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12일 저의 직장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동료로 만난 5 명이 56년 동안 정말 형제처럼 친한 친구로 지내다가
세월의 거스름을 이기지 못하고 나이 순서도 없이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이 차례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금년 5월 4 번째 친구가 가고 보니 이제 저 혼자 남았습니다.
당해 본 사람이라면 느끼시겠지만 정말 외로워졌습니다.
기적일까요? 두 친구가 10월에 4일 간격으로 기일이고 또 다른 두 친구는 기일이 같은 날입니다.
친구 사이이지만 이런 기적도 있나 싶습니다. 그들 4 명은 저 세상에서도 친구로 지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3 번째 떠난 친구의 기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떠난 친구에게 받쳤던 저의 추모의
마음을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기며 함께 명복을 빕니다.
친구 영전(靈前)에 엎드려...
친구! 이게 무슨 소리인가?
친구가 가다니 정말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싶네.
친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다시는 없을 나의 친구!
친구가 가다니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친구! 갈 데를 가야 따라 나 가지.
친구! 갈 테면 간다고 미리 말이나 하고 가야
같이 갈 것인가 생각이나 해볼 것 아닌가?
입 두고 무얼 했나? 갈라면 먼저 가겠다 말을 해야지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가다니 정말 안 될 말이네.
친구! 누가 그러데. 눈이 없어 보기 싫은 것 안 보니 얼마나 행복한가?
친구! 누가 그러데. 귀가 없어 안 들을 것 듣지 않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고.
차라리 귀가 없었으면 친구가 갔다는 소리 듣지 안 했을 것 아닌가?
차라리 눈이 없었으면 친구가 가는 모습 보지 안했을 것 아닌가?
보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 친구 소식에
내 두 눈 두 귀가 멀쩡한 것이 차라리 불행으로 느껴지는 오늘이네.
친구! 1968년 2월 12일 친구를 만나서 46년을 같이 했거늘,
오늘 홀연히 이렇게 가버린다니
하늘이 구멍 나는 것 같고 땅이 꺼지는 소리와 같네.
나 이제 어떻게 할까?
친구야! 살아보니 알겠던데...
만나서 편안해지고 따스함이 묻어나는 사람이 친구였고,
내가 힘들 때 내 하소연 친구 이야기인양 다 들어주고 위로해 주던 친구였고,
친구는 그렇게 최고였던 내 친구였었는데,
이제 언제 어디서 다시 친구에게 내 힘든 것 이야기하고 위로받을까?
친구야! 앞에 놓인 세상이 아무리 힘겨운 세상이라도
난 친구 외라면 두려운 세상도 무서운 게 없었는데
이렇게 홀연히 친구 먼저 가니
나 이제 어디서 친구 같은 동행자를 얻을 수 있을까?
나 이제 또 슬픔이 찾아오면 누구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맘껏 눈물을 흘릴까?
친구! 보고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면
산을 좋아하던 친구답게 새소리 시냇물 소리 먼저 둘려주곤
“응 나야”하던 그 소리 어디에서 들을까?
친구! 이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면서
외롭고 힘든 일 많이 닥칠 텐데
누구에게 의지해 힘을 얻으려고 말도 없이 먼저 간단 말인가?
가면 다시 오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말없이 가다니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리우면 나 어찌하라고 간단 말인가?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이 슬픔 나 어찌할까?
많이 보고플 거네. 많이 그리울 거네.
친구! 내 아무리 애통해 한들 다시 오지 않을 친구여!
저 하늘나라에 가서는 이생에서 누리지 못한 모든 꿈
다 이루고 편히 쉬시게.
내 사랑하는 친구!
삼가 친구의 명복을 빌며 친구 앞에 이렇게 무릎을 꾸네.
다시 한번 친구 가는 길에 돌봄이 충만하시게.
사랑했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생 다할 때까지 사랑하고 그리워할 거네.
친구! 잘 가시게. 그리고 편히 쉬시게.
2014. 5. 12
친구 최 태영 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