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바라 본 세상> 라오스 여행, 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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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동안 라오스에서 머무르다 우리나라로 돌아온지 다시 6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 당황스럽게도 <ㅍㅍㅅㅅ>에 게재되었다.
그 당시의 생각과 시간이 좀 흐른 지금의 생각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그래서 급히 변명을 좀 한다.
베트남 국경으로 가면 험준한 석회암 지대가 나온다. 영동과 영서를 구분 짓는 우리의 태백 산맥과도 같은 곳이다.
라오스에 가기 전 중국 윈난성을 방문하였다. 라오스와 고민하다 차마고도 트래킹에
합류하면서 라오스는 다음에 가고 싶은 곳으로 미뤄뒀었다.
중국 윈난성은 정말 멋있는 곳 이었다. 웅대한 자연경관과 역사유적, 문화적 깊이를
들르는 곳마다 느낄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중국 음식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주름진 얼굴과 허름한 복장 마저도 사랑스럽게 만드는 삶의 여유를 만들어 내는
촌노들의 따스한 눈빛. 윈난성 투어는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그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버팔로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난 이녀석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덩치에 비해 무척이나 온순하고 겁이 많다.
윈난에서 비엔티안으로 떠나다.
그러다 라오스를 가게 됐다.
여행이 아니라 일을 위해. 나 역시 가기 전에 라오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곳,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삶의 여유와 가난 하지만 소박한 뭔가를 기대했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교정해 줄 것 같았다.
아마도 샹그릴라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렇지만 무지 덥다.
그런데 기대한 만큼 뭔가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윈난에서 보았던 웅대한 자연경관도 여기만의 문화적 특징도, 또한 삶의 여유도
느끼기 힘들었다.
우리만큼 바쁜 것은 아니지만 그걸 삶의 여유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었다.
가난한 나라의 숙명 같은 게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불합리한 모순과 무기력이 느껴졌다.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여기만 고여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을 낭만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카메라 프레임에 담긴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며 자신만의 라오스를
떠올릴 것이다.
사진이 왜 예술이라 불리는지 이해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게다.
프레임 밖의 세상과 마주치고, 더 나아가 그걸 움직이는 시스템을 마주하게 된다면
풍경이 예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켕거루가 살지 않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커플이다. 오토바이로 라오스를 여행 중이다. 장기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짐이 참 단촐하다.
아마도 내가 느낀 것을 관광객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보는 라오스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내가 본 윈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오스에 대한 생각
라오스에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벌써 6개월,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여기에서의 삶이 라오스만큼 여유롭진 않다.
인간적인 사람의 향기도 덜하다. 험한 일을 당하거나,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면
라오스가 떠오른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문득 든다.
쇼펜하우어가 "추억이란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태양"이라고 했던 것처럼
라오스의 추억은 내게 무지개 빛으로 남았다.
현실은 뜨거운 떙볕이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사람의 삶도 힘들지만 나무의 삶은 더 열악하다.
왜 라오스에 오냐는 물음도 이젠 사치일 뿐
<꽃보다 청춘>이 나간 후부터 라오스를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났다.
전체 관광객의 절반은 한국 사람이다.
성수기 때는 일주일에 최대 20편이 넘는 비행기가 라오스를 운행했다.
진에어에 이어 티웨이와 대한항공(코드셰어)도 라오스를 운항했다.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에는 한국인밖에 없다는 불평도 들렸다.
여기에는 소개 못할 크고 작은 사고도 수시로 들려왔다.
올해도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무더운 나라에서 캄보디아에서부터 자전거로 여행 중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이젠 놀랍지는 않다. 시간은 이 사람들에게서도 멈추어 있었다. 영원한 청춘처럼 느껴졌다.
내가 굳이 라오스를 왜 오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어졌다.
내가 오랫동안 라오스 관광을 힘들게 오는 사람들을 보며,
나 스스로에게 나는 이곳에 왜 왔느냐를 물었던 그 물음.
나는 그 물음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누구도 그 답을 주지는 않았다.
내 스스로 찾아야 할 답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내가 처한, 그리고 라오스가 마주한 지금이었다.
봄철이 오면 폭음처럼 들리는 불타는 나무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내 속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하늘에서 본 방비엥,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열기구. 아찔하지만 풍경은 멋있다.
항공기 운항편수가 늘어나면서 저렴한 여행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또 단체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왜 오냐는 질문 마저도 이젠 쑥스럽게 되었다. 단체 관광객들은 약간 낯선 풍경과
퍼(쌀국수)를 먹을 때 정도나 이곳이 라오스구나, 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관광객들이 반드시 맛보고 가는 베트남 식 쌀국수, 퍼~.
퍼, 처음 3개월은 무척이나 맛있었고, 1년 쯤되니 먹기가 힘들어졌다.
MSG 맛이 얼마나 강력한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우리가 평양냉면의 맛으로 기억하는 아지노모토의 맛, 훗날 라오스 인들도 그들의 옛맛으로 기억할까.
언젠가는 이 바람이 지나가겠지만 라오스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비엔티안 주 흰헙군, 사람들의 미소가 참 좋은 곳이지만 가장 가난한 지역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들어가면 여행자들은 빡세, 씨엥쿠앙, 캄무앙(콩로동굴) 등
지금까지 여행자들이 가지 않았던 곳을 방문할 것이다.
길은 열렸고 사람들은 길을 따라 몰려들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샹그릴라를 찾을 것이다.
아직은 낯설고 생소한 지역을 방문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라오스를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상상보다 더 나쁜 상황과 마주하기도 한다.
라오스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 글을 쓴 이후로 라오스의 많은 지역을 다녔다.
자연경관이 좋은 곳도, 사바나켓과 빡세 등 다른 도시도 다녔다.
길은 험하고 교통은 불편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시설은 뭔가 허전했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감동도 느꼈고 아픔도 느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머무른 시간이 짧지 않았지만 나는 그저 여행자일 뿐이었다.
한 번도 그들의 인생을 살은 적은 없었다.
까오삐약을 먹고, 찹쌀밥을 손으로 먹는다고 해서 이런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두리안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여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역시나 날씨는 덥다. 카메라 앵글 속 만큼 이곳의 삶이 낭만적이진 않다.
라오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 더 깊이 이해했다.
예전에 쓴 글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안고 가야 할 짐이다.
시골에서 햇살이 갈라져 나오는 아침에 라오스의 서양식 아침, 콩로동굴이 있는 마을
내가 그 글을 쓴 것은 나와 같은 실망을 하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라오스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을 듣고 좀 더 현실적인 여행 계획을 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언론이나 블로그에 나오는 좋아요 일색의 여행기와는 다른 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참 운이 좋은 것이다. 심봤다! 사바마켓, 이곳 애들은 산골 애들과는 달라 보인다.
여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예전에 어느 나라를 방문할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였다. 많은 나라를 방문한
친구를 보면 샘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곳이 라오스 건 윈난이 건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캄무앙의 콩로 동굴을 가는 길, 마을 사람들이 위험하게 강을 건너고 있다.
라오스는 라오스만의 매력이 있다. 불편함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뭔가가 있다.
그게 꼭 유쾌한 게 아니라 할지라도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사람 사는 게 뭐가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바깥 풍경이 어떻던, 사람들이 어떻던,
우리는 여행을 통해 배운다.
여행을 통해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단,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봤을 때.
캄무앙 주 콩로동굴로 가는 길....
나만의 라오스는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기억과 함께 무지개로 남았다.
2015년 5월 나는 라오스를 떠났다.
그해 처음 맞은 그 가을 동안 추워져 더 이상 몸이 견디지 못할 때까지 반팔 옷을
입고 다녔다. 너무나 뜨거웠던 라오스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
과학과 이성에 대해 논하기를 좋아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찾아가는 몽상가의 브런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