1828년에 오픈한 최초의 겔랑 부티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무실 옆 아르누보풍의 빌딩 꼭대기층에는 겔랑의 새 연구실이 위치해 있다. “바로 이곳이 새로운 겔랑입니다.” 쿠르투아의 말투에서 활기가 전해진다. “난 여기 앉아서 미래를 구상하죠.”
그녀는 겔랑의 CEO로서 앞으로 실행할 전략을 정교하게 구상 중이다. 맡은 업무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내적 호기심과 즐거움이야말로 브랜드를 이끄는 진정한 힘이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이렇게 다짐합니다. ‘와, 난 정말 운이 좋아. 오늘 하루도 잘 보내야지.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말하죠. ‘그날 일은 그날 끝나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난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거든요.”
쿠르투아는 스무 살 때 ‘퍼퓸 그레(ParfumsGrès)’의 지역 담당자로 일을 시작해 시세이도의 향수 부문 보테 프레스티지 인터내셔널(Beauté Prestige International)의 ‘샹탈 루스(Chantal Roos)’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2000년도에 LVMH에 합류해 겔랑에서 커리어를 쌓았고 인터내셔널 마케팅 디렉터로 승진한 후 크리스찬 디올 쿠튀르로 옮겼다. 2012년부터 퍼퓸 크리스찬 디올에서 제너럴 브랜드 매니저로 재직했으며 2019년 11월, 겔랑의 CEO로 임명되었다.
“프랑스 여자로서 항상 겔랑을 꿈꿔왔죠.” 그녀가 말했다. “유서 깊은 브랜드입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최초의 역사를 써왔죠. 모든 것을 발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겔랑은 LVMH 모엣 헤네시 루이 비통 산하 브랜드로, 테라코타 메이크업과 아베이 로얄 스킨케어 같은 최상위 제품군을 보유하며 프랑스에서 뷰티 브랜드 매출 부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 있는 뷰티 브랜드에 신선함을 주입하고 있는 쿠르투아와 함께 그녀의 커리어와 철학, 브랜드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WWD KOREA(이하 WWD) 어떻게 뷰티 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나?
VÉRONIQUE COURTOIS(이하 VÉRONIQUE) 나는 프랑스 브레스트(Brest) 출신이다. 매일 아침 등굣길에 아름다운 향수 매장을 지나곤 했는데 그 당시 흔했던, 향수로 가득한 부티크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늘 아름다운 향내가 났고 그날 하루가 어떻든 그 매장 덕에 즐겁고 낙천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향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열네다섯 살 무렵 향수업계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는 꿈같은 희망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었다.
WWD 커리어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VÉRONIQUE 샹탈 루스다. 당시 난 스물두살이었고 그녀 덕에 여자도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1990년대 뷰티업계에 여자 임원은 샹탈 루스와 베라 스트루비(Vera Strubi) 단 두 명뿐이었다. 루스에게서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녀는 향수에 대한 지식과 탁월함, 회복력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고 함께 8~10년을 보낸 후 난 매우 강해졌다. 뭐든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 거다.
내게 영감을 준 또 다른 인물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다. 그는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비전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과 그 비전을 실제 산업에 적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는 토요일마다 매장을 방문해 현장의 분위기를 체험한다. 때로는 더 잘할 수 있게 우리를 압박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WWD 가장 큰 배움을 얻은 게 있다면?
VÉRONIQUE 향수 산업에 거의 20년을 보낸 후 2010년에 쿠튀르로 옮겼을 때, 갑자기 다른 세상에 놓인 것 같았다. 패션과 뷰티는 완전히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때로는 낯선 것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경험이 궁극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가는 데 도움을 줬다. 2000년대 후반에 럭셔리와 리테일이 회복될 것임을 직감했고, 쿠튀르 분야에서 고객들을 관리하고 브랜드를 키우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 기회였다. 나는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편이며 안주하지 않고 영역을 넓히는 것을 좋아한다. 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 운을 시험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교훈이다. 여자들에게는 특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WWD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축은 무엇이고 변곡점은 언제였나?
VÉRONIQUE 디지털 담당으로 퍼퓸 크리스찬 디올에 합류했고 그 전에 디올 쿠튀르에서도 디지털 부문을 책임지고 있었다. 당시 어떤 패션 브랜드도 디지털을 활용하지 않았고 웹 2.0 초기였지만,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기꺼이 디지털 분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가 놀라운 세상을 이룩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새로운 도구는 산업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누구도 미래를 거부할 수 없기에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서 나의 중심축으로 디지털의 발견을 꼽는다. 이제 웹 3.0 시대가 열렸고 또 다른 진화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겔랑은 언제나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다. 우리는 뷰티업계에서 사회적 책임 경영 방침을 세운 최초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회사의 엠블럼인 꿀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중요한 생명체이기에 벌 보호 프로젝트를 하우스 활동의 일환으로 정했다. ‘위상 아일랜드 브르타뉴 블랙비 음악원(The Ouessant Island Brittany Black Bee Conservatory)’이 도움을 필요로 해서 그곳을 후원하기로 선택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행했고, 겔랑은 오늘날 지속 가능성을 향한 여정에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지속 가능성은 최소화한 포장재와 깨끗한 포뮬러에 대한 것이다. 그 안에서더 크고 더 멀리 가는 것이 내가 겔랑에 합류하면서 주장한 바다.
겔랑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비올레트 세라가 선보인 색조 제품.
WWD 오늘날 뷰티 산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VÉRONIQUE 자신을 재발견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운이 좋다. 뷰티 산업은 항상 매우 혁신적인 산업이었다. 그리고 그 산업을 더욱 청정하게 만들기 위해 포뮬러와 포장재를 재창조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함께 미래와 인류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나의 역할 또한 매출을 올리기 위한 운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일도 중요한 업무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 구축한 통찰력을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 뷰티 산업은 놀라운 놀이터다. 천연 소재를 활용해 자연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메이크업 제품을 만드는 도전은 실로 대단하다. 리테일과 온라인에서 360도 마케팅으로 제품을 론칭할 수 있는 방법의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다. 도전에 직면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호기심을 갖고 불가능해 보이는 경계에 도전하게 만든다. 나는 뷰티 산업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보다 혁신적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WWD 헤리티지 브랜드인 겔랑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나?
VÉRONIQUE 겔랑은 수많은 최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약 200년 전에 조향사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Pierre François Pascal Guerlain)이 향수와 메이크업, 스킨케어를 동시에 출시한 전 세계 뷰티업계 최초의 회사다. 2대손인 에메 겔랑(Aimé Guerlain)은 1889년 최초의 모던 향수인 ‘지키(Jicky)’를 선보였으며 1870년에는 최초의 립스틱을 발명해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뜻의 ‘느 무블리에 파(Ne m’oubliez pas)’라고 이름 붙였다.
겔랑이 파리에서 탄생했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오늘날까지 하우스에 상징적인 의미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겔랑 아카이브를 방문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보석들을 세상에 보여줘야 해. 이 브랜드에 약간의 모던함을 더하는 거야.’ 새로운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비올레트 세라(Violette Serrat)가 합류하면서 겔랑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 나는 그녀가 가장 파리지엔다운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파리지엔 시크와 모던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며 그게 바로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겔랑의 이미지다.
우리에게는 저명한 조향사 티에리 바세(Thierry Wasser)도 있지만, ‘라 프티 로브누아(La Petite Robe Noire)’부터 수년째 그와 함께 일해온 조향사 델핀 젤크(Delphine Jelk)를 언급하고 싶다. 여자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은 내게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겔랑에 시도하고 있는 변화는 첫째, 이 브랜드를 동시대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둘째, 세 개의 축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과 장인 정신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고객과 소통할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의 유산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강점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다. 겔랑은 시대의 흐름에 맞고 동시대적인 브랜드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열린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WWD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VÉRONIQUE 샹탈 루스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랬다. 아르노 회장도 마찬가지다. 나의 리더십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신뢰와 탁월함, 호기심, 진정성을 더해 보다 통합적인 스타일의 리더십을 추구한다.
WWD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VÉRONIQUE 매주 토요일 아침, 지구상 어디라도 겔랑 매장을 방문한다. 그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다. 제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온다. 호기심이란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주위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내게 에너지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내 경험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들은 나의 엔진이나 다름없다. 여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게 힘을 주는 나의 가족이다. 나는 자매애로 이어지는 걸 좋아하는데 겔랑에서 일하는 사람의 80퍼센트가 여자고, 그중 66퍼센트가 리더 포지션에 있으며 현재 나와 함께하는 임원의 60퍼센트가 여자다.
WWD 당신을 롤모델로 삼는 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VÉRONIQUE 모든 기회를 잡아라. 운을 시험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나아지기 위해 움직여라. 너를 발전시키는 사람과 함께하라. 호기심을 멈추지 말고 자신을 발전시켜라. 자매애가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