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스스로 왕관이 된다
왕관을 쓴 여자가 황금빛 궁전에 서 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샹들리에의 불빛과 금빛 드레스가 어우러져 공간 전체가 하나의 황금빛으로 물든다. 어깨에서 길게 흘러내리는 드레스 자락에는 섬세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고, 머리 위의 작은 왕관은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런데 화려한 장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자의 미소다. 권위를 내세우지도, 아름다움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 편안히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왕관은 오래도록 특별한 사람의 것이었다. 왕과 여왕, 선택받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왕관을 높은 자리와 연결해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왕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인생에서 정말 값진 왕관은 누군가 머리에 씌워 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견디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젊은 날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일이 중요했다. 잘했다는 말 한마디에 기뻤고, 부족하다는 말에는 오래 마음이 흔들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아름답다고 해야 아름다운 줄 알았고, 잘 살았다고 해야 제대로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왕관을 얻기 위해 참 많이 애썼다. 더 좋은 자리, 더 많은 인정, 더 화려한 성취를 좇았다.
그러나 세월은 조금씩 다른 것을 가르쳐 준다. 아무리 많은 박수를 받아도 마음이 공허할 수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하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의 눈에 성공한 삶과 내가 행복한 삶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때부터 사람은 바깥을 향해 있던 시선을 자신의 안쪽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삶에는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 힘든 날에도 아침이면 일어나야 했고, 마음이 무너져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자신의 슬픔을 뒤로 미룬 날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그런 날들에는 왕관도 샹들리에도 없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하루를 건너왔다.
돌아보면 바로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화려했던 순간보다 견뎌낸 날들이 더 깊은 무늬를 남겼다. 실패는 마음의 모서리를 깎았고, 이별은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했으며, 기다림은 조급함을 내려놓게 했다. 눈물은 약함의 흔적이 아니라 삶을 깊게 바라보게 하는 또 하나의 눈이었다.
사진 속 황금빛 드레스의 자수를 바라본다. 수없이 얽힌 금실이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있다. 삶도 이와 닮았다. 기쁨만으로는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만남과 헤어짐이 서로 얽히면서 비로소 한 사람만의 무늬가 만들어진다. 당시에는 지우고 싶었던 상처조차 시간이 지나면 삶의 문양 한 부분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빛을 잃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색을 얻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젊음에는 젊음의 찬란함이 있지만 세월에는 세월만이 만들 수 있는 깊이가 있다. 봄꽃의 아름다움과 가을 열매의 아름다움을 비교할 수 없듯 사람의 아름다움도 어느 한 시절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오래 젊음만을 아름답다고 배워왔다. 주름을 감추고 흰머리를 숨기며 세월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주름 하나에는 수많은 웃음과 걱정이 지나갔고, 흰머리 한 올에는 견뎌온 시간이 스며 있다. 그것을 모두 지워야만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남긴 흔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람은 오히려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왕관 역시 그렇다. 젊은 날의 왕관이 아름다움과 성공이었다면 인생의 후반에 쓰는 왕관은 조금 다르다. 용서할 줄 아는 마음,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 혼자 있는 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씩 보석이 되어 우리의 왕관을 만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위로를 건네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인색하다.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을 오래 기억하고,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본다. 거울 앞에서도 부족한 부분부터 찾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살아온 자신에게 한 번쯤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수고했다고. 참 잘 견뎌왔다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다. 부족한 모습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실수했던 나도, 넘어졌던 나도, 한때 어리석었던 나도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이다. 과거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품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과 화해한다.
그 순간부터 왕관은 무겁지 않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왕관은 늘 무겁다. 내려놓을까 두렵고 빼앗길까 불안하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왕관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지위가 사라져도, 젊음이 지나가도, 박수가 멈추어도 남는다. 그것은 살아온 시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 여자는 왕관을 쓰고 있지만 왕관 때문에 빛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여자가 지닌 표정 때문에 왕관이 빛나는 듯하다. 이것이 삶의 역설이다. 우리는 빛나는 것을 가져야 자신도 빛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사람이 빛나면 그가 가진 평범한 것들까지 빛난다는 것을.
황금빛도 새롭게 보인다. 황금은 처음부터 찬란한 색이라기보다 불과 시간을 견뎌 얻어지는 빛이다. 사람의 원숙함도 그렇다. 세월을 건너오며 불필요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의 빛깔은 깊어진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역할을 맡는다. 누군가의 딸이었다가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도 하며, 친구와 동료와 이웃이 된다. 역할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정작 ‘나’라는 사람을 잊을 때도 있다. 어느 날 문득 모든 이름을 내려놓고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왕관의 의미가 다시 달라진다. 왕관은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임을 기억하게 하는 표식이 된다. 누구의 딸이나 아내, 어머니이기 이전에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서는 일. 다른 사람이 정해 준 기준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가치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늦게 배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독립인지 모른다.
이제는 왕관을 쓴다고 해서 여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이미 자기 인생의 여왕이다. 평범한 옷을 입고 시장을 걸어도, 혼자 커피를 마셔도, 꽃 한 송이 앞에서 오래 머물러도 좋다. 자신의 하루를 귀하게 여길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머리 위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왕관 하나가 놓여 있다.
세월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간다. 젊은 얼굴도, 빠른 걸음도, 한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도 조금씩 멀어진다. 하지만 가져가는 것만큼 돌려주는 것도 있다. 사람을 바라보는 깊이, 기다릴 줄 아는 여유,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눈이다. 무엇보다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준다.
나는 이제 화려한 왕관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누군가보다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고 싶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고치고, 놓쳐버린 것이 있다면 아쉬워하되 오래 붙들지는 않으며, 내게 남은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다.
왕관은 꼭 금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견딘 날 하나가 보석이 되고, 흘린 눈물 한 방울이 진주가 된다.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금빛 장식이 되고, 다시 일어섰던 용기가 왕관의 가장 단단한 테두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에 걸쳐 하나뿐인 왕관을 만든다.
사진 속 여자가 웃고 있다. 황금빛 궁전도, 화려한 드레스도, 머리 위의 왕관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편안한 미소다. 자신의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의 미소처럼 보인다.
언젠가 우리도 거울 앞에 서서 지나온 얼굴을 바라볼 것이다. 그때 주름 몇 줄보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먼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젊음보다 얻어온 깊이를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에게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왕관은 누군가가 씌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면서 스스로 한 조각씩 만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비로소 깨닫는다. 여자는 왕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낸 세월로 스스로 왕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