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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런 태도는 그의 아버지가 아침마다
끊임없이 그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당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얼마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또 들었는지
그 말씀대로 하되 거역할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이 말씀을 들었어도,
이 아들과 그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모는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누구도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성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은혜를 누리게 하시려고
입이 있어도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때리는 자들에게 묵묵히 등을 맡기셨으며,
수염을 뽑는 자에게 얼굴을 맡겼고, 얼굴에다가
침을 뱉을 때도,
얼굴을 가리지도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께 아침마다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마귀의 종노릇하는 데서 구원할 길이 이 길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시키는대로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당하다가 결국 그 영혼이 떠나는 것을 보셨습니다. 자신이 하라는대로 하셨음에도 하늘에서 얼마나 몸서리를 쳤던지 예수님께서
운명하는 순간,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리고 태양이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셨습니다.
독생자가 죽는 것만 보시지 않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와 저주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올해 고난주간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유난히 주님의
고통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참고 또 참으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제 안에 '참고 또 참으라'
하는 생각이 주님의 마음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정말 참기 어려웠던 자리가 있었고 도무지 참을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참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눈물만 날 뿐입니다.
저는 참았었다 생각했지만 깨닫고 보니 참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는
것이 힘들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참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하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습니다.
저를
위하여도 그렇게 참고 또 참으신 주님이셨는데 말입니다.
제가 가증한 말과 행동으로 주님을 근심하게 해
드리고,
심지어 죄를 마음에 품어 주님께서 모욕을 당하게
하였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하기만 하여도 꼬꾸라질 지경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고통을 깊이
느끼면서, 제 마음에 소원이 하나 일어납니다.
참고 또 참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기만 합니다.
물론 그것이 온전히 주님을 바라볼 때만 가능한
일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길만이 제가 갈 길이고 진정
후회없는 길임을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싶을 뿐입니다.
제 생각과 의지, 계획을 매 순간 꺽고 24
시간 주님만 바라보며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과 생각이 되기
원합니다.
이제 압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참고 또 참는
순종입니다.
항상
조급함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참고 또 참는
것입니다.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 충동 감정 소원에 대하여 참고 또 참는 것입니다.
올해 고난주간에는 오래참음의 축복에 대하여 눈이
뜨이는 것 같습니다.
인내가 얼마나 큰 복인지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