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동박삭 편: 제3회 뛰어난 지혜로 내일을 예측하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동방삭)
제3회 뛰어난 지혜로 내일을 예측하다
한무제는 사기를 일삼는 방사(方士)들의 말에 속아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을 미신하며 그런 영검한 신약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뿌렸다. 그 모든 것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조소를 금치 못하던 동방삭은 언젠가는 방사들을 망신시키고 황제를 깨닫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한 방사가 선주(仙酒)를 진상하며 이 술을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무제가 아주 기뻐하는데 동방삭이 나섰다.
“기미 전이라 독주인지 선주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동방삭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한무제가 동방삭에게 물었다.
“동방 대부가 기미를 하시겠소?”
“소신이 폐하를 위해 기미를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동방삭은 병 뚜껑을 열더니 병 안의 선주를 벌컥벌컥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한무제가 화를 냈다.
“원래 그대가 장생불로하고 싶은거구려! 좋소. 짐보다 더 오래 살려고 하는데 더 빨리 죽게 하지. 여봐라. 동방삭의 사지를 찢어라!”
한무제의 말에 동방삭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한무제는 더 화가 났다.
“곧 죽게 되었는데 대부는 뭐가 그렇게 기쁜가?”
“만약 저 선주를 마셔서 불로장생할 수 있다면 폐하께서는 소신을 죽이지 못하실 것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일반 약주로 인해 소신을 죽이신다면 소신이야 죽어 대수롭지 않지만 폐하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한무제는 속이 뜨끔했다. 동방삭이 말을 이었다.
“세상만물은 어린 것이 있으면 늙기 마련이고 태어나면 죽기 마련입니다. 폐하께서는 죽지 않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사기꾼을 절대 믿으시면 안 됩니다!”
동방삭이 죽으면 너무 아쉽다고 생각한 한무제가 호위에게 말했다.
“동방삭을 풀어주라.”
동방삭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장생불로에 대한 한무제의 꿈은 여전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은 확실히 힘든 일이지만 사람이 백 세 심지어 천 세까지 사는 것은 정말이지 않소. <상서(相書)>에 ‘인중(人中)이 1촌(寸)이면 100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적혀 있지 않소?”
한무제의 말에 동방삭이 또 웃었다. 그 바람에 화가 난 한무제가 힐문했다.
“그대는 짐이 또 틀렸다고 생각하시오?”
“소신이 어찌 감히 폐하를 웃겠습니까? 소신은 다만 팽조(彭祖)의 얼굴이 너무 긴 것을 웃었을 뿐입니다. 팽조는 8백 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상서>의 말이 확실하다면 팽조의 인중은 8촌일 것이니 그럼 그의 얼굴 길이는 8장(丈)이 되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의 얼굴 길이가 8장이라고 생각하니 그만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동방삭의 농담에 한무제도 따라서 웃고 말았다.
한무제는 동방삭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으나 줄곧 그를 중용하지 않고 신변의 문객으로만 취급했다. 한무제는 아마도 익살스러운 말솜씨와 능란한 말주변을 가진 동방삭이 간사함과 경박함에 가까워 정중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그를 기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방삭도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늘 바닥에 앉아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은 금마문(金馬門)에서 세상을 피해 사는 진정한 은자라고 말했다. 몸은 조정에 있지만 뜻은 속세를 초월한다는 ‘대은은어조(大隱隱於朝)’의 옛말을 실천한 것이다.
동방삭은 혼인에서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고 사람들은 도무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해마다 장안성의 미소녀(美少女)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새 아내를 맞이하는 동시에 원래의 아내에게는 돈을 충분하게 챙겨주며 자유를 회복시켜주었다. 동방삭은 황제에게서 받은 돈을 모두 이런 여인들에게 썼다. 어찌 보면 그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동방삭을 미치광이라고 말했지만 한무제는 이렇게 말했다.
“동방삭이 이렇게 사는 것은 그만의 이치가 있소. 그대들은 누구도 그에 미치지 못하오.”
삶의 관념에서, 인생의 자세에서 한무제는 동방삭의 지음(知音)이었던 것이다.
어느 하루, 동방삭이 휴가를 내고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북소리 징소리 요란한 가운데 동방삭이 신부의 얼굴을 가린 면사포를 막 벗기려는데 갑자기 ‘황명이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동방삭은 급히 신부고 뭐고 다 내치고 무릎을 꿇고 성지(聖旨)를 받았다. 동방삭을 건장궁(建章宮)으로 부르는 황명이었다. 동방삭은 한무제가 또 신하들에게 난제를 냈다는 것을 알았다.
동방삭이 건장궁에 이르니 과연 한무제는 머리가 미록(麋鹿)처럼 생긴 동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정원에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는데 이름을 아는 대신이 없소. 동방 대부는 모르는 게 없으니 알지 싶소만.”
동방삭은 짐승의 머리를 만지고 이빨을 헤아려보고 나서 머리를 갸웃하고 눈을 껌벅거리며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소신은 이 짐승의 이름을 압니다. 하지만 허기가 져서 향기로운 술과 맛 있는 음식을 내려 주십시오. 포식을 하고 나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무제는 즉시 성찬을 내렸다.
술도 양껏 마시고 음식도 배불리 먹은 동방삭이 입을 열었다.
“상림원(上林苑) 동쪽에 연못도 있고 갈대밭도 있는 땅이 있는데 소신에게 그 땅을 하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무제가 웃었다.
“좋소. 욕심이 그렇게 크지는 않구려! 그 땅을 내리리다. 이제 답을 들을 수 있겠소?”
그제서야 동방삭은 확신 있게 대답했다.
“사불상(四不像)의 이 괴물은 추아(驺牙)라 부릅니다. 멀리서 항복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전에 이 괴물이 먼저 나타납니다. 이 괴물은 앞뒤에 똑 같이 9개의 이빨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추아입니다.”
한무제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과연 동방 대부가 풀지 못하는 난제가 없네그려. 그러니 사람들이 동방 대부가 혜안을 가지고 식견이 넓다고 하는군 그려. 하지만 짐은 좀 기다려 보겠소. 정말 그대의 예언이 맞는지를.”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흉노의 혼야왕(渾邪王)이 군사 4만명을 데리고 한무제를 찾아와 항복했다. 한무제는 마음 속으로 동방삭에게 또 한 번 감탄하고 많은 재물을 하사했다.
사실 추아라는 그 이름은 동방삭이 제멋대로 지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동방삭의 예언은 확실했다. 당시 용맹하고 싸움을 잘 하는 곽거병(霍去病)이 질풍처럼 초원과 사막을 휩쓸어 크게 패한 흉노는 사막의 북쪽으로 도주했다. 동방삭은 여러 곳에 부락이 산재하고 응집력이 떨어지는 흉노들 중 반드시 항복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 ‘추아’를 빌어 그렇게 예측했던 것이다. 그러니 동방삭의 승리는 곽거병이 만들어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