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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enlisted/156753477
혐성국 사단장이 귀여운 롬멜
챈럼들이라면 프랑스 침공 당시 롬멜과 7기갑사단의 별명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거임
유령사단
실제 독일군에는 유령마크를 도입했던 11기갑사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령사단하면 다들 11기갑사단이 아닌 7기갑사단을 이야기 할 정도로 롬멜과 7기갑사단의 프랑스 침공 당시 행적은 가히 전설적임
???: 우리가 진짜 유령기갑사단인데...
꺼무위키를 비롯해서 대부분 2차 대전을 다루는 교양 유튜브 채널이나 2차대전사들 책들은 롬멜의 7기갑사단 프랑스 침공기 전술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함
1. 닥돌
2. 상급부대 ㅈ까
3. 사단장이 주력부대보다 항상 앞에 있음
4. 왠 사단장이 나타나서 깽판치는거보고 프랑스군이 엘랑해버림
하지만 이런 단순한 무지성 충격 효과만 노렸다면 롬멜의 프랑스 침공때 활약은 이 정도로 유명할 수가 없음.
그래서 오늘은 1940년 7월 14일 롬멜의 7기갑사단 작전참모부에서 프랑스 침공 당시 7기갑사단의 경험을 전술, 조직,장비, 보급 4개 파트에 대한 문답형식으로 작성해 OKH에 제출한 보고서를 살펴보고 롬멜이 어떻게 프랑스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문서 식별 번호 RH 27-7/226
제7기갑사단 작전참모부(Abt. Ia) 기밀 제440/40호
1940년 7월
1940년 5월 10일부터 6월 24일까지 서부 전역 동안 제7기갑사단의 가장 핵심적인 경험에 대한 보고서
1.) 제7기갑사단은 서부 전역 동안 제4군 예하에서 전투를 수행했으며 배속 관계는 다음과 같음:
5월 10일 ~ 5월 20일: 제15군단(XV. A.K.)
5월 21일 ~ 6월 1일: 제39군단(XXXIX. A.K.) (호트 집단 소속)
6월 2일 ~ 6월 16일: 제15군단
6월 17일 ~ 6월 20일: 제4군단(A.K. 4)
6월 21일부터: 제15군단 (6월 21일부터 클라이스트 집단 소속)
A. 전술
질문: 프랑스, 영국군과의 전투 경험은 어떠하였는가?
답변: 프랑스 보병은 전반적으로 요새시설과 건물이 존재할 경우에는 매우 능숙하고 끈질긴 전투를 벌였다. 그 중 식민지 부대들은 매우 격렬하게 최후의 순간까지 전투를 벌였다. 프랑스군 포병은 일부 구간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으나 사단의 고속 기동때문에 위력을 발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프랑스군 전차병들은 어디서나 용감히 싸웠다.
영국군은 프랑스군보다 더 끈질기게 싸웠고 사격 훈련 상태도 프랑스군보다 우수했다.
질문: 프랑스군의 새로운 전투 방식에 기습당한 적이 있는가?
* 여기서 프랑스군의 새로운 전투 방식이란(neues Kampfverfahren) 적색 상황 당시 베이강선을 말함. 독일군 부대 중 유일하게 7기갑사단만 프랑스군의 베이강선을 당일 돌파해 10km 종심까지 부수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는데 구데리안조차도 3일동안 틀어막혔었음.
답변: 사단은 적군의 새로운 전투 방식에 기습당하지 않았다. 비록 프랑스군은 전차부대를 비롯한 일부부대가 돌파한 뒤 마을이나 숲같은 교묘한 저항 거점으로 후방 부대를 공격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건 딱히 새로운 전술이 아닌데 전형적인 요새화된 야전 진지 방어 전술이다. 사단은 '돌격선'(Stoßlinie)이라고 부르는 자체 독도법을 도입하였는데 사단의 공격선을 양끝점을 둔 하나의 직선으로 연결하고 이것을 cm단위로 눈금을 매긴다. 이후 사단의 공격 출발점에 매일 바뀌는 임의의 숫자를 부여하였다. 화력 요청을 하거나 부대의 현 위치를 보고할때 출발점으로부터 전진 거리+ 좌우 측면 거리를 보고한다. 예로 사단 출발점이 0이라고 정했을때 지도상 전진거리가 9인 지점의 우측 2.7cm 지점에 대한 화력 요청은 9 우측 2.7이 된다.
질문: 공격 작전 수행시 전차와 보병간의 협동은 어떠하였는가?
답변: 사단은 교범에 명시되어 있듯 다양한 협동 방식을 적용해 가능한 신속하게 달성토록 하였다. 전차 연대가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을 경우 차량화 보병의 일부를 하차시켜 전차와의 연계공격을 하도록 했고 돌파가 성공했을 경우 수색대대와 오토바이 대대, 차량화 보병을 신속히 후속시켜 전차부대와의 연결을 유지했다.
???: 그냥 탱크에 타라고 하니까 되던데
질문: 적 전차와의 전투 경험은 어떠하였는가
대부분 적 전차는 장갑면에서 월등히 우수했다. 하지만 조기 사격 개시와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정밀사격을 가해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아군의 3.7cm 대전차포는 강력한 프랑스 및 영국 전차에 완전히 무력하다. 보병부대에 포병 포대를 배속시켜 대전차 대응을 확보했지만 이 경우 포병의 다른 임무가 심각히 제한되었다. 또한 대전차무기의 전체적인 수량이 너무 적다. 대전차 대대는 고작 2개 중대밖에 없었는데 이 2개 중대가 아군의 2개 보병연대 전선의 대전차 임무 전체를 떠맡아야했다.
뭐 이런 괴물이 있나 구경하는 낙지들
질문: 작전에 있어서 장매물 어떻게 극복했는가
답변: 사단은 작전 전부터 장애물과 지뢰가 주요 도로나 그 인근에 있을 것을 예상했다. 따라서 사단은 가능한 도로를 피하고 가축이 다니는 샛길을 정찰로 파악해 이용했다. 5월 10일 강력한 방어진지빠르게 돌파한 것은 이 판단 덕이었다. 전차는 숲이 심각히 우거지지 않은 경우 후속 차량을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들어줬다.
질문: 대전차 지뢰는 어떠했는가?
답변: 아군의 급속돌파는 적에게 대전차 지뢰를 매설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따라서 경험은 거의 없었다. 또한 사단 심문 결과 프랑스군은 부대 자체적으로 지뢰를 편제하지 않고 필요시 불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질문: 숲과 시가전에서의 전투 경험은 어떠한가?
답변: 확인된 적 목표물에 대해서만 사격하는 것은 숲과 시가전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 사단은 적이 있다고 의심되는 모든 곳에 사격을 가했기 때문에 강력한 저항에도 야간 강행돌파를 비롯해 최대 70km 돌파를 달성할 수 있었다. 사단은 예광탄을 섞어서 사용했고 이는 심문 결과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주었다. 사단은 초기 시가전에 전차와 장갑차를 투입했는데 이때 매우 큰 손실을 입었다. 시가지는 적에게 충분한 위장 효과를 부여했고 50m 거리에서 정확한 사격을 가해왔다. 따라서 사단은 특히 주간 공격시 전차연대는 적의 방어 거점이 위치할 수 없는 기동로를 활용해 시가지를 회피하고 우회 기동로를 통해 후속 보병들이 마을을 포위 소탕했다.
(더 좋은 대전차 장비와 전차를 갖춘 소련군이 들어찬 스탈린그라드 시가지로 병력을 밀어넣은 병신)
질문: 적 공습에 의한 피해는 있었는가?
답변: 아군은 적의 폭격을 매우 자주 겪었다. 대공포 중대들은 필연적으로 대전차 방어에 투입되어야했기 때문에 자체 대공 방어는 충분하지 않았다. 10~12시간동안 적군 항공기가 아군 상공에 있는 동안 아군 항공기가 단 한대도 없는 일도 발생했다. 이때 부대에 미치는 사기 저하 효과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대공포 증원과 기갑사단에 대한 공군 엄호는 필수적이다.
질문: 공습시 행군을 계속하라는 지침이 유효했는가?
답변: 이 규정은 없어져야한다. 실제 상황에서 적의 비행기가 나타나면 운전병의 심리상태는 개별적이다. 어떤 운전병은 속도를 늦추고 어떤 운전병은 속도를 줄이고 또다른 운전병은 차를 버리거나 엄페몰에 차를 박아버린다. 사단은 차량화 부대가 공습 노출시 즉시 정지해 차량을 엄폐시키고 도로 양쪽 50m 거리에 은폐토록 조치했고 이를 제안한다.
질문: 아군의 많은 부대는 전방으로 전차와 전투차량을 투입하는데 있어서 후방에서 정체되는 일을 겪었다. 이에 대해 사단은 어떻게 통제했는가?
답변: 사단은 차량을 전투에 직접투입되는 차량과 필수 보급품을 운송하는 차량을 전투차량으로 묶고 나머지는 후속차량으로 분류했다. 사단은 추진력있는 대위를 후속 차량 지휘관으로 하여 후속 차량의 투입을 조절했다. 또한 탄약 수송차와 전투 차량의 분리는 전차의 급속 돌파에 걸림돌이었다. 사단은 전차 뒤에 탄약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따라서 전투 환경에서도 탄약 공급이 가능한 궤도형 장갑 탄약 수송차를 요구한다.
질문: 공군과의 업무는 어떠하였는가?
답변: 사단 참모부에 항공통신반을 배치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하지만 항공 정찰대와 수색대대와의 무선 수단이 없어 유기적 정찰이 불가했던 것은 수정해야 한다. 경대공포대대는 사단에 협조적이었지만 임시 배속된 88mm 대공포대는 사단에 협력만 지시받은 상태라 전적으로 운영은 전적으로 중대공포 연대장에 달려있었는데 사단은 휘하에 임시배속된 부대라도 모든 전술적 운영은 기갑사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그 어떠한 제한을 부여받지 않은채 배속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 니들 또 마개조할거잖아 새끼들아
질문: 교통 통제는 어떻게 했는가. 특히 어떤 조치가 효과적이었는지 궁금하다
답변: 앞선 폴란드 전역때처럼 기갑사단의 조직만으론 교통 통제 조직이 턱없이 부족하다. 규정은 사단 헌병대의 1/3을 전방 교통 통제에 투입하도록, 후방 교통 통제는 참모부 제4과 병참행정부 2/3병력을 투입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터무니없이 적은 수이다. 병참부는 제빵 중대 병력을 차출해야 했고 헌병대는 포로 감시 병력과 제3과 정보참모부서 병력을 차출해야했다. 따라서 사단장은 뫼즈강 도하 이후 오토바이 대대 1개 중대 전체를 교통 통제에 투입했고 참모부 정원외 참모를 이른바 도로 사령관(Straßenkommandant)으로 임명해 이를 주관했다. 도로 사령관은 교통 통제에 대한 전권을 사단장으로부터 위임받았고 도로 사령관은 작전 기간 동안 Dg.7 이라는 표시판을 진격로에 위치시켜 최선봉 부대의 진격로를 후속부대에 알려 간격을 유지하도록했다.
도로 사령관은 사단 지휘에서 매우 결정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술적 식격이 있고 추진력이 있는 영관 장교여야 한다. 작전부 참모나 헌병대장이 맡을 수 있는 임무가 아니다.
* 참고: 롬멜은 전간기때 매우 엄격한 교통 통제로 유명했음. 주데텐란트 진군때 군 병력이 우선이라고 무려 마르틴 보어만을 비롯한 나치당 인사들을 도로에 2시간동안 세워둬서 욕처먹은 적도 있었음
질문: 무선 규정은 어떠했는가?
답변: 전투 경험상 현재 암호화 방식은 아무리 요령을 부려도 신속한 지휘가 불가능했다. 따라서 아군은 매일 바뀌는 사단 자체 부호명을 암호 통신으로 부여한 이후 작전시 자유로운 무선 통신으로 교신했다.
B 조직
질문: 기갑사단 편제 보병은 적절한가
답변: 이상적이다. 단 보병포 중대들을 자주포화시켜야한다. 중보병포는 너무 무거워 전차들을 따라오지 못했다. 사단은 중보병포를 견인차량 저상 트레일러에 실어 사용했다. 기갑수색소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단 정찰용 장갑차는 장갑이 너무 약해서 대전차소총에도 관통당했고 전역 초기 다수 손실되었다. 장갑차의 장갑 향상이 절실하다.
질문: 기갑사단의 포병대대 편제는 어떠한가
답변: 중포병대의 경우 150mm 곡사포 2개 포대 105mm 평사포 1개 포대를 제안한다. 105mm는 평사포는 중포병대로 쓰기엔 너무 짧다. 경포병대는 효과적이었기에 자주포화를 요구하며 포대당 6문으로 구성하여 105mm를 자주포화 해야한다.
질문: 1개 공병대대 예하 3개 공병중대는 적절한가?
답변: 비교적 부족하다. 따라서 차량화 공병중대 3개, 기갑공병 중대 1개 그리고 작전환경에 따라 교량 중대도 2개로 증설하는 것이 적절하다.
질문: 통신 대대는 어떠한가?
답변: 사단의 생명과 직결된다. 현재 2개 중대화 되어 있는 것을 3개 중대로 차량화해야 하며 모든 연대와 대대에 사단장과 작전참모부, 여단장이 직접 연락할 수 있는 무선반을 구성해야 한다.
C. 무장 및 장비
질문: 어떤 무기가 효과적이었는가?
답변: MG34, 보병포, 81mm 박격포( 원문은 중박격포인데 낙지 편제상 중박격포는 81mm), 105mm 경야전 곡사포가 효과적이었다. Pak 36은 대전차용으론 매우 쓸모가 없었지만 대전차고폭탄으로 보병 공격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질문: 적 진술상 가장 위력적이었던 무기는?
답변: 적은 발사속도가 빠른 20mm 대공포, 경야전곡사포를 무서워했다. 야간 공격시 전차들에게 사방으로 예광 및 조명탄 사격을 하도록 한 조치는 적 진술에 따르면 파괴적이고 신경을 갉아먹었다고 한다.
질문: 아군 전차는 성능이 어떠했는가?
답변: 독일 전차는 영국 전차보다 좋은 조준경을 가지고 있으며 기동성 역시 압도적이다. 38t 전차는 훌륭하고 신뢰도가 높아 독일 전차보다 우수했다. 3일간 280km를 진군했음에도 38(t) 전차의 고장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차들은 근거리 매복한 2.5cm 대전차포에 관통 당했다.
여기서 말하는 2.5cm 대전차포란 프랑스군 호치키스 대전차포를 말함
질문: 대전차 소총은 적정했는가?
답변: 효과가 전혀없었다. 개발된다면 최소 300m 거리에서 관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존나 쓸모 없음)
질문: 그 외 피아 식별이나 적에 의한 아군 교란 효과가 있었는가
답변: 아군의 조명탄과 신호탄이 너무 많다. 이 때문에 기억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사단은 단순화를 제안한다. 하지만 사단은 영국군이 아군의 신호를 모방해 사격 중지 신호를 올려 실제로 성공한 것을 경험했기에 신호의 의미를 통신에서 그러하였듯 자주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전차에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펼쳐놓은 것은 아군의 피아 식별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단 타 작전구역의 아군 항공기가 노획 전차인줄 알고 오폭한 적이 있었다.
질문: 적의 무기는 어떤 것이 우월했는가
적의 2.5cm 그리고 4.7cm 대전차포는 아군 대전차포보다 우월했다.
정황상 소수 보급되었던 프랑스 47mm SA mle 37인것 같음. 영국군 2파운더라고 하기엔 너무 구경이 구체적임
D 보급
질문: 전장으로의 탄약 보급에 대해서 개선을 제안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답변: 보병의 경우 손수레를 도입한 것이 전방 추진에 매우 유용했지만 전차부대의 경우 항시 적과 접촉 중이거나 접촉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보급부대가 오지 못했다. 이때문에 탄약 부족으로 정지해야 했었다. 아군은 이때문에 전차에 탄약 및 연료 트레일러를 별도로 부착했는데 이는 전투 시 반드시 탈착해야 했고 전투 종료후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질문: 제빵주대와 도축 소대는 어떠했는가?
답변: 제빵 중대는 적절하다. 하지만 도축 소대의 경우 신선육 수송을 위한 냉동 트레일러가 없어서 현지에서 구매해야했다. 도축 소대에게 소시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를 지급해야 한다
질문: 의무대는 어떠한가
답변: 편제는 적절했지만 전차 연대 군의관 및 보조 군의관 직책 삭제는 수정되어야 한다. 전상 치유를 위해 의무 중대에 2명의 외과 전문의를 배치하고 신속한 부상병 추진을 위해 강력한 기동력을 갖춘 독립 의무대대를 요구한다
질문: 기타 건의 사항이 있는가?
답변:
1. 교범상 휴대 연료량이 너무 적다. 특히 전차 연대는 이것이 매우 부각되었고 사단은 규정을 어기고 더 많은 연료를 휴대하도록 해야 했다.
2. 연료 분배는 반드시 장교가 관리해야한다. 부사관이나 병사로는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3. 정비 중대의 경우 보유 예비 부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역 기간 60%의 소요만 충족되었다.
4. 보급부대는 차량부대와 탄약부대 그리고 행정 부대로 각각 나누어서 독립적인 기동 지휘권을 보장해야 한다. 사단 군수 참모부가 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보병 사단에겐 적절할 수 있겠지만 변화무쌍한 기동사단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실제 1940년 7월 제출된 7기갑사단의 사후보고서를 참고하여 롬멜의 실제 전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음
1. 전차의 생명은 속도다. 매복 공격과 장애물이 있는 시가지나 큰 도로는 무조건 우회하라
2. 전차 뒤에는 오토바이 보병등 차량화 보병을 반드시 따라가게 하여 홀로 고립되는 것을 막고 전차의 부족한 공격력을 보강한다
3. 88mm 대공포는 신이다. 공군은 잡소리 말고 내놔라
4. 공군이랑 소통 창구 열어놓은건 정말 잘한거긴한데 왜 적 전투기가 있는데도 안뜨는거냐?
5. 번뜩이는 전술적 식견을 갖춘 지휘관들로 구성된 강력한 독립성과 기동성을 갖춘 전문화 예하 부대를 갖추는 것이 기갑사단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단장은 해당 지휘관에게 임무 수행을 위한 전권을 보장해야 한다.
6. 사단 중앙 참모부와 일선 대대까지 직통 라인을 구축하고 활용한다. 그리고 사단 지휘부는 반드시 전방에 위치해 적정을 보고받을뿐 아니라 직접 판단도 해야함
7. 오래걸리는 암호집 ㅈ까라해라. 우리끼리 만들어서 매일 바꾸면 된다. 암호화하다가 기회 다 놓친다.
8. 체코 전차 너무 좋아
9. 보급차량은 전투현장까지 추진하여 전투 차량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이걸로 보면 왜 롬멜이 북아프리카에서 난리가 났는지 설명할 수 있음
1. 도로를 피하면 모래밭임. 도로를 우회하면 전차가 추진이 안됨. 우회가능한 공간은 한정되는데 오친렉과 몽고메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 공간들을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고 독일군이 한계에 올때까지 나오질 않음
2. 공군은 어디까지나 작전 지원하러 온거지 예하에 배속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88mm 가지고 싸울수 밖에 없음
3. 롬멜은 적 전투기가 있으면 반드시 아군 전투기가 뭐가 되든 싸우고 있어야 한다고 봤음. 근데 영국 공군은 숫적으로도 많은데 심지어 전투기 성능도 낙지한테 안밀림. 이탈리아 공군은 쓸모없고 낙지 공군은 지중해, 소련, 대서양에 분산되어 있어서 전력 공백은 불가피함
4. 롬멜이 원하는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사람들이 항상 나타난다는 법이 없음.
5. 롬멜이 원한 보급차량의 장갑화는 1943년이 되서야 도입되기 시작함
6. 제공권이 넘어간 상태에서 보급차량을 전방 추진하니 족족 터질 수 밖에 없음
7. 고질적인 정비 장비 부족문제는 1945년까지 단 한번도 해결된 적이 없음
8. 에니그마 해킹 당해서 롬멜 밥상 차림표가 매일 아침 처칠한테 배달됨
종합적으로 롬멜은 무지성 닥돌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돌격을 좋아했던 사람인건 부인할 수 없음. 하지만 롬멜은 그만큼 부대의 돌파력을 어떻게 해야 유지시킬 수 있을지 현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변형을 가했고 휘하 장교들에게도 전권을 주어 임무를 자유롭게 수행하는데 거리낌이 없던 지휘관이었음. 한마디로 작전술적 그리고 전술적 측면에서 공격상황 임기응변이 매우 뛰어났음
하지만 자신의 직관에 대해서는 양보도 없었고, 독일군은 롬멜이 요구하는 그정도를 집중할 여건도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단 한번도 갖추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몽고메리는 비록 마켓가든과 굿우드로 욕처먹지만 영국군을 대표하는 원수로서 결코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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