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정리를 하던 중 서랍장 뒤편에서
거미줄 섞인 숯 몇 토막을 발견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숯덩이가 거기 있었다.
몸과 마음이 깊이 앓던 시절,
한국으로 나간 나를 작은 올케언니는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친정집이며 친구 상가집이며,
언니는 어디든 나와 동행하길 원했다.
어느 날 언니는 내게 숯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정 일로, 또 오빠 일로 나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
언니는 한 친구의 소개로 숯 굽는 스님을 만났다고 했다.
스님은 언니를 보더니 **'화병'**이라며
숯가루와 숯덩이를 건네주셨단다.
숯가루를 먹고 숯 담근 물을 마시며
언니는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재가 아니라 숯이어야 한다.
재는 흩어지나 숯은 남는다.
온갖 풍파를 겪고도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그 뼈대야말로 삶의 지독한 증거다."
~~ 한승원, <불의 딸> 중에서~~
올케언니의 삶이 바로 그 숯 같았다.
손에 쥔 것 없어도 공주처럼 살기를 바라는 친정엄마,
암으로 누워있는 이혼한 남동생,
끊임없이 사고를 치는 막내 동생,
그리고 맏딸인 언니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가끔은 모진 말로 대못을 박던 나의 오빠.
언니의 마음은 아마 그 숯덩이처럼
검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불과 불이 만나면 사그라지듯, 숯과 숯이 만나
서로의 열기를 가라앉혀 주었던 것일까.
한국을 떠나는 내게 언니는 숯덩이 몇 개를 싸주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가져오긴 했지만,
가루로 만들지도 물에 담그지도 않았다.
그저 서랍장 뒤에 두면 습기도 빨아들이고
공기도 정화해 주리라 믿고 싶었을 뿐이다.
숯의 존재를 잊을 만큼 나는 다시 건강해졌다.
세월은 죽은 나무를 숯으로 만들었고,
그 숯에 다시 불이 붙고 바람이 불어
나는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다.
그렇게 타다가 사그라지면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 날도 온다는것을 알고 있다 .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숯덩이를 다시 꺼내 왔다.
올케언니의 고마움, 숯이 품고 있는 불꽃의 흔적,
그리고 그 고운 정화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서다.
이사한 집 어딘가 숯이 어울릴 자리를 만들어
항아리 뚜껑 위에 올려두어야겠다.
옆에는 작은 화분 두 개를 두고,
보랏빛 바이올렛을 심으면 참 좋겠다.
"나무는 죽어서 숯이 되고,
그 숯은 제 몸을 태워 불꽃이 된다.
사람 목숨 또한 그와 같아서, 한 생애를
다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정직한 재가 되는 법이다."
~조정래 <태백산맥> 중에서 ~
그렇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 내 삶을 태우고 있다.
탁탁 소리 내며 타오르던 불꽃의 시간은 지났고,
이제는 자작자작 작은 소리로 타고 있다.
굵은 숯으로 남지 않아도 괜찮다.
가는 숯이어도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나를 비추던 햇살과 바람, 하늘의 별,
그리고 내가 만났던 소중한 모든 인연을.
나무였던 시절은 그리워 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 .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언제나 정갈한 글, 참 고맙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은 연탄재라도 되어봤느냐고 노래했지요
그건 다 타버렸을망정 온기가 남아있는 걸 말하지요.
숯은 이물질 다 걷어버리고 탄소만 남은 걸 말하지요.
순전한 불길이겠습니다.
성냥불만 대면 타오르는 숫 불길.
그건 오롯한 자기인생을 위한
그리고 이웃을 위한 것이겠습니다.
잘 간수해야 하겠어요.
글의 내용과 다른 이야기지만
숯가루를 먹으면 뱃속의 가스를 다 잡아먹는답니다.
배탈을 다스린다는 거지요.
장독에 숯을 넣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
숯이 뱃속을 다스리는 효능이 있군요 .
우리 조상님들은 역시 지혜가 많으셨어요 .
아녜스님 !!! 잔잔한 글을 읽고, 마음 풀어 헤쳐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고맙습니다 . 건강 하십시요.
제가 마음속 이야기를 하듯 글을 썼는데
추소리님께 절달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감사 합 니다 .
숯이 참 이쁘게 생겼습니다.
단정하네요.
고급 숯인가봅니다.
숯의 의미도 촛불만큼 깊네요.
몰랐습니다.
덕분에 하나 깨칩니다.
활활 잘 사셨다니 듣기 좋습니다.
다 지나 평온.좋으네요.
거의 10년은 다 되어가는데
모양이 그대로 입니다 .
좋은 숯이 맞는것 같네요 .
활활의 의미는 젊은 시절이었고
지금은 불씨를 잘 잃지 않으려고
노력중입니다 .
온기도 간직하고요 .
불과 불이 만나면 사그라지듯, 숯과 숯이 만나
서로의 열기를 가라앉혀 주었던 것일까....
아네스님의 숯의 기억.
참 잘 쓴 수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이 났을때 맞불을 낸다는 말에서
그런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
숯덩이가 된 속을 숯으로 그렇게 다스리는가
싶어서요 .
나무가 자신을 태워서,
숫덩이가 됩니다.
탔다고 재로는 남지 않지요.
더 나은 재료로 남는게
숯이지요.
올케 언니는 아녜스님을
무척 사랑하시는
시누이인 것 같습니다.
아녜스님은 수필방에서
참 든든한 분이지요.^^
제가 여자 형제가 없다보니 올케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
특히 둘째 올케랑은 더더욱 그렇지요 .
언니가 아주 좋은 분이십니다 .
남들도 부러워 하지요 .
수필방 잘 지킬려고 노력 하겠습니다 .
아녜스 님의 글을 대할 때마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잔잔하면서도 깊은 사유를 통해 내면의 자아를 투영하심에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수필의 정수를 느끼는 글을 대할 때면 이 게시판에 사장하지만 말고
수필집으로 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봤습니다.
비록 올케 언니처럼 숯을 상용하지 않았어도
올케언니의 깊은 배려가 담긴 숯의 기억만으로도 아녜스 님에겐 진한 위안이 되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아녜스 님의 사색의 공간에 함께 머무르면서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 시간들이
새삼 참 소중하다 느낍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상 보내세요.
몇년전 이삿짐을 정리를 올케가 와서 도와 주었답니다 .
이번 이사를 하다 보니 올케 언니 생각이 많이 나고
또 올케언니가 정리해 준 흔적들이 보이네요 ..
저는 오직 이곳에만 글을 쓰고
식구들은 아무도 제 글을 읽지 않습니다 .
우리 애들은 저랑 다른 취향이라 글 읽는것도
쓰는것도 아주 싫어해요.
다만 큰 올케가 그런 말을 몇번 하더군요 .
처녀때 몇번 상을 탄것을 잘 알기에 ...
저는 그냥 우린님을 비롯해서 이곳에서
글 쓰고 읽어주신 분들과 소통하는것으로
만족 합니다 .
우린님
고마워요 .
"나무였던 시절은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는 아녜스님의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감정이입이 되어 아녜스님의
감정이 스며들어서요.
올캐언니의 깊은 그 마음을 헤아리시고
오래된 숯을 다시 챙기시는 마음에서
속깊은 아녜스님의 마음을 봅니다.
이제는 나무보다 숯으로 살아도 좋을
나이가 되었네요.
아녜스님의 글에 긴 여운이 남아
잠들기 전에 글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
그랬군요 .
어느날 제가 제라님을 만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마음이 잘 통할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답니다 .
좋은 계절에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에 감사
일전 불편한 글로 마음 상해서 안오나 했지요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천사 에 근접한다고 생각해요
가족간의 정과 현실을 잔잔히 밝히는 글에 감사...
정신치유의 사례 소개에도 감사...
제 막내 동생도 60넘어 아직까지 가족간 불화 메이커
숯중에서 가장 탐나는 숯은 시골집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굵은 숯이라 생각합니다
이사 잘 하시고 평강하세요
좀 언짢긴 했지만 또 그분의 마음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
제 둘째 올케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
누구에게나 참 잘하지요.
그래서 더 삶이 고되기도 합니다 .
돌비님댁도 불화가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
마음이 다 같질 않고 , 한번 뒤틀리면 헤어나기가
쉽질 않은것 같습니다 .
이사한다고 소문을 너무 크게 냈나봐요 .ㅎㅎ
나이가 들어가는 일이
나무가 숯이 되어가는 일이라
생각하니 보다 명료해집니다.
제 마음도 숯으로 정화되는
느낌을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자리님은 이미 다 정화 되시지
않으셨나요 ?
제 생각엔 마음자리님이 아직은
나무인듯 싶습니다 .
깨끗한 물로 숯을 씻어서
물기 빠지면 숯은 톡톡 소리내고
혼자 숨을 쉬는거 같아요.
공기 정화에 좋다고 하여
숯가마에서
많이 사다가 집안에 두고 있어서
사진의 숯이 익숙하게 보입니다.
언제나 단정한 글을
감사히 읽습니다.
주님 평화를 빕니다.
제 생각이 틀리진 않았네요 .
쓰임이 많은 숯을 구석진 곳에 팽개쳐 놓은듯
했으니 이제 잘 보이는곳에 꽃과 함께
놓으려고 합니다 .
글이 단정하다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조윤정님댁에 평화를 빕니다 .
단독으로 이사하면서 참숯 한 상자를 구입 10 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늘 저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울아녜스님은 참숯같은 저의 지인입니다.^^*
참숯같은 지인이라 해 주시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
수피님께 실망을 주지 말아야 할텐데요 .
수피님도 제겐 그런분이십니다 .
참숯 같은 분 ...
과거에는 숯을 집안 거실에 두면 공기가 정화된다고 많이들 놓고 살았지요... 요새는 공기정화기가 집에들 있으니 사라진듯 합니다. 마음이 정화되는 차분한 글입니다.
과거에는 공기가 나쁘지 않아서 숯만으로도
정화가 가능했겠지만 요즘은 그것으로는
안 될것 같습니다 .
그런데도 저는 아직 공기청정기가 없습니다 .
숯에 대한 따스한 추억들과
깊은 사유가 월요일 아침을
맑고 빛나게 합니다
월요일에 쓰신댓글에 늦은 답글이네요 .
그산님의 댓글로 저는 활기찬 목요일을
준비합니다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