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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보각 스님은 1974년 스님으로서는 최초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불교사회복지학 분야의 개척자다.
중앙승가대학에서 불교사회복지학과가 개설되며 교수로 임용, 35년이 지난 오늘까지 불교사회복지학을 가르쳐 왔다.
학자일 뿐만 아니라 실천가이기도 한 스님은 중증장애아동시설, 노인요양원 등을 설립하여 불교계 복지시설을 확충하는 데 헌신해왔다.
이 책에서 스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온 불교의 핵심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놓는다.
붓다의 출생에서 출가, 성도, 열반의 모습,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이어온 선사들의 경구들을 인용하여 불교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담았다.
결국 삶의 가장 큰 목적은 나와 타인을 향한 자비에 있으며, 그 자비를 실천할 때 마침내 자유로울 수 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해남 대흥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4년 스님으로서는 최초로 사회복지학을 전
공했다.
1985년부터 중앙승가대학에서 불교사회복지학을 강의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1994년 삼전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시작으로 원주 소쩍새마을을 인수하고, 1998년 장애아동 요양시설인 상락원을 설립, 불교계의 대표적인 중증장애인 시설로 성장시켰다.
2004년에는 사
회복지법인 자제공덕회를 세워 소외받는 노인계층을 위한 노인요양보호시설을 설립했다.
지난 2016년 인도 쉬라바스티에 보광학교를 건립하고 지속적인 후원을 해오고 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자제공덕회 이사장, 강진 백련사 주지로 있다. 제25회 불이상不二賞, 보건복지부장관상 등을 받았다.
《불교사회복지사상사》, 《불교사회복지 개론》, 《초기경전과 해결중심 접근》을 비롯한 다양한 저서와 논문 수십 편을 발표하여 불교사회복지학 연구에 이바지했다.
🍉 목차
저자의 말 들어가며
1장 모든 존재의 스승, 붓다
1 부처님의 손가락
안으로는 마음을 밖으로는 별을 보라 | 존재의 노예로 살지 마라 | 티끌에서 벗어나다 | ‘나는 누구인가’를 묻다 | 번뇌를 끄면 열반이다
2 길 위에 핀 법法의 꽃
따로 또 같이의 삶 | 윤회의 수레바퀴 | 달콤한 꿀과 세 가지 독 | 무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뜻 | 재밌고 신나는 공空 놀이 | 삶의 불안을 치유하는 최고의 묘약 | 일수사견의 지혜
3 부처님의 맨발
목마를 때 물을 찾는 마음 | 이미 지니고 있는 그것을 보라 | 싫고 좋은 마음 버리면 달처럼 빛나리 | 그 마음을 쉬라 | 부처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지 마라 | 맑은 물이 막힘없이 흘러간다
본래 움직이지 않아 부처라네
2장 모든 지혜의 시작, 사랑
1 날마다 다시 태어나기
월든 호숫가에 비친 무소유 | 부처님은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라 하셨다 | 강남 부처님과 강북 부처님에게 |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만남 | 초저녁 풋잠 사이의 꿈
2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 것
걸인의 얼굴에서 부처님을 보다 | 바라는 마음이 없는 마음 | 어제는 지나간 오늘,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 | 화로 속 한 송이 눈 | 전차의 바퀴보다 부르튼 맨발로 걸어간 길 | 꽃과 꽃이 어우러져 꽃밭을 이루다
3 이 눈부신 삶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과 새와 나무, 모두 불법을 노래하네 | ‘나무를 심은 사람’ | 이 눈부신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 원숭이가 떨어뜨린 콩 한 줌 | 처음 만나는 인연, 가족 | 가정은 수도원이자 자비수행공동체
4 닦을 것이 없다. 다만 물들지 마라
파랑새와 소 찾기 | ‘차나 한잔 마시게’의 뜻 |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 | 마음, 마음 참으로 알 수 없네
3장 붓다와 지혜와 사랑은 하나이다
보각스님 인터뷰 | 선을 행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이것이 수행이다
🍉 책 속으로
일부 사람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부처님의 탄생게가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는 나(我)를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생긴 잘못된 견해입니다. 부처님 탄생게에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탄생게는 하늘 아래 땅 위에 존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35쪽)
부처님의 두 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출가자의 표상입니다.
부처님은 대중 교화를 하는 내내 맨발로 세상의 험난한 길을 밟고 다녔습니다.
발가락과 발톱들이 돌부리에 차이고 가시에 찔리고 긁히기를 거듭하여야 했습니다.
부처님은 왕자 신분일 때 물소 가죽으로 만든 금장식 은장식을 한 신을 신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금과 은으로 장식을 한 신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뜨거운 사막을 걸어간 까닭에 인류의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6쪽)
공안은 모든 분별심을 여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욱한 사람들은 외려 공안이라는 덫에 갇혀 사고의 외연을 확대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실제와 거짓 등 수많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화두를 잡는 것인데, 오히려 그 화두가 또 다른 망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96쪽)
태어날 때부터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정해지는 게 아니오.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오. 찬달라족의 아들인 마탕가는 개백정으로 불릴 만큼 천한 사람이었지만 최상의 명예를 얻었소.
많은 왕족과 바라문들이 그를 섬기려고 모여들었소. 그는 신들의 길, 더러운 먼지를 털어버린 성스러운 길에 들어섰으며, 탐욕을 버리고 범천의 세계에 가게 되었소.
천한 태생인 그가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소. (161쪽)
악행을 하는 사람보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낙원이 될 것이고, 거꾸로 선행을 하는 사람들보다 악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연기 緣起 적인 사고로 보면 개체와 전체는 다르지 않고, 개인적인 업인 별업 別業과 전체에 미치는 공업 共業 이 다르지 않습니다. (227쪽)
부모와 형제, 부부는 모두 팔천겁 이상의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실로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은 인간이 가장 먼저 만나는 인연이자 가장 나중에 이별하는 인연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란 타자를 사랑하고 가엾어 하는 마음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가졌던 자비심을 자식들도 때가 되면 갚을 줄 알아야 합니다. (249쪽)
일체유심조라는 가르침은 행복과 불행이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일이 생깁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지는 것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장애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은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사람은 보고 싶고, 싫은 사람은 보기 싫은 게 인지상정 人之常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좋다는 생각, 싫다는 생각을 하는 주체는 ‘나’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278쪽)
우리는 생로병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점점 노화되고 퇴화하면서 삶에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노인 자체는 장애덩어리입니다. 어르신들은 불편한 곳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비장애인이니 장애인이니 하며 구분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남에게 피해는 안 줍니다. 반면에 비장애인 중에 세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더불어 공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겸손하고 사려 깊은 불자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314쪽)
아무튼 저는 시줏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더라고요. 시설의 대표를 맡게 되면 법인카드가 나오는데 저는 그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그렇게 생활하는 게 몸에 배어 그런지 친목을 위해 밥 사고 하는 걸 못하겠어요. (315쪽)
사람들은 기도를 부처님께 청탁, 부탁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기도는 발원과 참회입니다. 즉 원력을 세워서 노력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또 잘못했을 때 부끄러워하고 그 잘못을 다시 안 하겠다는 다짐이 기도입니다. 사경과 기도는 마음을 고요하고 깨끗하게 합니다. 그 힘으로 우리 일상을 잘 살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319쪽)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잘 모릅니다. 용수 보살이 《대지도론》에서 자비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자慈’를 ‘여락與樂’ 즉,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라 하고, ‘비悲’는 ‘발고拔苦’ 즉,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자비가 실천되지 않으면 무자비해집니다. 달라이 라마 스님도 ‘나의 종교는 친절이다.’고 하잖아요. 세월이 갈수록 남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자비에 대한 실천의지가 부족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331쪽)
🍉 출판사 서평
‘불교계 명강사 탑 5’ 스님이 전하는 불교 강의
‘불교 참, 쉽습니다!’
불교를 안다고 하는 이들도 막상 불교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저자 보각 스님은 택시기사와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기사가 스님에게 불교는 왜 이렇게 어렵냐고 물었다. 스님이 되물었다. “불교를 배워보긴 했습니까?” 기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스님은 이 이야기에 빗대어,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맛이 있다 없다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불교를 알려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면 그만큼 불교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나아가 제대로 알지 못하니 불교적 삶을 실천하는 데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불교를 제대로 알면 삶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불교, 참 쉽습니다. 부처님 법문 중에 제일 유명한 법문이 ‘칠불통게七佛通偈’입니다.
일곱 부처님이 전하는 게송이란 뜻인데, 우리말로 풀면 이렇습니다. ‘모든 악惡은 짓지 말고 모든 선善은 받들어 행하라. 언제나 그 마음을 깨끗이 하면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여기에 불교의 처음과 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조금 설명을 더하면, 날마다 악을 제어하고 선한 일을 키우면 마침내 선악이 없는 경계에 이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처음에는 선을 행하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선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을 행하려 노력하기보다 마음에 악한 생각이 없어지면 그게 선이라는 것입니다.
선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응병여약應病與藥, 병이 있으니 약이 필요하다는 뜻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선도 악도 없는 깨끗한 마음에 이르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은 별것 아니에요,
아픈 세상에 눈물 한 방울 보태는 것이죠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는 입전수수入廛垂手, 즉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다. 스님의 삶은 바로 입전수수 그대로이다.
스님에게 부처님 가르침의 끝과 시작은 ‘자비’이다. 부처님이 깨우친 후 보낸 45년 세월이 바로 ‘봉사’이며, 수행자라면 누구든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또 불교의 지식은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치므로 이제 현대사회에서 ‘스님’의 역할은 지식 전달자를 넘어 세상에 줄 것은 자비,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자비의 마음을 이끌어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사회복지사’로 오시지 않겠느냐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삼전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시작으로 사회문제로 시끄러웠던 원주 소쩍새마을을 인수하여 정상화시키고, 장애아동요양시설과 노인요양원을 세우는 등 스님의 실천적 행보는 넓고 크다. 아프고 힘든 사람만 보면 눈물부터 난다는 스님에게 어느 날 물었다.
“스님은 왜 자꾸 우십니까” 스님이 답했다. “남의 고통에 눈물 부조도 못 하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픈 세상에 눈물 한 방울 보태는 일, 깨달음의 실천은 거기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엔 공감 능력이 부족합니다. 소외 받고 아픈 사람들도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특별한 경제적 도움이 아니더라도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려주고 하는 공감이 중요하지요. 설움을 함께 해주고 같이 살아가는 것이 사회복지입니다.”
모든 지혜의 시작, 사랑
공감하는 사회를 위한 제언
저자는 이 책에서 불교적 깨달음을 토대로, 인간으로서 겪는 삶에 대한 갈등 그리고 불화하는 세상,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는 왜 늘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애쓸 뿐, 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을까’, ‘타고난 신분에 의해 귀천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귀천이 정해질 뿐’,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이루듯 닫힌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허깨비 놀음에 지나지 않은 사이버 공간의 세상, 상생과 순환의 진리 알면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것, 이 무상한 현실 속에서 영원을 사는 방법이다’ 등. 불교적 가르침이 녹아든 저자의 해법에는 공통적으로 타인과 공존하는 법이 녹아있다.
존재는 혼자 존재할 수 없는 법, 함께 잘 살고 함께 잘 죽는 것이 바로 존재의 이유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답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온갖 고생을 한다.
그 답이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법화경 속의 이야기로 빗대어 말한다. 부자 친구가 가난한 이의 품속에 귀한 보배 구슬을 몰래 넣어두지만, 이를 모른 채 평생 고생만 한다. 부자 친구가 이 사실을 알고 탄식한다.
“보배구슬을 너의 옷 속에 넣어줬는데, 너는 아직도 고생하며 살고 있구나. 그 보배구슬로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그 보배구슬이 무엇인가.
“삶은 고苦라고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이 생깁니다. 그 고통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면서 지혜가 생깁니다.
그게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크고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지금까지 잘못 이해하고 판단했던 것을 바로 보고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일상의 수행자 기도하는 스님,
잘못된 기도가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저자는 불교계에서 법문 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법문 잘하는 스님 탑 5‘에 든다. 불교계 뿐 아니라 기업체, 관공서 등의 요청이 쇄도해 수많은 강연을 해오고 있다.
하루 7번 강의로 퀵 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 전무후무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 수입을 모두 남김없이 기부해온 스님은 그야말로 무욕無慾의 삶, 그대로다.
욕심내지 말고 만족하는 삶을 강조해온 스님의 가르침을 작사가 양인자 선생이 듣고 쓴 가사가 바로 김국환의 〈타타타〉이다.
강의와 법문, 사회복지 활동으로 사회와 소통해온 스님은 철저한 수행자로서 스스로를 단련한다.
매일 일과日課 수행으로 기도와 사경을 거르지 않으며, 법화경 사경은 현재 173권째에 이른다.
스님은 기도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발원과 참회, 즉 원력을 세워서 노력하는 것이며, 잘못했을 때 부끄러워하고 그 잘못을 다시 안 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믿는다.
맹목적인 소원성취에 매달리며 기도하는 것은 그릇된 것, 부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그건 부처님의 잘못이라고까지 말한다.
기도의 힘은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발휘된다. 왜! 노력한 것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 사회의 기도가 바르게 이뤄질 때 사회의 온갖 모순도 사라진다고 스님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