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평범한 삶과 신앙’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신앙인으로서 평범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월 초하루부터 12월 31일까지 행하고 사는 것이 평범한 삶인 것입니다. 그 평범한 삶 위에 특별한 일들이 가끔 일어나지만 우리가 평범한 신앙생활을 잘 간수 하고 지켜나감으로 훌륭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아버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찬양하라 우리가 매일같이 평범하게 지켜야 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 찬양하는 것입니다. 누가 꼭 그래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의무감을 느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예수 믿는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 찬양하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방인의 선지자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많이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서 쇠고랑에 묶여 있는 그가 무엇이 기쁠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아버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찬양한 삶이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평범한 생활 중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사업을 하는 종을 이렇게 잡혀 나가서 감옥에 갇혀서 얻어맞게 만들어줍니까? 하나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 하나님 계시면 우리를 빨리 돌봐주시옵소서.” 그런 원망을 할 것 같은데 바울과 실라는 원망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이 당한 모든 생활 속에 하나님 섭리가 계시고 하나님 인도가 있으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얻어맞은 것도 고맙고 철고랑에 채인 것도 감사합니다. 배고픈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감동을 했어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그 기도에 감동을 느꼈어요. 하나님이 감동을 느꼈으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그만 아마 보좌에서 일어나서 빌립보시를 잡고 흔들어버렸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빌립보시 전체가 지진으로 진동을 하고 그 지진이 흔드는 바람에 감옥 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고랑찬 고랑이 다 끌러지고 대단한 자유와 해방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로 26절에 보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여러분, 지진 일어난 한가운데 있어본 사람들 없겠지요? 저는 미국의 산호세 집회를 할 때, 호텔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어 어디서 “웅~” 하는 소리가 나요. 그러더니만 문 창문이 “다다다다” 해요.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잠자기 전에 이렇게 잠 잘 자라고 장난을 하는가 보다. 아 그런데 침대가 흔들거려요. 아 해도 너무 심하다. 그러니까 “긴급이요. 긴급이요!” 하고 전화에서 소리가 나면서 지진이 일어났으니 모두 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걸어서 내려오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20층 가까이에 있는데... 아유 급하니까요 아무것도 눈에 안 보여요. 전등불은 꺼져 버렸지요. 그래서 내가 문을 박차고 나가니까 복도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어요. 전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애들 다 복도에 나왔는데 그때 제가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 어려운 위기에 나는 매달릴 수 있는 줄이 있고, 설 수 있는 반석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이제 죽었다고 우왕좌왕하고 야단 이예요. 그래서 제가 설교를 한번 해야 되겠다. “여러분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한국에서 목회하는 조용기 목사입니다. 지진이 집을 흔들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내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무서운 질병에서 건져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전부다 나를 따르시오.” 그러니까 내가 앞에 서고 줄을 전부 서서 내 뒤에 따라오는데 “하나 둘, 하나 둘, 예수님, 예수님, 지저스, 지저스” 따라 하시라고. 전부다 따라서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하고 20층 계단을 걸어서 밑에까지 내려왔습니다. 위험을 당하니까 다른 사람은 안 따라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예수님. 예수님.” 하는 나에게 전부 다 따라붙더라고요. 우리가 위험을 당할 때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얼마나 든든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 말에 의하면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을 주시고 달보고 감사하면 태양빛을 주신다고 우리가 불평과 원망과 탄식을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면 파멸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중에 빌딩 밖에 나와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마이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사람들이 내 말밖에 안 믿어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께서 붙들어주신다는 이 바울과 실라 이야기를 했어요. 여러분 성경 빌립보서에 보면 이와 같이 바울과 실라를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셔서 지진을 일으켰다고. 그러니 여러분 다 예수 믿고 천당 가야 된다. 우리 사는 것이 무엇이냐? 태어났다 먹다 죽다. 이것밖에 없다. 태어나서 별로 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하다 앞으로 가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그 다음 먹고 살다가 그다음 죽는 것 밖에 없어요. 내가 요 며칠 전에도 우리 형제, 자매들 조카들 모인 자리에서 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잘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살다가 이제 남은 것은 뭐냐? 죽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일하는 말하는 나도 지금 먹다입니다. 다음은 죽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별 볼일 없어요. 여러분 미래를 제가 다 예언해 줄 수 있습니다. 뭐 쉽습니다. 지금 먹다. 얼마 있다가 죽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평범한 생활로 삼고 거기에 의하여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다른 소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소망이 커져도 죽음을 통해서 다 놓아놓고 가지 걸머지고 못갑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는 건지심을 받으면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영화로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는 것처럼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 코에 향기를 맡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는 구원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네가 바라고 소원하며 꿈꾸는 일이 이뤄지도록 간구하라 그 다음에 여러분 생활 속에 바라고 소원하고 꿈꾸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바라는 소망하는 꿈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이 여러분 생애 속에 들어오면 꿈을 이루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일이 안돼요. 아브라함이 칠십 오세에 가나안 땅에 와서 아들 주시기를 그렇게 간절히 10년 동안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아들을 안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응답을 안 주신다고 낙심을 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꿈을 가지고 기도해야지, 그냥 아들 주시옵소서. 아들 주시옵소서. 어떤 아들을 달란 말이냐? 나에게 분명한 꿈을 실은 기도를 해야 되지 않겠냐?” 하나님이 저녁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고 “무얼 보느냐?” “별을 봅니다.” “얼마나 많은 별이냐?” “저 하늘에 가득한 별이 나를 비춥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저 별들을 가슴 속에 받아들여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별들을 바라보고 자기 아들이 별들처럼 많을 것을 마음에 확신하고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시고 그가 그 다음에 기도할 때 이삭이란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보고 믿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범한 매일의 생활 속에서도 바라고 소원하며 꿈꾸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여러분 앉은 자리에서 행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 소원을 둔다는 것은 꿈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소원과 꿈은 같은 말입니다. 꿈을 갖고 행하게 하신다고.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소원을 보고 소원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 소원을 분명하게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소원과 꿈을 가지면 하나님이 마음속에 깊은 평안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원을 가지고 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이 꿈을 이루어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꿈을 이루어주시옵소서.” 말 많이 하지 말고 간단한 기도로 “꿈 이루어주시옵소서. 하나님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내 가슴속에 있는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마음속에 놀라운 향기가 마음에 가득 차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한데 기가 막히게 평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네 소원이 이루어졌다. 나는 엄청나게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마음에 꿈을 붙잡고 요 근래 기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마음에 큰 평안이 기도원에 가서 굴에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다가와요. 그 다음 마음에 아주 꿀맛 같은 향기가 들어와요. 그러더니만 “네 기도를 내가 들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정말 행복하고 기쁜 순간입니다. 여러분이 꿈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평안과 향기로움이 마음속에 성령으로 다가옵니다. 그 다음 걱정이 안돼요. 아무것도 걱정이 안돼요. 입으로는 걱정한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평안해요. 너무 평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심할 지경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꼭 해보십시오. 꿈을 안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응답될 때 그 평안이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내가 기도를 하는데 그냥 받은 줄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응답할 때가 되면 마음속에 이루어진 확신을 주십니다. 마음에 이루어진 확신을 갖고 감사하면 편안하게 됩니다. 편안하게. 다른 사람에게는 염려하는 척 하면서도 자기 속에 굉장한 평안이 들어오면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꿈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가지고 꿈을 마음속에 꾸면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신문에 보면, 이런 기사들이 실려 있는 것을 봅니다. 1840년에는 시속 50km로 여행하면 인간은 질식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66년 전에 1840년대 신문에 사람이 시속 50Km로 여행을 못한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이다. 그러고 또 1901년에는 인간의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 조립은 불가능하다. 비행기 하늘에 뜨는 건 있을 수가 없다고요. 1926년 신문에 보면 달에 가겠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달에 간다고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시속 50Km이상은 못 달린다고 하는데 시속 600Km 넘는 열차가 나오고 있습니다. bullet train이라고요. 총알기차가 나와 있습니다. 시속 3,500km로 소리보다 3배나 빠른 비행기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고 달에는 벌써 사람이 갔다 왔습니다. 꿈을 꾸기 전에는 전부 안 되는 것을 말했는데 사람들이 꿈을 꾸니까 하나님은 꿈꾸는 사람과 같이 일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 했던 것들이 가능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은 꿈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발전하지 못합니다. 꿈이 있어야 불가능의 강을 건너고 불가능의 산을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꿈은 소위 말하는 기적이 생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아주 감동적인 기사를 보았는데 미주 중앙일보에 2016년 6월 25일 신문인 것인데 중국 시골 마을에 사는 쟈하이샤와 쟈원치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중국 발음으로 한자 이름을 가졌는데 여러분 외우기 힘들 겁니다. 그냥 듣고만 계세요. 최근 미국 CNN 방송의 다큐멘터리로 제작이 되어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장애인인데, 한 사람은 3살 때 사고로 두 팔을 잃었고 다른 사람은 병으로 한쪽 눈을 잃고 나머지 눈도 사고로 인해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붙잡았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어두움을 말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공장과 채석장으로 환경이 오염된 고향에 나무를 심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지의 정부가 이들의 상황을 감안해서 무상으로 황무지 땅을 제공했지만 묘목조차 살 돈이 없어서 묘목을 사서 심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 가서 가지를 꺾어와 가지고서 심어 물을 주어서 키우는데 될만합니까? 나무를 꺾어서, 가지를 꺾어서 황무지에 심어서 물을 주고 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 결과, 먼지만 날리던 황무지가 푸른 숲이 되었고, 홍수철이 되어도 마을이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모험에는 한계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정신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꿈은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환경이 황무지 같을지라도 꿈과 희망을 붙잡으면, 황무지를 푸른 숲으로 바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무 묘목도 살 돈이 없어가지고서 현지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땅에 파묻고, 물을 주고,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계속해서 말라죽어지면 또 심고, 또 심고, 또 심고. 환경에는 제한점이 있어도, 저들의 꿈은 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도시가 푸른 숲의 우거진 자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격찬을 합니다. 그 두 사람이 꿈을 가지매, 숲이 우거지는 도시를 만든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14년이라는 세월동안에 그들은 마음에 꿈만 안고, 꿈을 바라보고 뛰었습니다. 목표 있는 분명한 꿈을 가지고 뛰니깐, 그 꿈이 믿음을 생산하고, 믿음이 기적을 낳게 된 것입니다.
3.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어라 그러고 우리 평범한 생활 중에 꿈만 꿀뿐 아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어라. 믿음이란, 꽃 몽우리가 활짝 피어나듯 마음에 믿음이 평안의 향기를 뿜으며 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 말한 것처럼, 믿음이 마음에 들어오면 향기가 뿜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믿음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로마서 4장 17절에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복 주실 때, 이름을 바꾸어준 것과 같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매일 매시에 부르라고 해서, 아브람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새라를 사라 ‘많은 자녀들의 여주’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그렇게 자꾸 부르니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지 않습니까? 없는 자식의 아버지, 없는 자식의 어머니로 많은 자식이 있다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한자는 그렇지 않지만은, 우리 아버지가 제 이름을 ‘조용기’라고 해가지고서,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이름을 쓸 때마다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격려 안 해주면 내가 나를 격려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 아닙니까?
4. 입술의 고백이 있게 하라(입술의 고백과 여리고 성의 무너짐) 또 평범한 생활 가운데 우리가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을 꼭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이 엿새 동안 한 바퀴씩 돌고, 이레째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 바퀴 마지막 돌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들이 고함을 치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여호수아 6장 20절)’ 성령께서는 우리 입술의 고백을 따라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 23절)’ 태산준령도 입술의 고백 앞에서는 항복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1절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게 다 입술로 그렇게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6절로 47절에 다윗이 골리앗 보고 한 말이 있습니다.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 신앙고백도 다윗이 자기에게 한 것입니다. 아무도 격려 안 해줄 때, 자기가 자기를 격려를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석봉 토스트, 연봉 1억의 신화’라는 책이 나와 있지요. 김석봉씨가 대표로, 그는 신실한 크리스찬이었는데,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팔러 나가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는 직장도 없고, 직업도 없기 때문에, 토스트를 구워서 길거리에 나가서 아침밥을 못 먹고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요기를 하도록 그렇게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파는 토스트로써 1년에 연봉이 1억이 넘었으니깐 굉장하지 않아요? 그는 직장도 없고, 직업도 없고, 길거리에 서서 장사를 했으니깐 낙심이 될 수 있는데, 매일 마다 길거리에 나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서서 자기를 쳐다보고 “석봉아! 일 할 수 있으니 나는 기쁘지 아니하냐?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니 나는 예쁘지 않느냐? 매일 일이 생기니 너는 바쁘지 않냐?” 하루 중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향해 믿음의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내가 나보고 격려를 늘 합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매일 옷 입듯이 입습니다. 저는 아침에도, 그리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도 조용기 “너는 십자가 밑에 나가서 십자가를 바라보라.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너의 죄를 용서하고 너의 허물을 씻어 주신다. 예수님의 채찍에 맞으신 그 공로 때문에 너의 병은 고침 받아 건강하여진다. 예수님이 저주를 받았으므로 너는 그 대가로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는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철폐했으니, 네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네 안에 있으므로 너는 죽어도 음부에 들어가지 않는다. 예수님을 따라서 낙원에 들어간다. 감사합니다.” 그것을 밤낮으로 외우고 다니니까는 마음에 굉장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기가 그렇게 하면 굉장히 좋습니다. 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서 그런 격려를 해주고, 성도들은 이웃에 있는 분들에게 격려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보면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나 혼자만 할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입술의 고백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장 6절)’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말 중에, 장 자크 루소가 쓴 세계적인 명저 ‘에밀’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포기의 풀이 성장하려면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풀이 햇볕을 받아야 자라나는 것입니다. 식물이 성장하려면 햇빛이 꼭 필요하듯이,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는 칭찬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에도 남편을 자꾸 칭찬하면 굉장히 좋은 남편이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칭찬해야 돼요. 부모는 자식에게 욕만 하지 말고, 칭찬을 해 줘야 돼요. 식물이 성장하려면 햇빛이 꼭 필요하듯이,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는 칭찬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귀로 듣는 보약을 먹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칭찬은 귀로써 듣는 보약입니다. 사람은 칭찬을 받을 때 그 마음에 의욕과 생기가 넘쳐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 간에, 이웃 간에 따뜻한 칭찬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보약을 찾아 먹는 것처럼 칭찬은 듣는 보약이니, 여러분 중에 귀로써 보약을 많이 잡숫지 못한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오늘 가시거든 가족들에게도 칭찬을 해 주십시오. 귀로 보약을 주는 것입니다. 동물원의 코끼리는 발톱에 염증이 생기기 쉬워 발톱 관리가 필수라고 합니다. 그 큰 바윗덩어리 같은 코끼리가 걸어 다니는데, 그 발톱이 썩는다는 것입니다. 그 발톱을 깎아 줘야 되는데, 코끼리가 발톱 깎아주도록 얌전하게 있지 않고 막 고함을 치고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쇠줄로 묶어가지고서 억지로 잠잠하게 만들고 발톱을 깎는데, 이렇게 안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 사육사가 코끼리하고 친해져야 되겠다고 조금만 잘한 일 있으면 코를 쓰다듬어 주고, 칭찬을 해주며 “이야 너 괜찮다. 너 굉장한 놈이다. 너 이쁘다.” 그렇게 칭찬을 해줬어요. 이 코끼리가 발톱 깎으려하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손대지 못하게 하는데, 이 사육사가 오면 나무에 코를 딱 얹어 놓고, 다리를 딱 얹어 놓고 깎으라고 내어주는 것입니다. 코끼리도 칭찬을 하니깐 순종을 하더래요. 저기 보소, 자기 다리에 철조망 위에 다리를 얹어놓고 깎게 한단 말이에요. 저게 칭찬의 힘인 것입니다. 사육사가 원하는 반응을 코끼리가 보일 때마다 쓰다듬어 주고 교감을 했더니, 이제 코끼리가 스스로 앞발을 올려놓고 “깎으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기 나온 사진이 바로 제가 준비한 원고 속에 넣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들어주시기를 원하고, 입술의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내 귀가 들은 것은 그 신앙고백을 따라서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 우리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시편 94장 22절에 ‘야훼는 나의 요새이시오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편 91편 1~3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세계는 다 입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있어야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장 10절)’ 입으로 고백을 하지 아니하면 내 소유가 되지 못 합니다. 입술의 고백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결론> 절대 긍정적인 생각과 목표가 확실한 구체적인 꿈과 확신에 찬 믿음과 감사 찬송이 가득한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의 생활에 변화와 창조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평범한 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생각하고 입술로 고백하면, 거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함으로,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마음을 꽉 채우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꿈을 낳고, 꿈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입술의 고백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아무리 깨달았다 해도, 입술로 고백하지 아니하면 내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든 사람은 약을 먹잖아요? 약을 아무리 포켓에 넣어 다니고, 손에 들고 다녀도, 안 먹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의 약과 같습니다. 음식과 같습니다. 입으로 고백을 해야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성경의 약속의 말씀은 진짜로 효과가 있는 영적인 보약입니다. 이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깨닫고, 믿음으로 이걸 말하면, 그 말 파장이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한다. 실제적으로 효과 있습니다. 영적인 말씀을 자꾸 고백하면, 그 말씀이 몸속에 들어가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 생활에 평범한 일이 되도록 말씀을 가지고서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되고, 구체적인 꿈을 꾸고, 믿음을 갖고, 입술로 고백을 하고,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일 하게 돼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큰 소리를 합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능치 못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 가정, 생활, 사업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부여잡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적극적인 목표가 있는 꿈을 꾸고, 기도하여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역사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아니하고,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린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여러분 텔레비전 자선 광고에 보면 아프리카에 있는 어린이들이 하루에 우리가 만 원씩만 줘도 굶어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있어야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 잘 살게 되어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저주한 세계가 되어서, 태어난 사람마다 저주 속에서 태어났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저주를 다 청산해준 것입니다. 저주가 사라지니 가시와 엉겅퀴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이 따르게 돼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사라지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사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바람을 쐬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기야! 너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한번 그렇게 말해 볼까요? 여러분 이름을 말하세요. 하나, 둘, 셋! 아멘! 네 믿은 대로 될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