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구듯 노동자 글밭 일구겠다"
[인터뷰] <작은책> 편집장 맡은 '변산 공동체' 농부 윤구병씨
박수원 기자 won@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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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된 철학자 윤구병(59)씨가 새로운 명함을 들고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작은책> 편집장이 그의 새로운 명함이다.
95년 잘 나가던 철학과 교수 윤구병씨는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내려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고, 터득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윤씨가 변산에 처음 내려가 맡은 일이 바로 부안 김씨 가문 재지기(관리인). 유교적 시각에서 보자면 '쌍놈 가운데서도 상쌍놈'인 재지기를 그가 흔쾌히 맡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재지기를 맡은 덕에 꽤 넓은 재실을 공동체 식구들의 숙소와 실험학교 교실로 사용할 수 있었고, 그 곳에 딸린 밭 5000평까지 임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군 곳이 바로 '변산 공동체'.
농부가 된 철학자
8년째 '변산 공동체' 생활을 꾸려온 그는 이제 철학교수가 아니라 농사꾼으로 변해 있다. 튀어나온 광대뼈, 새까만 피부, 웃으면 이빨 모두가 드러날 정도로 커다란 입. 영락없는 촌사람이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 언젠가 서울에 일을 보러 왔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경찰관에게 붙들려 파출소에 끌려갔다. 오랫만의 외출이라 신경써서 옷을 갖춰 입고 왔건만 몸과 옷이 따로 놀아 경찰이 수상하게 여겼던 것이다.그렇게 농부로 돌아갔던 그가 하필이면 왜 <작은책> 편집장 자리를 맡은 걸까.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 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뿌리깊은 나무>가 폐간처분 됐어요. 당시 <뿌리깊은 나무> 창간 편집장을 맡았는데, 당시 그 책이 여성지보다 2배 이상 많이 팔렸습니다. 그 경험 때문에 이렇게 끌려왔어요.(웃음) 그리고
또 하나의 인연이 있어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각 노조들에서 노보를 만들기 시작했잖아요. 그때 노보 안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좋은 글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그 글들은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돌려 읽고, 그들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은 책>을 비매품으로 내놓았어요. 비매품으로 몇 차례 내놓다가 그것을 바탕으로 95년 5월부터 월간 <작은책>을 발간했죠. 초기 비매품을 만드는 일을
주도했던 것도 제가 <작은책> 편집장을 맡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 8월부터 <작은책> 편집장을 맡았는데, '변산 공동체' 운영은 그만두시는 겁니까.
"변산 공동체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서울에 머물면서 편집장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요즘 한창 바쁜 철인데 일을 하지 못해서 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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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은 말 그대로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1000원짜리 2장만
내면 살 수 있다. 7년째 만들어오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쓴 글들로 그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만화로 표현해 웃음을 선사한 '천하무적 홍대리'도
<작은책>을 통해 데뷔했다. <작은책>에 대해 어떤 애독자는 이런 평을 써 놓았다.
"<작은책>, 작지만 정말 좋아요. 카멜레온 같은 책이지요. 여름엔 (속)시원하게, 겨울엔 따스하게…"
- 8월 혁신호를 살펴보면 이전 <작은책>과 조금은 성격이 바뀐 것 같습니다만.
"전태일 열사가 죽기 전에 자기 옆에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아요. 맨
처음에는 <작은책>이 바로 그런 대학생 친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노동자들이 바라는 대학생 친구가 아니라, 대학생들이 바라는
노동자 친구로 변했더군요. 그러면서 동시에 구독자 수도 많이 떨어지고. <작은책>과
크기와 가격이 비슷한 어떤 책은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앞당기기보다는
현재 이 세상에서라도 마음의 평화를 찾자는 글들이 많거든요.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이 봐요. <작은책>이 일하는 사람들이 기를 펴고, 따뜻한 세상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고, 꼭 읽어야 할 내용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할 작정입니다."
- 앞으로 <작은책>에 어떤 내용을 담아낼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예전에 권정생 선생님이 좋은 책, 좋은 글이라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하신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읽고 나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글이 좋은 글, 좋은 책이라고
말입니다. <작은책>에 실린 작은 꼭지 글이나 큰 꼭지 글 모두 읽고 나서 멈칫할 수 있는 그런 글들을 싣고 싶습니다. 옛글이나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좋은 글들을 추려서 실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같이 읽고 싶은 좋은
글들을 <작은책>으로 많이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은책>의 경쟁매체를 어디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선의의 경쟁 매체로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 20만부 정도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성격은 다르지만 <작은책>이 100만부 정도 팔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욕심이 너무 큰가요?"
"인간관계가 참 힘들다"
- 8년된 변산 공동체 운영은 어떤가요. 공동체가 안정되는 데 30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계획대로 운영되고 있습니까.
"어떤 부분은 계획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생각 보다 더디게 일이
진행됩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최소 30년 정도를 안정화 기간으로 잡았는데,
큰 차질은 없을 것 같습니다."
- '변산 공동체' 운영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어려운 점은 인간관계입니다. 사람은 생명체기 때문에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더불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있어서 더불어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불어 사는 힘을 기를 길이 까마득합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경쟁만을 가르치고, 마을 공동체는 무너지고. 아이들에게 협동해라,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더불어 살아야 하고, 실제로 다른 생명체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공생과 상생이
필요하죠. 어른들에게 공동체가 지옥이지만 아이들에게 공동체는 천국입니다. 일 때문에 힘든 거야, 몸으로 때우니까 상관없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아요.
예전에는 제가 꽤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냇가에서 학생들과 술도 마시고, 씨름도 하고. 얼굴을 붉혀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나 생각하면,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공동체 생활에서는 스쳐 지나갈 수 없잖아요. 24시간 만나야 하니까. 실제로 도시에서 살면서 접촉면적을 최대 줄이는 것을 미덕으로 살았는데, 접촉면을 늘리려니 힘들지요.
도시에 살면서 사람들 마음이 바늘 끝처럼 바뀌잖아요. 압력은 강도에 비례하고, 접촉면적에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바늘 끝처럼 돼서는 빨리 끌어안으려고 하니, 서로 찌르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면 상처를 주고.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떠나는 사람은 홀가분한데, 남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되는 거죠."
- 요즘도 '변산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까
"많이 있습니다. 지금 50명 정도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일단은 함께 살아보자고 합니다.
살 수 있는지, 없는지 1년을 지내보고 판단하자고 하죠. 1년 지나면 예비식구가 되고 3년이 지나면 식구가 됩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공동체에 내놓겠다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적극 만류합니다. 한 10년쯤 후에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수도원에서도 종신 서원을 하는데 10년은 있어야 하니까."
- '변산 공동체' 생활과 <작은책> 편집장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농민들이 도시 빈민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80년대까지는 그래도 도시노동자들에 비해 나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엥겔 지수가 서구에서는 문화의 지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농민 착취지수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노동자들 연봉 3000-4000만원 벌면서, 자동차 타고 주말에는 외식하지 않습니까. 그 외식비면 농민들 한 달 식량비입니다. 그런데 농산물 값 조금만 오르면 기절할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도시와 농촌간의 불평등거래가 심화돼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공산품 가격은 오르기 때문에 농민들은 주곡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금작물 농사를 하게 되고 결국은 빚더미에 오릅니다.
지금 농민들은 밑바닥에 있습니다. 저는 지금 노동운동이 참 걱정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농민들과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죠. 러시아, 중국, 베트남의 예에서도 드러나듯이 도시 지식인들만의 운동은 실패합니다. 농민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농민들이 들고 일어서면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8년 동안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느꼈던 이러한 경험들을 <작은책>에 반영할 생각입니다."
그는 8월호 <작은책>을 만들면서 식은땀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날씨가 더워서이기도
했겠지만 새롭게 변한 <작은책>을 과연 독자들이 어떻게 봐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구병씨가 편집장을 맡았다는 소식이 조금씩 알려지자 벌써 주변에서는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군사독재시절, 그래도 올곧은 목소리를 냈던 <뿌리깊은나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윤구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일지 모르겠다.
"예순이 다 된, 이제 폐기처분돼야 할 제가 까마득한 옛날 잡지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불쑥 편집장을 맡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제 특기인 시다바리 정신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주변에 의식 투철하고, 일 잘하는 편집자 구한다고 광고 좀 꼭 해주십시오."
윤구병씨는 괜찮은 편집자가 나타날 때까지 딱 6개월만 편집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편집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특명을 수행해야 한다. '<작은책>을 세상을
따뜻하고 살 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자'는.
<작은책>과 관련된 문의는 02)323-5391로 하면 된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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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님을 좋으면
이오덕 선생님 글도 보세요
새로나온 <작은책>을 두고
홈페이지 게시판이 어지럽더군요
이번 혁신호를 화장실에 놓고
일볼 때마다^^; 읽습니다만
일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글쓰기가
더 필요한 시대 같습니다.
김산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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