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온천서 인생샷 건진다…비키니 입고 즐기는 '부산 온천'
MZ세대에겐 펄펄 끓는 온천보다, 럭셔리한 분위기의 온천, 전망 좋은 노천탕, 사진이 잘 나오는 럭셔리 스파 시설이 더 대접 받는다. 사진은 인생사진 명소로 유명한 부산 기장 아난티코브의 '워터하우스' 내부.
부산은 의외로 온천의 고장이다. 등록된 온천만 67개(2022 전국 온천 현황, 행정안정부)로, 전국 광역단체 중 경북(91개) 다음으로 많다. 하루 평균 온천수 사용량은 대략 1만3000톤에 이른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는 온천 문화는 예부터 어르신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으나, 부산의 온천 문화는 사뭇 다르다. 특급호텔의 온천을 중심으로 럭셔리 스파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이 근래 크게 늘고 있다. 새로운 온천 문화를 선도하는 명소 두 곳을 다녀왔다.
해운대 앞바다가 쫙 -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씨메르’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야외 스파 씨메르. 백종현 기자
한겨울 해운대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노천 온천을 즐기는 사진을 누구나 한 번쯤 봤을 테다. 수영복을 입고 즐기는 유럽풍 온천 문화를 부산에 퍼트린 이 사진의 주인공이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야외 스파 ‘씨메르(2012년 오픈)’다. 난다 긴다는 호텔이 줄지은 해운대 일대에서 유일하게 야외 온천을 갖춘 특급호텔이다.
‘파라다이스호텔=씨메르’라는 공식이 호캉스를 즐기는 MZ세대에겐 꽤 널리 퍼졌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이동영 매니저는 “전체 투숙객의 70% 이상이 씨메르 이용 패키지를 구매할 만큼 인기가 절대적”이라며 “절반 이상이 MZ세대 여성”이라고 전했다. 씨메르는 투숙객 전용 시설이다.
코로나 여파로 대부분의 온천이 불황을 겪었지만, 씨메르는 지난 2년간 되레 손님이 늘었단다. 이동영 매니저는 “펜데믹 후 ‘럭셔리’ ‘호캉스’가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월평균 이용객이 2000명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거리두기 지침 해제 이후에는 월평균 이용객이 1만7000명까지 치솟았다.
인증 사진 포인트로 유명한 인피니티 베스. 각도를 잘 맞추면 온천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맞닿은 듯한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씨메르는 본관 4층 야외 공간에 있다. 해운대 바다를 굽어보도록 설계된 인피니티 베스가 대표적인 인생사진 명당이다. 각도를 잘 맞추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듯 그림 같은 사진을 담아갈 수 있다. 아늑한 분위기의 누각 안에 온천이 숨어 있는 일명 ‘정자탕’은 연인에게 인기 만점이다. 인생 사진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바다 전망과 인물이 모두 잘 나오는 매직 아워는 오후 5시~6시다. 해가 저무는 시간, 탕 주변의 화단에도 은은한 조명이 들어온다. 오전 8시 오픈 시간을 노리면, 일출 직후 태양 빛을 받으며 노천욕을 하는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온천 온도는 대략 38~45도. 지하 275m에서 솟아나는 100% 천연 온천수를 적당히 식혀 내보낸다. 염화나트륨 성분이 대부분인 해수온천으로 유황온천 같은 매캐한 냄새는 없다. 여성이라면 실내 온천 사우나도 필수로 들어가 봐야 한다. 여성 공간에만 노천 온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씨메르 한편에 온천에 앉아 스낵을 즐길 수 있는 아쿠아바가 있다. 이곳 최고의 인기 메뉴는 부산 삼진어묵과 맥주. 한겨울 온천에 몸을 담그고 맛보는 어묵 국물과 시원한 맥주 한잔,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씨메르 한편에 자리한 아쿠아바.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맥주나 간단한 스낵을 즐길 수 있다.
미술관 못지않은 – 아난티 코브 ‘워터하우스’
부산 기장 아난티코브의 워터하우스. 탕 못지않게 휴식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부산의 새로운 휴양지로 뜨고 있는 기장에 ‘워터하우스’가 있다. 전체 2000평(약 6600㎡)에 달하는 스파 시설로, 럭셔리 리조트 ‘아난티 코브’에 딸려 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 때문에 첫인상은 온천보다는 미술관이나 호텔 라운지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일단 우리에게 익숙한 네모반듯한 모양의 온천이 아니다. 온천 벽면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미디어 아트를 대거 들였다. 기린·사자·코끼리가 어슬렁거리는 열대 우림 콘셉트의 미디어 아트가 벽면을 따라 투사되는데, 코엑스에서 상영한 ‘파도(WAVE)’ 미디어 아트로 유명한 제작사 ‘디스트릭트’의 솜씨다.
물은 어떨까. 탕의 온도는 35도 안팎으로, 지하 600m에서 끌어올린 28도의 해수를 데워 사용한다. 탕 안에 앉아 있어도 얼굴이 붉게 익거나, 땀이 맺히지 않는 저온형 온천이다. 피부가 민감한 아이도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다. 펄펄 끓는 온천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심심할지 몰라도, 온천보다 인증사진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실제로 온천을 즐기는 사람 못지않게, 머리 세팅부터 화장까지 곱게 한 채 사진을 담는 데 열중하는 젊은 층을 여럿 목격했다. 포털에서 ‘워터하우스’에서 따라붙는 연관 검색어는 ‘수질’이나 ‘효능’이 아니라 ‘수영복’ ‘복장’ ‘사진’ 등의 키워드다.
미디어 아트와 전면 거울이 마주 보고 있는 복도형 탕이 사진 잘나오는 명당 자리다.
워터하우스는 오전 9시부터 오후10시까지 문을 연다. 아난티힐튼의 김민주 홍보 담당은 “오전 9시나 체크인 시간대인 오후 2~3시에는 인적이 드문 편이라 탕 전체를 독차지한 것 같은 사진을 담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미디어 아트와 전면 거울이 마주 보고 있는 복도형 스파 공간이 인증샷 포인트다. 정글 속에서 스파를 즐기는 듯한 연출 사진을 담아갈 수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노천탕 역시 분위기가 그윽하다.
욕탕보다 휴식 공간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 않고 있는 것도 워터하우스의 특징이다. 보양이나 치료 목적이 아니라 멋과 여유를 즐기는 트렌드를 반영한 설계다. 워터하우스에는 스낵 코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레스토랑이 자리해 있다. 지역 특산물인 미역을 활용한 기장전복미역국,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 담긴 꽃게 해물라면이 최고 인기 메뉴다.
워터하우스 한편의 노천탕.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담 너머에 기장 앞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