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코로나19가 터지고 팬데믹으로 확산되었다.
내가 있던 캔자스시티도 약 3개월간 ‘Stay at Home’이라고 해서 집에 머물고 나오지 못하도록 도시를 봉쇄하다시피 했다.
담임자로서 나는 자연스럽게 교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몇 주 이러다가 끝나겠거니 했는데, 몇주가 한 달, 두 달, 세 달이 되자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역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줌 새벽기도회를 통해 성도들이 기도의 끈을 놓지 않도록 했다. 주일과 금요성령집회도 온라인예배로 전환하였고 이제는 가정이 교회임을 강조하고 모든 성도들이 각 가정에서 진실된 예배자로 설 것을 격려해드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는 중요한 믿음의 결정 두 가지를 해야 했다. 국내선교와 해외선교에 대한 부분이었다. 당시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에서 공문이 왔다. 미 전역 한인연합감리교회 중 코로나로 월세를 내지 못하는 위기에 처한 교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 교회들에 재정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우리 교회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내야 할 월세도, 건축 부채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보다는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사도행전 11장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제자들이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났다.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28-30
“그래, 이것이 교회지.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형제 교회들을 돕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지.”
그래서 기도한 결과 1차, 2차에 걸쳐서 구제헌금을 보내기로 했다. 그뿐 아니라 캔자스시티 지역 교회 중에서 온라인 예배 전환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교회들을 찾아가 무료로 예배 세팅을 섬겨드렸다. 이때 미디어팀에서 정말 수고가 많았다. 그들의 무료 봉사로 어려운 교회들이 일어설 수 있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인도와 아이티 해외선교비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지출하기로 했다.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참 귀히 여기셨던 것 같다.
코로나가 터졌던 2020년 12월, 재정 부장님으로부터 결산보고를 받았다. 수입 결산이 100퍼센트가 넘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오병이어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분명히 수입은 줄었다. 그러나 해외선교 헌금은 전혀 줄이지 않았으며, 팬데믹으로 더 어려운 개척교회도 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생각지 못한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다 채워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자신의 오병이어를 내어드린 분들이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 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즉각적인 순종 때문에 많은 교회들과 선교지가 살아날 수 있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가 아닐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당시 한국도 그랬겠지만, 미국도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파산하는 가게들이 속출하였다. 특히 요식업을 하는 분들의 피해가 많았다. 샌드위치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던 권사님은 코로나로 인해 몇 개월 동안 아예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몇 개월 뒤 다시 가게를 오픈했지만 손님들은 이미 많이 끊긴 뒤였다. 수입은 1/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주인 부부 외에 남미 출신의 여자 주방장이 있었는데, 사실 당시 형편으로는 주방장을 채용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코로나로 그녀마저 해고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일을 하지 못하면 그녀에게 딸린 많은 식구들이 다 굶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인 권사님이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계산으로는 해고가 맞다. 그러나 기도를 해보면 그 주방장을 그냥 두라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주님이 권사님께 두 가지 마음을 주셨다고 한다.
첫째, 재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둘째, 하나님은 그 가정을 먹여 살리기 원하신다.
결국 이분은 주방장을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적으로는 정말 바보 같은 결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에 순종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게로 심방을 갔다.
“권사님, 집사님, 참 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힘들었던 1년을 보내고 난 뒤 손님들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 가정도 살고, 그 주방장 가정도 살고, 그 가게로 인해 교회도 함께 살았다.
주님은 나를 따르려면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자기부인, 자기포기는 결코 쉽지 않다. 부인과 포기가 아니라 자기긍정, 자기권리를 찾기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자기부인과 포기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권리를 포기할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창하거나 위대한 행동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그저 자기포기와 우리의 사랑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신뢰할 것이고, 기꺼이 우리의 움켜쥔 손을 펴서 주님께 내밀 것이다. 자기포기는 손해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으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므로, 자기포기는 주님의 섭리를 경험하는 길이다.
- 섭리하심, 김다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