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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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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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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13:1-3)
1 감옥에 갇히고 능욕을 당하는 이유
바울은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있었다. 히브리서는 마치 자신도 바울과 함께 갇혀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린 바울과 예슈아의 몸으로서 한몸이기 때문이다. 한몸으로서 우린 고통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수고를 넘치게 했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아 고생을 했다는 것이고, 감옥에도 자주 갇히고 측량할 수 없이 매를 맞았고 자주 죽을 고비를 넘겼고 39대를 5번이나 맞았으며 3번은 몽둥이로 맞고 돌아도 맞아 거의 죽기직전 까지 갔었다." 이렇게 바울은 환란과 고난을 많이 당했지만 자신도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고 있다(고후11:23-25).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11:23-25)
우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많은 고난을 받은 사람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바울이 정말 신실한 사역자일까? 어쩌면 과거에 지은 죄가 많아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아닐까? 저런 고생을 하지 않는 사역자들은 바울같은 죄를 짓지 않았고 바울보다는 나아서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바울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면 자신은 더욱 그리스도의 사역자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그들보다 부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아는 교사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누가 보아도 훌륭한 교사이다. 그런데 무명한 교사가 오더니 억울해 하면서 "나는 저사람보다 더욱 교사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뜻은 무엇이겠는가? 저 사람이 교사인 것이 확실하다면 자신은 더욱 교사이므로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약해지고, 능욕을 당하고 궁핌에 처하고 박해를 당하고 곤고한 상황에 처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강함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즉 무명한 자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도들보다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서 인정하지만 당시 바울은 스스로를 변호해야 할 만큼 무시와 멸시를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유는 그가 많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이다. 욥도 고난을 당하자 친구들이 욥에게 숨겨진 죄가 있을거라고 비난한 것과 같다.
우리는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못한 자라서 저런 취급을 당한다고 여길 수 있으나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고 심지어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왜 그럴까? 바울은 그가 당하는 고난을 심지어 예슈아께서도 당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예슈아께서 죄가 있어 고난을 통해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슈아의 고난은 우리들을 대신한 것이었다(사53:3-5).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3-5)
그러면 왜 죄도 없는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걸까? 이유는 예슈아께서도 약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여호와께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예슈아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즉 예슈아의 약함이 여호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의 약함이 강함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그때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이기 때문이다. 또한, 약할수록 강해진다는 것은 여호와의 법을 세우기 위해(당시 사람의 전통과 여호와의 법의 싸움이었으므로 막7:8) 감옥에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매를 맞는 것, 돌에 맞는 것,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 등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타협하지 않으므로여호와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교자들이 약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죽이는 자보다 약하기 때문에 죽지만 우린 그들을 승리자라고 보른다. 왜냐하면 결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위협에도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약함이 여호와의 강함이 되는 것이고 그분의 능력으로 이런 자들을 다시 부활시키시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도구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성도가 있다면 우린 쉽게 그가 그럴만 해서 당하는 고통이라고 비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솔직히 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알아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검증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상이나 꿈, 느낌으로 두번 죽이지 말고 그와 함께 갇힌 몸인것처럼 돌에 맞는 것 처럼 매를 수없이 맞는 것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고후12:10,11 13:4).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12:10,11 13:4).
2 우리는 갇힌 자와 한 몸이다
대한민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있다. 두개의 나라인가? 아니다. 한 국가이지만 분단되어 있을 뿐이다. 우린 하나이다. 북한 사람도 대한 민국 국민이다.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에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김정은 체제 아래에서 태어났으면 우린 다이어트를 평생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00만이 굶어 죽은 북한에서 미쳐서 여기 저기 널려있는 시체를 먹기까지 하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인가? 대전시 인구도 150만이 안되는데 대전에 있는 사람이 모두 굶어죽어 길에 나뒹굴고 있다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수도가 나오지 않는 아파트는 양호하다. 재수가 없으면 정치범 수용소에서 매일 맞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강제노동하고 벌레 잡아 먹으며 살아야 한다. 그나마 운이 좋아 살려고 도망치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고 중국으로 넘어가면 인신매매나 장기매매로 팔린다. 이런 끔찍한 일이 차로 몇시간만 가면 그곳에서는 현실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어야 하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않으려고 하지 마라. 그러고선 몰랐다고 말하지 마라 하나님은 알고 있다. 행위대로 그대로 갚아주겠다(잠24:11,12)." 그러나 우린 얼마나 모른척하며 살고 있는가? 심지어 문정부 때는 탈북한 어민을 강제로 북송스켰고 그는 결국 고문을 당하다 처형됬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김대중 전대통령은 햇빛 정책으로 김정은 체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해주었고 그것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노벨 평화상 감이겠는가? 그냥 공범이 아닌가? 그래서 북한 어린이 사진을 찍어 공유한 미국 의사는 노벨 평화상을 주겠다고 하는 제의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벨 평화상을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거라면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계속 북한을 외면하면 결국 우리가 이렇게 되어 온 세계로 부터 외면당할 것입니다. 우린 그들을 구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북한에 갇힌 사람들과 한몸이라 생각한다면 우린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굶주림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을 먹일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먹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 석유와 가스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북한 주민을 먹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하여 그들과 함께 통일 한국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미 망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한다면 그들에게는 절망이요 우리에게도 절망이다. 그러므로 모두 통일을 말하나 마땅히 자유민주주의 통일해야 한다. 그들의 절망이 우리의 절망이기 때문에 우린 더더욱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잠24:11,12).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24:11,12)
3 진리로 거짓없이 사랑하라
히브리서는 형제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린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세상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수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있다. 세상에는 일반적인 사랑뿐 아니라 동성간의 사랑, 동물과의 사랑, 물건과의 사랑, 자동차와의 사랑, 심지어 근친 상간에 소아성애까지 각양 각색의 말도 안돼는 사랑이 판을 치고 있다. 또한 동성애를 수용하는 사람들과 교회는 오히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과연 사랑이 없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인가? 사랑이 없어서 동성애자들을 수용하고 감싸주지 못하는 것인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린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율법은 사랑인가? 여호와의 법은 사랑인가? 율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므로 당연히 율법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 율법인 것이다. 그러면 동성애는 사랑이 아닌가? 율법으로 보면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라 죽여야하는 죄악이다(레20:13). 그 말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목회자로 세운다는 것은 여호와께 도전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돼는 일이라는 것이다(고전6:9,10).
그러면 저들이 말하는 사랑은 뭘까? 같은 단어이지만 개념이 다르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죽을 죄로 정하셨지만 세상은 사랑이라고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해도 성경적으로 해야 생명이 되고 믿어도 성경적으로 믿어야 생명이 되고 하나님도 성경적으로 알아야 생명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썩지 아니할 씨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벧전1:22,23). 왜냐하면 말씀이 곧 여호와시고 여호와는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은 성경을 통해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래서 율법을 확인하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는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1:22,23)
#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13:4)
4 결혼은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최초의 결혼은 애덴에서 아담과 하와일 것이다. 부부는 남자와 여자이고 이것이 창조질서이다. 이렇게 부부가 만나 거룩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왜 여호와께서 아담에게 한명의 아내를 창조하셨을까? 아내가 두명? 세명? 혹은 72명? 솔로몬처럼 1000명의 아내를 창조하시면 아담은 1000배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 말라기 선지자는 거룩한 자녀를 위해 한명만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말2: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2:15)
거룩한 부부가 거룩한 가정이 되고 거룩한 자녀가 양육되며 이들이 모여 거룩한 공동체가 되고 더 나아가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을 해체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고 반국가세력이 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부부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 동성애자들이 하는 일이다. 음란한 부부를 만들어 음란한 자녀를 키우고 음란한 공동체와 나라를 만들면 그들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나름의 욕망을 위해 이런 일을 하지만 결국 사단의 전략을 위해 쓰임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결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결국 거룩한 나라를 세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근간이 되는 것이다. 거룩한 자녀가 자라기 위해 거룩한 환경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결혼을 지키는 것, 침소를 더럽히지 않는 것 그리고 배우자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3:5)
5. 자족하는 것이 능력이다
앞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함을 이야기 했다. 그 말은 전쟁을 위해 재정을 손해보거나 가족이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목숨에 위협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싸워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진 돈을 만족하지 못하면 어찌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이들에게 의를 위해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건다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단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래서 매수되고 미혹되어 재판을 굽게 하고 의로운 자를 억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전쟁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자족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든, 배가 부르든, 궁핍하든, 풍부하든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고백했다. 이 말은 어떤 상황이라도 거룩함을 위해 전쟁하는데 걸림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우리를 강하게 단련하시기 때문에 돈에 매수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우린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전쟁에 있어서는 어떤 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능력은 바로 자족하는 능력을 말한다. 바울은 그 능력을 위해 훈련받았고 그래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이다(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1-13)
#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13:6)
6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말하자
위선자이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공의를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셀 수없이 맞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길 때 우리에게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 왜냐하면 고통을 주는 자들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종교계 지도자들이며 실세가 되어 나라를 움직이고 있었다. 유대 사회는 율법으로 통치하는 신정일치 사회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은 정치 권력도 가진 자들이었다. 즉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위선자들에 의해 장악되었을 때 의로운 자들이 설 자리는 없다. 거짓말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된 이상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것은 최악의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담대함이고 용감함이다. 우리는 어떤 탄압과 억압과 우겨쌈을 당해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이 협박하고 위협해서 공포스럽게 해도 우린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악한 자들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감함이다. 물론 이들은 우리의 생명을 가져갈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영생을 빼앗을 수는 없다(마10:28). 심지어 그들이 가져간 생명은 더욱 큰 상급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뿐이고 더 나은 부활을 가져다 줄 것이다(히11:35). 그러니 그들의 탄압은 우리에게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히11:35)
#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7,8)
7 결과를 보고 믿음을 본받으라
참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당시 바울은 자주 감옥에 갇혔고 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핍박을 당했다. 또한 과거 많은 선지자들도 순교했으며 가까이는 150년 전에 안티오코스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순교했다. 심지어 얼마전 예슈아께서 순교하셨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쳐 주고 말씀으로 다스리던 자들의 행실의 결과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 행실의 결과는 결국 순교인데 그들을 본받으라는 말인가?! 우선 행실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이다. 그리고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주의깊게 보라고 말한다. 물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리더쉽 가장 대표적인 예슈아의 리더쉽, 예슈아 같은 믿음의 선진들을 말하는 것이다.
위선자의 삶은 거짓, 교만, 이기심, 음란, 탐욕, 시기, 질투, 게으름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결과는 현재 부유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말씀도 깨닫지 못하는 껍데기만 리더, 종교인일 것이다. 반면 예슈아와 같은 삶은 사랑, 용서, 절대적인 순종, 진실, 공의, 생명의말, 감사, 겸손, 충성 등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 리더쉽, 죽지 않는 영향력이다. 그 거룩함의 영향력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 사람은 죽었으나 그 영향력은 오히려 커진다. 그래서 살아있는 영웅보다 죽은 영웅이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산자의 하나님이시고 예슈아와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을 통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언제나 거짓과 싸우기 때문이고 진리는 영원히 동일하기 때문이다(마22:32).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22:31,32)
8 인과응보를 통해 배운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를 법으로 정하셨다. 그래서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 즉 현세의 축복과 내세의 축복 모두를 받기 원하면 순종하면 된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즉 공의가 없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현세에도 저주를 받고 내세에도 저주를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정하셨을까? 그냥 악을 행해도 적당히 잘되게 해주시고 그냥 죽은 후에 지옥에 보내시면 안될까? 그 이유는 자라나는 세대가 이것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만약 악한 자들이나 선한 자들이나 모두 축복을 받고 잘 산다면 선을 행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재판관을 두시고 나라를 세우셔서 악한 자들이 처벌 받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자가 처벌을 받고 죽으면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창조의 원리인 토라를 통해 사람들은 교훈을 얻고 거짓말을 멀리하고 죄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삶 가운데 인과응보에 따른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마16:27). 이것을 통해 거룩한 삶을 본받을 수 있다. 다만 나라가 너무 부패하면 의로운 자들의 헌신, 희생, 순교를 통해 다시 한번 기회를 얻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적인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16:27)
9 북한은 이단 사이비다
북한 주민들이 미쳐서 자녀를 잡아먹는 것도 불순종의 결과이다. 바로 체제의 불법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자신들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미혹되었고 우상 숭배에 가담하고 있다. 많은 자들이 대항하여 고통을 당하지만 여전히 미혹된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 무너져야 소망이 있다. 서로 서로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할 필요도 없다. 최대의 이단 집단이 북한에 있다. 종북 세력들은 모두 이단 신도들인 것이다. 이제 그 모든 불순종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신28:57-66).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신28:57-59 65-66)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첫댓글 바울이 주안에 갇혔다고 하지요. 즉 바울은 말씀안을 말하고 있는겁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들어거는 감옥이 아니지요. 님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