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주도하는 나토(NATO) 사무총장실이 지난 15일 던진 '영토와 나토 가입을 맞바꾸는 우크라이나 평화 제안'의 파장이 만만찮다. 이 평화안은 유럽 대륙내 나토 회원국들의 의견을 사실상 대표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을 보좌하는 사무총장실의 스티안 옌센 실장이 안보 관련 행사장에서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스티안 옌셴 나토 사무총장실 실장/사진출처:vgc.no
그 시점에도 무게가 실렸다. 우크라이나의 야심찬 반격작전에도 불구하고 '장기 소모전'으로 빠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위해 다양한 평화·협상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옌센 실장은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이튿날(16일) "실수였다"고 공식적으로 바로잡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옌센 실장은 지난 15일 노르웨이의 한 행사에서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에 양도하는 대가로 나토 회원국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거래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를 깔았지만, "가능한 해결책의 하나일 수 있다"며 "(그로 인해) 향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후 우크라이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며, 영토 양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나토 옌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
옌셴 실장은 발언이후 '나토의 공식적 견해인지' 묻는 취재진에게 "영토 양도 이슈가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며, 나토 내부에서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며 "우리 모두는 동유럽에서 군사적 충돌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의 주장대로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우크라이나 평화안은 옌셴 실장이 처음은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나토 대신 영토를 포기한다"는 안을 공식 제안했고, 외신에는 비슷한 주장이 종종 올라왔다.
그의 발언은 서방 진영에서 나온 '한국식 휴전 방안'에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나토 가입'으로 추가한,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평가된다.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스트라나.ua는 15일 '영토와 바꾸는 NATO?'(НАТО в обмен на территории?)라는 코너에서 "이 제안이 러시아군 철수와 1991년 국경 회복이라는 키예프(키이우)의 공식적인 입장과 전후 우크라이나의 중립적 지위를 요구하는 모스크바의 입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영토 양보와 나토 가입를 대가로 한 평화라는 아이디어가 나토 내부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나아가 "지금까지 서방측의 공식 입장은 러시아에 대한 영토 양보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아직 없으며, 다른 옵션도 고려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들이 확인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최근 러시아와의 즉각적인 평화를 요구하는 국가들이 러시아 점령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옌셴 실장의 발언에 대한 우크라이나와 서방 측의 반응은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우크라이나는 한 목소리로 반발했고, 미국과 나토는 그의 발언을 부인하는 선에 그쳤다.
존 커비 미 백악관 조정관/사진출처:페이스북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 커뮤니케이션 조정관은 16일 특별 브리핑에서 "영토 양보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나토 회원 자격을 부여하는데 대한 나토내 논의 정보는 사실이 아니다"며 "잘못된 정보"라고 부인했다. 그는 "미국의 입장은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나토에 가입할 것이라는 사실"이라며 "이는 최근 정상회담(리투아니아 빌뉴스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계는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전쟁을 끝내는 대가로 러시아에 영토를 포기할 의사 전혀 없다"고 강조했고, 올레그 니콜렌코 외무부 대변인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집권 '인민의 종' 대표 다비드 하라하미아는 "무엇이든 그 대가로 우리 영토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침략을 조장할 뿐"이라며 "영토 포기가 전쟁의 끝을 의미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하일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옌셴 실장의 발언과 같은 평화 아이디어를 '푸틴 대통령의 승리'라고 부르면서 "영토를 나토 안보 우산으로 바꿔야 하나? 놀랍다"고 적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가 국방안보회의 올렉시 다닐로프 서기(사무총장, 장관급)는 "러시아군의 1991년 국경으로 철수를 기반으로 한 우크라이나 10개항 평화안에는 대안이 없다"면서도 "그 틀안에서 순서는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새로운 제안과 관련해 중요한 점은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가 분쟁 지역이라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루스(고대 러시아)의 수도였던 키예프(키이우)를 포기하고, 수도를 서부의 르보프(르비우)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