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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대흥사(大興寺)를 품고 있는 해남(海南)의 두륜산(頭輪山)은, 광주 무등산을 경유하여 화순을 거쳐 보성까지 남하한 '호남정맥' 중 장흥의 바람산(보성의 서북쪽)에서 분기하여 나온 ‘땅끝기맥’에 있는 산이다. 바람봉[바람재]은 장흥군의 봉미산(505m)과 삼계봉(589m)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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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기맥’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에 있는, 호남정맥 바람산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로, 화순의 광덕산-영암의 국사봉·활성산·월출산(809m)·도갑산(376m)·별매산에서 남하하여, 강진의 서기산을 거쳐 험난한 암봉으로 이어지는 강진군 도암의 첨봉(덕룡산)-주작산의 산줄기를 이룬 뒤, 해남의 안부 오소재[烏巢峙]에서 숨을 고르고, 두륜산(가련봉)-대둔산(도솔봉)을 지나 달마산(미황사)으로 이어져 내려와, 갈두산 사자봉(156m)에서 바다를 만나 절벽으로 떨어진다. 그곳이 바로 한반도의 ‘땅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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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기맥의 산줄기] (1) ▶ 장흥 국사봉 - 영암 활성산 - (월출산) - 도갑산 - 월각산 - 별매산
[땅끝기맥의 산줄기] (2) ▶ 강진 서기산 - 강진 첨봉 (덕룡산) - 주작산 - 해남 두륜산(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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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기맥의 산줄기] (3) ▶ 해남 대둔산(두륜산 도솔봉) - 달마산(미황사) - 갈두산 (사자봉) [땅끝]
우리가 이미 2013년 4월에 산행한 영암의 월출산(月出山, 809m), 2014년 4월에 산행한 강진의 주작산-덕룡산 연봉이 바로 이 ‘땅끝기맥’에 있는 산들이다. 그리고 해남에서 바다[완도대교] 건너 완도(莞島)에 있는 상왕봉-숙승봉도 2016년 4월에 산행한 바 있다. 모두 이번처럼 무박[車泊]으로 내려와 힘겹게 산행을 한 곳이다.
* [호남의 강줄기] — 나주-목포의 영산강, 강진의 탐진강, 광양-하동의 섬진강
백두대간과 지리산 영신봉의 분기한 낙남정맥과 호남정맥 사이의 산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하동과 광양 사이를 경유하여 남해로 들어가는 섬진강이 되고, 호남정맥과 땅끝기맥 사이의 물은 강진읍 강진만으로 들어가는 탐진강이다. 호남정맥-땅끝기맥 서쪽의 물은 영산강을 이루어 광주-나주를 경유하여 목포에서 바다로 유입된다. 이렇게 백두대간과 정맥 그리고 기맥들의 산줄기는 모든 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그 형세로 볼 때,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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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의 명산, 두륜산] — 영암 월출산과 함께 땅끝기맥에 솟은 준수한 산봉
두륜산(703m)은 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높이 703m의 산으로, 중국 곤륜산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흘러서 백두산을 이루고, 그 줄기가 남으로 흐르다가 한반도의 땅끝에서 홀연히 일어나 쌍봉을 이루고 솟아있다. 이 때문에 두륜산의 산이름도 백두산의 ‘두(頭)’자와 곤륜산의 ‘륜(崙)’자를 따서 지었다. 두륜산은 예부터 ‘큰 언덕’이라는 뜻의 ‘한듬’ 혹은 ‘대듬’으로 불리었으며 그 품안 안긴 절도 ‘한듬절’, ‘대둔사’라고도 하였다.
전남 해남의 두륜산(703m)은 사찰, 유적지 등이 많고 자연경관이 뛰어난 관광지로, 난대성 상록활엽수와 온대성 낙엽 활엽수들이 숲을 이룬다. 예컨대 한라산이 자생지로 알려져 있는 왕벚나무를 비롯하여 동백, 비자, 후박, 차나무 등 천여 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 식물분포학 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산이다. 여덟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 정상에서는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의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두륜산은 8개의 특징적인 봉우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주봉인 가련봉(703m)을 중심으로, 북으로 능허대(노승봉. 685m), 고계봉(638m), 남쪽으로 두륜봉(673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병목안봉. 613m)이 이어진다. 이 8개 산봉으로 되어있다. 명찰 대흥사는 수쿠리 형상의 능선 안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8개 봉우리 중에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암봉인 능허대와 가련봉, 그리고 두륜봉이다. 이 세 암봉을 두루 꿰는 종주 산행이 두륜산 최고의 산행로라 할 만하다. 바로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 코스이다.
* [두륜산 대흥사]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7개 사찰 중의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두륜산은 유서 깊은 대흥사(대둔사)를 품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활약한 ‘서산대사(西山大師)’ 영정을 모시는 표충사(表忠祀)를 비롯하여 국보 1점, 탑산사, 동종(銅鐘) 등 보물 4점, 천연기념물 1점과 수많은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두륜산에 자리한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조선 후기 ‘연담유일’이나 ‘초의선사’ 같은 저명한 스님 등 13대 강사와 13종사를 배출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대흥사의 창건과 관련「만일암고기」에는 백제 구이신왕 7년(426년) 신라의 정관존자가 ‘만일암’을 창건하고 그후 백제 무령왕 8년(508년)에 이름을 전하지 않은 선행비구가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죽미기」에는 신라 법흥왕 1년(514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서 깊은 대흥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7개 사찰 중의 하나이다. 산사는 한국의 산지형 불교 사찰의 유형을 대표하는 7개의 사찰로, 이미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다. 7개 사찰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승주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모두 종합적인 불교 승원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 [산으로 가는 길] — 심야(深夜)의 어둠을 가르며 남으로 달리는 버스
이번 산행은 남도의 명산 두륜산이다. 산행지가 워낙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므로 전날 밤에 출발하는 무박[車泊]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늦은 밤 11시 30분, 대원들이 능동(군자역)에 속속 모여들었다. 오늘 산으로 가는 금강버스에는 김준섭 회장, 한영옥 부회장, 박은배 총무를 비롯하여 호산아 고문, 김의락 자문, 유형상·김재철 대장이 포진하고, 오수정·허향순 님, 꽃구름의 지기 이달호 님, 전진국·강재훈·안상규 님, 강완식·윤종선·신시호 님과 친구 두 분, 류 경 님, 권순식 님과 고종길 님, 그리고 이명자·이경숙 님, 하회탈의 지기, 그리고 화양동 허방석 님이 동행했다. 또 노을비 조희우 님이 친구분과 함께 참석하여 반가웠다. 심야의 어둠을 가르며 남도로 향하는 버스에는 모두 29명의 대원이 동행했다.
밤 11시 40분, 서울 능동(군자역)에서 출발했다. 우리의 금강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대전-통영고속도로, 공주-서천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깊은 밤의 어둠을 갈랐다. 모든 세상이 잠든 깊은 밤 02시 42분, 인적 없는 고창 ‘고인돌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질주, 무안의 죽림J.C에서 남해고속도에 진입했다. 그렇게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동진하다가 강진군 성전면 월산교차로에서 13번 국도로 내려섰다. 해남 땅의 적막한 밤길이다. 그리고 해남읍에서 806번 지방도로로 진입하여 해남군 삼산(면)에서, 다시 827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양촌저수지를 지나, 미명의 새벽 04시 35분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오소재[烏巢峙]’에 도착했다. ‘오소재’는 땅끝기맥이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부로, 동쪽으로 주작산 암봉을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두륜산-대둔산으로 뻗어간다.
* [827번 지방도로의 오소재] — 미명(未明)의 시간, 캄캄한 밤 산길에 들다
오전 5시 20분, 오소재[烏巢峙] 약수터에서 새벽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산행에 돌입했다. 아직도 캄캄한 밤. 모든 사람들이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대원들은 행장을 갖추어 이마에 헤드랜턴을 밝히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오늘 산행의 첫 번째 목표지점인 ‘오심재’까지는 1.6km. 워낙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이어서 길은 아주 넓었다. 그리고 경사가 아주 완만했다. 바람기가 전혀 없는 어둠 속에서 두런두런 랜턴의 불빛들이 길을 잡아 나아갔다.
대원들의 발소리가 정적을 깨우는 조용한 밤길, 그런데 검은 숲속에서 새소리 요란하다. 산속에서 일찍 깨어난 새들이 새벽이 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는 것인가. ‘일찍 일어난 새가 먼저 먹이를 얻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봄을 맞이하는 산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 발 한 발 산행을 이어나갔다. 신선한 새벽 공기가 폐부에 스며들어 몸도 마음도 청량해진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 몸을 풀며 편안하게 올라갔다. 여명(黎明)의 시간,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 [오심재] — 노승봉과 고계봉 사이의 안부… 남해에 솟은 아침 해를 맞이하다
오전 6시 15분, 오심재[悟心峙]에 도착했다. 너른 광장이다. 돌아보니, 아, 거기 동녘 하늘에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둠을 가르고 찾아온 남도에서 맞이하는 해돋이, 신선한 아침이다. 오늘 하루, 우리들 산행에 서광이 내리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산뜻하고 맑아지는 신선한 아침이다. 오심재[悟心峙]는 북쪽으로 고계봉(高髻峰), 남쪽으로 노승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우리가 출발한 오소재 약수터에서 대흥사로 넘어가는 오래된 고갯길이다.
남해의 일출
노승봉을 배경으로 [오심재]
이 고개는 ‘쇠기재’라고도 부르는 데, 대흥사의 옛기록인「대둔사지(大芚寺誌)」에서는 ‘소아령(蘇兒嶺)’이라 하였고, ‘강진로(康津路)’로 이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말 대흥사의 12대 강사인 아암 혜장선사가 대흥사 북암에 주석하면서, 당시 강진의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던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기 위해 넘어 다녔던 재로 추정하고 있다. 오심재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주작산과 강진만, 북서쪽으로 고계봉, 남동쪽으로 노승봉 올려다 보인다.
오전 6시 25분, 눈앞에 솟아있는 노승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산길과는 달리 경사가 가팔랐다. 산의 나무들은, 이제 막 우듬지에 연한 움이 트기 시작하고 있어 아직은 대부분 앙상한 가지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얼마쯤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북쪽의 고계봉(高髻峰)이 눈에 들어온다. 고계봉은 이름 그대로 산봉이 사람의 상투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 전 대흥사에서 고계봉을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운행되고 있다. 노승봉의 중턱쯤에 불쑥 솟은 바위에 있어 대원들이 올라가 주변을 돌아보며 포즈를 잡는다. 그리고 그 위쪽에 ‘흔들바위’가 있다.
오심재 북쪽의 고계봉 - 산봉에 케이블카가 올라온다
‘흔들바위’는 큰 암반 위에 올려져 있으며 바위가 아래로 굴러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처럼 자연석 굄돌이 받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흥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초의선사(의순)가 편찬한「대둔사지」‘유관’편에 흔들바위[動石]애 대한 기록이 있다. ‘북암의 뒤에 있으며 한 사람이 밀어도 움직이지만 천 사람이 굴려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흔들바위
* [오늘 산행의 첫째 포인트, 노승봉] — 가파른 암벽, 정산의 너른 암반
산길은 가팔랐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노승봉이 바로 위에 올려다 보이는 곳에 너른 광장이 나왔다. 노승봉은 멀리서 볼 때 토산(土山)으로 보이지만 산의 상부는 큰 바위가 솟아 있는 암봉(巖峰)이다. 잠시 숨결을 고른 뒤, 다시 산길을 오른다. 길이 거칠다. 여기저기 돌들이 산재한 길이다. 그러나 길목의 곳곳에 성근 가지에 활짝 핀 순홍의 진달래 곱다. 삭막한 산길,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조용히 꽃을 피운 자태가 애틋한 정감으로 다가온다. 산봉의 바위 절벽 아래에 다다랐다. 올려다보니 노승봉은 험악하고 아득한 암봉이다. 절벽의 아래를 돌아가면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테크 긴 계단이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치고 오른다.
오심재와 노승봉 사이의 너른 광장 - 뒤로 보이는 것이 노승봉
고계봉
눈부신 아침 햇살이 비치는 산봉, 꼭대기에 올라가니 너른 암반이었다. 그리고 서쪽 벼랑 바위에 ‘노승봉 / 685m’이라고 새긴 작은 표지석이 있다. 일명 ‘능허대’로 불리는 ‘노승봉’온 사방의 시야가 확연히 열리는 지점이다. 북으로는 고계봉, 남서쪽으로 가련봉[두륜산 정상]과 그 뒤로 두륜봉이 솟아있고 그리고 이어지는 산줄기가 장엄하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해남군 북일면 일대와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도해의 풍경은 아침햇살이 역광으로 반사되어 선명하지는 않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풍치가 이채롭다. 확 트인 남해의 시공이 가슴을 열어준다. 신선하다! 여기가 땅끝과 가까운 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노승봉 정상에서 남해의 아침햇살을 받다
노승봉은 돌올(突兀)하게 솟은 암봉이다. 대원들이 포즈를 취하며 잠시 머물다 산행을 계속했다.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 다음의 산봉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절벽에 설치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나무테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내려 올 수 있었다. 안부에 내려오면서 앞을 바라보니 다시 암봉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개의 암봉이 험악하게 이어지고 있다. 앞에 있는 암봉을 돌아나가면 다시 가파른 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바위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막바지에 다시 나무테크 계단을 타고 암봉을 오른다.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는 길은 험하지만 사위가 열린 풍경이 아름답다. 바위 사이에 핀 순홍빛 고운 진달래가 봄의 전령사인 듯 눈길을 끈다.
노승봉과 가련봉 사이의 험난한 암봉
두 바위 절벽 사이로 보이는 남해
* [두륜산의 정상, 가련봉] — 가파른 바위절벽을 타고 오르내리며
오전 7시 26분 가련봉(703m)에 올랐다. 가련봉은 두륜산의 정상(頂上)이다. 사방의 시야가 확 열린 가장 높은 조망처이다. 북쪽으로 우리가 지나온 가까운 암봉들과 노승봉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고계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북쪽으로 해남군 북일면 일대이다. 남서쪽을 고개를 돌리면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암봉인 두륜봉이고, 거기에서 남동쪽으로 완강한 산줄기가 뻗어간다. 그 산줄기 끝에 바다가 보이고 바다 건너 큰 섬이 바로 완도이다. 해남과 완도를 잇는 다리 완도대교도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완도에 솟은 산은 상왕봉과 숙승봉이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좌우로 두 개의 산줄기가 뻗어가고 있는데, 그 산줄기 사이의 깊은 산곡(山谷)에 대흥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정상에서 대원들이 포즈를 잡는다.
가련봉(두륜산 정상)의 포즈
우리가 지나온 산줄기 -- 가운데 가파른 계단이 있는 것이 노승봉이다
땅끝지맥에서 남해 바다쪽으로 분기해 나간 산줄기 -- 바다 건너 완도의 상왕봉-숙승봉이 보인다
깊은 산곡의 한 복판에 대흥사가 희미하게 보인다
파란 하늘이 높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 신선한 바람결이 가슴을 환하게 열어준다.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가 가련봉을 내려온다. 안부인 만일재로 내려가는 길이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절벽이다. 필자가 50년 전 ‘호산아(好山兒) 멤버’들과 이곳을 지날 때는, 자일을 설치하고 진땀을 흘리며 아주 힘들게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주 위험하고 진땀나는 산행이었다. 지금은 너르고 반듯한 나무계단을 만들어놓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오늘은 그 절벽의 험악한 바위틈에 수줍은 듯 피어있는 진달래가 은은한 마음의 여유를 안겨준다.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계단 길, 그리고 벼랑바위를 지니기도 하고 너덜바위들이 쌓여 있는 길목을 지난다. 내려오면서 바라보니 안부 만일재의 너른 평원과 그 뒤로 솟은 두륜봉이 가까이 다가온다. 길목에 한 그루 산벚꽃이 꽃잎을 날리며 지고 있었다. 바위 절벽아래 소복하게 피어 있는 진달래가 가슴에 젖어든다. 가파른 계단을 오면 흙길이 이어지고 부분적으로 잎이 마른 산죽이 발길에 채인다.
가련봉에서 내려오는 길 - 암봉의 계단
날카로운 암봉 아래 연둣빛 신록과 진홍의 진달래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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