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걸작 아동문학이 탄생한 장소들을 여행하며 작가들의 창작의 근원을 탐구한 유별난 ‘아동문학 애호가’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주오대학 명예교수 이케다 마사요시는 1932년에 외딴 시골에서 태어나 책을 구하는 일조차 결코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어린 시절 드문드문 읽은 아동문학과 조우해 아동문학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아동문학은 저자의 진정한 벗으로서 이후의 인생 역정을 함께해왔다.
중소기업론을 전공한 저자 이케다 마사요시는 70년대부터 세계 명작들에 영감을 준 환상의 장소들을 탐방할 수 있었는데, 이 탐방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80년대부터였다. 80년대에 일본 자동차 산업이 약진하자 미국 자동차 산업계는 큰 위기감을 느꼈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주축으로 ‘국제자동차프로그램’이 조직되었다. 이케다 마사요시는 하청 연구자로서 의뢰를 받아 유럽과 미국에서 수차례 자동차 산업 연구를 행한 한편, 여유 시간만 생기면 카메라와 지도를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동문학이 탄생한 곳과 관련 장소를 찾아 헤맸다. 그는 자택에 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가정 문고’를 마련해 어린이들에게 아동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전파했고, 이 ‘가정 문고’는 차츰 널리 알려져 자치회 사무소로 이전하기까지 했다.
이케다 마사요시는 어린 시절 책에 굶주려 있던 자신이 성인이 되어 아동문학이 탄생한 곳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복이었으며, 이런 기쁨과 아동문학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책을 읽은 어른 독자가 아동문학의 즐거움을 어린이들에게도 알려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요. 우리 어린이들에게 아동문학은 곧 세상의 보물찾기나 마찬가지니까요.”
● 작가들의 기발한 창조력의 근원과
작은 존재들에 대한 다정한 시선을 탐구하다
저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밀의 화원』, 『나니아 연대기』,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추억의 마니』, 『닐스의 신기한 모험』, 『어린 왕자』, 『하이디』 등 스무 편이 넘는 걸작의 배경이 된 실제 장소들을 일일이 탐방했다. 『내 이름은 삐삐 롱 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탄생시킨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인연을 맺은 장소들도 찾아가 영감의 원천을 살펴보는 한편, 수많은 아동문학 작품에 소재를 제공한 ‘아서왕 전설’의 뿌리는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탐색해보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무대를 탐방한 에피소드에서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기상천외하고 난센스투성이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작가가 상상한 이야기이고 실제 모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착각이었어요. 알고 보니 루이스 캐럴도 모델들이 있어야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 전형적인 영국 작가였더라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 옥스퍼드 근방을 여행한 저자는 책 속에 등장한 ‘당밀 우물’, 체셔 고양이가 등장한 ‘고목’, 앨리스의 길어진 목 등의 모델이 실제로 존재함을 목격하고, 괴짜 천재 수학자 캐럴도 자신의 주변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한편 『비밀의 화원』은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이 작품에 영감을 준 장미 화원을 방문했을 때도 저자는 비슷한 경험을 겪는다. 두 번의 이혼과 아들의 사망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낸 버넷에게 계속 글을 쓸 힘을 주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버넷이 발견해낸 비밀스러운 장미 화원의 사진들과 함께 ‘착하지 않은 주인공’의 매력에 대한 저자의 단상을 엿볼 수 있다.
『피터 래빗 이야기』 편에서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니어소리 마을’ 농장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하면서 창작 방식에 변화가 생겼음을 엿볼 수 있다. 다소 간섭이 심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인생 제2막을 시작한 포터의 동화책에 이웃 주민들이 귀여운 동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주민들도 포터에게 점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둘 사이의 유대감은 포터의 불후의 명작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갔을까?
40년 전, 저자는 감명 깊게 읽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의 ‘톰의 집’의 실제 모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물어 해당 저택을 찾아간다. 문 앞에서 저택을 들여다보며 쭈뼛쭈뼛하고 있던 그 순간, 누군가가 긴장한 그의 등을 두드린다. 독자들도 깜짝 놀랄 만한 예상외의 인연들이 생면부지의 이방인을 환대해주는 이 에피소드는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또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풍경 아트워크로도 유명한 명작 『추억의 마니』의 실제 무대를 찾은 저자는, 날카로운 추리를 바탕으로 ‘마시 저택’의 진짜 모델에 대해 색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곰돌이 푸』의 실제 무대를 방문했을 때는 곰돌이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이 이별한 ‘마법의 장소’를 찾고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 사진을 본 독자라면 누구나가 가슴 저미는 ‘곰돌이 푸’ 시리즈의 엔딩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안데르센의 가난한 어린 시절이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 역사소설가 서트클리프의 ‘몸과 마음에 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이 가진 의미, 『하이디』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단단한 다정함’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에 대한 해설 등, 다채로운 탐구 내용과 눈이 즐거운 풀컬러 사진 211장이 한 권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제는 소실되었거나 직접 눈으로 볼 수 없게 된 곳 등도 사진으로 실려 있어 귀중한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4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작가들의 창작의 원천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이어온 저자는 명작을 만들어낸 작가들의 창조력이 허공에서 불쑥 솟구친 게 아니라 그들도 일상에서 원동력을 얻었음을, 평범한 우리 또한 삶의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나 가슴 설레는 영감을 얻어 타인에게 감동을 전파할 수 있음을 책 한 권 내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20년간 사랑받아온
유서 깊은 사진 상영회로의 초대
이 책에 실린 211장의 사진에는 특별한 내력이 있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일본 각지에서 ‘아동문학 무대 탐방’을 주제로, 직접 찍은 슬라이드 사진 상영회를 1천 회 가까이 열어왔다. 처음에는 1994년 도쿄어린이도서관 설립 20주년을 기념한 모금 행사의 일환으로 강의를 곁들인 5회짜리 상영회를 열었는데, 이 강연 및 상영회가 좋은 반응을 얻어 이후 20여 년간 매해 2, 3회씩 열렸고 도쿄어린이도서관 정기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 강의를 들은 독자들이 지방에도 와 달라고 요청해서, 저자는 오키나와를 포함한 일본 각지를 방문해 슬라이드 사진 상영회를 열어왔다. 여행사의 도움으로 저자와 아동문학 애독자들이 함께 현지를 탐방하는 여행단도 수차례 꾸려졌다.
“일명 이 ‘슬라이드 토크’ 모임은 참가자가 50명 안쪽인(자주 참석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담한 강의였고, 이케다 씨가 한 작품당 보여주는 사진은 무려 220장가량에 달했어요. 초창기에 보여준 것은 말 그대로 환등기의 플라스틱 홀더에 끼워 비추어보는 포지티브(슬라이드) 필름이었습니다. 도넛형 환등기의 홀더에 슬라이드를 순서대로 끼우고 장착한 뒤, 이케다 씨가 신호를 보낼 때마다 담당자가 화면을 한 장씩 찰칵찰칵 넘겼어요. 가끔은 위아래가 뒤집히거나 좌우가 바뀐 사진이 나오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_도쿄어린이도서관 명예이사장, 마쓰오카 교코
이 책에는 그간 슬라이드 사진 상영회에서 선보인, 40년 전부터 찍어온 빈티지한 감성의 필름 사진들은 물론, 21세기에 찍은 최신 사진들도 실려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저자가 촬영해온 1만 장의 사진 중 정성껏 골라 실었다. 저자의 몇몇 사진은 카네기상 수상 작가 로즈마리 서트클리프의 ‘로만 브리튼’ 시리즈 일본어판 표지 사진으로 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