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선학원 분원 영주 관음사 법해당 도기 스님이 16일 새벽 원적에 들었다. 세납 76세. 법랍 53세. 스님의 영결식은 20일 봉행된다.
스님은 초등학교 5학년때 사고로 두 손과 시력을 잃고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다. 일생을 관음주력으로 용맹 정진을 했다. 관음보살 가피로 시력을 되찾은 스님은 자신이 입은 불은을 중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포교를 시작했다.
예천 용문사에서 기도 정진을 하다 1976년 영주 관음사를 창건했다. 9평 법당과 요사채로 시작한 스님은 관음사를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대사찰로 키웠다. 특히, 스님은 "어린 아이 마음이 바로 천진불이다. 어린 아이 마음에 불심을 심어 주는 것이 포교의 첩경"이라며 어린이 포교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
|
|
▲ 장애를 딛고 서예에도 경지를 이룬 도기스님의 작업 모습. |
스님의 원력으로 관음사는 영주에서 최초로 어린이회, 중고등학생회, 대학생회 청년불자회를 창립해 운영하는 사찰로 자리했다. 또 인근 군부대 및 교도소 포교에도 남다른 노력을 경주했다. 전몰장병 위령재도 30년 가까이 봉행했다. 스님은 자신이 일군 관음사 등 일체를 “이 절이 내 것이냐”며 일찌감치 선학원에 기증했다.
법납 59세, 세수 76세로 지난 18일 원적에 든 영주 관음사 주지 법해당 도기 대종사의 영결식이 20일 오전 관음사에서 봉행됐습니다.
이날 영결식에는 재단법인 선학원 송운스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의현스님, 통합선교종 원로의장 용암스님, 장윤석 국회의원, 김주영 영주시장 사부대중 2백여명이 참석했습니다.
도기스님은 초등학교 때 불의의 사고로 두 손과 두 눈의 시력을 잃은 후 불교와 인연을 맺고, 관음정진으로 시력을 회복한 가피로 영주지역에서 수십년간 어린이, 청소년, 군부대 교도소 법회를 통해 자비행을 실천해 왔습니다.
법해당 도기스님 영결식이 20일 낮 11시 경북 영주 관음사 원통보전에서 신도회장으로 엄수됐다.
도기스님이 뿌려놓은 포교의 열매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관음사로 들어오는 입구는 각계에서 보내 온 수십 개의 조화로 장엄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조계종 전총무원장 의현스님, 재단법인 선학원 총무이사 송운스님과 장윤석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주영 영주시장 등 내외귀빈을 비롯해 사부대중 5백여명이 경내를 가득 메우고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
|
|
▲ 재단법인 선학원 총무이사 송운스님이 법진 이사장을 대신해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은 총무이사 송운스님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스님의 높은 선지와 크신 원력은 우리 한국불교계의 이정과 족적으로 자리할 것이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평생의 행장은 굴복과 낙오를 떨치고 새로운 이적과 신화를 쓰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의현스님은 추모법어에서 “불편한 몸으로도 큰 회상을 이루었고 중생들에게 우주법계의 공덕을 쌓았다”면서 “유정무정의 자비가 하늘을 덮었고 더할 수 없는 공덕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스님을 기렸다.
|
|
|
▲ 조계종 전총무원장 의현스님이 추모법어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
|
▲ 법해당 도기스님의 법구가 도량에 설치된 다비대로 이운되고 있다. |
사홍서원을 끝으로 영결식을 마친 장례위원과 신도들은 영정과 만장을 앞세우고 스님의 법구를 다비대까지 이운하는 의식을 가졌다. 스님의 법구는 원통보전을 나와 숨결이 곳곳에 배어있는 당우를 돌며 도량 한 가운데 마련된 다비대까지 이운됐다. 이어 다비대 안에 법구를 안치한 후 오후 4시 거화(擧火)에 들어갔다.
카페 /일촌 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