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2
최하림
전남 신안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등 7권.
나 물속처럼 깊이 흘러 어두운 산 밑에 이르면
마을의 밤들 어느새 다가와 등불을 켠다
그러면 나 옛날의 집으로 가 잡초를 뽑고
마당을 손질하고 어지러이 널린 농구들을
정리한 다음 등피를 닦아 마루에 건다
날파리들이 날아들고 먼 나무들이 서성거리고
기억의 풍경이 딱따구리처럼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나는 공포에 떨면서 밤을 맞는다
밤이 과거와 현재로 부유스럽게 흘러간다
뒤꼍의 우물도 물이 차오르는 소리
밤내 들린다 나는 눈 꼭 감고
다음날 걸어갈 길들을 생각한다
아늑하고 평안한 집
조성숙
경기 안성 출생.
이 시를 감상할 기회를 만났을 때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심, 즉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말로 표현해야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에서 부대끼며 힘든 시간들 속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곳. 집을 생각하며 그 집으로 우리는 걸어간다. 치유하며 성찰할 기회로 삼으며 또한 아늑함 속에서 평안해진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 하니 잠시 어릴 적 일들이 생각난다. 초등 시절 방학 때 나는 버스도 두세 번 갈아타며 장거리 친척집 방문을 혼자 잘 다녔다. 친척집에서 방학을 즐기다 개학이 다가오기 전 집으로 오는데 작은 산 아래 언덕길에서 우리 마을이 잘 보였다.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피어 올라가며 조용한 우리 집도 한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반갑고 평안해지는지 그때의 그 모습과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나에게 집으로 가는 길은 가슴속 깊이 풍경으로 그려져 있다.
<최하림 전집에서 풍경이 흘러가는 시편들>, 김선희 시인의 글을 올리면서 마무리 하겠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쳐 벌써 저 고요의 세계 속으로 돌아갔구나. 기억 속에 저장된 하나의 풍경이 끌어오는 좋은 시는 평온과 위안의 울림을 준다. 우리 모두가 종내에는 돌아가야 할 곳. 거친 세파에 부대끼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 더는 헤매고 다닐 기력을 상실 했을 때 생명의 근원인 고향 집은 언제나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집이 지닌 따뜻한 위안과 상처의 치유는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유년의 기억 속에 하나하나 떠오르는 고향집의 풍경들 그것은 사라진 옛날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나를 기다리는 영혼의 그늘이다. 거기에 우리가 돌아가 쉬어야 할 터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