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감이 익어갑니다
우리의 현대 흑여사사 중에 게이샤 파티라는게 있다
나는 1976년부터78년까지 중동근무를 하였는데 한 일년간 히다치조센 직원들과 근무를 한적이있다.
이때 이놈들은 말끝 마다 게이샤 파티를 끄집어 낸다. 누구도 다녀 왔고 누구도 다녀 왔으며 한국 기생이 이쁘고 써비스좋고 잠자리 긑내 준다는 얘기며 저도 귀국하면 또 다녀 올것이라고한다.
비용도 저렴하단다 게이샤파티한번가서 양복두벌 맞춰오고 인사동가서 골동품하나 사오면 오히려 돈이 남는 단다.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월남전에 수많은 젊은 목숨을 딸러와 바꾸고 저임금에 인간 대우 못받고 중동으로 독일광부로 간호부로 외화벌이에 온국민이 고생 할때 박정권의 묵인하에 관광산업을 활성화 한다는 미명아래 공공연한 국제 매춘행위가 성행했던 시절이다.
이때 일본의 변호사한놈이 서울에서 게이샤 파티를 즐기고 골동품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고문서 몇권을 구입해 갔는데 이사람은 변호사일도 때려치우고 이책의 연구에만 몰두를하게 됩니다. 한국과 일본 사학계를 발칵뒤집어놓은 이책은1911년에 계은수라는 사람이 독립운동가인 홍범도등의 지원을 받아 필사 해놓은 환단고기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섯명의 저자들이
기록해놓은 우리의1만년 역사였다,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각색해놓은 우리의 역사를 전면 수정해야 할 중대사건이었다,
일본역사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 환단고기를 연구하던 일본 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단정하였으나 후일 부경대 안경전교수등은 환단고기를 연구하고 고증을 위해 수년간 고기에 기록된 지역들을 답사 방문하며 환단고기가 정확한 우리역사서임을 밝히고 임나일본부설의 위치가 대마도임을 증명하여 일본학계가 꼼작 못하게 만들었다,
환단고기는 기회될때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우리의 역사를 1만 년전으로 끌어 올려 중국의 요.순.삼황오제를 앞서는 역사이다.
환단고기는 구약성경과도 많은부분 일치한다
4300년전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고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방주에 탄 사람만살고 세상 모든 사람이 죽고 방주는7개월만에 투루키예의 아랏산에 착륙 하였다고 한다, 최근 4300년전의 퇴적층에서 대홍수의 ,흔적을 찾아냈다,
세상사람이 다죽은것은 아니었고 그무렵 전세계 곳곳에서 대홍수가 있었고 중국에도 9년 대홍수가 발생하여 22년만에 복구하였는데 치수관 곤이 처형될 정도로 해결을 못하여 단군왕검에게 도움을 청하니 단군왕검이 태자 부루를 보내어 오행치수법을 알려주어 해결 할수있었고 하왕조가 들어서는 계기가되었다는것이다,
환단고기는 그외에 일본의 역사도 확실하게 기록되어 일본서기 전편을 완전히 부인하고있다,
신무천황은 기원전660년이 아닌 김수로의 강림인 서기42년 으로 명시하고있다,
일본인들은 이걸 감추고 싶은게다
임진왜란때도 그랬고 일제 식민치하에서도 일본인들은 이 역사의 근거들을 찾아 말살 하기에 혈안이 되있었다.
모든 서적들도 압수하고 유적을 도굴하고 훔쳐갔다.
그중에 혈안이 되어 찾던 사마왕의 무덤은 끝내 못찾고 해방이 됐는데 1971년 우연히 배수로 공사중에 무령왕의 릉이 발견되었다
봉분이 낮으막한 언덕처럼 되어 있고 그위에 다른 무덤이 있어서 위에 무덤만 도굴한것이다.
무령왕은 63세인 523년 사망하였고 무덤안에서 나온 관의 나무는 일본 산으로 밝혀졌고
17세 정도의 왕비로 추정되는 여인의 어금니도 같이 발견되었는데 후궁을 순장 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도 이만 줄이고 다음에는 임나 일본부설에 대해서 써보겠다
2022년 9월 19일(월) 지 덕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