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막걸리 예찬 -
권다품(영철)
나도 술을 참 많이 마셨던 때가 있었다.
쓸데없는 회상이기는 하다마는, 가만히 돌이켜 보면, 거의 매일 마시다시피 했고, 주말에는 난다긴다 하는 입시학원 선생들끼리 모여 형 동생 하면서 날이 밝을 때까지 들이붓다시피 마시는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한 잔 하고 가자며 포장마치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양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옮기고,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고, 또 입가심만 하고가재놓고는 또 맥주를 몇 박스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이 술 저 술 섞어서 마시다보니, 마지막에는 대부분이 성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바르게 걷는 사람이 없고, 저쪽 구석에서는 오바이트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라앉지 않은 흥을 주체못하고 나와서도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전봇대마다 몇 명씩 모여서 소변 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짓궂은 사람은 오줌누고 있는 다른 사람 뒤에다 오줌을 사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나는 양주나 맥주는 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양주는 몇 잔만 마셔도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프고, 맥주는 깰 때 머리 아픈 그 뒤끝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싫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소주만 마셨다.
돌이켜보면 술을 참 재밌게 마셨던 것 같다.
술을 마실 때는 기분좋게 취한 모습은 술자리 분위기를 위해서도 좋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주사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전의 일들을 다시 꺼내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잘못도 한두 가지가 아니면서 단지 나이 한두 살 많다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행동을 똑바로 하라는가 하면, 다음부터는 이 모임에 나오지 말라며, 지금 당장 꺼지라며 욕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말대꾸라도 하면 건방지다고 술상을 뒤집어 엎는 사람도 있다.
나는 기분좋은 술자리 분위기를 완전히 깨지만 않는다면 참으려고 애를 쓰고, 다툼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술기운을 빌려 내 자존심을 건드린다거나, 선배들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할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터질 때도 있다.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과는 술을 마시기가 꺼려진다.
다른 사람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나는 술을 마실 수록 더 조심해야겠다' 다짐도 해보기도 하고....
남을 통해서 나를 닦아간다는 것이겠다.
술을 끊은 지가 오래 되었다.
한 27,8년이 되었다.
건강이 안 좋아서 끊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기분좋게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데, 전혀 의도치 않은 사고가 생겼다.
하필 내가 들어갈 때 현관 유리가 큰 나사에 걸려 와장창 깨지고, 놀란 아내가 내가 ㅅ ㄹ이 취해서 그런 줄 알고 나를 붙들려다가 깨진 유리에 미끄러져서 팔이 찢어졌다.
엄마랑 TV를 보면서 웃고 있던 어린 자식들이 보기에는 딱 아빠가 술이 취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였다.
그래서 소주 7병씩 마시던 술을 끊어 버렸다.
겨우 산행을 갈 때는 막걸리 한 병씩은 넣어가서 깍 석 잔을 마시고 버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꼭 마셔야 할 자리가 있다면, 막걸리를 두세 잔 정도 마시기도 하고....
주위에서 아무리 권해도 막걸리 석잔이상은 마시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마셔야 하는 자리가 아니면 그 석 잔도 마시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오늘 날까지 마시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방송을 보다가, 식품관련 교수들과 몇 십 년동안 술을 연구한 전문가들이 나오는 방송을 봤다.
"우리 나라 막걸리가 세계 어디를 내놔도 따라올 수 있는 술이 없을 정도로 좋은 술입니다. 또, 다른 술을 마시면 간을 상하게 하는데, 막걸리는 놀랍게도 간을 해치지 않는 술입니다. 이 사실은 세계 여러 학자들도 막걸리를 연구하고 실험을 해보고는 깜짝 놀란 사실입니다."
그 이후 여러 방송들에서도 막걸리 제조과정에 대한 방송을 많이 하고, 발효과정과 막걸리가 우리 몸에 왜 좋은 지에 대한 여러 방송들을 보고, '우리 나라 막걸리가 이렇게 좋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에서도 전에보다는 막걸리에 대한 홍보가 많이 되고, 방송을 통해서도 막걸리 집들이 많이 생겼다는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외국 사람들도 막걸리를 먹어보고는 "술같지 않은데 은근히 취하고, 맛도 있다고 말하는 여러 화면들을 봤다.
그런대, 정작 우리 나라 사람들이 우리 막걸리에 대한 효능과 우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초 훈민정을 창제에도 참여하고, 정승을 지낸 '정인지'는 "막걸리는 '노인의 젖줄'이라 할 만큼 건강에 좋다."라며 막걸리를 즐겼다고 한다.
당신 대문호 서거정과 명신 손순효 등 많은 학자들도 막걸리를 즐겨 마셨으며, 만년에는 막걸리로 밥을 대신했는데도 병없이 장수했을 만큼, 막걸리는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노인의 젖줄"이라 함은 곧, '영양 보급원'일 뿐아니라, '무병장수의 비밀을 암시'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또, 조선 중엽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씨 성의 어느 판서도 막걸리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글이 있다.
어느 날 그의 아들들이 "아버님은 좋은 약으로 담근 술이나 소주 등 좋은 술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그렇게 막걸리만 즐겨 드십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이판서는 아들들에게 소의 쓸개 세 개를 구해 오라고 시켰다.
그 한 개에는 소주를, 다른 한 개에는 약술을, 나머지 한 개에는 막걸리 채워서 처마 밑에 매달아 두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이 쓸개 주머니를 내려서 확인해 보니, 소주를 담은 주머니는 구멍이 나있었고, 약술을 담은 주머니는 얇아져 있었고, 막걸리 담은 주머니는 오히려 이전보다 두꺼워져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막걸리의 다섯 가지 좋은 점을 한 번 보자.
"취하되 인사불성으로 취하지 않으니 하나의 좋은 점이요,
새참에 마시면 요기되는 것이 두 번째 좋은 점이요,
힘 빠졌을 기운 돋우고는 것이 세 번째 좋은 점이요,
안 되던일도, 마시고 넌지시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네 번째 좋은 점이요,
더불어 마시면, 서로 맺혔던 응어리가 풀란다고 하여, 옛날 관가에서는, 큰 잔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서 돌려 마심으로써, 크고 작은 감정을 풀 수 있었던 것이 다섯 번째 좋은 점일 것이다."
그것이 '향음'이라고 적혀 전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다가 다른 술처럼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좋은 점을 하나 더 넣고 싶다.
또, 나는 막걸릿 잔을 앞에다 놓고 마시면, 왜 그런지 은근한 운치가 느껴져서 좋다.
어이, 비 촉촉하게 오는 날, 치지지 소리내며 붙여낸 빈대떡이나 호박지짐 안주해서 친구들끼리 앉아서 몇 잔 쭉~욱 마시기 따~악 좋은 술!
우리 막걸리 아이겠나?
2024년 10월 11일 낮 11시 5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