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한참 안 쓰다가 얼마전에 두발문제가 하도 시끄러워서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쓴 글입니다. 참고로 읽어보세요.
지금은 아무도 관심없겠지만 그래도 그 옛날 생각하면서 한번 읽어보세요. ^^
그리고 제 글은 오마이뉴스나 민중의소리에 가서 검색어로 제 이름을 넣어보면 많이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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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머리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그리고 무시당하기도 싫다!
아래 이화득 선생님, 그리고 어느 학생(내가 이 학생을 잘 몰라서 이렇게 썼음), 용산고 관련 정은영 선생님 글 등을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이전부터 시간을 내서 몇 자 적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요즈음에 개인 신상과 관련하여 별로 좋지 못한 일이 있어 마음이 여기에까지 안 왔다가 오늘 시간을 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지원율 빅4’라는 이화여고, 용산고, 명지고, 풍문여고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공립 용산고의 힘? 이 네 학교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학교이고 거의 동료처럼 같이 지내고 있는 교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의 분위기나 특징 등을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화여고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서대문 근처에 있는 학교로 유관순 누나로 대표되는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교사들의 수업시수를 줄이기 위하여 일부러 재단에서 돈을 들여서 강사를 10여 명을 써서 비슷한 학급 규모를 가진 다른 학교보다 교사수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교사들의 수업시수가 적습니다. 교사들의 수업 부담을 덜어주면서 수업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것, 학생들에게 보충수업 등을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는 것, 그리고 결코 학생 두발 등 규제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 것 등이 특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의 민주주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 이 학교는 교사들을 재단이나 교장이 아니라 인사위원회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교과에서 뽑기로 했으며, 더 나아가 교감도 교사들이 교무회의에서 선거를 통하여 추천하도록 한 것입니다.
풍문여고는 우리학교 바로 근처의 안국역에 있는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에 대해서 가지는 자부심이 굉장히 큰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교사들 사이의 협조 관계가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들을 학년 담임 회의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하여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그러면서도 조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사 채용도 거의 교과에서 자율적으로 하여 추천하면 이를 학교에서 존중하는 식으로 하지 결코 교장이나 이사장님이 교사 채용에 직접 간여하지 않습니다. 특히 학생회가 잘 만들어져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학교로, 대표적으로 학생회 예산을 학생회가 자체적으로 편성하여 사용하는 학교입니다. 그리고 4.19나 학생의 날 등 학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날이면 학생회 자체적으로 기념식도 하고 자체 행사도 하는 등 학생회로 대표되는 학생 자치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졸업생들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강한 학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입시 성적도 강북에 있는 학교 중에서 매우 우수한 학교에 속합니다.
명지고는 이전에 명지여고가 따로 있었는데 학교를 리모델링하면서 남녀공학으로 바뀌었고 학교 시설도 굉장히 현대식으로 잘 지어 놓았습니다. 재단 차원에서 경기도에 외국어고등학교를 세우고, 전문대학과 대학을 확장하는 등 학교의 발전에 조직적으로 나서면서 최근에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학교 중의 하나입니다. 공학으로 학교를 바꾸고 학교 규모를 약간 줄이면서 현대적 시설로 완전히 탈바꿈했고, 교사들에게도 학교에서 교재연구와 수업 연구에 따로 연구지원비를 지급하는 등 의욕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보충수업도 교사들이 강좌를 개설하면 학생들이 자기가 듣고 싶은 보충수업을 선택하여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용산고는 앞서 정 선생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매우 엄격하게 하는 학교입니다. 이건 최근에 시작한 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전통(?)처럼 학생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해왔고, 이와 관련하여 가끔 체벌이나 강제이발 등이 문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전통처럼 그것을 결정하였다는 것이고,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실천을 하려고 하는 학교의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서관, 자율학습실 등에 대한 동문회로 대표되는 선배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에 있었던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용산고의 두발 지도 문제에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갈등이 표면화 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 뒤에서 좀더 상술하겠습니다.)
개별 학교들의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나름대로 다 특징이 있는 학교들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 학교의 가장 큰 공통점은 학교 운영에 있어서 교사들의 의견을 학교 차원에서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인사에 있어서도 그렇게, 학생 지도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존중하고 지원해 주려는 태도도 공통된 것입니다. 여기에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의 동의와 참여가 이루어지면 그 학교는 발전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학교 발전은 지체되는 것이라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결코 학교(보통 학교라 하면 학교장이나 이사회를 의미함)에서 내린 결정을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 내리먹임 식으로 강요해서 운영되는 학교들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사들이 2년 전에 제출한 인사위원회 규정 개정안이나 6개월 전에 낸 학생생활규정 개정안을 계속 처리하지 않고 묶어둔 것은 결코 올바른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개별 학교들에 대한 호불호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이런 운영 방식에 대해서 내부에서도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글은 이것이 논점이 아니니 이 얘기는 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두발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학생생활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두발 문제와 생활지도 문제에 대해서 찬반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용산고의 경우가 두발 문제와 대학 입시의 양적 상관 관계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예처럼 쓴 조선일보의 기사는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두발규제로 대표되는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하니까 대학 입학률이 좋아지고 그러니까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아지더라는 것은 잘못된 결론 유추입니다. 이건 기사로서 가치가 없는 잘못된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두발 지도에 대한 학생들과 학부모의 이견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아야 하는데 그런 조사는 전혀 없습니다. 학생 생활지도와 입시율, 그리고 학교 선호도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기사로 쓰려면 용산고뿐 아니라 두발 지도를 매우 엄격하게 하는 비슷한 사례의 학교들을 비교하여 공통된 결론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하는 어떤 다른 학교와의 비교도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두발 규제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 학교 중에서 혹시 학생과 학부모의 선호도가 높거나 대학 입시율이 높은 학교는 없는지 등을 살펴 본 후에 그런 학교가 정말로 없다면 ‘용산고의 힘은 엄격한 생활지도’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건 논리학, 아니 글쓰기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기사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사로써 제대로 된 기사가 아니며, 잘못된 결론입니다.
실제로 용산고 홈페이지를 가 보았습니다.
용산고 홈페이지를 가서 검색어로 두발, 또는 생활지도 같은 것을 입력해 보면 이 학교의 두발 규제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분위기가 어떤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엄격한 두발 규제를 찬성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의견도 있지만 반대로 이를 반대하는 의견도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와는 다르게 활발하게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2007년의 경우 서울대 합격생 중에 재학생은 2~3명으로 결코 두발 규제와 입시율의 직접적인 관계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판단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것 중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도 용고가 좋아 용고에 지원한 학생입니다. 우리 학교 머리가 짧은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머리가 너무 지나치게 짧은것 같습니다. '공부에 집중을 하게 하기 위해서다.'는 취지에서 머리를 깎게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짧은 머리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전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하는데요, 지하철에서는 거의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혼자서 고립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데요, 학원에서의 놀림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라 공부에 집중하기도 다소 힘듭니다. 또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이상해 보일까를 고민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저희들의 의견은 두발의 완전 자유화가 아닙니다. 단지 최소한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소 '완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단순히 '학생'의 의견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한번만 더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때, 친척들을 만날때 정말 창피함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단지 '싫으면 전학가라!'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용고의 발전을 위한 한 의견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명제임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글을 올려봅니다.“
어쩜 우리 학교 학생의 생각이랑 이렇게도 똑같을 수 있을까요? ‘싫으면 전학가라!’는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똑같이 하고 있을까요? ‘두발 자율화가 아니라 최소한 놀림 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소 완화를 하자는 것입니다.’라는 의견까지 어쩜 이리 비슷할까요? 이런 데도 용산고 학생들이 두발 규제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입시율이 좋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까요? 과연 그 조선일보 기자는 용산고에 진짜로 가서 학생들의 반대 의견을 제대로 인터뷰를 했을까요? 아니면 미리 결론을 내려 놓고 거기에 맞는 인터뷰만 발췌하여 끼어 맞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예를 든 김에 심한 두발 규제에 학부모의 의견도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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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머리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2007-05-25 10:29:41, 조회 : 610, 추천 : 65
“우선 남들은 잘 하고있는데 우리 아들만(?) 불만인 것에 잘못 가르친 아버지가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머리 때문에 자퇴를 하고 전학을 가고 불만이 생겨 공부를 멀리하여 점수가 떨어지고 있다면 이는 학생의 기본인 공부를 위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해 주십사하고 글을 올립니다.
머리 때문에 평생의 갈 길이 바뀐다면.....
머리 때문에 잘 커 갈 아이가 삐뚤어 진다면.....
머리 때문에 학교를 가기 싫어한다면......
물론 그까짓 머리 때문에 인생까지야???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머리로 인한 아이들의 마음속 상처는 상상 이상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학교 친구들의 빡빡이 머리라고 놀림을 받으며, 만나는 횟수가 줄어지다 친구를 잃고. 모처럼 가족동반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집에서 먹자고 우깁니다.
학교에서 집에서 "머리 깎어! 머리 깍어!" 소리에 애가 짜증과 괴로움에 시달리며 쪼그라드는 것을 보며 "저건 아닌데..."
조금 이라도 더 길러보려고 7시 이전에 교문 통과를 위하여 밥도 못 먹고 달려가는 아이를 보며 "저건 아닌데..."
더구나 학교에서 걸리면 죽을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많은 친구들 앞에서 아이들의 마음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창피를 당하며 벌을 받고 와선 "에이 - 공부고 뭐고...." 하는 아이를 보며 "저건 아닌데..."
가끔! 학교 앞을 지나며 아이들과 많은 일반인들이 보는 앞에서 엎드려 있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창피할까? 안 보이는데서 벌을 주면 안되나? 하며 "저건 아닌데..."
"다른 학교 아이들같이 많이도 말고 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길게 해 달라고요!" 하는 아이의 머리를 보며 "참! 잛긴 잛구나" 하고 생각 해 봅니다.
학부모님! 그리고 용고 선배님! 그리고 선생님!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의 생각을 우리들이 클 때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공부도 좋지만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든지, 어른 공경을 거역한다든지, 용고 학생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든지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이젠 아무리 전통도 좋지만 두발은 현재보단 조금은 완화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스님머리라고 놀림은 안 받을 정도로 완화를 해야할 것입니다.
용고가 좋아 용고로 왔지만, 젊음의 중요한 시기인 학교 생활에 좋은 추억이 되어야지 용고로 인하여 상처를 받아 평생의 한이 된다면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엄격한 생활지도에 잘 적응하여 원하는 대학에 잘 갔으면 하는 것도 부모의 바램이겠지만 마찬가지로 학교 다니는 동안 두발 문제로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또한 부모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발규제 때문에 오히려 학생이 공부를 방해받지는 않을까하는 노심초사가 똑같은 부모 마음일 수 있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무시하면 그건 학교가 최소한 더 이상 학생들의 인격 수양의 장, 민주주의의 도량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용산고 두발 문제에 대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지만 용산고가 두발 규제 때문에 입시율이 좋다는 식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우리 학교 역시 용산고 못지 않게 두발 규제를 엄격하게 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모르는 학부모나 학생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만약 용산고 학생들이 두발규제 등 학생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해서 선호도가 높다면 우리 학교 역시 그것 때문에 선호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제가 잘못되었으니 결론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성적으로 고교 등급을 매기는 것은 무척 비교육적인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발과 성적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입시율 제고를 목적으로 학생의 두발을 강하게 규제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욱 비교육적이며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봅니다.
두발 길이와 대학 입시율의 상관관계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살면서 구체적으로 그런 데이터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어떤 학술적인 논문도, 구체적인 데이터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막연한 추측, 또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둘 사이에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학생들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평준화에 대한 보수 언론의 근거없는 공격과 비슷합니다. 하향 평준화가 어쩌고 하면서 평준화가 우리 교육을 망치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낮아지게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증거만 많이 있고, 세계적으로도 핀란드와 우리나라와 같이 평준화에 기초를 두고 있는 나라의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훨씬 높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데도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 심지어 일부 교육계 인사들도 맹목적으로 평준화 해체를 외치고, 자립형 사립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잠깐 갔습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생들의 성적을 결정하는 성적변수는 매우 다양합니다.
당연히 학생 변수라고 하여 학생 개개인의 지적 능력이나 노력, 환경 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가장 크지요. 다음으로 학교변수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동일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서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흥미있는 것은 최근에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 강영애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외국어고의 학교변수는 ‘0’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외고를 다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외고를 다니기 때문에 성적이 잘 나와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학생들이 학업 능력이 높기 때문에(=원래 아이들이 똑똑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굳이 외국어고를 가지 않아도 소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학업 성취도가 높아서 소위 좋은 대학에 많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교육비와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매우 재미있는 논문이지요.
제가 이 논문을 인용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학생의 학업 성취도(=성적)를 결정하는 변수는 매우 다양한데 이것을 두발을 비롯한 생활지도에서 찾는 것은 너무나 단순 무식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성적 변수에서 두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장담하건데 ‘0’이라고 봅니다. 혹시 수많은 변수 중에 두발 규제가 그 중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영향이 매우 미미하고, 그 중에는 오히려 두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학업 성취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생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학업 성취도를 이유로 해서 학생들의 두발 규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재미없는 법이론 이야기 조금만 하겠습니다.
harm principle(위해이론), 최소규제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나 윤리시간에 이미 배웠겠지만 복습하는 의미에서 조금만 설명을 하겠습니다. Harm principle(위해이론)이란 공리주의 철학자 J.S Mill의 이론입니다. 핵심만 이야기하자면 “내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반대로 내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된다면 그 자유와 권리는 제한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를 두발에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내가 머리를 지금보다 좀 더 기르는 것이 나를 비롯하여 다른 누구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합니까? 만약 그 어느 누구의 자유와 권리도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머리를 더 길게 하는 할 자유와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이 이론에 대해서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통용되는 법 이론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번째, 최소규제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만약에 우리 헌법이 인정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더라도 그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으며, 그 제한되는 자유의 범위는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백보 양보하여 머리 길이를 제한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강제이발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인정 될 수 없으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제한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우리 나라의 학교 현실에서 두발 규제에 관하여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세 번째로 적법절차의 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보장할 때에는 내용뿐 아니라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그 절차적 정당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이고 자기 결정권의 존중 여부입니다. 어떤 자유와 권리를 제한 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야 하고, 당사자들이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그 결정 과정에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두발 규정을 비롯하여 학생 생활 규정을 개정할 때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하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고 100% 반영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절차적으로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명백하며, 그 법적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최대한 이를 존중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것 역시 명백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두발 규정을 비롯한 학생 생활 규정을 개정할 때 이 원리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요?
우리 학생들도, 교사들도 위의 법적인 관점에서 우리 학교뿐 아니라 우리 나라 학교의 두발 규정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두발 규제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것은 일제 잔제로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십니다. “일제는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제 잔재인 두발 규제는 그렇게 좋아하냐?”고...... 21세기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아직도 학생들의 머리 길이와 모양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나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고, 생각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일제 잔재이자 군사문화의 잔재인 이 두발 문제를 가지고 이런 다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나 학부모, 교사들이 두발 규제가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 역시 제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인권 신장의 역사이고, 평등권 신장의 역사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사람들이 똑같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어서 귀천이 있었습니다. 귀족들에게 노예는 말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신분은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노예보다 중세의 농노가, 중세의 농노보다 현대사회의 노동자가 더 많은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더 많은 인권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고대 사회의 귀족보다 중세사회의 봉건 영주가, 중세사회의 영주보다 현대 사회의 자본가가 가지는 특권이 줄어들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사람들이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입니다. 비록 완벽하게 인간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아니지만 세상은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귀족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외국어고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자립형 사립고라는 학교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두 학교를 한마디로 귀족학교라고 정의합니다. 말이 좋아 국제사회에서의 외국어 영재 육성이지 대한민국의 외국어고가 과연 그런 기능을 하고 있습니까? 외국어고 나와서 법대 가고, 의대가는 것이 현실인데 그게 과연 외국어 특수목적고입니까? 대한민국의 외국어고는 외국어 영재 육성을 위한 특수목적고가 아니라 명문대 입시를 위한 특수목적고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중학교 교육이 망가지고 대학 입시가 망가지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좋은 대학, 좋은 학벌, 그리고 좋은 인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닙니다. 학교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도 있고, 공부 못하는 학생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울려서 잘 살 수 있어야 좋은 학교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여서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좋은 병원이 환자를 가려서 받지 않듯이 좋은 학교 역시 학생을 가려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좋은 병원이 많이 아픈 사람, 조금 아픈 사람 가리지 않고 받아서 안 아프게 해서 보내듯이 좋은 학교 역시 좋은 학생이 오는 학교가 아니라 아무나 와서 나갈 때 웃으면서 나가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적어도 초중등 과정에서 사람을 가려뽑는 외국어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가치가 서로 다른 학생들이 다른 것을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도 있고 공부 못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교에는 말 잘 듣는 학생과 말 잘 안 듣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교에는 머리 길이 신경 쓰는 학생도 있고 머리 길이 신경 안 쓰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학생들이 모두 있는 곳이 학교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곳이 학교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가치를 위하여 다른 것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와 교사는 완벽한 신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학교가 결정하고 학생은 무조건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학생들도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표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학교나 교사와 다르면 그 차이를 설명해주고 설득하려고 해야지 학교의 결정이니 맹목적으로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16세 또는 18세만 되면 선거권을 부여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번에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춘 이유가 이런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교육청에서 온 두발 규제와 체벌에 대한 현황 파악 공문이 각 학교로 온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저는 명확하게 두발규제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두발이든 생활지도이든 입시문제이든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목숨만큼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그 생각을 인정하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합의를 이루려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교사, 학생, 학부모가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결과에 서로가 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견이 있음에도 학교의 방침이다라는 이유로 다른 의견을 묵살하려고 한다면 그 학교의 발전은 없습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이유로 두발 규제를 강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결코 설득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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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정말 동감수준이아니고, 감동에 눈물이 흐릅니다. 왜 이렇게 정당한 논리가 있음에도, 아예 있어서조차안될 '두발규제'가 존재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2007-12-08
한영수 수백번을 양보해서, 설사 두발 규제와 단속이 성적과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두발을 기르고 말고는 신이 인간에게 준, 고유한 권리라는 것. 자기가 어떤 옷을 입을까? 뭘 먹을 까?하는 선택의 문제 2007-12-08
한영수 이지, 강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지구상의 200여개 가까운 나라에서 머리길이로 사람 괴롭히는 나라는 원시 부족 조차도 없다는 것. 2007-12-08
한영수 개인적으론 두발 자유화 세대 이지만, 우리 세대가 평균 성적이 떨어진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외모에 자신을 가짐으로써, 성적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2007-12-08
한영수 오히려, 아침에 머리 찝혀서 하루종일 열받아서 공부 못했던 중학교 시절이 기억이 난다는....., 지금 처럼 학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는 제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는..., 2007-12-08
한영수 마지막으로 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이 논술 공부 할 때, 김행수 선생님 글쓰시는거 잘 보고 배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생각이 잠시 든다는...ㅋㅋㅋ 2007-12-08
첫댓글 공부나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고등학생이 무슨 멋이야..공부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