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8일 금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다시금 매서운 한파가 몰려오고, 코로나19 돌파 바이러스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침범하고 있으니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금요일이지만 반드시 극복하고 승리 합시다.
- 초긴장 속에 모두가 지쳐가는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진정 위로가 없는 이 때에 다시 오실 주님을 갈망하고 바라봅니다.
- 다시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하므로 걱정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정치권력 갈등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다스려 주시길 기도합니다.
- 하나님께서 어려운 현실타개를 위해 지혜주심과 구원의 은혜 베푸심을 믿고 영혼 사랑에 힘쓰며, 진리의 바른길로 인도하심에 따라 성탄의 소망으로 증인 된 삶을 살아내며 주신 일에 최선을 다 해 보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도행전25장1-12절 }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 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 제 목 ◑◑◑◑
◗◗ 바울을 재판하는 베스도
◑◑◑ 본문 이해와 요약 ◑◑◑
◗ 25장에서는 벨릭스의 뒤를 이은 베스도가 새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여 재개 된 재판에서도 바울을 처형할 죄목이 입증되지 못했습니다.
- 새롭게 베스도는 부임한 지 삼 일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 그 곳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의 내용을 듣고 가이사랴로 내려와 바울을 재판 자리에 세웁니다.
- 이때 바울은 베스도에게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세워 줄 것을 요청하였고, 얼마 지나 아그릴바와 버니게가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왔을 그때 베스도는 바울의 일을 의논하므로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 서게 됩니다.
◈ 이제 25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5절에서 베스도 총독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면서 종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입니다.
- 한편 6-12절에서 바울을 두고 베스도의 재판과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하는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 베스도는 부임 초기부터 유대인들의 인심을 잃을까봐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겠느냐’는 제의를 하게 됩니다.
- 이 제의에 대하여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답변합니다.
- 바울의 마지막 목표는 로마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런데 당시 로마 시민은 황제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었으므로, 바울은 그것을 로마행의 기회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 또한 13-22절에서 헤롯 아그립바2세가 베스도를 방문하게 됩니다.
- 그리고 23-27절에서 바울이 아그립바 앞에 서게 되는데, 여기서 베스도는 황제에게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를 얻고자 해서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세웠습니다.
- 베스도는 이미 바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로마 황제의 신하로서 공공질서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 그러나 마땅한 보고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바울을 잘 아는 아그립바 앞에서 한 번 더 심문함으로써 상소할 재료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 한편 바울은 이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아그립바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으로서 유대인의 풍속과 규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문제에 관해 대치하고 있는 유대인과 바울의 싸움을 잘 판단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일에 성실한 자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 한편 2절에서 악독은 성도와는 거리가 먼 불신앙인의 성품입니다.
- 그리고 3절에서 호의조차 능히 악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 마음의 부패상입니다.
- 한편 5절에서 사단은 성도를 송사 할 여러 구실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 또한 7절에서 성도를 향한 사단의 정죄는 승산이 전혀 없는 무모한 정죄입니다.
- 그리고 8절에서 세상의 무고한 정죄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도덕적 당당함이 성도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 한편 9절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면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 또한 세상에서 절대 무흠하고 완전한 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 그리고 10-12절에서 모든 인간에게는 올라가야 할 최고 최후의 법정이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총독 베스도는 재판을 황제에게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를 얻고자 해서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세웠습니다.
-총독 베스도는 이미 바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로마 황제의 신하로서 공공질서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 사실은 바울에게 죽음의 위협은 끊임이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바울에게 죄가 없음이 발견되어졌고 바울 자신도 담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힘 있게 선포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으나 그에 반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채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본 25장은 유대인들이 바로 그 잘못 된 본이라 하겠으며,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전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바울에게 담대함을 주시고 마침내 로마로 가는 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성도의 거룩함이 힘이다. (사도행전25장 8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세상의 무고한 정죄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도덕적 당당함이 성도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 오늘 본문은 바울사도에 대한 세 번째 재판으로서 재판장인 로마 총독 베스도는 이렇게 선고합니다.
- “네가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여기서 가이사는 로마 황제를 말하는데,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화 정치를 끝내고 일인독재인 황제정치를 시작하였는데,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합니다.
- 그의 조카가 다음 황제가 됨으로, 그 이후 황제들은 모두 카이사르(가이사)란 황제 호칭을 붙입니다.
-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고하게 됨으로 드디어 제국의 심장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소원이자 바울의 비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특히 8절에서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라고 사도 바울은 매우 귀중한 발언을 합니다.
- 이 발언의 뜻이 무엇입니까? 자신은 종교적으로도 흠이 없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을 정도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 그런즉 바울이 얼마나 당당한 선언입니까? 우리에게도 이러한 정직하고 깨끗하여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 성도는 종교적으로는 물론 사회, 도덕적으로도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사실 주를 믿는 성도가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께서는 성도에 대하여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 빛과 소금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마태복음5장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 빛과 소금이라는 말은 악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이 영광을 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이 사회를 향한 도덕적 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 세상 사람들을 향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 주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 그래서 욥 같은 이는 어떻게 세상을 살았습니까? 그는 욥기23장 10절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 이 말씀의 정확한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무리 먼지 털 듯 모든 죄와 허물을 찾으시려 할지라도 결국 자신은 순도 100%의 순금과 같이 나올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 그래서 그는 욥기23장 11-12절에서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하였습니다.
- 흔히 세상에서는 "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 그래서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렇게 정확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부끄러움이나 죄스러움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 오히려 이런 말이 사람의 타락과 범죄를 부채질할 수 있습니다.
- 세상 사람들은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죄의식 없이 죄를 범할지라도, 성도는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구별 된 생활을 해야 옳은 행실입니다.
- 시편17편3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 치 아니 하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부끄러움 없이 당당함이 있는지? 사도 바울처럼 당당하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 살아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내기를 원하시는지? 믿는 성도의 힘을 어디에서 빛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오늘 성령님은 나에게 어떤 행실의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세상의 무고한 죄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도덕적 당당함이 성도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거룩함이 힘이요, 능력이 됩니다.
- 베드로전서 3장14절에서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라고 하였습니다.
- 대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구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믿는 성도에게도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다니엘 6장4절에서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털어서 먼지가 나와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런즉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억울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부족합니까? 그런데 털어서 먼지 나서는 안 될 사람으로 살아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 자극 받아 하나님의 성도 된 우리는 더욱 자신을 사회 속에서 ,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자로 더욱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경건 생활로 부단히 가꾸어 가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고전6장2절에서 "성도가 세상 판단할 것을 너희가 모르느냐?“ 라고 책망하는 모습을 봅니다.
❥ 그러므로 장차 우리는 이 세상을 판단할 것이며, 이런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그런 생활을 해서야 안 될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들을 의식하여 거룩하게 구별된 삶과 마음을 견고히 다짐하고 세상에 법과 질서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솔선수범하고 세상의 어떤 정죄와 비난으로부터 언제나 바울처럼 당당할 수 있도록 세상에서 예수님을 본 받아 말하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선한 영향력으로 영혼을 살리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