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가는 길
가만히 귀 대어 들어 보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소리
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요사이 여기 봉평은 아직도 밤에는 영하 7,8도로 내려 가지만 낮에는 영상 2,3도로 올라가
흥정 계곡의 꽝꽝 얼은 계곡물도 이제 낮이면 얼음장 밑으로 조용히 흐르기 시작 한다.
여기 저기서 골 골 골 골 꼬르륵 꼭 꼭 꼴롱 꼴롱 하는 소리를 내며
얼음장 밑 조그만 바위주변이 오케스트라의 한 파트인양
제 각각 자기들의 음들을 내기 시작한다.
정말 우리들이 국민학교 때 부른 저 동요처럼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나 보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진짜 얼음장 밑의 물 흐르는 소리를 가까운 곳 어디에서 건,
얼음장 위에 귀를 대기만 하면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조금 게으르긴 하지만 봄 ?騈? 따스하게 내려 쬐니
나는 갑자기 원래 바지런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먼지 털이개를 들고,
겨우내 책장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청소를 시작 한다.
아직도 공기는 차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봄빛을 거실 가득히 받아들이며.
그러다가 이것 저것 책을 빼 보기도 하고 거꾸로 놓인 책도 바로 놓는다.
자그마한 딸의 옛날 스케치 북을 하나 꺼내 들추어 보다가 한 스케치에 눈길이 머믄다.
그 그림 안에는 얼기 설기 나뭇가지로 만들어 놓은 싸릿 문도 보이고
마당 한가운데 고인 물 웅덩이에서 대 여섯 살 난 아이 들이
그 웅덩이 물에 들어가 물을 튀기며 장난 치는 모습도 그려있다.
마당 안쪽으로는 양쪽으로 똑 같이 줄지어 있는 조그만 방들이 있고
거기에 하나씩 달려 있는 격자 무늬 방문 옆에 아이들의 얼굴이 반 만 보이는 모습도 있고
얼굴을 완전히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도 그려 있다.
그리고 또 그 마당 옆 외양간 같은 곳에서도 한 아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있고,
그리고 아기를 업은 여자아이의 모습도 있고.
이 그림을 보니까 이 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나의 머리 속에서도 그림 같이 지나간다.
한 이십 년 전쯤, 모처럼 휴가를 얻은 남편과 중학교에 다니던 딸도 방학을 맞아
함께 강원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의 코스는 서울 청량리에서 정선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그 곳 정선에서 오대 천을 따라 진부까지 걸어가며 캠핑을 하는 이박삼일의 여정이었다.
정선에서 진부까지의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아름다운 계곡 길이
길부터 포장을 시작 하며 개발을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아름다움이 더 이상 망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빨리 가 보아야 개발 전의 천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심 반 걱정 반으로 일정을 그리로 잡았다.
때는 한 여름이었고 다들 반바지에, 텐트에,
며칠 먹을 것을 잔뜩 넣은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여행 길에 올랐다.
첫날 밤은 오대 천 옆의 조그만 폭포가 있는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별들과 함께 즐거운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새벽 일찍부터 날씨가 꾸물꾸물 하더니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 했다.
얼른 텐트를 거두어 싸고 다시 오대 천을 따라 걷기 시작 했다.
금방 빗줄기는 굵어졌다.
준비한 비옷을 걸치고 비 오는 오대 천을 옆에 끼고
얼마 있으면 아스팔트 포장을 하려는지 자갈 들을 고르게 깔아 놓은
오대 천 정선 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었다.
아무도 없는, 비 오는 환상적인 계곡 길을 비를 맞으며 걸어 본 일이 있는가?
지금은 포장이 잘되어 있고 하나의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되어
포장 하기 전보다 많이 망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정선 길이다.
그러나 그때의 그 길은 지금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지 아름다웠었다.
굵어진 비줄기로 인하여 점점 불어난 계곡물은
커다란 바위를 만나 부딪치며 멋진 물 안개를 피워
모든 풍광이 비와 섞여 온통 계곡이 물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게 하고,
바로 옆의 깎아 지른 산들은 비에 젖어,
축축하고 선명하게 자기들의 색깔들을 유감없이 뿜어내고 있었고
물 안개와 장대비가 뿜어주는 신선함과 차가움이 우리를 한없는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아무도 없는 비포장의 계곡 길을 우리 셋이 장대 비를 맞으며
계곡 물을 옆구리에 끼고 한 없이 한 없이 걸었다.
장대비 속에서 무용지물인 비옷을 벗고, 젖은 옷도 말리고,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비가 들이 치지 않는 어떤 높은 다리 밑에서 잠시 쉬었다.
버너를 켜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끈한 밥과 찌개를 맛있게 해 먹었다.
맛이 없어도 맛있게 느껴 졌으리라.
식사 후 맛있는 커피와 함께 잠깐 쉬고는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 했다.
두 시간 이상 걷다 지치기 시작 할 때 우리가 온 길 저쪽 정선 쪽에서
비속을 헤치며 조그만 트럭 한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무조건 세웠다.
그 차는 진부까지는 가지 않고 그 한참 전에 있는 마을까지 간다 해서
덮개 없는 차 뒤 칸에 셋이 올라 탔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을 달리는 차 바닥에 앉아 가긴 하지만
비를 맞긴 마찬가지고
자갈 길을 하도 덜컹거리고 가니
엉덩이가 얼얼 해서
그 좋은 계곡 풍경도 눈에 하나도 들어 오지 않는다.
버스 정류소가 있는 조그만 마을이 있는 길 위에 우리를 내려 놓고
조그만 트럭은 가 버렸다. 길 옆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 앞으로 갔다.
지나다니는 차도 손님도 없고 단지 조그만 마을이 이용하는 구멍가게인지
보잘것없는 물건을 조금 진열 해 놓은 한 평 정도의 구멍 가게였다.
열어 놓은 가게의 유리창들은 오 가는 차가 흙탕물을 튀겨서
유리가 원래 거기에 있었었는지 모를 정도로 회색 빛이 되 있었고,
아니면 그것이 유리가 아니라 흙 바른 종이를 끼워 놓은 것이었는지 분간이 안되게 지저분했다.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무료하게 하품하며 앉아 있던 가게 주인이
그 옆의 싸리 문을 가리키며 안으로 들어가 옷들을 말리라 한다.
진부 가는 버스는 두 시간 후에야 온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안마당에 들어가서 그 집의 좁은 툇마루에 앉았다.
타올로 머리와 얼굴을 닦고 배낭에 남아 있는 마른 옷들로 갈아 입었다.
일을 모두 끝내고 툇마루 끝에 앉아 마당 쪽을 바라보니
그제서야 그 곳의 구조가 우리들 시야에 들어 왔다.
툇마루 앞쪽으로 커다란 마당이 있고 그 맞은 편으로는 조그맣고 낡은
아무렇게나 지은, 슬레트 지붕의 허름한 방을 하나씩 가진 집 열 두어 채가
두 채씩 방문을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집 가운데로는 안마당과 죽 연결된 흙 바닥 이었다.
비는 아직도 조금씩 오고 있고 집마다 하나씩 붙어 있는 창호지를 바른 조그만 방문에는
얼핏 어린 아이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가끔씩 흘끔거리며 우리를 보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방으로 숨어버리곤 한다.
다섯 살? 여섯 살?
우리 셋은 그 집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두 시간 후에나 올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조금씩 비가 그치기 시작 했다.
마당에 있는 웅덩이들에는 물이 고인 곳도 있었고
마당 한 구석은 소 외양간 인 듯 나무판자를 댄 문이 엉성하게 걸쳐 있었고
그 안에는 짚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깔려 있었다.
비가 완전히 그치자 마자 네 댓 살쯤 된 남자 아이 하나가
구멍이 여기저기 뚫린 지저분한 웃도리를 입고 아랫도리는 벗은 채
맨발로 아장아장 걸어 나오더니 물 웅덩이에 들어가
찰방찰방 물장난을 치기 시작 한다.
조금 있더니 또 한 놈이 나오더니 또 똑 같이 물장난을 친다.
그리곤 저 쪽 방에서 박 수근의 그림에서나 본듯한 여덟 아홉쯤 되는 여자아이가
등에 아기를 업고 띠 하나를 아기와 함께 둘둘 돌려 질끈 동여매고 나오며
우리를 잠깐 씩 흘끔거린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 하는데
서너 댓 살부터 아이를 등에 업은 아이가 제일 큰 아이 인 듯,
한 열 몇 명쯤 되는 아이들이 마당으로 나오며 서로 장난들을 치기 시작 한다.
우리를 가끔씩 쳐다 보면서.
이 재미있고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면서 딸과 나는 똑같이 서로 얼굴을 쳐다 보았다.
딸은 얼른 조그만 스케치 북을 꺼내더니 쓱쓱 이 광경을 그리기 시작 한다.
마당의 아이들과 방에서 이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할머니들까지 그려낸다.
똘똘하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가 아이들이 물장난 치는 것을 보며
슬금슬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아이 옆에까지 왔다.
“몇 학년?”
갑자기 묻는 나의 말에 부끄러운 듯 몸을 비비 꼰다.
“삼 학년 이래요.”
조금 떨어져 있던 사내아이가 씩씩하게 말해 버린다.
“이름은?”
“영미 래요. 우리 학교서 반장 이드래요”
또 그 사내아이가 끼어든다.
“영미야, 부모님들은?”
“모두 광산에 일 나가셨어요.”
이렇게 영미와 얘기 하는 동안 아이들은 하나씩 둘씩 우리 주위에 모여든다.
“네 이름은?”
이번에는 영미 대신 끼어들며 다 말해버린 사내아이에게 물으니
막상 자기는 비비 꼬며 얘기를 못한다.
“영철 이드래요.”
이번에는 복수 하듯이 영미가 말하고는 영철이를 향해 혀를 빼끔 내민다.
아기를 업은 순임이, 순임이 옆집 용이 등등 이름을 조금씩 알아 갔다.
“영미야, 보통 모여서 뭣들 하고 놀아?”
“그냥이요. 숨바꼭질도하고 소꿉장난들도 하고……”
이제 서슴없이 강원도 사투리 억양으로 또박또박 이야기 한다.
모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제대로 갖추어 입은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웃통을 입지 않은 아이에서부터
아버지의 헌 옷을 입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큰 옷을 입은 아이들까지.
옷에 구멍들이 여기 저기 뚫려 있는 것을 입은 아이도 있었고
여자 아이들이 입은 치마는 허리에 고무줄만 끼어 넣어 그냥 입은 것 같았다.
머리들은 단발머리도 있고 땋은 머리들도 있었고
부스스한 빗지 않은 머리로 있는 아이도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고양이 세수를 했는지 코 주변 얼굴은 깨끗한데
목에는 때 목걸이 한 애들도 꽤 많이 있었다.
대 여섯 살 된 아이들은 누런 코도 흘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애들의 눈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맑고 초롱초롱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자꾸 물어보는 우리가 재미있다고 생각들을 하는지
새까만 눈 들은 호기심 어린 빛을 가득 담고 우리를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정말 눈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한 이십 명의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 들었으니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가 가만 있을 리가 없지!
“얘들아, 누가 노래 잘 하나 우리 노래 자랑 할까? 누가 먼저 할래?”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큰 아이들은 모두 집 있는 쪽으로 달려가서
신발들을 흩뿌리며 자기들 방으로 숨어버린다.
작은 아이들도 큰 형과 누나들을 따라 이유도 모르고 같이 방으로들 달려간다.
순식간에 두 세 살짜리 아이들만 남기고 없어진 텅 빈 마당과는 달리
자기집의 열린 방문에는 살짝 내다보는 눈들이 다 우리를 향해 있다.
영미가 쑥스러웠던지 신발을 신고 느릿느릿 다시 걸어 나온다.
“영미야, ‘나의 살던 고향’ 부를 줄 알아? 3학년이니까 알겠네?”
“네.”
‘너부터 해 볼래?”
마루 밑에 놓여있는 몽당 빗자루를 하나 들어 영미에게 주며
“이게 마이크다.”
무심코 받아 들긴 했지만 영미는 노래를 시작 하지 못한다.
영미를 내 옆 가까이 오게 하고 나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딸도 같이 따라 불렀다.
조금 있다가 똑똑한 영미도 조그맣게 따라 부르기 시작 했다.
방으로 도망간 또래들의 몸들이 반쯤 문 밖으로 나왔다.
다섯 살쯤 먹은 사내아이 하나가 따따따따 하면서 전혀 맞지 않는 음정으로 따라 부른다.
그걸 보고 형아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리곤 방에서 한 발짝씩 나와서는 신발들을 찾아서 신기 시작 한다.
목소리가 조금은 커진 영미의 노래가 끝나자
“다음 차례는 누굴까요?”
마당을 반쯤 나왔던 아이들이 또 한번 집으로 후다닥 들어가 숨는다.
아기 업은 순임이가 비비 꼬며 어린 아기를 한번 추스르고 앞으로 나온다.
마이크 아니 몽당 빗자루를 순임이 에게 주고
“이름은?”
“순임이드래요”
“뒤에 업은 아기는 누구지요?”
“동생”
뒤에 업힌 아기가 순임이의 등뒤에서 무엇이 좋은지
두 다리와 두 손을 흔들며 들썩들썩 한다.
그 바람에 순임이의 작은 몸이 기우뚱 한다.
순임이는 몽당 빗자루를 놓고 두 손을 뒤로 하고 아기를 추스른다..
“무슨 노래 하시겠어요?”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요.”
“그 노래도 알아요? 그럼 시작”
‘시작’ 소리가 끝나자 마자 동생 업은 순임이가 손을 뒤로 하여 아기를 받친 채
엄마에게서 배운 듯이 아기를 재우는 것처럼 몸을 옆으로 왔다 갔다 하며 노래를 부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래가 어쩐지 슬픈듯이 조용한 마당에 울려 퍼진다.
아이들은 이제 신발을 제대로 신고 조금씩 앞으로 나오고 있다.
순이의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여기저기서 친다.
“참 잘 불렀죠? 그럼 더 큰 박수를 쳐 줘야죠.”
모두 신나게 박수들을 치자 어린 아이들도 물을 철벅대며 박수들을 친다.
“다음은?”
“영철이요” 하며 얼른 영철이가 몽당 빗자루를 든다.
방에서 다 나온 아이들이 이제는 영철이 둘레를 빙 둘러선다.
영철이는 음정은 안 맞지만 용감하고 씩씩하게 노래를 한다.
“다음은?”
“저요 저요.”
아이들이 서로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든다.
그래서 모두 다같이 제일 쉬운, 작은 아이들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산 토끼’며 ‘자전거’ 등을 합창을 시켰다.
이십 여명의 크고 작은 아이들이 마음껏 목청을 높여서 하는 합창은 장관이었다.
노래 음절 사이사이에 튀어 나오는 서 너 살짜리들의 ‘아’ 나 ‘으’ 같은 이상한 소리는
모두를 깔깔대며 웃게 만들었고
노래하며 마당의 고인 물을 신이 나서 맨발로 철석 대는 꼬마 애들의 발장구는
박자에 맞추어 같이 장단을 맞추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후딱 지나 어느 듯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다.
그 큰 합창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내 한쪽에서 졸고 있던 남편을 깨우고
우리는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서로 서로 딸과 나의 손을 먼저 잡으려고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딸과 나는 그리고 남편도 아이들을 한 아이씩 꼬옥 꼬옥 안아 주었다.
이제는 방안에 있던 할머니들도 많이 밖으로 나오셨다.
버스가 떠나기 시작 하자
아이들은 길가에까지 나와서 버스를 따라가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 속에 담아 있는 맑은 눈빛에서
이 아이들이 재미없이 보내는 일상에서 오늘 하루쯤 벗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버스 뒷좌석으로 가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도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그 곳을 떠나기 전 영미에게 물어서 받은 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영미도 곧바로 답장을 보내 왔다.
그곳 아이들이 두고두고, 노래자랑 하던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 때를 흉내 내서 노래자랑을 자기들끼리 해보려 했지만
사내 애들이 장난을 쳐서 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어떤 때는 뒷산에서 캤다는 귀한 산 더덕을
영미 엄마가 바쁜 중에도 산 나물과 함께 부쳐 주는 일 도 있었다.
편지가 끊어지고 몇 년 후에, 포장이 잘 된 그 길을 차로 가 보았다.
여기쯤인가 하고 찾아보았지만 꿈 속에 나왔다 사라진 어느 장소 와 이야기처럼,
그 마을도, 버스정류소도, 구멍가게도, 낡은 스레트 지붕도 또 아이들도 간데 온데 없어지고
그 곳에는 잡풀만 하나 가득 돋아 나 있었다.
길을 내면서 마을 전체가 없어 졌는지, 혹은
내가 잠시 무엇에 홀렸었나 할 정도로 그 곳은 전혀 낯 선 딴 들판 이었다.
그래서 편지도 끊어졌었나 보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요사이 아름다운 이 길을 자주 드라이브 하면서 보면
곳곳에 지어진 현대식 펜숀과 계곡에서 레프팅 한다는 기다란 현수막들과
또 볼품없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음식점들 때문에
장대 비 속에서 보았던 옛 풍광은 물론, 옛 스럽고 한적한 정취는 많이 사라졌다.
그때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진 것처럼.
그 아이들이 이제는 모두 다 어른이 되어있는 나이 일 텐데......
다 어디서 무엇들을 하며 살아 가고 있는지 가끔씩 궁금하다.
영미, 영철이, 순임이 그리고 순임이 등에 업혔던 순임이 동생 까지도……
그렇지만 이렇게 강원도 진부에서 정선 가는 길의 풍광은
나의 머리 속에
옛날 길이나 지금 길이나 모두 다 아름답게 남아 있다.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라스 베가스 썬 부사장님 누님의 글입니다.
陽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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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2.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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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강원도 놀러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산속의 제법 큰 다리를 건너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 그 비를 모두 맞으면서 데이트 하곤 근처 가게에서 쉬었었는데. (한백아 여기서 엄마의 남자친구란 네 아빠가 아니란다.)
한백아~ 믿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