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1일(수)■
(누가복음 23장)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묵상/눅 23:44-56)
◆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님께서는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다. 이것은 개기일식이나 구름이 가려져서 생긴 어둠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은 길어야 3분 정도라고 한다. 어두움이 3시간 정도 계속되었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어두움인지 지역적 어두움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현상 하나만으로도 주님의 죽음이 절대로 일반인의 죽음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땅에 임한 어두움만큼 초자연적인 사건이 있다.
그것은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서 둘로 나뉜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사이를 돌이나 나무 벽으로 막지 않고, 휘장으로 막아놓았다. 이 휘장은 커튼처럼 얇은 것이 아니라, 양탄자처럼 아주 두꺼운 것이며 9미터 너비의 한 폭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무려 네 개의 기둥에 매달아야 할 정도로 무거웠다. 이것은 말이 양쪽에서 잡아당겨도 절대로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긴 것이라고 한다.
지성소(Most holy)는 말 그대로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서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들어간다(레 16:17). 휘장 오른쪽 끝(북쪽)으로 출입했는데, 아마도 휘장을 그대로 놔둔 상태로 옆을 조금 젖히고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히 9:7).
그런데 주님께서 운명하실 때, 이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두 가지를 내포한다.
하나는, 우리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 죄를 속하시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셨음을 의미한다(히 6:20).
본래 땅에 있는 성소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다(히 8:5). 모형에는 모형에 걸맞는 모형적인 제물로 정결케 했지만, 실체에는 실제적인 제물로 정결케 해야 한다. 하늘의 성소는 모형적인 제물이 쓸데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의 피라야 의미가 있다.
어린이 소꿉장난에 동원되는 음식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모방품일 뿐 배고픈 자를 진짜로 배부르게 할 수는 없다. 구약의 제사도 그렇다. 영원한 속죄가 어렵다.
그런데 휘장이 찢어진 것은 이제 모형의 시대는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진정한 속죄를 이루셨으며, 오리지널 대제사장이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구약의 제사와 제사장를 오리지널로 착각하여 그것을 모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예배당을 성전으로, 목사를 제사장으로, 헌금을 제사로 간주함으로써 기독교를 유대교의 조잡한 모조품으로 전락시켰다.
우리는 그림자를 모방하는 자가 아니라, 참된 실체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다.
휘장이 찢어진 것의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제사장이 되어서(계 1:4)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이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히 10:19).
그러므로 우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아멘.
◆ 예수께서 운명하시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오로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달려오신 고된 길을 이제 마치셨다.
마태, 마가는 마지막 말의 내용은 기록하지 않고 다만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음만을 말했는데, 누가는 큰 소리의 내용을 기록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
온 인류의 무거운 죄의 짐을 부둥켜 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시고 운명하셨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시고 운명하셨다고 기록했지만, 사실은 이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더 있었다. 그것은 아주 세미하여서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십자가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요한은 이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 19:30)였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예언,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한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시고 다 이루셨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을 신기해하지만, 나는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하신 것을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이루신 것이 더 신기하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아리마대 요셉
모든 제자들이 움츠리고 있을 때 용감하게 나선 사람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 의원으로서 권력자들의 눈치를 봐야 할 신분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예수님의 추종자임을 드러냈다. 앞으로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요셉은 모든 권력자와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을 때도 동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다수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를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귀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요즘은 이런 사람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나 의지가 박약하고, 심약한 사람도 예수님을 깊이 믿게 되면 이렇게 귀하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서 세마포로 싸고 자신이 파두었던 동굴 무덤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여기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유대인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도 예수님께 바르려고 향품을 가져왔다(요 19:39). 종종 위기의 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나타나서 목숨 걸고 행동함을 본다.
◆ 운명하신 요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은 무슨 요일일까?
이 주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지만, 의외로 논란이 되고 있다.
54절에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안식일 전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본래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마다 쉬는 정기 안식일이 있고, 절기마다 쉬는 특별 안식일이 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무교절 첫날은 특별 안식일이다(레 23:7). 이스라엘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으로 절기를 정하기 때문에 매년 유월절 날짜가 다르고, 거기에 따라 특별 안식일의 요일이 바뀐다. 그런데 컴퓨터 달력 계산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AD 33년에는 유월절 안식일과 정기 안식일이 겹쳤다.
따라서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나서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매우 뛰어나게 객관적인 관찰을 했던 누가는 예수님을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하지 않고 제 3일에 부활하셨다고 기록했다(눅 24:7). 마태도 주님께서 제 삼 일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기록했다(마 17:23).
나는 성경의 모든 조각들이 하나씩 맞아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놀라고 감탄한다. 이렇게 놀라운 책을 어떻게 인류가 소장할 수 있었을까? 인간들이 가진 최고의 보물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의 모든 것이 결코 인간이 지어낼 수 없는 역사적 사실(fact)이고, 하나 하나가 놀라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면,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공산주의 시절의 소련의 우주 비행사는 우주에 나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 나와보니 하나님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었던 미국의 우주 비행사는 우주에 나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 나와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
똑같은 우주 속에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을 믿습니다.
미혹에 빠지지 않고, 참된 진리만을 믿게 해주십시오.
더욱더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