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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촉진' 임원 앞세워 사직권고 … 불황형 정리해고 확산
대기업 건설사 토목담당 임원인 박 모(50) 상무는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요즘 주요업무 중 하나는 매주 지방본부 1~2곳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명퇴리스트'에 오른 직원에게 퇴사를 권고하는 '명퇴촉진활동'이다. 올초 노조에도 공식적으로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하지만 '내 목을 먼저 내놓겠다'는 이들이 예상에 못미치면서 박 상무에게 이같은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대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이 소리없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대기업에서 진행되는 인력감축은 구체적인 구조조정 규모나 진행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은밀히 진행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계 순위 24위인 KCC가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을 단행하자 업계는 고개를 갸웃했다.
KCC는 지난 7월 사무직 40여명에 대해 '회사를 그만둘 것'을 통보했다.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이 아닌 권고사직 방식이었다. 도료와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KCC가 최근 건축경기 침체로 영업 위축을 겪고 있지만 감원을 할 정도의 경영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KCC 관계자는 "장기불황에 연말 인사를 앞당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정리해고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연구개발(R&D)과 디자인부문을 제외한 전사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중이다. 이번주까지 희망신청자를 받는데, 세부적인 목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GM은 지난 5월 중순부터 지난달까지 부장급 이상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한국GM 관계자는 "경기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슬림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종은 이미 상시적인 구조조정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건설기업노련의 '건설사 인력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성원건설 삼안 풍림산업 등 9개사에서 2570명의 인력조정이 이뤄졌다. 건설기업노련 관계자는 "건설사 구조조정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GS칼텍스는 지난 6월 국내 영업본부 인력을 대상으로 별도의 위로금과 직영주유소 운영권 등을 주는 조건으로 퇴직신청을 접수했다. 시멘트업계 1위 업체인 쌍용양회는 건설경기 악화로 재무 상황이 악화하자 올해 초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제약업종 중에서 바이엘코리아는 지난 5월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 500여명 중 100명을 감원했다. GSK는 지난 7·8월 희망퇴직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다수 협력사나 외주 하청사까지 인력감축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경제위기로 인한 기업 구조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어렵게 형성한 인적자본 손실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국 범현주 김규철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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